교과서적으로 정리가 잘 된 책입니다. 최근 알고리즘 시대의 여러가지 측면을 다룬 해나 프라이의 <안녕 인간>을 본 덕분에, 이 책이 얼마나 교과서 같은지 더 실감납니다. 재인용하기 좋은 사례나 데이터 측면에서 좀 더 노력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플랫폼 부분에서는 네트워크 효과와 수요공급 곡선, 양면시장 등 진짜 교과서ㅎ 좋은 의미에서요. 게다가 챕터 별로 질문까지.
공동저자 앤드루 맥아피는 기계공학 석사에 기술과 운영관리학? 박사. 공동저자인 에릭 브린욜프슨는 경제학자입니다. 둘 다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친구 딸기는 믿고 보는 저자들이라 했습니다. 전작인 <제2의 기계 시대>라는 책도 함께 썼는데, 정의가 재미있습니다. 2단계 기계 시대는 1) 사전에 프로그램으로 짜거나 루틴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기술이 보여주기 시작한 시기. 기계는 바둑에서 이기고, 질병을 진단하고, 사람과 상호작용합니다. 2) 수억 명이 강력하고, 융통성 있고,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와 항상 함께하기 시작.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거의 대다수가 디지털로, 전세계의 축적된 엄청난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28~29쪽)
이 시대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전혀 다른 식으로 마음과 기계, 생산물과 플랫폼, 핵심 역량과 군중을 결합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기존 주자들은 현 상황을 너무 능숙하게 잘 알고 있어서, 그것에 얽매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볼 수 없고, 새로운 기술의 진화 가능성과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요. 이걸 '지식의 저주', '현상유지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으면서 기존 시장을 버리지 못해 기회를 놓친 코닥필름을 기억합니다. 노키아도 그랬죠.
1977년 연방 직원의 퇴직 서류작업에 평균 61일이 걸렸는데, 텍사스주는 이걸 디지털화해서 이틀만에 해결한다고요. (이틀이 짧은건가요..) 이미 1999년 아메리칸뱅커는 "5만 달러 이하 신용대출 요청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고 컴퓨터가 알아서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저자들은 "신용점수 개발자들은 이런 점수가 디지털 빨간 줄을 긋는데 쓰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습니다. 인종과 민족을 근거로 특정 지역 신용도 낮추거나 대출 거부하는건 불법이란 거죠.
기계의 시대를 말하는 건, 사람의 오류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안녕 인간>에도, 일관성 없는 판사들의 판결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이 책도 다양한 사례를 꺼냅니다. 예컨대 사람이 심사한 '우수 학자'보다 기계가 추출한 학자들이 최고 학술지에 더 많은 논문을 실었고, 인용횟수도 더 많았다든지. 사람이 선발한 영재 학생은 백인이 56%인데, IQ검사로 선정하자 아프리카계 미국 아이는 80%, 히스패닉계 아이는 130% 증가했다고요.
바이블과 같은 대니얼 카너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이 책에서 또다시 소환됩니다. 인간의 뇌는 시스템1이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시스템2가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언어로 그걸 정당화하는데,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종종 그 핑계를 떠올린 자기 자신도 속인다고요. 사람의 뇌, 사람의 판단에 구멍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결코 자신의 직감을 믿지 말라. 자신의 직감을 중요한 판단 자료로 삼을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평가하고 그 맥락에서 타당한지를 살펴봐야." (75쪽) 사람의 결정을 아예 제외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85쪽)
머신러닝을 활용했더니, 펌프, 냉각기, 냉각탑 장비를 알아서 조절해 온도 유지하고, 온도계, 압력계, 센서의 정보를 종합해 냉각장치 에너지 총량을 40%나 줄인다거나, 효율이 좋아지는 사례도 여럿입니다. 기계의 업무 영역으로 '지저분하고, 따분하고, 위험한, 그리고 비싼 일'로 정리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126쪽)
비슷한 책들을 계속 보는 중인데,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한 부분은 신선했습니다. 비판적으로 본 분이 많지만, 전 열교환기와 경주차 차틀 모델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존 방법을 향한 편향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더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다”는 점은 인공지능에게도, 인간에게도 여지를 남깁니다. 기계가 최적의 효율성만 고려해 설계한 열교환기와 경주차량 차틀 모델입니다. 토론에서 이 디자인들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데 기계의 힘을 빌리는게 괜찮은 경로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열교환기와 차틀 이미지는 여기서 퍼왔습니다. 기계가 창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이전엔 못해봐서, 제게는 인상적.
