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사상가들의 업적과 투쟁기(?)를 소개"... 했다는 P님, "논증이 하나도 없는 책은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H님. "교육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이라는 C님.
이 책은 (알고보니) 마이클 애플이라는 교육계 '거인'이 몇몇 교육자,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와 업적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게는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건너뛰었어요. 대체로 읽기 힘들었다는 평. 그런데 열렬하게 호평한 C님과 "프레이리는 문제 제기식 교육, 애플은 헤게모니, 이렇게 외우기만 했던 교육학자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는 K님은 현직 교사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맞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트레바리 #국경 2020년 6월의 책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토론은 재미있었어요.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교육부 관계자의 저 말에 많이 화가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육당국의 책임있는 이가 저렇게 논의를 닫아버리면 어쩌자는건가, 잊지 못할 장면입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가 실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마이클 애플 위스콘신대 석좌교수가 한국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 두 차례 방문했는데 1989년 방문 당시 전교조 지지 발언으로 안기부의 감시와 억류를 당한 적 있다고요. 이 내용이 책 후반부에 자세히 나옵니다.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입니다. 최소한 애플 교수에게도, 제게도 그래요.
그런데 교육의 목적이 뭔가요. 상류계급의 교양을 습득하는 것? 자신들만의 '언어'를 구축해 담을 쌓는 것? 비스마르크가 대중을 상대로 한 학교를 만들게 된 배경은 산업혁명 과정에서 '적당히 학습된 노동자'를 육성하고 싶었기 때문 아닌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면 토론을 잘 듣도록 하겠습니다.) 한 때는 '시민', '계몽된 시민', '순종하는 계몽된 시민'을 만드는게 교육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본이 요구하는 '숙련공'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온거죠. 전통적 블루컬러에서 고급 기술과 전문지식을 갖춘 화이트컬러까지, 자본의 부를 늘려주고, 그 댓가로 소득을 얻고 소비를 하는 것이 존재 이유가 되는 노동자.
'좋은' 학교에 대해 기업들의 어젠다와 이미지를 지지하는 학교라고 일갈하는 애플 교수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한편, 제도권 교육의 목적이 시민 혹은 노동자의 양성이 아니었던 사례가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교육 잘 받고 성적 좋으면, 과거 군주의 이쁨을 받아 영지를 나눠받는 것처럼, 자본이라는 군주의 울타리에 들어가 녹봉을 나눠받는 구조가 아닌가 갸웃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육은 권력의 목적에 복무하는게 합리적 선택이죠. 정부는 초중고의 아이들을 모범적이고 순종적으로 길러내도록 통제하고, 대학은 알아서 기도록 예산 정책을 씁니다. 애플 교수는 사회변혁을 위해 헌신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조직된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참교육'을 얘기하는데, 감히 이 말에 토를 달 수는 없죠. 그런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실행의 여러 사례를 대고 계신거 같은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토론 전 독후감에서 정리했는데요.
토론을 하면서, 좀 더 분명해진 것은.."교육을 사회와의 연결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교육이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해진다"(109쪽)고 해도, 자본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숙련공', '전문가'를 학습시키는게 교육이라 해도, 동시에 그 방식과 작동원리에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시민'을 키워내는게 교육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질문을 하는 능력'이 답하는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주장, 케빈 켈리가 '인에비터블'에서 강조한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라, 교육의 목적이 설혹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문제를 제기'하는 훈련이 새로운 길을 만들거라 믿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처럼 묻고 답하는게 교육인거죠.
공교육의 역할,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나눴습니다. 하다못해 정시 출근한다거나,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도록 '규율'을 가르치는게 교육 아니냐는 의견. 듣다보니 그건 '순응하는 모범생'을 만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 규율에 따르는 시민 없이 사회가 지속가능한가? 생각도 들더군요. 어찌보면 교사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따르도록 하는 자체가 이상한거 아니냐, 군사문화 잔재는 얼마나 남아있나, 이런 얘기도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입장입니다. n번방 사태 이후 젠더교육, 생태교육, 민주주의 시민 교육을 제대로 하자는 얘기를 페북에서 봤는데요. 그런 교육이야말로 공교육이 필요한 목적 아닐까요.
