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힘의 역전인가요
“과학기술로부터 발생한 변화가 전세계 정치, 경제, 사회의 판을 바꾸고 있다. 곳곳에서 반격이 시작됐다. 힘의 역전, 관계의 역전이다.”
2019년 12월12일 ‘힘의 역전’을 주제로 열린 제1회 메디치포럼 당시 우리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2020년대라는 새로운 10년을 앞두고 “미래는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며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2020년 6월17일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의 판을 흔드는 변수들을 점검하고,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살피는 여정’을 위해 6개월 만에 그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제2회 메디치포럼, 주제는 ‘힘의 역전2, 달라진 세계’입니다.
‘힘의 역전’이라는 키워드를 반 년 만에 다시 고민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코로나19와 함께 과학기술이 만든 변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대격변이 시작됐습니다. 1회 때는“사소한 사건들이 겹치고 이어지며 시대의 풍경을 바꾼다”고 했는데, 바이러스는 단번에 모든 판을 뒤집었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겨울에 시작된 바이러스는 여름까지 2200만 명을 감염시켰습니다. 전세계 사망자는 8월 말 기준 약 80만 명에 달합니다. 코비드 19는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로 남을 겁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도록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더 심각합니다.
초유의 사태는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잇따라 만들어 냅니다. 포럼을 기획하는 프로그래머로서 몹시 난감했습니다. 코로나19 담론의 장이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진단하는 컨퍼런스나 포럼이 상반기에만 약 100개는 족히 진행될 것으로 봤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 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내용을 선별하고 정제할 수 있을까요? 조금 다른 목소리, 혹은 이 시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목소리를 찾는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죠? 세계의 코로나19 현황처럼 숫자로 집계되는 내용은 우리보다 더 잘 정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려도 될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분야별 동향을 잘 정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건조한 데이터 속에 따뜻하고 고마운 이야기, 슬프고 아득한 사연을 발굴하는 것도 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유명한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고 분석하는 석학들의 말과 글도 줄줄이 엮여 나옵니다. 그중에는 정말 제대로 만들어 낸 작업물도 적지 않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세계’에서 어떤 ‘힘의 역전’을 탐색해야 이런 담론들에 의미를 보탤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변화의 방향에 다시 주목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 우리의 과제를 묻는 ‘질문’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정답 없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보다 어떤 질문이 지금 유효한 것인지 찾으려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전문가의 눈을 빌려 구경하는 데에 머물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팬데믹을 어떤 분기점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변화를 향한 의지의 방향을 찾으려 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힘의 역전’을 위해 어떤 태도와 전략이 필요한지 살펴보기로 한 것입니다.
‘달라진 세계’, 무엇을 볼까요
글로벌 팬데믹으로 ‘달라진 세계’는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초강대국의 상황은 날마다 충격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틀을 닦아 온 세계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지 각기 다른 시나리오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변덕스러운 강대국 틈에서 순식간에 눈 뜨고 코 베일 상황이라면, 정신 차리고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세대 교수 출신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강연과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으며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입니다. 그를 만나 새로운 국제질서를 물었습니다.
문 특보는 전문가답게 최근 제기된 국제 정세 시나리오를 소개했습니다.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적인지, 또 현실과 상관없이 국제질서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을 보고 가야 하는지 거침없이 전망했습니다. 전염병 대응에서 우리 운명이 왜 다른 주요 국가와 엇갈렸는지 명쾌하게 해석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한 일에 더해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살펴봤습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점을 진단하고 우리가 감당하는 자유의 경계가 어떻게 다른지 봤습니다. 우리가 GDP나 수출 규모로 세계 몇 위라는 식의 성적표 기준에서가 아니라 소프트파워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흐름에서 우리는 철학과 가치를 만드는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문 특보도 선진국과 후진국 담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이 부분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선진국에 대한 환상, 공고했던 서양 우월주의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모바일 명상 서비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그는, 타자의 예리한 시선으로 한국을 관찰해 온 인물입니다. 그가 4월에 한 신문에 쓴 칼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2020년은 서양이 스스로 동양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 ‘한국인에게도 서구 국가들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보는 관점을 바꿔 줄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고 찾아갔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말라고 미리 강조했습니다. 알고 보니 한국 사회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내면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해 오고 있었습니다. 영국 명문대 출신 백인 기자의 말에 무게를 더 두는 한국인들의 특성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던 참이니까요.