제인 오스틴 소설을 모두 입력한 뒤 2016년 8월 신경망 딥썬더(Deep Thunder)가 내놓은 작품.
"으스스했는데, 그리프에서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군요. 당신의 장녀에게 내가 처음 칭찬의 말을 하려고 하는데, 크로퍼드 씨에게 말을 타고 간 것이 너무 부적절했따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전에 거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을 만큼의 행실을 보였다면 부인, 나는 칭찬을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고 확신합니다. 버트램씨가 그 음악을 마음에 들어할 줄 우리가 몰랐던 것 같아요.?"
저자들은 이게 뭐냐, 그냥 가까운 미래에도 인간이 지은 소설과 시를 읽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뉴요커가 2019년 10월 이런 보도를 하네요. 너무 길어서, 앞 부분만 맛보기. 시간 문제 아닐까요..
그렇다면 인간이 잘하는 건 뭘까요. 저자는 사례로 고등학교 여자축구 코치를 듭니다. "이기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게 아니다. 대신 목표를 위해 학생들을 잘 협력하게 만들고, 서로 돕고 지원하는 동료가 되도록 가르치고, 운동을 통해 인격을 계발하도록 돕는 능력이 중요. 지난 경기의 피로와 자기 회의감을 잊고, 가능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 이걸 인공지능이? "우리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와 사회적 욕구를 인상적으로 연구하는 능력이 당분간 지극히 인간의 일로 남아있을 것이라 확신". (154~155쪽)
교과서답게 머신 얘기를 끝내고 플랫폼으로 넘어갑니다.
"13년 기준 미국의 신문 광고 매출은 10년 사이 71% 감소...온라인 광고 기여 액수는 34억 달러. 연 매출 손실 400억 달러에 비하면 미미.
2007~2011 미국 신문사 일자리 1만3400개 감축. 구인구직란 광고 수익은 2000년 이후 10년 사이 87억 달러에서 7억2300만달러로 감소.
한때 발행부수 330만부 뉴스위크는 2012년 인쇄판 찍지 않겠다고 선언.
2015년 플레이보이는 62년 동안 실었던 나체 사진 더 이상 싣지 않겠다고. 소셜미디어 트래픽 의존하는데, 누드 허용 않기 때문.
2005~2015년 미국 쇼핑몰 중 20%가 문을 닫았다. 2000년 미국 가정은 장거리 음성 통화에 770억 달러. 2013년에는 160억 달러.." (166~169쪽)
이 책에는 사례가 풍부하고, 인용할 데이터가 많다니까요. 다만 데이터도 사례도 좀 오래된 기분이 듭니다. 사실 책은 18년 10월에 번역됐고, 17년에 미국에서 나온 거니까, 불과 2년 밖에 안된 책인데, 그렇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분위기도 확확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는 참 잘되어 있습니다ㅎㅎ 네트워크 시대에 디지털 정보재의 무료, 완전성, 즉시성의 경제라든지, 네트워크 효과 등ㅎㅎ 교과서보다는 훨씬 재미있고요.
아마존 웹서비스, 2006년에 시작했군요. 18개월 만에 개발자 29만명이 썼고, 2016년 기준 총매출의 9%. 총영업이익의 절반 이상. 그동안 2114% 주가 상승했다... 이런 사례는 좋은데, 사티아 나델라의 MS가 클라우드로 부활한 사례도 더 재미있을텐데 업뎃 필요해요...