토론 멤버 중에 현직 교사가 세 분이나 계신 덕분에 학교의 목적 자체가 '아동 보호'라는 점도 새로 배웠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등교 못하는 아이들이 급식 없이 굶주리는 사태는 현실이니까요. 학교라는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아동이 학대받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굶지 않도록 하는 인프라이기도 하고, 부모의 '돌봄'과 '보육' 부담을 나눠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자체가 출발점. "한국 교육 시스템이 모든 수준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견고하게 통제되어서 여러분의 아이들이 지배자들이 원하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한다"고 비판하는 애플 교수의 목소리가 1989년 얼마나 큰 울림을 가져왔을지 상상해봅니다. 저 대목은 애플 교수가 우여곡절 끝에 한 대학의 강당에서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애플 교수의 한국 방문기는 몇 페이지에 걸쳐 꽤 길게 서술되어 있는데, 2020년 시민의 눈으로 보니, 또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조금 수고롭게 옮겨봅니다.
"...나는 한 가지 특별한 이유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권력을 쥔 억압적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군부 독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의 저항을 억눌렀다. 그들은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하고, 그들을 반역자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었다. 그들을 수년간 감금하고, 활동가들을 탄압하거나 비판적인 매체를 폐간시키기도 했으며, 교육과정과 교사를 검열하고, 교원노조를 불법화하는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크고 작은 조치를 취했다. 정부에 대한 분노는 더욱 고조되었고, 억압과 저항 사이의 변증법적 양상은 가시화되었다. 권력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민중들은 권력 앞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다.
정부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없었으며 이 영역을 진보적인 힘으로 되찾고자 하는 사회운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었다..." (270쪽)
"...대학과 운동권 그룹에서 반독재 운동을 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이 나를 한 대학으로 안내했다...그곳은 매우 시끄러웠다. 대학의 모든 공간이 시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최루탄을 발사할 수 있는 장갑차와 물대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긴장의 수준은 마치 대규모의 민중항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조되었다." (272쪽)
애플 교수의 무용담은 안기부 직원들에 의해 감금되다 시피 호텔에 갇혀있다가 몰래 빠져나가 한국의 동지들을 만나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출국하는 과정 등이 생생합니다.
".. 비판적 생각은 힘을 갖는다. 그리고 그 힘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회운동 및 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엄청나게 증가한다.."(289쪽)
실제 한국인들은 많은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냈죠. 저항하고 투쟁해온 사람들과 함께 애플 교수처럼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을겁니다.
이 부분을 읽을 무렵, 마침 이 영상을 보는데.. 뭔가 역사 속으로 훅 들어갔다온 기분이 들었어요. 영상 자체가 좋으니 한 번 보셔도....
다만 그 시대 애플 교수의 언어가 누구가를 각성시켰다면, 이 책이 2020년에도 유효한 것인지 저는 좀 헷갈립니다. 애플 교수는 정치적 지향을 몹시 굳건하게 강조하는데 오히려 그의 철학에 공감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책이 제목과 달리 원하는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온갖 딴지만 주절거리는 걸 보면 생각할 여지는 많은 책이었나봐요. 한국의 교육은 오로지 입시 얘기만 하지 않나, 다른 담론은 다 사라진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는데, 이것은 현장의 선생님이나 연구자들이 애쓰고 있는 현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일겁니다. 사실 '한국 교육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학부모도 못되고, 오히려 잘 모르는 분야입니다. 나의 성장은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 얻은것인데 그건 교육이 아니고 뭐지? 하는 쓸데 없는 생각 뿐이고요. 토론이 기대된다는 말을 너무 길게 늘였나봅니다... (라고 원래 독후감을 마무리했고, 토론은 역시나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