그의 시선을 빌려 바라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더군요. 우리는 사실 괜찮은 편인데 왜 그리 칭찬에 목이 마를까요? 우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결과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훌륭합니다. 그런데 외신의 호평에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를 칭찬하는 말이 들릴 때마다 은근 흐뭇해 하는 것은 혹시 자존감이 부족한 탓일까요? 코비드 19를 계기로 우리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하게 될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뛰어들게 되어 선진국 타령을 멈추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스스로 선진국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역사가 기록하겠지만, 전지구 차원에서 인류가, 각 국가나 개인이, 남다른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침 2020년 봄은 정치의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코로나19는 당연히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코로나 대응에 실패한 정권을 심판하자고 했던 보수 진영이 외려 실패했습니다. 보수는 이 사회의 주류 기득권에 뿌리를 둡니다. 이들이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 작년 12월 제1회 메디치포럼은 일부 유권자들이 기존의 정당 지지 성향에서 이탈하는 ‘리얼라인먼트(재정렬)’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이번 선거는 리얼라인먼트 여부를 가를 수 있어 더 주목받았습니다. 정치권의 기존 주류가 쇠약해지는 ‘힘의 역전’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반격에 나설 보수의 ‘힘의 역전’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기존 보수 정당은 소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만났습니다. 그는 2020 총선을 리얼라인먼트라고 부를 수 있는 가능성부터 부정했습니다. 유권자 블록이 성향을 바꾼 게 아니라, 보수가 너무 못 했을 뿐이라 했습니다. 보수가 ‘극우’에 갇혀 못 해도 너무 못 한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장기집권 여부는 보수 정당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당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연일 퍼부은 그를 진정한 보수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보수란 무엇이죠? 그는 진보적 아젠다로 분류되던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자산제 등의 급진적 정책을 지지하고 주 20시간 근무 시대에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진정한 보수일지, 앞으로 보수 정당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단하기 어려운 단계입니다. 다만 김 전 의원은 보수란 ‘이념이 아니라 태도’,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고 했습니다. 그를 만나 보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사실입니다.
성장 신화는 끝났다는 ‘수축사회’로 이 시대를 진단하는 와중에 코비드 19와 함께 경제 한파가 불어닥쳤습니다. 금융이나 시장에 국한된 위기 혹은 몇몇 국가들의 위기가 아닙니다. 전세계 실물경제가 동시에 휘청거리는 진짜 위기.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전세계를 가둔 락다운이 곧 풀리기를 기대하기도 했죠. 하지만 계절이 두 번 바뀌기 전에 우리는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달라진 세계의 뉴노멀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보호무역 시대가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국경을 닫는 것은 반세계화의 상징적 조치입니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이던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장수였습니다. 한국의 통상전략을 지휘하던 그가 아예 세계 통상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결단일지 모릅니다. 그는 지난 7월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 정견 발표를 갖고 “위기에 직면한 WTO 체제를 정비하고, WTO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이 다자무역 체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에서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듯, WTO 모든 회원국들도 이런 기회를 향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다”고도 했습니다. 유명희 본부장과 문정인 특보의 지향점은 사실 닮은 점이 있습니다. 다자주의 질서에서 역할을 키우는 방향입니다. 