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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7. 2020

<임계장 이야기> 사람 대접은 꿈꾸지마, 공정해요?


사람 대접은 꿈도 꾸지마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6월 책이었습니다. 38년의 공기업 정규직을 마친뒤 가장 험한 자리의 비정규직 '임계장'으로 일터를 전전한 분의 성실한 노동일지. 논픽션 읽는 모임에서 이걸 안보고 뭘 봐요. 더구나 이런 현장 기록은 매우 귀한 논픽션입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 '임계장'으로 부른다는 건 얼마나 모멸적 호칭인가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임시직 경험이 있는 K님이 말했어요. 전화 받는 업무를 하는 이를 '야, 콜센터'라고 부르더라고, 사물을 대하듯 뭉뚱그리는 호칭이 충격적이었다고요.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임계장' 자체가 충격이었다면, 내용을 읽다보니 실상 자체가 믿기지 않습니다. 1인 3역 살인적 업무에 몸만 다치는 상황이나 똥물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장면, 땀에 절어 24시간 격일 근무 두 탕을 뛰는 현실도 끔찍하지만 멸시에 따른 모멸감이 아물지 않는 상처로 켜켜이 쌓입니다. 사람 대접을 꿈꾸지 말라는 말에 오히려 현실 자각하고 힘내는 사연이라니.


우리 클럽은 다양한 멤버들이 함께 하는데 상당수가 '불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모멸감을 감내해온 약자의 기록이라 마음은 무겁고,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할지 어려웠습니다. 이런 갑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비교적 갑으로 살아온건 아닌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제 발제문은 이랬습니다. 멤버들 독후감에서 생각을 빌린겁니다.

임계장, 나와 당신, 우리>

- 갑을 관계, 갑의 정체성을 느껴본 적 없으세요? 나의 존엄성(권위)이 덜 존중받는 것 같아 태도(의전)가 불편했던 경험은요?

- 사회에서 차별적 혜택을 받은 이들이 현명하기를 기대하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다 같이 행복한 사회는 불가능할까요?

- 퇴직 계획, 3층 구조(연금-퇴직금-저축) 괜찮으세요?


약자의 존엄성, 사람이 먼저다?>  

- 약자의 존엄성, 이게 말로만 지켜지지 않아요. 맘처럼 되지 않아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인권감수성은 어떻게 키우죠? 교육?

- 근로감독관 제도 강화, 행정지도로 처벌,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요? 토론만 한다고, 책 읽고 슬프다고 해결되지 않을텐데 어쩔까요?

- 약자에 대한 처우도 ‘성공과 실패’에 대한 공정한 결과라는게 요즘 인천공항 사태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요? ‘공정’과 ‘연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세요?

(난데없이 '공정'과 '연대'가 나온 것은 모임에 앞서 공유해서 함께 본 이 기사 덕분이기도 합니다... 필독 참고자료랄까요...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모두를 위한 자유’ 편  ) 

'정당한 요구'와 갑질 사이


갑을병정은 거래나 계약의 당사자일 뿐인데,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계를 세웁니다. 갑은 말도 안되는 일폭탄을 지시하는 업무상 갑질과 함께 위압과 멸시 등 태도 갑질을 합니다. 책에 나온 사연을 보면 저게 인간인가 싶지만, 우리는 종종 비슷한 뉴스를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을의 고충과 동시에 갑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문득 '정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따박따박 따지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딸이 식당 알바 경험을 들려준뒤에야 좀 관대해지기는 했으나 '손님은 왕'이라는 마인드로 갑질을 사소하게 생각한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더군요. '정당한 요구'는 갑질이 아니라는 L님의 말씀에 수긍하면서도 '정당한'이라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겪은 아파트 입주자 갑질들을 따지고보면, '관리비를 낸 입주자(주인)으로서 서비스 제공자(종)에게 정당하게 요구하는' 일로 치거든요.

우리 중 젊은 멤버 N님은 "갑질은 능력 부족의 상징"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일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라는 거죠. 연장자 L님은 "납기를 맞춰야 한다면 (을에게) 야근을 요구하는게 정당하다"고 했으나 N님은 그게 갑질이라 했어요. 의견이 사뭇 다르다는 자체가 재미난 포인트.. 또다른 젊은 멤버 L님은 "직업상 (갑인데) 을이 내게 잘해주는게 매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갑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싶다고요. 예전엔 괜찮았던 일, 당연하던 관행이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면 뭔가 변하고 있기는 합니다. 속도에 아쉬운 분도 있는 법이죠.  


임계장도 산재 신청을 했다면? 또다른 해법은?


전문가 J님은 저자가 다치고 해고되는 사연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산재 신청을 했어야 했다고요. 당사자가 사업자(회사) 동의 없이 산재 신청이 가능하도록 2018년에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J님 덕분에 모두 처음 알게 됐습니다. 물론 산재 신청한다고 하면, 회사 그만두라고 하기 일쑤고, 일단 임시직 일용직은 다쳐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4일 이상 입원하면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지만 대체 노동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 자체가 어려운 미션. 산재에 따라 해고된다면, 노동청에 제소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네요.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자의 의무. 심지어 1인 사업자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산재로 인정받는 건 또다른 도전이기는 하지만, 일단 제도 자체가 좀 더 보완된 것 같습니다.

