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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28. 2019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추리소설같은 역사

일본 전범과 달랐던 나치 전범에 대한 단죄


"샌즈의 책은 최근 독서 중 압도적으로 감동감동. 취재와 자료 수집도 그렇지만 글빨이 그냥 ... 휴"
이준웅쌤은 이렇게 톡을 남겨주셨어요. 사실 책에 대해 이미 이렇게 정리한 칼럼 때문에 물어봤거든요. 진짜, 그렇게 좋냐고요.

"요즘이라면 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같이 읽자고 하겠다. 다소 엉뚱한 번역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처럼 읽힌다. 그렇게 재미지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 역사적 인물들의 개인사에 대한 것이며, 그것도 전문적 검토를 거친 사실의 복원과 사려 깊은 해석을 동반한다. 이 책을 제대로 된 탐사보도에 목말라하는 모든 언론학도에게 권하고 싶다. 역사적 사실이란 이렇게 교묘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진실은 이렇게 시적으로 자신을 숨긴다."


571쪽 두툼한 책. 읽고 싶어 안달이 난 논픽션. 그러나 읽고 싶은데 바쁜 척 하느라 읽지 못하고 쌓여 있는 논픽션 책이 몇인데... 직장을 그만두고, 당분간 좀 한가해질 거라 생각한 저는 독서모임 트레바리에서 아예 새로운 클럽을 열어버렸습니다. '기막힌 논픽션'. 첫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리고, 저는 흥분했어요.

와. 이거 완전 제 취향. 너무 재미있어서 간만 몰입 독서 중. 제가 클럽장인 또다른 클럽 #기막힌논픽션 첫 책인데. 모임 일주일 앞두고 서둘러 폈어요. 재미와 의미야 준웅쌤이 보장했고. 그동안 다른 책과 다른 과업에 밀렸다가 이젠 슬슬 봐야 하는 참이긴 한데... 읽다가 흥분해서 사진 찍고 기록. 100쪽 읽도록 본론은 커녕 도입인데 이런 이야기체 넘 좋아요ㅠ 자야 하는데 잘 수가 없고, 지난 두 달 꺼내도 보지 않던 노안 안경을 썼어요. 밤엔 더 침침한 눈으로 정신없이 읽는 중. 요런건 일단 기록하고 다시 책으로.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저자 외할아버지 가족의 삶을 들여다본 회고록이자,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이 탄생한 뉘른베르크 재판을 둘러싼 국제정치 논픽션, 유대인 학살을 명령한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한 두 인권변호사의 법정드라마'.
아마도 이 설명이 가장 정확하고 간결할겁니다. 근데 저렇게만 소개하면 아쉽죠. 저자는 서문에서 리비우(Lviv)라는 도시 얘기를 꺼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쪽 외곽의 '렘베르크'였다가, 1차 대전 직후 신생 폴란드의 '로보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소비에트의 '리보프', 독일군 점령 후 다시 '렘베르크',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리비우'로 불리는 도시. 인권법 전문가인 저자는 2010 리비우 대학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습니다.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서 '인도에 반하는 (crimes against humanity)', '제노사이드(genocide)' 대한 강연. 리비우는 마침 저자의 유대계 외할아버지가 살았던 도시. 무엇보다   개념을 만들어낸 허쉬 라우터파하트와 라파엘 렘킨이 공교롭게도 리비우 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선후배입니다. 운명의 도시죠. 책은 나치에 점령당한 그 도시의 사람들이 맞이한 가혹한 운명을 추적하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어떻게 저 개념이 탄생하는지 살펴봅니다. 덕분에 책은 시작 전 주요 인물의 가계도부터 소개합니다. 등장인물 복잡하기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아닌데, 뭔 인물열전일까...

그리고 숨막히는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1, 2차 세계대전 와중에 그 도시의 사람들, 그들의 아들딸과 그 다음 세대에 벌어진 일들.


거짓말 같은 학살


1938년, 도로 바닥을 닦으라는 학대 속에 유대인은 대학 입학과 전문직 진출이 금지됩니다. 사업체는 보상 없이 몰수됐다죠. 1942년,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로 가는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플랫폼에서 강제로 옷을 벗고. 머리를 밀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매트리스 만드는데 사용됐다죠.... “말케의 삶은 열차에서 내린 뒤 15분 만에 끝이 났다.” (91쪽) 말케는 저자의 증조할머니입니다. 이야기가 뚝 끊기듯, 순식간에 문장이 끝나버려 당혹스러웠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세 자매도 이 때 함께 삶이 끝났어요.  1943년, 리비우 인근 주키에프의 유대인 3500명은 숲속 빈터에 줄을 서서 2km를 걸어갑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총살됐습니다. 한꺼번에.