이른바 신남방, 신북방 정책도 이 틀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같은 총체적 위기는 부와 가난의 변곡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IMF 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이 스러지는 일을 겪어 봤습니다. 늘 나라가 망할 것처럼 위기론이 쏟아지는데 그 사이 부동산과 주식 모두 가치가 상승했습니다. 팬데믹 위기는 이 지점에서 과거의 위기와 달랐습니다. 모바일 세대는 지식 정보와 속도로 무장하고 과거와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라는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대신, 파도에 올라타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합니다.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가들이 기존 관행대로 움직일 때, ‘개미’들은 주체적으로 시장을 견인했습니다.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은 이런 새로운 세대의 개인이 자산을 관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두 ‘프로’와 유튜브 및 팟캐스트로 내보내는 〈삼프로TV-경제의 신과 함께〉에는 수만 명이 동시접속해 서로 지식과 정보를 나눕니다. 그는 샀다 파는 방식으로 종목을 찍어 주지 않습니다. 다만 투자는 남의 일처럼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할 뿐입니다. 경제 기사에 저성장 시대의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 그는 ‘자산 인플레이션’을 강조합니다. 유동성으로 인해 자산 가격은 앞으로도 오를 수밖에 없으니 대비하라는 겁니다. 주식을 살까? 부동산인가? 하수의 질문과 고수의 고민은 다릅니다. 자산을 어떻게 배분할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는 물건을 써 보고 마음에 드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의 주주가 되어 보라고 합니다. 그가 애니콜을 써 본 뒤 삼성전자 주식을 샀듯이 말입니다. ‘자산 배분을 안 해 본 나는 그저 게을렀던 것이구나’ 하는 자각이 왔습니다.
인류는 문명화된 현대 사회가 얕봤던 바이러스를 잔인하게 겪고 있습니다. 지구와 인류의 공존 가능성을 재점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담론 대신 일상으로 눈을 돌려 보면, 우리는 이미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서울시교육청은 건강과 기후 위기를 생각하는 학생들이 채식 급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채식이라는 선택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일 뿐입니다. 포럼 당일 현장에서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사람이 바로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였습니다. 다른 이들의 인지도와 명성에 비해 덜 알려진 스타트업 대표이지만, 아는 사람은 알던 원석이었습니다. 그 원석이 이제야 빛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민 대표는 곡물로 대체육을 만듭니다. 그냥 곡물이 아니라 버려지는 재고 곡물을 이용합니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농산물이 연 500만 톤, 18조 원 규모에 달한다는 것도 충격인데, 그 폐기 처리 비용만 6000억 원에 달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진짜 소고기에 비해 그가 만드는 대체육은 사회적 비용을 상당히 줄인다고 합니다.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식입니다. 이 제품이 팬데믹 이후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관심과 함께 ‘착한소비’ 바람을 타게 될 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전세계에서 10명 중 7명은 채식주의자이거나 육류 소비를 줄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대체육 제품에 대한 반응이 아직 미미하지만, 지구인컴퍼니가 단기간에 뚫은 미국과 홍콩의 시장에서는 매달 수출 물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코로나19가 남긴 질문 중 ‘국가’가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각국 정부의 대응 속도, 역량에 따라 국민들의 운명이 엇갈렸습니다. 전세계 미디어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고, 보통 사람들도 이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으로 꼽혔던 ‘작은 정부’가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 ‘큰 정부’의 귀환을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류 자체도 혹시 낡은
게 아닐까요? 어쩌면 국가나 사회를 바라볼 때 ‘뭣이 중헌디’,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알고 보니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100년 이상 계속 커졌을 뿐, 작아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확인됩니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가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어떤 국가는 효율성을 앞세우다가 공공 기능이 취약해져 국가 본연의 일을 잘 못했을 뿐입니다.