아이튠즈가 곡 단위로 음악을 구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음반 매출 감소에 한 몫을 했다는 것, 예컨대 묶여 있던 상품을 풀어서 언번들했다는게.. 음반업계의 시장 위기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용자에게는 묶어 팔고, 끼워팔던 시절보다 좋아진게 있거든요.
플랫폼을 개방하면 혜택이라는 사례는 애플의 앱 개방 정책입니다. 개방형 플랫폼은 여러 앱 개발사들에게 새로운 수익 기회를 만들고, 애플은 앱 수익 30% 챙겨서, 2015년에만 60억 달러를 챙기고.. 저자는 애플 앱 승인 절차는 너무 느리고 불투명하다고, 강력한 플랫폼은 영향권 기업에게 힘든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하는데요.
한때 '개방'을 부르짖던 사람이지만, 다소 회의적인 부분이 있어 저자들의 낙관론에 동의가 안되더군요. '개방'이 당연히 한 때 옳은 판단인 건 맞지만, 저는 앱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개방은 끝내 아무도 쓰지 않는 '좀비앱'들이 대거 등장하는 사태로 이어졌죠. '괜찮은 앱'을 발견하기 위한 큐레이션, 애플의 순위에 더 매이는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신문은 7100개. 그중 1000개 매체가 네이버, 다음 플랫폼에서 검색됩니다. 서비스 퀄리티, 이용자 만족도는 낮아졌어요. 플랫폼 소유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어떻게 배치하고 관리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독점적 플랫폼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반발이 커지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크라우드' 부분은, 사실 많이 아쉽습니다. 리눅스가 거기서 왜 나와! 뭐 이런 느낌. 집단지성의 힘이 만들어낸 사례가 리눅스,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인건 당연히 이해하지만, 이게 어떻게 진화하고, 어떤 새로운 도전이 등장하고, 좀 따끈한 사례가 더 나와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갈등 현안에 대해 때로 서로 수정하느라 바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위키피디아가 진보적이라고 반발하는 보수 위키도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주류 언론이 위키 믿을 수 없다고 공격하던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좋은 의미만 해석하고 있어서, 좀 당황했어요. 비트코인 등의 부분도 워낙 시장의 변화가 다이내믹해서, 이 정도는 레알 교과서..
와중에 오타를 발견했어요.. 283쪽에 옮긴이 역주로 18년 기준 유튜브에 시간당 4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침 최근 제가 좀 들여다보는 내용이라, 좀 이상해서 구글의 지인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19년 기준 분당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하루에 올라오는 규모가 88년치여요.
인류 역사 책은 1억3000만권으로 추정되고,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 약 3000만권 있고, 15년 기준 검색되는 웹페이지는 450억 쪽. 적어도 2500만 권은 디지털로 존재한다, 뭐 이런 데이터 좋습니다ㅎㅎ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가 저작권 이슈로 주춤한 걸로 아는데, 그게 어찌되고 있는지도 나와줬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많은 사례들이 인간과 기계의 공존의 균형점을 고민하게 만드는데, 그건 케바케.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2 기계 시대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인정해도, 우리가 불안해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이 책은 #트레바리 #국경 클럽에서도 읽고,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클럽에서도 함께 읽었습니다. 두 차례나 토론을 했더니, 아주 유익했어요. 그래도 각자 일터에서, 관심사에서 머신과 플랫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사례가 있는지 다 다르더라고요. 이런게 토론의 맛이죠.
#디지털시대읽기 당시 제 발제문을 붙여봅니다.
PS. 내용 중 제니퍼 팔카가 설립한 '코드 포 아메리카'는 혁신적 비영리 기관인데, 첨단기술기업 기술자들이 안식년에 정부기관에서 앱 같은 대중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는 내용이 202쪽에 나와요. 이건 정말 참고용으로 정리에 담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