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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31. 2020

<힘의 역전> 1권 프롤로그


제 입으로 말하면 부끄러운거 압니다. 그런데 이 책 좋아요. 여전히 좋아요.
1월 말에 나오자마자 코로나 첫 빙하기를 맞아 덜 팔린게 매우 아쉽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 2권까지 냈는데 말입니다ㅎㅎ

1년 결산하려다 보니, 이 책 링크도 남겨야 해서 프롤로그를 옮겨놓습니다. 사실 포럼 당일 후기와 요약은 이미 정리한 바 있지만. 또 다르죠. 북리뷰 남기는 이로서, 이 책을 리뷰할 수는 없으니 프롤로그만



“과학기술로부터 발생한 변화가 전세계 정치, 경제, 사회의 판을 바꾸고 있다. 곳곳에서 반격이 시작됐다. 힘의 역전, 관계의 역전이다. 어떤 조짐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파괴력이 있다. 메디치미디어는 21세기의 세 번째 10년(Decade)을 맞아 8가지 주제를 놓고 시대의 질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래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화와 토론을 복원해 공론장을 만들고, 주요 의제를 점검하는 작업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는 메디치포럼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의 판을 흔드는 변수들을 점검하고,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살피는 여정에 초대한다.”
 
 2019년 12월12일 제1회 메디치포럼 초대장에 실었던 말입니다. 기술 발전에서 촉발된 변화의 속도는 그 어느때보다 가파릅니다. 사소한 사건들이 겹치고 이어지며 시대의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2020년대 새로운 10년을 앞두고 있지만, 세상만사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합니다. 메디치포럼은 이같은 변화의 단서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전체를 조망해보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가 포럼을 함께 해보자고 일종의 ‘단기 알바’를 제안한 것은 지난해 9월 말. 한국 사회의 현재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을 함께 해보자고 했습니다. 메디치미디어는 출판사를 통해 좋은 책을 내는데 머물지 않고 ‘피렌체의 식탁'이라는 어젠다 저널리즘 미디어에 직접 도전한 곳이라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각 분야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생각을 나누는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내거나, 쟁점에 대해 정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매번 온갖 이슈를 서초동 검찰로 상납하는 사회 아니던가요. 과학이든 종교든 모든 분야의 복잡한 쟁점에 대해 검찰이 판단하고 법원이 결론내는 사회가 아니라 지적 공론장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10월 2일 오전 김 대표는 아침 산책에서 떠올랐다며 ‘힘의 역전'이라는 키워드를 카톡방에 던졌습니다. 당시 저와 이혜옥 메디치 문화교육팀장 등 단 3명으로 출발한 단톡방. 그는 ‘과학기술로부터 발생한 변화가 전세계 정치, 경제, 사회에에서 힘의 역전(관계의 역전)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을 화두로 제안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보수의 힘의 역전 구도가 궁금해지는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정당교체 현상이 등장했고, 권력자가 독점하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열정적 소수, 행동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10대 그레타 툰베리 덕분에 기후변화 이슈가 전세계를 후끈 달구던 무렵이고, 젠더 이슈도 첨예하게 분화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명제가 바뀌고, 국가와 도시의 구조가 바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었죠.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습니다. 기술이 만드는 변화의 속도가 각 분야에서 너무 빨랐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작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표현을 빌려보자면 그때는 맞았던 일이 지금은 틀리는 일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키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개별적 존재의 사유부터 공동체의 미래 구상까지 말은 쉬운데 실행은 복잡해 보였습니다. 다만 이런 변화의 흐름을 알고 준비하는 것과, 변화에 휩쓸려 세월에 삼켜지는 것 중에 어떤 경로를 택해야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을 ‘힘의 역전'이라는 개념으로 엮어보기로 했습니다. 구슬을 제대로 꿰어내는 것이 관건. 어떤 연사들을 모실지 토론을 거듭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 종로구 필운동 메디치미디어 회의실에서 만나긴 했지만 대체로 카톡방 대화를 통해 진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와 이 팀장, 메디치미디어의 씩씩한 실무자 최재희 대리, 기획 감각이 탁월한 박주훈 스토리웍스 대표, 그리고 실제 인터뷰 단계부터 합류한 조윤주 작가, 저까지 여섯 명의 카톡방이 TF의 실체였습니다. 야심찬 행사 기획을 각자 전문성을 가진 외부인들과 만들었으니 이런 방식의 업무 진행도 기존 관행과는 달랐습니다.


