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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3. 2020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어쩌라고 대신 구체적 상상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오래된 공포 
 
1930년 ‘기술적 실업’을 언급한 케인즈보다 100여년 앞서 데이비드 리카도는 1821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개정판에 “기계가 노동자에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했던 주장이 ‘잘못’이었다”고 고백했다네요.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퇴임 연설에서 자동화에 대해 다음 경제 혼란을 일으킬 파도로 묘사했지만 이미 60년 전 케네디 대통령이  “산업 혼란이라는 암울한 위협을 수반"한다고 했고요. 사실 18세기 방적기 등장 이후 기술은 늘 위협으로 거론됐습니다.
 
근데 영국은 1700년~2000년 사이 경제가 113배 성장했고, 같은 기간 캐나다 8132배, 미국은 1만5241배..즉 기술이 진보할수록 파이가 커진 것도 사실.(37쪽) 그래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은 과장하고, 자동화와 인간 노동의 강력한 상호 보완성은 무시”하곤 했다는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의 분석이 소환됐던겁니다.
 
그럼 괜찮은걸까요? No. 저자는 경제학자. 자동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존 이론을 하나씩 논박합니다. 꽤 쉽게 쓰였다는게 강점. 영국 총리실 등에서 근무하며 현장경험을 쌓은뒤 늦깍이 박사가 된 그는 경제학자의 학술용어를 자제하고 독자에게 친절합니다.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클럽의 2020년 9월 책으로 토요일 오후 줌 미팅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사실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쓴 <4차산업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라는 책을 #어떤혁신 클럽에서 2017년 6월에 봤어요. 구체적으로 전문직의 위기를 들여다본 훌륭한 책인데, 제가 그무렵 트레바리를 잠시 중단하고 바빴던 탓에 리뷰를 남기지 못했네요. 저력 있는 저자란 얘기임다.

AI 시대, 기계가 다르다
 

일 자체가 완전 기계로 대체되지 않지만 일이란 쪼개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맥킨지가 2017년 820개 직업을 살펴본 결과, 현재 기술로 완전히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5%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구성 업무 중 적어도 30%를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무려 60%를 넘었다. 달리 말해 기계가 완전히 도맡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적지만, 적잖은 부분을 맡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많았다.” (59쪽) 
 
예전엔 ‘틀에 박힌 업무’는 기계가 대체할거라 했지만, 기계 자체가 진화 중. 이제 기계는 업무를 수행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 자신만의 규칙을 상향식으로 도출할 줄 안다.. 한때 기계의 손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틀에 박히지 않은' 많은 업무를 이제 기계가 맡을 수 있다... 기계는 이제 인간의 지능에 매달리지 않는다."(98~100쪽)


기계가 업무를 잠식하는 건 분야를 막론합니다.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쌓거나, 공정을 검증하는 작업부터 변호사가 36만 시간을 들여야 할 대출 계약서 검토를 몇 초 만에 한다든가, (알파고 만든 그) 딥마인드 안질환 진단 프로그램 오진율은 5.5%로 인간의 10~20%보다 낮다든가. 3D 프린터로 난민들의 보철기구 가격을 1/5로 낮춘다거나, 보험금 산정까지. 얼굴을 보고 기분을 맞추고, 법정에서 거짓말할 확률을 90% 정확도로 계산하고…
유럽 AI 스타트업 중 40%는 실제 자사 상품에 AI를 사용하지 않는 등 아무데나 AI를 갖다 붙이는 과장도 있겠지만(127쪽) 과거의 자동화와 개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비중도 확 달라집니다. 로봇은 1000만대에 이르렀고, 로봇 관련 지출은 2010년 150억 달러에서 2025년 670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123쪽)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로 물러서는 현상이 등장하는데 저자가 사례로 든 곳이 한국. “한국은 교육열이 뜨겁기로 유명한 나라로, 청년층의 70%가 대졸자다. 하지만 실업자 절반이 대졸자이기도 하다”(148쪽)고요.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 ‘프리케리아트(precariat)'가 등장하고 부유층에게 저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만 남는거죠. 수제 수저 조각가, 놀이 지도사, 상류층만을 위한 개인 트레이너, 스타 요가 강사, 초콜릿 공예가와 치즈 장인.. 등의 예시가 나오는군요. 2000년대 미국 제조업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570만개(165쪽)라는데, 개발자 외에 이런 새로운 직업군이 늘어나는 것도 맞아요. 그들은 도심의 상류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외곽의 베드타운으로 퇴근합니다. 낯설지 않잖아요.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피해는 광범위하고 넓습니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불평등으로 돌아갑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더 가혹해진 시대. 저자는 노동 소득의 불평등이 기술 진보 때문에 증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합니다. 40년 전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임금은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28배 많았지만 2000년에는 376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제도에 영향력을 휘둘러 자신들에게 갈수록 후한 연봉과 상여금, 수당 등을 꾸러미로 안기기 때문이라고요. (196~197쪽)

