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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y 04. 2020

<선량한 차별주의자> 불편한 질문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


차별하고 있었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188쪽)

어찌보면 쉬운 질문인데, 사실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량한 척 해봐도, 차별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60쪽)

'선량한 차별주의자' 같은 제목의 책을 고른 인간으로서, 차별과 혐오의 해악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어요. "누군가에게 공공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133쪽)라는 차별에 반대하는 건 상식적 인간으로서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저를 잘 몰랐다는 걸 책을 보고서야 알다니. 명불허전입니다. 왜 이 책을 놓고 '선물하고 싶은 책', '나누고 싶은 생각'이라고들 난리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클럽에서 함께 읽었는데요. 이 책은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고 토론해볼 책입니다. 쉽게 술술 읽히도록 썼는데, 남는 질문들이 결코 쉽지 않아요.


저자는 '결정장애'라는 사소한 단어에서 출발합니다. 우유부단한 저도 종종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고요. 감수성 충만한 저자는 자신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데 충격을 받습니다. 독자인 저도 덩달아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최규석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이 인용되는데, 우리는 다른 곳에 서서 다르게 보는 법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플라톤 '향연' 읽을 때 안재원쌤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플라톤이 '에로스'를, '국가'를 얘기할 때는 폴리스 바깥으로 나가서 관조한다고요. 멀리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요.

 

얼마전 '무한도전'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K님이 "유치하게 설정한 이들을 보면서 웃고 즐기는 것이 불편했다"고 할 때도 좀 당황했어요. 무한도전 팬으로서 별 생각 없었거든요. 흑인 분장 개그가 불편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바보 흉내엔 둔감했죠. 저자는 "금기된 영역의 빗장을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유머..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게 여겨진다"면서도 "이렇게 금기된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권력에 도전하는 풍자가 가능하지만 그 금기의 빗장이 약자를 향해 풀렸을 때 잔혹한 놀이가 시작된다"(89쪽)고 지적합니다.


차별에 대한 흔한 착각


여성 직원 비율이 2%인 회사가 향후 채용할 직원 중 여성이 50%, 10%, 2%인 상황을 제시할 때, 남녀 응답자 모두 10% 상황에 공정하다고 답했다는 연구가 있답니다.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여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네요.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는데(23쪽), 구색만 맞춰주는 '토큰( token)'에 만족하는 토크니즘에 대한 설명은 당혹스럽습니다.


차별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다 근거가 있었습니다. 소수자 정책은 다수자가 차별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차별이 없다' 혹은 '있더라도 불합리한 차별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는 이들에겐 억울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하는데, 그게 관념적일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내가 속한 집단은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해야 안심이 된다(25쪽)지만, 불합리한 차별도 아닌데 소수자 편들어주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는거죠. 여성이 안전을 외칠 때 남성을 모두 성범죄자로 몰아세운다고 느끼는 것처럼.

저자는 대니얼 카너만의 '손실회피편향'을 인용해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30쪽)고 합니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고 손실이라는 생각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인식도 않는 특권, 편견, 고정관념,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 대사인데요. 저자는 이 대사를 인용해서,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은 호의로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정리합니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27쪽)  결국 모든 종류의 권력 관계에서 특권이란게 나옵니다.


내가 무슨 특권을 가졌겠나, 이런 생각은 사실 버렸습니다. 기자 시절 가장 좋은 경험이 기자를 그만둔건데, 그제서야 기자의 특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위직을 비롯해 누구에게든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기사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큰 특권입니다. 근데 기자들끼리 취재 경쟁할 때는 특권이란걸 인지도 못했어요. 저자는 특권에 대해 '가진 자의 여유',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28쪽)라고 정의합니다. 저도 그만두고, 손에서 놓고난 뒤에야 깨달았던 이유죠.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시외버스 타는 것도 특권, 어떤 이에겐 용인되지 않는 결혼도 특권입니다. 피부색이나 인종, 성별, 외모로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다면 그게 바로 특권이라는 겁니다.


편견과 고정관념도 무섭습니다. 한 국제결혼중개업체가 '국가별 신부들의 장점'을 정리해놓은 걸 인용하는데, 아직도 남존여비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다든지,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소박함, 여필종부형이라는 설명에 쓰러질 뻔..


가상의 아동 한나에 대해 고소득층이라는 정보가 주어졌을 때 저소득층이라 알고 있는 집단보다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연구 조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편견은 대체로 지독하고, 잘 보이지 않게 숨어있습니다. 더 슬픈건, 부정적 고정관념의 내면화.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66쪽)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171쪽) 여성에게 어떤 태도를 요구하거나, 상냥하고 여성스럽게 문제에 맞서라는 식의 주장, 오히려 편견의 대상에게 요구하는 특정 모습 등이 왜곡된거라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능력주의, 내가 빠진 그 함정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 돈을 더 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언급됩니다. '비장애인 질서에서 장애인의 결함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는 행위'라는 전제에 따라 공정함을 다시 구성한 결과죠. 애초에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 기준하는게 기울어진 공정성임을 인식하지 못한 사고 흐름입니다. 각자 서 있는 출발점이 다를 때, 공정함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은 어떨까요. 학벌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없이 공정한거고, 차별 않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실력'을 갖추는 것부터가 이미 지방 출신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실질적 평등이 담보되지 않으니, 개인의 편견만 없앤다고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거죠. (178쪽)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잣대를 장애인에게 들이대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점은 수긍했는데, 능력이라는 잣대 역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저는 못해봤습니다. 개인의 불굴의 노력으로 그 불리함을 '극복'한 성공신화를 칭송하는 것에 때로 불편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 (187쪽)이라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에 따른 대우가 공정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능력주의가 아니면, 어떻게 인사정책을 쓰죠? 능력조차 차별에서 비롯됐다고 해서, 그걸 배제하면 어떻게 평가하고 보상하죠? 성과평가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일 잘하는 사람을 다르게 보고, 차별적으로 중용하거나 보상하는게 맞지 않나요?

