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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09. 2019

<부당세습> 신귀족 9.9% 신분사회는 분노를 키울텐데


신분제를 지키면서 공정을 외치다


(정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 ‘관문’인 임용시험을 통과한게 아니기 때문... 이라는 정규직 교사들의 분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타당해 보이지만, 한편 안타까운 사안이죠.

“(세종캠 학생은) 안암캠 입학처에 진상규명을 요구할 정당성이 없다.” “고려대 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학생이 집행부를 맡는 건 문제”

최근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 딸 입시 문제와 관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간 갈등을 드러냈죠. 그들은 ‘의혹’에 대해 ‘공정’을 외쳤는데, 대체 공정이란 무엇인가요. 약자에 대한 연대가 아니라, 울타리 안의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 공정인가요. 신분제 사회로 가면서 공정은 뭔가요. 부정부패, 비리를 줄이는 사회적 공정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권리가 된 개인적 공정이 결이 좀 다르고, 세대 간 '정의'도 다른게 공정이라지만 말입니다.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


'부당세습', 부제는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입니다. 원문은 이겁니다. 월간지 애틀랜틱 18년 6월호 글. 원문 읽으셔도 좋고, 깔끔한 번역의 가벼운 책으로 나와줘서 저는 몹시 감사.

사회는 1%가 아니라 최상위 0.1%. 그리고 하위 90%. 그 사이에 있는 9.9%가 저자를 포함해 특권사회의 공모자로 불평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자기고발입니다. 9.9%의 특징은 '노오력'과 '능력'으로 차지한 '신분'이기 때문에 정당함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9.9%에서 탈락해서 90%로 떨어지지 않도록, 공고한 '선'을 긋습니다. '선'을 넘어오지 마.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네요.


새로운 귀족 계층인 능력자 계층(meritocratic class)은 다른 사람들의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아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대물림하는 오래된 술책을 터득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부의 편중과 관련해 아무 잘못도 없는 방관자가 아니다. 서서히 미국 경제의 목을 죄고,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과정의 주요 공범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단순히 능력이 모자란 탓에 우리 계층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벌이고 있는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는, 결국 모두가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12~13쪽)


미국의 최상위 0.1%는 2012년 기준 미국의 부를 22% 보유하고 있습니다. 1963년에 비해 12%P 늘었다죠. 그런데 늘어난 몫이 몽땅 하위 90%에서 왔답니다. 90%의 몫은 35%에서 23%로 줄었죠. 새로운 귀족계급 9.9%는 잘 버틴 셈이죠.


우리는 정장을 입은 예의 바른 무리들로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중급 투자은행가, 애매모호한 직함을 가진 MBA 출신이거나, 여러 전문직에 종사하며, 당신이 저녁 식사에 초대할 만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2016년 9.9%에 속하려면 적어도 120만달러(약 14억원)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백인이다.. 우리는 경외와 선망과 순종의 열망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으로 0.1%를 우러러본다.(20~21쪽)

좋은 가족, 좋은 건강상태, 좋은 학교 출신, 좋은 이웃, 좋은 일자리를 갖고, 끼리끼리 대학이든 직장에서든 만나 '선별적 짝짓기'로 울타리를 지키는 이들. "부모가 결정되는 순간에 당신의 인생 게임은 이미 절반쯤 끝나버린다"고 저자는 미국 사회를 비판합니다. 우리는 미국 사회를 닮기 위해 부던히 애썼고, 미국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의 사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9.9%인지, 9%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는게 부끄럽고, 재산이 저 정도는 아닐 수 있지만, 저는 9.9%의 일원일 것 같습니다. '사'짜도 아니고, MBA도 아니지만, 이 사회의 엘리트에 속합니다. 이 책의 자기고발에 발이 걸려 비틀거리며 이걸 정리하고 있어요.