왜 힘의 역전인가. 포럼 준비팀은 토론을 꽤 했습니다. 사전인터뷰 과정에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역전’이 아니라 경제 구조가 예상치 못한 구조로 바뀌는 ‘전환’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는 여성의 위상, 혹은 역할에서 ‘역전’은 커녕 아직 멀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변화의 흐름이 등장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저 조짐 정도라 해도 역전이 시작됐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환이든 역전의 조짐이든 우리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궁금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당초 기후변화 흐름 속에 환경의 반격, 동물권의 부상에 대해 발표를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 안에 곤충종의 40%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고문이 있었습니다. 곤충이 사라지면 식물과 동물이 멀쩡할 리 없잖아요. 2020년대는 동물권을 지켜냄으로써 인류를 살려낼 골든타임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11월 7일 연구실로 찾아갔다가 생각의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직접 우려주시는 차를 마시다가 동물권 대신 다른 얘기에 꽂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매우 보기 드문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는 경험담 덕분입니다. 한국식 토론의 한계를 완전히 뒤집다니. 정부 산하 위원회든, 국회 공청회든, 무슨 세미나 등 우리는 대체로 발제자 발표 후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코멘트하면 끝나는게 토론회입니다. 실질적 대화와 토론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서로 떠들고 의견이 충돌하고, 티격태격해보면 문제가 보이고, 관점이 생깁니다. 토론 없는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멈추지 못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레볼루션이 아니라 ‘이볼루션’, 진화를 말하는 진화학자로서 그는 토론과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훈련과 경험이 필요할 뿐이라고요.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까요. 공론장이 흔들리고 갈등만 커지는 사회에서 대화의 역전, 토론의 부활은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두근거렸습니다. 잠재력과 역량이 있는 우리가 혹여 망한다면 토론 없이 싸움만 하다가 지친 탓일 거라는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공론장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우리가 준비하는 ‘메디치포럼’ 자체도 같은 맥락 아닐까요? 포럼의 ‘여는말’을 부탁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 교수는 당초 ‘디스커션(discussion)’에 대해 ‘토론’이라고 불렀으나, 이후 ‘숙의’로 단어 자체를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토론이 아니고, 숙의냐, 인터뷰 내용을 보면 좋겠습니다.


2020년은 선거의 해로 기억되겠죠. 당연히 정치판이 어떻게 바뀔지 온갖 전망이 난무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눈으로 이를 봐라볼 것인지부터 내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여의도 주변에 정치에 대해 논평하고 분석하는 이는 정말 많잖습니까? 우리는 결국 정치인의 언어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정치를 기록하는 천관율  『시사인』 정치팀장을 찾아갔습니다. 남다른 분석에 더해 데이터 저널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기자입니다. 우리는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 현상부터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냐. 그런데 답이 쿨했습니다. 대신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에 눈이 가려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판을 완전히 흔드는 ‘리얼라인먼트’라는 어려운 단어를 꺼냈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지난 총선, 대선, 지선에서 판이 흔들렸다는게 그의 분석입니다. 2020년 총선은 ‘힘의 역전’이 가능할지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다는 겁니다. 판이 뒤집히는 계기, 이른바 ‘리얼라인먼트’는 드물게 찾아오는데 한국 사회에 그런 기회가 온 것인지 여부가 이번 총선에 결판납니다. 일단 지지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으며 의제와 정책을 보지 않는다는게 그의 전제입니다. 그런데 정당과 유권자의 강한 고리가 약해지고 새로운 세력이 형성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광화문과 서초동 현상은 기존 유권자들을 결집시켰으나, 양쪽 다 싫다는 ‘암흑유권자'가 40%에 육박하는 상황. 어느 진영이 이들을 끌어낼까요? 정치를 외면한 그들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끌어올 수 있을까요? 현재 ‘암흑유권자'들은 세대와 젠더, 다층적으로 나뉘고 쪼개집니다. 다시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가?  『천관율의 줌아웃』 이라는 책의 저자 답게 최대한 멀리서, 최대한 다른 시야로 보여주는 천 기자의 가설, 재미있습니다.