분배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하지만 앞으로는 기술 진보 때문에 분배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워질 위험이 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 자본을 거의 소유하지 못해도 인적 자본으로 일에서 여전히 수익 즉, 노동 소득을 얻는다. 기술적 실업은 이런 소득 흐름도 바짝 마르게 해 이들을 빈털터리로 만들 위험이 있다.” (208쪽) 
 
그래서, 어떻게 할까


책은 세 파트로 나뉘어있는데 1, 기술의 일과 역사 2, 위협.. 그리고 세번째가 ‘대응’입니다. 이 책의 가장 고마운 지점. 솔루션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가지 논의 재료를 남겼어요. 


일단 교육.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언제 가르칠지. 여기 변화가 필요하다고요. ‘기계가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잘하는 업무는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말라’. 기계 자체를 만드는 법, 기계를 설계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방법. (217쪽) 어떻게? 스탠퍼드의 서배스천 스런이 스탠퍼드 학생 200명과 그냥 외부인 16만명을 온라인으로 가르친뒤 성적을 매겨 보니, 스탠퍼드 1등이 겨우 413등이었다고요.  뛰어난 학생들은 이제 무경계로 온라인에서 배웁니다. 평생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해뭐하겠어요. 페북에서 본 그래프 하나 가져와봅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못하는 것.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재교육 없이 버틸 수 있을까요?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것도, 반지성주의가 활개를 치는 것도 다 시민의 재교육 이슈죠.

책에 고졸 기업가 명단이 나옵니다.... 생각보다 많아요. 이런데도 왜 우리는 대학에 매달려야 하나요..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그리고 교육의 한계는 책에 자세히 나와요. 저는 마침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인터뷰에 나오는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변화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죠.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능력들, 즉 말하고 읽고 쓰고 생각하는 능력들이요.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공부가 지닌 의미겠죠.”


정부의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

자동화와 일자리 문제에 반드시 따라오는 '기본소득' 얘기가 없을리 없습니다. '큰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정부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라고 단언합니다. 재원이 문제일텐데, 성공하는 기업가, 노동자에게는 지금보다 세금을 많이 매겨야 한다면서 "경제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경제 소득 최상층에 가장 적합한 세율은 현재 수준과는 거리가 꽤 먼 70%"라고 합니다. (243쪽)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국외에 보유한 자산이 세계 GDP의 10%에 달한다는데 세금 집중 분석. OECD 회원국 세수에서 상속세 비중이 1960년대에는 1%였는데 현재 3/5이 줄어 0.5%도 안된다는 대목도 놀랍지만, 기술 대기업들의 세금 회피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몇 년 세금 납부를 터무니 없이 줄였기 때문이죠. "어마어마한 경제력에는 어마어마한 무책임이 따르는 듯"하다는 저자의 냉소는 근거 충분합니다. 아일랜드 시민의 최저세율이 애플보다 4000배나 높았다니, 절세 마술 맞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덜 냈던건 아녀요. 상속세든, 법인세든 엄청 낮아졌어요. 왜냐, 힘센 이들이 제도를 바꾸니까요. 


기승전 기본소득, 이번엔 조건부 


저자는 보편적 기본소득 대신 '조건적 기본소득(conditional basic incom)을 주장하는데요. 보편적으로 주면 '구성원'이 되네 마네로 난리, 난민 거부 등 이슈가 많으니 아예 자격 요건을 정하자는 겁니다. 기본소득 핵심이 사실 노동시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이고, 공동체를 위해 일 대신 무엇인가 요구해야 한다는 거죠. 

