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훈장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직인이 찍힌 석탑산업훈장. 재직중이던 회사의 플랜트 건설 분야 책임자로서 동해화력발전소 건설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받으셨네요. 오늘 아빠의 팔순 기념 점심을 위해 모이는데,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올려주셨습니다.
당시 국가상훈편찬위원회에서 낸 <현대사의 주역들> 인물편에 나온 설명은 더 흥미롭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검색되는 글로 어딘가 남기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옮겨봅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선생은 1967년 대한기술공단 구조기사로서 京釜高速道路 설계에 참여하고, IDA 한국도로 조사단에서 嶺東高速道路와 湖南高速道路 타당성 조사 설계에 참여하여 한국고속도로 건설역사의 초창기에 일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 후 1970년 한국종합기술공사 특수구조부 과장으로 서울지하철 1호선 설계에도 처음부터 참여하게 된다. 특히 이때 선생은 PM으로 서울역 역사 설계를 맡게 되었는데 상행선과 하행선이 각기 다른 원곡선 구간으로 되어있는 역사중심선이 타원곡선으로 되는 복잡한 설계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73년 미국 A&E인 DMJM 서울사무소 책임구조기사로 주한 미군시설물의 구조설계를 했으며, '76년부터 울산화력발전소와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 토목설계를 주도하면서 플랜트 건설 분야로 진입하고, '80년 이후 2000년까지 국내외 여러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80년 Aramco로부터 수주한 해양석유생산시설(Zuluf.Marjan G.O.S.P)은 현대건설 직원 150여명이 미국 휴스턴 현지에서 설계 및 구매업무를 수행한 한국건설업계 최초의 LSTK 프로젝트로서 이후 해외대형 석유화학플랜트 턴키 수주의 길을 열었으며, 현대건설(주) 이사와 현대중공업(주) 상무로 '88년까지 Arabian Gulf와 인도 Bombay High Oil Field의 Offshore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89년부터는 SK건설(주)로 옮겨 상무, 전무,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역임한 선생은 엔지니어링 본부장, 플랜트 본부장, 플랜트 해외 부문장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와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까지 대형석유화학 콤플렉스 들의 성공적인 수주와 수행을 책임지게 된다.
선생은 한국플랜트 건설업계의 1세대 개척자로서 현재 업계의 최선봉에서 활약하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운 것에 '무엇을 해 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생활철학으로 어떤 일에 임하던지 최선을 다하도록 해왔고 함께 일한 부하들에게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Get the Job done'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글에도 나오는 IDA 한국도로 조사단에서 엄마를 만났다고 합니다. 영문과를 졸업한 엄마는 그 사무실의 독보적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별로 재미있는 성품은 아니신데, 엄마와 결혼한 건 아빠도 미남이었기 때문이구나, 요즘 제 눈엔 그리 보입니다. 엄마가 액자로 모셔놓은 아빠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약 30~40년 전 사진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국민학생일 때, 휴스톤에서 2년, 중학생일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년 혼자 일하러 가셨죠. 그때 가족들 좀 데리고 갔으면 동생과 제가 영어울렁증 없이 글로벌 인재로 자랐을텐데. 당시 정주영 회장님이 가족은 두고 가라고 엄하게 말씀하셨고, 그대로 하셨다고 합니다. (그냥 그래도 가족 데리고 간 동료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뭐 평생 깐깐한 원칙주의자라, 건설회사 임원을 그리 오래 하셨는데 별로 모으신 것도 없고ㅎㅎ 우리 가족은 당시 포니2를 동네에서 가장 오래 탄 집이었죠ㅎ)
전세계를 누비던 아빠가 1991년 비행기에서 만난 분의 친필 사인. 넬슨 만델라입니다. 딸이 팬이라고 저를 팔았던지라, for Jeong 은 저를 향한 겁니다. 그러나 사실 아빠가 팬이었을게 분명합니다.
올해 1월 중환자실 한 번 다녀오신 뒤, 기력이 예전같지 않으십니다. 바쁜 딸은 잘 안 건드리려고 하시는데..마침 백수인 딸이 여름 이후 몇 차례 병원을 함께 다니긴 했네요. 그래도 몸을 단련하기 위해 날마다 조금씩 걷고, 노력하는 아빠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평생 일에 몰입한 산업역군이었고, 친구들과 책을 함께 읽으며 여러가지 사회 공부도 하셨고, 'TIme'지 들고 다니며 나이 들어서도 영어공부조차 게을리하지 않으셨죠. 1kg만 몸이 불어나면 기내식도 먹지 않고 몸관리 소홀하지 않았던 분이라, 딸이 살 찌는 모습도 질색하시는데...
무튼 아빠는 '이니시계'를 소중히 차고 다니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시계가 몇 년 전 등산길에 넘어지신 뒤 고장나는 바람에 슬퍼하셨는데, 이것은 딸의 효도ㅎㅎ
아빠 동네 인근 맛집을 미친듯이 검색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팔순을 함께 했습니다. 사실 아빠의 팔순은 내일이지만, 오늘이 일요일이라 편했어요. 유학중인 동생네 큰아이 J는 페이스톡으로 외할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동네 잔치를 열어드리지 못했지만, 그건 아빠 취향 아닌 것 같고요. 이제 조금 아프시기도 하고, 힘드신 일도 있겠지만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애교 부족한 딸이라 죄송하지만, 늘 존경하고 있습니다. #정석우 #울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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