로만 롱샴 드베리에 교수 등 폴란드 지식인이라는 죄명으로 체포.. ‘리보프대학 교수 대량학살’의 일환으로 처형됐고, 이 책의 주인공인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둘을 모두 가르친 알레한드 교수. "독일 경찰이 유대인 남자를 죽이자 알레한드 교수는 경찰의 주의를 끌려고 그에게 다가가 간단한 질문을 했어요. ‘당신은 영혼이 없나요?’ 그러자 경찰은 알레한드를 향해 돌아서서 총을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쏴 죽였지요." (238쪽)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쥐새끼 취급을 받던 시절입니다. 말그대로, 쥐처럼 박멸 대상이란게 사실 글로 읽어도, 잘 와닿지도 않습니다...

프랑크는 두 군인에게 다가가 무엇에 사격을 했는지 물었다.

“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여성들은 쥐새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치마를 무릎까지 올리며 깔깔거렸다.

"어디에 있나요? 쥐가 어디에 있어요?"

“조심하십시오.” 군인이 총을 겨누며 말했다. 검은색 곱슬머리가 여러 개의 구멍에서 나왔다가 담장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두 손이 나와 눈 위에 놓였다. 아이였다.

또 총을 쐈지만 몇 인치 차이로 비껴갔다. 아이의 머리는 사라졌다…

이것은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을 동반하는 사교행사로서의 게토 방문 장면이었다. (347쪽)


리비우를 비롯해 폴란드 지역 총독이던 한스 프랑크의 일화입니다. “나는 모든 벼룩과 유대인을 1년 안에 없앨 수는 없다.” 프랑크가 1940년에 한 말로 기록됩니다. 그의 일기에는 “우리가 120만 명의 유대인을 굶어죽게 한 것은 아주 지엽적인 일로 언급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프랑크는 1933년 이후 긍정적 모든 변화를 목록으로 정리했습니다. 그가 자랑한 혁신에는 ‘우생보호정책’, ‘위험한 도덕범죄자의 거세’와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위협하는 사람에 대한 ‘예방적 구금’이 포함됩니다.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하는 사람은 불임수술을 받았으며,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강제이송되었고, ‘부적합한 민족과의 혼혈’을 피하는 새로운 민족법을 제정했습니다.


프랑크가 거의 절멸시킨 폴란드의 유태인들 중에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저자 필립 샌즈의 가족도 있습니다. 원제가 'East West Street : 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 인데, 샌즈의 외증조모,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이 살았던 거리가 이스트웨스트가입니다.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친지들의 연락이 끊기고, 어느 순간 모두 알게 되죠. 비극을 피하지 못했을 거란 것을. 너무 거대한 말살은 개별적 사연을 따지기 어려울 수 있는데, 필립 샌즈는 한 명 한 명 추적합니다. 각 개인의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 비극은 좀 더 구체성을 갖춥니다.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한스 프랑크는 결국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만나게 됩니다.


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


“개인의 안녕이 모든 법의 최종 목표이다”. 라우터파하트는 ‘오펜하임 교수의 국제법’ 제2권 개정판에 이런 서문을 썼다고 합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보여도 당연하지 않았군요. '국가는 국민을 대상으로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차별하고 고문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137쪽)는 시절입니다.