“수십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정부, 입법자 그 누구도 고령 노동자의 이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임계장은 내 주변 어디에나 있다. 이제는 이 나라 노동자의 상당수가 60세 이상의 단기 비정규직, 바로 임계장이기 때문이다. 임계장은 내 부모 형제의 이름일 수도 있고, 또 퇴직을 앞둔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얻게 될 이름일 수도 있다." (8쪽)

누구든지 임계장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갖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될까요. 노인노동을 재정의하고 재배치해야 한다는 L님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정규직 38년인데 왜 저런 상황에 처했냐, 따질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자의 아들은 왜 (아마도 로스쿨) 학비를 부모에게 기대어 은퇴한 아버지를 임계장으로 내몰았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 아들도 불안했겠죠. 멀쩡한 정규직 아버지도 결국 임계장으로 내몰리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게 아닐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다시 거론됐습니다. L님은 "조직 내 비정규직은 대부분 경비, 미화원인데 이분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정년 넘긴 나이라 곧바로 은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60대 이후 일을 하려면 정규직 전환도 결사반대해야 하는거죠. 그렇다면 노인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일용직 밖에 안되는걸까요?
결국 사회안전망 부재가 임계장들을 지옥같은 삶으로 내몰고 있다는데 반대 의견은 없습니다. 기승전 기본소득이냐는 생각도 있지만, 기본소득 대신 주거, 의료, 교육 분야에서 기본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게 더 타당하다는 L님 의견도 기록해둡니다.

나이 갑질 대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일하는 구조도 얘기됐지만, 노인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고용시장에 진입조차 못한 2030의 불안이 훨씬 크다는 얘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저성장 고령화사회의 본질적 문제. 저는 결국 안전망으로 되돌아갑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게 최우선과제입니다. 세대 갈등을 줄여나가는건 중요한 미션입니다. 마침 '연금+퇴직금+저축'의 3층 구조에 대해 젊은 N님이 "우리세대는 국민연금은 받지 못하잖냐"고 했다가 전문가 J님이 또 친절하게 설명해줬습니다. 국민연금이 설혹 고갈되더라도 적립금 대신 부담금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할 수 있다고요. 다음 세대는 연금 못받을거란 생각은 오해라고요. 그런데 상당수가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더군요. 갈등을 부추기는 대신 제대로 알리는게 미디어 역할이란 얘기가 뽀너스처럼 또 나왔고요...


입주자 갑질로 아파트 경비원이 자살한 사건으로 사회적 충격이 적지 않았던 터. 피눈물 나는 저자의 을 소셜미디어에서 접했습니다. 사건과 맞물려 이 책이 화제를 모은건 어찌됐든 중요합니다. 산재로 한 해 2000명이 죽어도 김용균씨 사건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건 흔하지 않습니다. 임계장 이슈, 그냥 넘어갈까요? 국민청원에 공군의 특혜 논란이 올라오자 다들 그런게 문제가 된다는걸 알게 됐어요. 입주자 갑질도 이제 형사처벌 가능성 있다는걸 알게됐으니 좀 달라질까요?

“ㅋㅋㅋ놀고먹어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랑 똑같이 봐달라!”  

“ㅋㅋㅋ놀고먹어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랑 똑같이 봐달라!” (는거냐)

'임계장'에 충격받고 트레바리 모임을 준비하는데  페친의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걸렸습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이슈 관련, '공정'이 대체 뭐냐는 글이었는데 댓글창이 폭발했더군요. 근데 저 댓글이 진짜 가시처럼 걸렸어요.

"ㅋㅋㅋ 놀고 먹어도"

비정규직 일자리는 놀고 먹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가장 험하고 열악한 일을 하청, 용역업체를 거쳐 하기 일쑤입니다. 보호받지 못합니다. 임시직 일용직이 아니라 해도, (정규직을 포함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다가 한 해 2000명이 세상을 뜹니다. 코로나 희생자와 비교해도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임계장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아파트 경비원의 일이 그런건지 몰라서 미안했습니다. 귀하지 않은 노동이 없고, 험하지 않은 일이 없네요. 진짜 '일하지 않고 버는 불로소득' 대신 '가혹한 노동'에, '성실한 육체 노동'에 놀고 먹는다고 하는게 공정한가요?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랑"

저는 시험을 잘봐서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학력고사를 위해 공부한 내용은 물론, 대학에서 배운 것도 이후 노동에 써먹지 못했습니다. 공부가 제 노동의 자산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회에 나와서 일하며 배운 걸로 밥벌이를 했습니다. 수능점수, 영어점수, 각종 고시가 평생 보증 ‘성적표’가 되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게 일하는데 도움이 되요? 시험 한 번에 인생을 몰빵하는 구조가 이상한거죠.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수십 년 전 성적 하나로 울궈먹는 이도 분명 있습니다. 그건 공정한가요?


"똑같이 봐달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게 맞습니다다만 부모와 환경이 달라서 출발점이 달라요아예 공부할 여건이 안되는 이도 많습니다잘난 이들도 때로 실직하고 실패합니다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세상일은 훨씬 복잡하죠. 똑같이 봐달라는 얘기도 사실과 다르더군요. '보안검색원'은 '일반직'과 직렬이 다르던데요. 똑같이 (월급을) 달라는게 아니라 똑같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달라는게 무리인가요?   삐끗하면 절벽인 세상이 공정한거여요? 어떤 노동이든 똑같이 존중하고넘어져도 일어설  있도록 돕는 사회가 아니라시험에 통과한 ‘우등생 살만한게 공정이어요벼랑끝에서 추락하면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탓하고 외면하는 사회에서 계속   있어요

임계장은 노인도 아프냐? 는 얘기를 듣습니다. 매연과 분진 속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요구하자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236쪽)

공정사회는 비정사회가 아닙니다안전망 없이연대 없이 우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걸 얘기해야 합니다. 분노와 불안의 원인과 대상을 다시 얘기해야 합니다누구나 임계장이   있다면 사회의 행복 총량을 늘리는  밖에 없어요... 공정으로 다투는 대신, '노력의 댓가'로 알량한 밥그릇을 노동자끼리 다투는 대신, 누구나 사람답게 사람 대접 받는 것을 목표로, 다시 얘기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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