이 울타리 안은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90%는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의 대졸자 비중은 9.9%보다 훨씬 많을 것 같지만.. 저자의 분석에선 대졸도 기준입니다. 미국에서 대졸 부부의 이혼율은 현저히 줄어든 반면 고졸 부부의 이혼율은 극적으로 증가하고, 심지어 결혼 자체가 흔치 않아지고 있다고요. 생존을 위해 몸과 영혼이 탈탈 털리는 이들은 사람에 대한 관심도 피곤하고, 연애도 사치가 되고, 결혼도, 출산도 꿈 같은 일이 되어버리는 구조.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집단적으로 불평등을 선택했다. 결혼은 사치가 되었고, 안정된 가정생활은 부유한 엘리트층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34~35쪽)


'교육 프리미엄이라는 세습'


챕터 제목부터 서글퍼집니다. 저자는 약 1.2만 달러(약 1400만 원)의 입시 카운슬링 서비스를 통해 이른바 경험 강화 enrichment experience 프로그램인 1.1만 달러(약 1300만 원) 짜리 10일 프랑스 문화탐방 코스를 추천받는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스카이캐슬이 한국에만 있을리 없었던거죠. 아이비리그에 가려면, 돈이 듭니다. 1985년에는 상위 250개 대학의 54%가 하위 75% 가정 출신이었는데, 2010년에는 이 비율이 33%로 떨어졌다고요.

  

2017년 연구에 따르면 상위 38개 대학에는 하위 60% 출신보다 상위 1% 출신의 학생수가 더 많았다. 다니엘 골든이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The price of Admission>에서 지적한 것처럼 동문자녀 우대정책(legacy admission)은 가산점을 주고, 체육특기생 전형도 부유층에 유리. 사립학교와 엘리트 공립학교가 두각을 나타내는 라크로스, 스쿼시, 펜싱 등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를 하고.. 0.1% 사이에서는 기부금 입학이 재유행.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98년 250만달러(약 30억 원)를 하버드대에 기부한 후, 이듬해 이 학교에 입학... 미국 학생 중 2.2%만 종교와 무관한 사립학교 졸업. 이 졸업생들이 하버드 학생의 26%, 프린스턴대 학생의 28%이다.. (48~49쪽)


알고보면, 미국 사립학교 문제도 우리 특목고와 닮았어요. 게다가 동문자녀 우대까지 있다니. 고급진 스포츠를 통한 체육특기생 문제는 마침 며칠 전에 이 기사를 보고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의 19년 10월 보도인데요. 사실 '애틀랜틱'이 이 이슈 계속 파고드는게 분명합니다. 이 책 자체가 애틀랜틱 18년 6월호에 나온거잖아요. 그래서 겹치고 이어져요.

이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대의 입학정책에 불법은 없었다는 미 연방법원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가 나왔는데, 특별대우는 있었고, 아시아 지원자들을 차별했다고요. 이 연구의 핵심은, 재판이나 하버드 문제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드러내는데, American scam of rich-kid sport 라는게 필자 주장입니다.

수상폴로, 스쿼시, crew, 라크로스, 스키.. 그냥 운동이 아니라, 제대로 된 훈련과 고가의 장비, 시설이 필요한 운동. 유색인종이나 중산층은 감당할 수 없는 고급 운동. 이런 운동하는 학생 지원자 90%가 하버드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전체 지원자 평균 합격률 6%보다 많이 높죠. 지원자 중 1% 정도인데 실제 입학한걸 보면 10%를 차지한다고요. 그리고 일반 기준으로는 입학 못할 학생들이 꽤 된다고요.

비싼 운동으로 대학만 쉽게 가는게 아닙니다. 취직도 그렇다네요. 이른바 America’s elite professional, 로펌이나 투자은행, 컨설팅 회사들이 뭘 보고 채용할까. Ivy League sports 본답니다.

In elite firms, filtering for fancy sports allowed high-status adults to hire their socioeconomic clones without having to ask the rude question: “So, kid, is your family rich like mine, or no?”

'그들만의 리그'는 특권을 복제하는 거대한 시스템. Affluent parents, elite colleges, and elite firms are participants in a vast machine for replicating privilege.


엘리트의 아이들은 엘리트 부모 아래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든, 안정적 울타리를 얻든, '눈높이'가 높아지든, '스펙'에 대한 정보력에 앞서든, 인턴 기회를 더 얻든, 고급 스포츠를 하든, 비싼 경력을 쌓든, 어떤 식으로든 물려받는게 많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는데, 어쩐지 띰띰한 구석이 있습니다. (제가 소셜미디어에 토로한 얘기는 뒤에 붙입니다)


'부당세습'으로 돌아가보면, 미국 대졸자는 사회 초년병 시절 고졸보다 70% 이상 더 많이 번다고요. 저자는 이 '대졸자 프리미엄'이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20%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전합니다. 일본은 30% 미만. 프랑스, 독일은 40% 쯤. 대학 입학 후 10년이 지나면, 소득 상위 10% 평균 연봉은 6.8만 달러(약 8000만원). 10위권 대학 출신은 22만달러(약 2.6억원), 하버드대는 25만 달러(약 3억원).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그들이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다른 종류의 일을 하기 때문. 금융, 경영 컨설팅, 의료, 법률 분야.. 거대한 카르텔."