저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차이의 정치와 정의> 아이리스 영이 등장하네요. 차이는 본질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에, 휠체어 탄 사람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경기 같은 특정 맥락에서 차이가 있다고요. 우리를 본질적으로 가르는 차이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요. (184~185쪽)

능력 역시 다양한 맥락에서 차이를 드러낼테죠. 우리 모두 본질적 차이는 없지만, 차별이 있는 한 차이를 좀 더 면밀하게 봐야겠습니다. 하나의 정답과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주민, 글로벌 난제

"한국인 같다"라는 칭찬이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고히 하는 문제도 마땅히 돌아봐야 합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둔감해진 상태 같아요. 헌법재판소가 "외국인에게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바로 우리 국민과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외국인 차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 저자는 마이클 왈저를 인용해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이라고 하지만(151쪽) '당위'와 달리,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과정일거라 생각해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주민 대우를 놓고 갈등을 빚는 것이 그 반증이죠.

법으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은

차별금지법은 몹시 중요합니다. 가짜뉴스와 표현의 자유가 과거보다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와중에, 우선적으로 규제되어야 하는 것은 혐오와 차별의 언어입니다. 탈진실의 시대 서로 상대방을 가짜라고 비방하는 일이 있어서 대체로 거의 모든 이슈는 정쟁이 됩니다. 와중에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공격에 계속 노출되죠. 혹은 표현이 과도하게 규제당하고요. 균형을 잡을 방법은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강제하는 차별금지법입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차별금지법은 뜨거운 감자. 일부 기독교인이 강력 반대하는 법안입니다. 동성애자, 성소수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책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도 동성애자, 성소수자만 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반대입니다. 가장 극심한 차별에 노출된 이들을 제외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동성애는 찬반 대상이 아닙니다. 차별에 찬성하나요?

동성동본 결혼 금지. 이게 방만하게 이뤄질 경우 미풍양속과 사회질서가 깨진다고 유림이 극렬히 반대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1997년 헌법불합치로 풀렷죠. 동성결혼은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25개 국가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161~162쪽) 동성애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지속가능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이주민을 비롯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도 우려됩니다만, 그래도 차별금지법은 끝내 제정될거라 전망합니다. 정부가 들어서면,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표를 잃을까봐 건드리지 못하는 법안. 총선이 끝나면 이번엔 대선에서 표를 잃을까봐 건드리지 못하는 법안. 이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수준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실히 알게됐죠.


이 책을 쓰신 김지혜님은 대체 어디서 돌연 튀어나오신 고수이신지. 책은 정말 버릴게 없이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만, 모두 평등을 지향하는지 새삼스럽게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이 드는 책이죠.

코로나19 덕분에 줌으로 진행한 독서모임. 제가 토론을 위해 준비한 얘기들을 파란색 글씨로 덧붙여봅니다. 큰 틀에서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들 덕분에 토론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내 생각이 다수와 너무 다른가? 라는 의구심, 혹은 불안이 있을 때 “같은 생각이야”라는 이들을 확인하는 건 든든한 연대의 출발점. 불편한 질문들을 나누면서 떠든 자체가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1. 우리는 모두 차별주의자

- 결정장애처럼 사소한 일상의 언어를 통해 '나는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책 본 후에는?
- 피부색이나 인종, 성별, 외모로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게 특권. 당신은 특권을 의식한 적 있나요?- 약자를 희화하하는 유머에 대해 불편했던 경험 혹은 그걸 문제삼는게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
- 외국인 사우나 금지, 노키즈존, 누군가를 금지하는 것이 다수일 때 괜찮아요? 영업의 자유?
- 헌법조차 외국인을 우리 국민과 똑같이 보호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 동성동본 결혼과 동성결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다를까요?
- 차별 않는건 '유일한 정의'로 봐야 해요? 능력주의가 잘못된 걸까요?


2. 그래서 어쩌라고요
- 사회적 합의,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존중하는 가치와 방향의 문제라고 전제한다면 어떻게 구현하죠? 법이 아니라면? 권력자,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면? 결국 다시 사회적 합의로 돌아가나요?
-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 기울어진 공정성에 우리는 무뎌요. 토크니즘도 그렇고. 이건 어떻게 볼까요?
- 추상적 선을 실천하려 하지 말고 구체적 악을 제거하는데 노력하라는 칼 포퍼가 인용됐군요. 뭔가 노력하고 싶은 지점이 있나요?
- 차별금지법에 대해 편하게 얘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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