정부가 자본 자체를 분배하거나(국민을 위해 기금을 쓰는 1조 달러 규모 노르웨이 국부펀드), 새로운 노동조직이 출현하도록 장려하거나, 노동시장 방어를 위해 애써야 한다는 주장은 정책 담당자들이 꼭 읽어보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 대기업에 대한 챕터도 따로 있습니다. 수익 같은 전통적 경제 지표가 반경쟁 행위를 알려줄 믿을 만한 길잡이 노릇을 못하는 시대. 기술이 계속 진보하면, 우리가 걱정할 대상이 기술 대기업의 경제적 힘에서 정치적 힘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은 타당합니다. 이들의 '횡포' 사례는 책을 보세요. 저는 대충 아는 얘기라 굳이 기록용으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눈에 몹시 거슬린건.. 애플이 미국의 무인 공격기 공습을 추적하도록 돕는 앱은 금지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남성이 여성의 위치를 추적해 이동을 제한하도록 돕는 앱은 허용했다(292쪽)는 대목. 

세금을 늘린다 해도, 미국의 테크 거인들이 전세계를 지배하는데 그런 기업조차 없는 국가에서는 어떻게 세금을 걷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낼까요? 지금도 구글, 애플 한국 매출이 조단위인데 세금 제대로 내고 있나요?
테크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 지식은 있는데,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 낼 정치적 문제를 심사숙고하는 데 필요한 도덕 감각과는 사뭇 다른 능력"이라는 지적도 점점 더 현실적으로 고민할 부분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제시한 '정치적 힘 감독 기관'이 솔루션일까요? 독과점 외에 이런 영향력을 규제하는 기관이라는건 완전히 다른 얘기. 영향력 규제로 들어가면 미디어는요? 권력기관은요? 


삶의 여정과 목적

일자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소제목으로 나와요. "일은 새로운 인민의 아편이다". 케인즈의 말을 인용해보면, "우리가 즐기기보다 죽어라 애쓰도록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졌"다는 겁니다. 

진지한 여가 정책으로 저자는 교육을 꺼냅니다. 일이 아니라 여가를 이용해 성공한 삶을 사는 법, 혹은 '개성'과 '삶의 기술', 정직과 친절 같은 윤리 덕목, 사회봉사 같은 시민 덕목, 호기심과 창의성 같은 지적 덕목 등을 교육해보자는 거죠. 반지성주의의 횡포에 질리던 중이라 그런지, 이런 교육에 솔깃한 마음이 없지 않네요. 입시 교육 대신 시민 교육, 생태 교육, 젠더 교육을 더 해보는 방식.
성인들이 TV를 보거나, 운동, 야외활동, 문화활동..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활동도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수를 받지 못하는 돌봄노동도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미국에서는 4000만 명이 성인 가족을 간병하느라 해마다 5000억 달러(582조원) 노동을 무보수로 하고, 그 중 2/3가 나이든 여성이 도맡는다고요.. 영국에서는 요리, 육아, 세탁, 자질구레한 집안일 가치가 8000억 파운드(약 1204조원)로 추정되고요.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이런 활동을 가치 있고 중요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 부분은 저도 무척 관심... 


저자는 '어떻게 잘 사느냐'로 질문을 돌립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본질은 불평등이 심화될 때 분배를 잘 하는 큰 정부의 역할이고, 삶의 의미 자체를 일에서 그만 찾고 다르게 보자는 거죠. 고용 없는 미래를 유토피아로 그리는 책은 간만에 만납니다. 사실 '답정너' 측면이 있습니다. 2016년 소셜임팩트 고민할 때, '고용이 없는 시대'에 대한 논의를 꽤 했어요.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뒤 축구장에 내보내는게 아니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생각은 미래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어졌죠. 일자리는 사라지고, 소득은 보전해줘야 하고, 교육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냥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 어제와 다를 거라는건 분명합니다. 

독서클럽 모임을 위한 제 발제는 이랬어요. 의견 나누면서 일자리의 위협은 체감하는 정도가 각자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어요. 결국 정치가 잘해야 한다, 투표 잘하자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고요.
책은 논의의 재료를 포괄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끝내 비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NYT는 '대선 후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책 하는 분들으 다 읽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공감해요. 


노동과 나> 

-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실감하는 때가 있나요? 내 일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나요?

- 노동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해본 적 있나요?

- 나를 위한 재교육을 생각해봤나요? 지금이라도 코딩 배워요? 아이들 교육은요? 교육개혁은 왜 안되는걸까요?

-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디폴트 같아 보여요?


일과 사회> 

- 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해 말해보죠. 보편적 기본소득도 함께 

- 로봇세, 자본세, 상속세. 정치는 기득권 편인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 기술 대기업은 미국 얘기.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될까요?

- 삶의 의미와 목적. 일이 정말 아편일까요? 여가와 봉사, 교육으로 괜찮을까요?

- 저자의 제안대로라면 유토피아가 불가능하지도 않을듯 한데,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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