'제노사이드'를 창안한 렘킨이 꽂혔던 건 1915년 아르메니아인 120만명이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당한 사건. 터키 정부에서는 이를 강제이주에 따른 희생이라고 주장하면서 집단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지만, 사실 믿기지도 않거니와 처음 알게된 사건입니다. 희생자 규모가 터키 추산 20만명, 아르메니아 추산 200만명으로 추정된다는데 이 책은 120만명으로 언급합니다.  '터키가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자국민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을 조약이 없었고, 주권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치권을 의미'했던 시절입니다. 그는 '특정 민족과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 민족 또는 종교집단, 특히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및 다른 집단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점령 지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과 종교 집단의 말살'을 명확하게 제노사이드라는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두 법률가가 각각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지만, 국제사회의 룰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면, 각국 정부도 몹시 이기적입니다. 당연한가요? 소수민족과 약소국민을 평등하게 취급한다는 미국 윌슨 대통령의 특별 협정 제안의 경우, 영국이 반대했다고요. 미국 흑인, 남부 아일랜드인, 플랑드르, 카탈로니아 등 다른 집단에도 비슷한 권리가 주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 영국은 국가가 원하는 대로 국민을 취급할 권리인 주권의 침해 또는 국제기구에 의한 감시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국제법 전문가로서 국제인권장전을 모색한 라우터파하트의 접근도 한계가 있습니다. 법령 초안에는 신체 및 행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 등 시민권에 관한 9개 조항이 포함됐으나 고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등은 빠졌다고요. 남아프리카 유색인종 상황과 미국 일부 주에서의 흑인인구 참정권 배제 문제 등도 그는 타협했던 모양입니다. '정치적 필요성을 인식해 이 두 국가가 국제법적 권리장전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위 문제들을 간과' 했고, '사회주의 진영인 동구권으로부터의 정치적 열풍과 재산권 문제도 침묵'했던 것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인도에 반하는 죄'로 끝내 나치 전범들을 기소한 것은 오늘날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번역 제목처럼 우리에게 남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뉘른베르크 법정에선 나치 전범들은 모두 모르쇠로 발뺌했습니다. '제국 원수'였던 헤르만 괴링은 학살 계획일거라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고,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히틀러의 명령을 읽지도 않고 전달한 한낱 순진한 중간자였다고 했고, 폰 노이라트는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모르는 외무장관이라고 했다고요. (히틀러의 주요 민족 이론가인)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는 자신의 철학이 초래한 가공할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당원 신분의 철학자일 뿐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 재임했으나 통치는 하지 않은 폴란드 총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랑크는 비록 “천년이 지나도 독일의 죄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략적이랍시고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라우터파하트는 개인의 피해에 주목한 '인도에 반하는 죄'를 강조하면서, 집단의 피해에 초점을 둔 '제노사이드'를 경계했지만, 어쨌든 전범들은 '인도에 반하는 죄'로 기소됐습니다. 렘킨의 필사적 노력 끝에 '제노사이드'도 1948년 유엔 총회의 '제노사이드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조약' 체결로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이 됐죠. 책을 읽고 난 뒤, 이들을 계속 검색해봤습니다. 샌즈의 책에도 나오는 라우터파하트의 아들 엘리후는 케임브릿지 대학의 교수로 샌즈의 멘토이기도 했죠. 법학자 아버지의 삶을 법학자 아들이 책으로 정리했군요. 라파엘 렘킨의 삶은 좀 더 외롭고 안타깝긴 하더군요.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가 언론인이 되어, 아버지의 범죄를 용서하지 않는건 당연한듯 보여도 슬픕니다. 니클라스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확인하기 위해" 교수형 집행 직후 촬영한 아버지 한스의 사진을 가슴에 넣고 다니며 매일 본다고요.  


일본은 처벌받지 않은 '인도에 반하는 죄'

범죄에 대한 개념 정의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할 수 있는데, 몹시 중요합니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침략국 일본에 의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대한 수탈과 참혹한 피해를 당했다. 물자와 자원, 문화재 등 국부를 수탈당한 물질적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명이 살상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유린되었다. 그러한 학살과 살상, 착취와 유린이 바로 국제법상의 '인도에 반하는 죄'인데, 제국주의 일본의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자행한 숱한 '인도에 반하는 죄'로 처벌받은 자는 없었다." - 옮긴이의 말