금융, 컨설팅, 의료, 법률.. 그 정도의 부를 가져갈만큼 남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자 말대로 다른 일일 뿐이죠. 울타리를 높이 치고, 숫자'를 스스로 제한해서 파이를 지키죠. 이들이 돈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의 비밀.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재 미국 GDP 중 12분의 1은 금융 부문에서 발생하는데, 1950년대 그 비율이 40분의 1이었다. 게임의 본질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중이 위험을 떠안고, 금융계의 '투자 구루'들은 카지노에 자리를 깔고 앉아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긴다.. 돈을 따면 구루들이 이익을 가져가고, 돈을 잃으면 대중이 손해를 본다. 수십 년 동안 유력 금융가들이 그들 자신과 후손대의 이익을 위해 설계한 것. (57쪽)


9.9%가 눈감은 사이


미국에서는 상속세 공제 한도를 확 늘려서, 2013년 한해에만 430억 달러(약 51조원)을 깍아줬는데요, 이게 어린이 건강보험 비용의 약 3배에 달하고요. 부동산 풍경도 익숙하네요.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보스턴 집값은 7.6배 뛰었고, 비싼 동네 주민을 위해 일하는 헤어디자이너, 도시가스 검침원, 타일공은 그 동네에 감히 살지 못하고, 멀고 먼 근교에서 출퇴근하죠. 주요 도시 집값은 폭등하고, 디트로이트 같은 곳은 오히려 집값 떨어지고... 보스턴 주택가 대졸 비율은 53%인데, 그 변두리 쪽은 9%..


9.9% 사람들은 지위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생존을 위해 치르는 스트레스를 툭하면 혼동한다.

계급은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고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평범한 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가정에 갇혀 이를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87~88쪽)

9.9%가 아니라 90%, 특히 소외되고 차별됐다는 느낌은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부릅니다. 저자는 2016년 미국 대선이 분노가 표출된 선거였고, 0.1%와 90%가 연합해서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지역이 미국 GDP의 64%를 차지했다고 하니, 트럼프 지지자들은 명백히 부의 분배에서 소외됐고 분노할 만 합니다.


이 책의 주장은 마침 2019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이 '엄빠 찬스'를 부당하게 썼다고 제 베프 K님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런저런 스펙을 위해 본인이 노력한 측면이 있다는 제 주장과 충돌했습니다. 평소 비슷했던 우리의 생각이 이 사안에서 완전히 다른 것은 대체로 요즘 우리사회 평균적 현상 같네요. 아직 수사중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나온 걸 토대로, 저는 부당한 압력, 무리한 개입이 있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엄빠가 엘리트라는 자체가 혜택이긴 합니다. 외국어 능력도 능력자 부모의 유학 시기 해외에서 체류한 영향이 분명 있을테고, 똑똑한 부모의 자녀들은 공부가 디폴트죠.


대입 제도를 바꾸면 될까요?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보상과 분배가 가파른 격차를 만들고, 9.9%를 포함해 10%가 다 가져가는데, 그 울타리 안에 버티기 위해 필사적인게 당연하잖아요. 불평등한 시스템에서는 교육도 고작해야 높은 연봉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 즐기는 일을 하면서 존중받고 인정받으려면, 입시 제도 고칠 문제가 아닙니다. 보상과 분배가 상식적으로, 적절한 선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대졸자 프리미엄'이 미국은 70%,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20% 미만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눈에 띕니다. 능력이란 이유로 정당화한 엘리트들의 몫이 지나치게 큰건 아닌지요. 0.1%에 대한 과세가 너무 무른건 아닌지요. 남을 누르고 내가 이긴뒤 특혜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의식주 걱정, 아이 교육 걱정 없이 살아가는게 불가능한가요.


아래는 2019년 8월26일 제가 소셜미디어에 끄적거린 얘기입니다.