기자 출신 경제평론가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꾸준히 국가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내놓은 책에서 그는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국가의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기업을 키우고 보호하는 일은 정부의 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대신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 개인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헌법 제34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는데 이 권리를 지켜 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특히 양극화의 와중에 디지털 혁신이 불평등을 심화시킬때,국가는 뭘 해야 할까요? 동시에 국가에 대한 평가 기준, 일 잘 하는 국가에 대한 관점도 다시 생각할 때입니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강대국의 국민이 행복한가요? 그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나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강대국은 누구를 위한 걸까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더나은 삶을 살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 아닐까요? 그럼 뭘 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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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분을 차례로 인터뷰한 뒤,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자연스럽게 세계질서와 정치, 경제 분야의 변화의 방향을 살펴보려 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약해 온 고수들의 진단과 처방은 묘하게 연결되더군요. 우리가 괜히 ‘힘의 역전’에 매달린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다들 기존의 관점과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통찰력을 나누는데 하나로 이어지는 몇 가지 대목이 있었습니다.
첫째, 다들 고분고분하지 않았습니다. 수동적 분석과 전망에 머물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별개로 변화에 대한 담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지입니다. 침착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관행과 다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문정인 특보는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대로 구경만 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어렵고,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결국 미래는 만들어 가는 이의 몫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 더 바람직한 질서가 자리 잡도록, 그 당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초유의 통상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유명희 본부장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경 문을 닫은 국가들, 무역분쟁을 벌이는 국가들이 만드는 리스크를 인정하지만, 이 국면에 마냥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습니다. 최전선에서 흔들리지 않는 통상 리더의 면모에 든든했습니다. 김세연 의원이 꿈꾸는 보수의 역전 역시 현재 상황에서는 전망이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몸담았던 정당 대신 청년들 편에 서서 2050년의 한국 사회를 위한 보수 진영의 정책 고민을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다들 새로운 가치, 과거와 다른 기준을 말했습니다. 소프트파워라 부르든 ‘사회적 가치’라 부르든 표현은 달랐지만, GDP 성적표를 비롯한, 선진국 담론에서 벗어나자고 했습니다. 문정인 특보는 한국이 팬데믹 위기에 상대적으로 잘 대응한 것은 기술이 좋고 행정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철학적 배경까지 봐야 한다는 겁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 개인의 자유보다 ‘모두를 위한 자유’에 공감하는 사회라서 달랐다고요. 그게 우리의 소프트파워로 이어지는 동력이고요.
한국은 더 이상 강대국, 선진국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반복됐습니다. 문정인 특보와 다니엘 튜더 코끼리 대표, 이원재 대표의 말입니다. 우리의 소프트파워가 오히려 새로운기회가될수있다는문특보의말은이제‘사회적가치’를 통해 국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이원재 대표의 주장과 이어집니다. 내재된 사대주의를 깨고, 선진국 순위 집착에서 벗어날 때도 된 것 같습니다. 민금채 대표는 지구를 먼저 생각하는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비즈니스도 잘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동시에 잡겠다는 꿈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우리는 생각보다 대단한 국민입니다. 문 특보는 각국 정부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그 나라 국민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팬데믹 대응은 정부뿐 아니라 남다른 역량을 가진 국민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던 우리 국민의 역량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죠. 감염병 사태에서 정부가 잘하니 국민이 덕을 보고, 국민이 잘하니 정부도 그 덕을 봅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팬데믹 이후 다른 나라 장관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서 조금 낯설었습니다. 한국이 팬데믹 통상질서를 새로 짜는 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방역 잘 하는 정부에게 다른 나라 정부가 이런저런 노하우를 묻는 게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국제통상 무대에서 중견국가로서 충분히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 뒤에 우리 국민들이 있는 겁니다.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은 2020년의 ‘개미’는 과거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가들에게 일방적으로 깨지던 개인이 아니라는 점을 포착합니다. ‘묻지마’ 투자 대신 경제를 공부하고 산업을 학습하면서 장기적 관점도 생각하는 개인이 등장했습니다. 팬데믹 행정조치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개인입니다. 다니엘 튜더 대표의 시선에서는 한국이 잘하는게 꽤 많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이라서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정리해 보면, 미래에 대한 적극적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기회에, 생각보다 대단한 국민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희망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 난리통에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달라진 세계’에서 살펴볼 대목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만큼 성장했고, 그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1조의 시대를 거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10조의 시간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앞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1권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