뉘른베르크의 나치 전범들과 달리 도쿄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일본 전범들은 모두 침략전쟁에 관한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권위주의 정권에서 저질러졌던 여러 국가폭력 역시 협소한 국내법적 관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국제법적 범죄인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관점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더라도 반드시 그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단죄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깨우침이 아닐까 싶다.'
역시 옮긴이의 말입니다. 당초 법률용어 감수 요청을 받았던 그가 직접 번역에 나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옮긴이 정철승 변호사는 신흥무관학교 교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라고 합니다. 2019년은 한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이 무역 보복으로 벌어진 해이자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치 전범에 대한 기소에는 유대계 법률가들이 대거 나서서 미국과 영국 정부를 압박한게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 전범에 대한 처벌에 우리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승전국 미국은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결국 풀려나 총리가 되는 걸 묵인했잖아요.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노력이 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개인이 입은 피해에 주목한 라우터파하트의 정신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우리 '헌법 10조'에 담겨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비롯해 정부가 개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뉘른베르크 법정은 나치 전범을 끝내 처벌했지만, 39년 9월 이전의 일들은 논외로 했습니다. 전쟁이 없다면 '인도에 반하는 죄'도 없다는 식으로 현실에 어느 정도 눈감고 넘어간겁니다. 뉘른베르크 이후, 1948년 라우터파하트의 연구들은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 영향을 미쳤고, 1950년 '유럽인권조약'으로 이어졌지만 실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립되는데 정말 오래 걸렸네요. 1998년 르완다 사건의 장 폴 아카에쥬가 막 설립된 ICC에서 제노사이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피고인입니다. 1999년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코소보에서 잔학행위를 자행해 인도에 반하는 죄를 범한 혐의로 기소된 최초의 현직 국가 원수가 됐죠. 2001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자행한 잔학행위 때문에 제노사이드 혐의까지 추가됐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르비아는 미적댔고, 재판은 지연되면서 2006년 수감 중 사망했습니다. 제대로 된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죠. 2010년 7월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제노사이드 협의로 기소된 첫 현직 국가원수가 됐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하지만, ICC가 '인도에 반하는 죄'나 '제노사이드' 혐의를 묻는 것은 대체로 아프리카 지도자들 뿐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를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군인이 임무 수행 중 민간인을 희생시켰을 때, 처벌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 뒤를 밟는다면 가만있지 않겠다. 소속 판검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금을 제재하고, 미국 형사법에 따라 기소하겠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2018년 9월에 ICC를 겨냥해 한 말입니다. 중국도, 러시아, 이스라엘, 터키 등도 ICC를 위한 로마규정을 비중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동국가의 쿠르드족 탄압,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등에 관여하지 못합니다.

2009년 위구르족과 한족 노동자가 충돌, 위구르족이 2명이 숨졌고, 이는 한족 100명을 살해하는 폭동으로 번졌고, 진압 과정에서 살해되거나 처형된 위구르인이 1만명을 웃돈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과 터키, 쿠르드의 분쟁은요? 희생자들을 구할 방법이 없는게 국제사회입니다. 홍콩 사태까지 터진 마당에,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들을 다루는 거버넌스 구조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2020년대에도 인류는 좀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기록의 힘


저자는 외할아버지의 도시 리비우 초청이 계기가 됐다고 하지만, 정말 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유럽과 러시아, 북미까지 대륙을 뒤집니다. 렘킨의 흔적을 찾기위해 시립 기록보관실에 가서 1918년부터 1928년까지 법대 학생 관련된 책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한 권당 수백명의 학생 기록이 있는 서른 두권을 찾아서 수천 페이지를 뒤집니다. 끈질기게 추적하고, 단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수도 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찾아낸 진실의 조각들이 전율을 부릅니다. 그 과정을 정리한 이 책이 추리소설처럼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필립 샌즈는 외할아버지 가족이 학살당한 역사라, 각별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인권법 전문가로서 몇 가족이 겪은 일들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수천 페이지 자료를 뒤지고, 국경 없이 사람을 찾아다니고, 만나러 가고, 또 자료를 뒤지고, 인터뷰를 하고, 대단합니다. 이준웅쌤이 왜 기자 지망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샌즈가 인권법 전문가이자 역사를 고증한 학자로 비춰진다면,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한때 스승, 리비우 대학 마카레비츠 교수의 삶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는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형법에 대한 마지막 강의를 했고, 4년 뒤에는 폴란드 형법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국가가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 학생이 바뀌고 법이 바뀌었지만 교실은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소비에트법이 적용되는 시기에도, 한스 프랑크의 독일법이 적용되는 시기에도, 다시 소비에트법이 적용되던 시기에도 그는 새로운 현실에 맞춰 자신의 수업을 조정했다고요. (245쪽) 밥벌이에 충실한거라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 '인도에 반하는 죄', '제노사이드' 개념을 갖고 평생 치열했던 점을 감안하면, 슬프네요.


저는 기자의 저널리즘이 좁은 지면 대신, 시대의 현장을 기록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내는 역할에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의 역할은 책으로도 구현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기자가 아닌 전문가도 모두 저널리즘에 복무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립 샌즈의 이 책은 저널리즘을 탐구하는 이들이 꼭 읽었으면 합니다.


책을 읽고, 어떻게든 리뷰를 남기려고 하다가 한양대 로스쿨 교수 박찬운님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저도 나름 책을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록해놓아야 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박찬운님 블로그를 보면, 이 책에 담긴 법적 개념과 뉘른베르크 재판의 의미를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블로그 정리하는 교수님,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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