“OO아빠 덕분에 우리 아이가 대법관 자리에도 앉아보고, 고마워요”

엄마들끼리 덕담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이 중학교 엄마들 모임에 어쩌다 끼었는데, 체험학습이 화제였어요. 학부모 직장에 구경가는 프로그램. 어느 아빠가 대법원에서 근무했나 봅니다. 그 조의 대여섯 명이 대법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엄마들끼리 돌려봤습니다. 당시 둘째는 아빠 직업을 ‘목수’라고 쓰던 때입니다. 제겐 말도 안했어요. 그날 저녁에 넌 체험학습 어디갔었냐 슬쩍 물었더니, 어느 친구 엄마의 병원인지 제약회사인지 다녀왔다고요. 훌륭한 부모가 많은 동네. 얼마 뒤, 학부모 특강을 모집하는데, 변호사와 치과의사 학부모는 손 안들어도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원 학부모가 많다고요.


부끄럽지만, 8학군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직딩맘 얘기도 풀어보면 끝이 없습니다. 당시 저는 지인들에게 분개하며 말했어요. 잘난 부모 없는 애들은 체험학습 어디로 가냐고요. 체험학습 정도는 교육당국이 차별 없이 조율해줘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도 비슷한 행사로 각자 아이들 학교에 출동하곤 했어요. 개발자란 무엇인가, 같은 특강. 개발자 부모 많은 동네는 또 그렇습니다. 아이와 학교 친구들에게 꿈을 키워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죠. 역시 어느 동네, 모든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니, 딸과 친구들의 직업 탐구 체험 대상으로 나름 인권변호사 K님을 소개, 아이들이 깊은 인상을 받은 일도 있네요ㅠ 역시 엄마 네트워크빨..)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독후감으로 상받은 책은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였어요. 제가 울며불며 본 책. 한두 마디 말을 하기야 했겠죠. 어느날, 저라는 엄마를 둔 자체가 특혜 아닌가 의심이 들더군요. 같이 있는 절대시간은 적지만, 책 얘기로 대화하고, 사회적 역사적 이슈에 대해 궁금할 때 마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는 부모. 별로 해준게 없다해도, 고학력 부모와 안정적 가정에서 자란다는 자체가 어찌보면 특혜입니다. 제가 다른 엄마처럼 정보력이나 뭐로 해준게 없다해도, 뭐라도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직딩맘 죄책감을 덜 때도 있고, 어쩐지 불공정 느낌에 찜찜하기도 하고, 저도 오락가락 했어요.


몇 년 전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요즘 잘난 미국 부모들이 자식들 스펙 챙긴답시고 보츠와나 봉사 활동도 돈들여 보낸다고 블로그에서 비판한 적 있어요. 거기도 지덕체 스펙 위해 부자 부모들이 애쓴다는 것, 그게 입시에 다 먹힌다는게, 닮은꼴 대학 시장의 고질병 같더군요.


아이의 공교육에 학부모가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태는 건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훌륭한 부모라면,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학생들을 위해서도 봉사할 기회가 조직되면 어떨까요. 공교육이 부모 힘을 어디까지 빌리는게 맞는건지. 부모는 자식 위해 어디까지 뛰어다니면 괜찮은건지.. 이런 제 고민이 현실에서 한참 뒤쳐진 거 같지만, 이제는 부모가 곧 스펙인 문제도 진지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칼럼([기고]'조국' 논란..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은, 이 사단에서 우리가 뭘 건질지 얘기합니다.


누구든 자기 자식을 9.9% 안쪽에 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만,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신분제가 고착화되어 90%의 분노가 만들 사회를 상상하면 더 우울합니다. 기회가 평등한 것도 중요하지만, 90%도 좋은 가족, 좋은 건강상태가 평균에 수렴해야 하고, 꼭 좋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좋은 이웃을 만나고, 꼭 좋은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소득이 보장되는 방향을 고민합니다. 내 아이가 9.9% 사람들이 끼리끼리 누리는 사회보다 누구든 각자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고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사회에 살기를 바랍니다. 유토피아적이고 너무 이상적이라고요? 미국의 경우, 90%가 자기 몫을 빼앗긴게 불과 수십 년간 진행된 일이어요. 그 전엔 그리 나쁘지 않은 시절이 있었고요. 최소한 그 수준을 회복하고, 그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나누는게 중요합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이용마씨의 말을 저는 믿습니다. 안그러면 어쩔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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