경제 이야기를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사람을 고르는 일이 사실 기획의 기본입니다. 김현종 대표는 『수축사회』 의 저자 홍성국 혜인리서치 대표를 원톱으로 제안했습니다. 대우증권 공채 출신 첫 대우증권 사장으로서 말단직원에서 대표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대부분의 경력을 시장 분석에 힘 쏟으면서 당시 대우증권을 리서치 명문으로 끌어올린 그는 ‘리서치통’, ‘연구형 CEO’로 불렸습니다. KDB대우증권이 사명을 변경한 미래에셋대우의 사장까지 역임했던 당대의 전설입니다. 평생 국내외 자본시장 동향과 산업동향을 살핀 인물로서 ‘성장 신화를 버려야 미래가 보인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 충만했습니다. 살펴보니 최근 몇 년 온갖 컨퍼런스에서 키노트 연설 단골 주자로 활약중인데, 달랑 20분 압축요약 부탁드렸습니다.

힘의 역전을 말하는 각 분야의 문제는 사실 다 연결됩니다. 본질은 수렴됩니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인구가 급증하는 팽창사회에서 성장했는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른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생산성은 높아져 공급과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이의 전체 크기가 줄어들고 각 단위의 힘겨루기는 격화되고 있습니다. 홍 대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국만의 문제라면 다른 나라를 따라 하면 되지만 다른 나라도 엉망이란 겁니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수축사회, 이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 먼저 이해하는 자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체 돌파구는 있는 것일까요.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 분야의 ‘힘의 역전’을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해법을 찾아갈 뿐입니다.
 

2010년대는 ‘미투’의 시대이자 ‘82년생 김지영'의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에 대해 논쟁적 시대가 열렸습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사회가 갑자기 뒤집히고 있습니다. ‘힘의 역전'을 말하면서 여성 이슈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성 이슈는 사실 폭이 매우 넓습니다. 우리 사회 페미니스트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은 것 처럼, 여성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다양한 관점에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일하는 여성이 부딪치는 현장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일을 비즈니스로 삼은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가 실제 역전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각자 일터에서 여성들은 무엇을 바꾸고 있을까요. 여성들 커뮤니티를 찾은 그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묻고 있을까요. 어떤 문제를 토로하고 있을까요. 최전선에서 듣고 보는 그가 최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나리 선배는 중앙일보에서 활약하던 무렵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저 역시 전직 기자 출신이지만 이 선배도 기자를 그만 둔 이후의 행보가 남달랐습니다. 창업자 생태계를 조성하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디캠프’ 초대 센터장으로 분주했던 시절을 거쳐, 제일기획의 임원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던 시절까지 굉장한 에너지를 지켜봤습니다. 이후 실제 창업을 했는데 비즈니스 아이템이 ‘일하는 여성’이라니, 이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궁금했습니다. 헤이조이스는 선릉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사무실로도 유명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목격했던 대로 아주 감각적이고 멋진 ‘금남의 공간’이었습니다. 이게 사업이 될까? 서비스 시작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연간 회비 179만9000원 멤버십에 가입한 이가 수십 명, 연간 회비 49만9000원 모델에는 수백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체 왜 여성들은 돈을 내고 모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딸이 어떤 상황인지 남자들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습니다. 기왕이면 함께 여성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주목한 것은 사실 BBC 덕분입니다. 2019년 100인의 여성을 꼽았는데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행사 직전 주말, 세계적 밴드 ‘U2’의 내한공연에 그의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U2의 리더 보노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스토리(Herstory)의 시대'라 외쳤습니다. 당시 무대에는 제주 해녀, 화가 나혜석, 서지현 검사, 그해 10월 세상을 떠난 설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비춰졌습니다. 그는 사실 남들보다 먼저 피해자에게 주목한 범죄심리학자일 뿐입니다. 수십 년간 피해자를 위해 고군분투했을 뿐입니다. 그 노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조차 해외에서 먼저 나왔을 뿐입니다.
첫 만남에서 충격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범인 검거율 1위인 것 이번에 알았습니다. 안전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는건 미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참고인’, ‘증인’으로 다뤄졌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피해자를 위해서 싸워온 시간은 그 자체로도 힘든 기억입니다. 알고보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조금씩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있어서는 안될 일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막을 수 있는 일들도 제도적 한계에 부딪쳤다는 점입니다. 기술 변화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만 이끌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발전 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올해 12월 조두순이 석방됩니다. 조두순이 성범죄를 포함해 전과 14범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대체로 반복됩니다. 여전히 형량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한국 사회의 그림자에도 역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균형발전입니다. 오래된 과제이지만, 아직 역전의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부산을 축으로 하는 동남권 메가시티를 구상중이라는 2019년 10월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마침  『시사인』 천관율 기자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창원까지 달려갔던 인터뷰. 문제의 인터뷰를 봤는데 오히려 질문이 꼬리를 이었습니다. 정부 일을 좀 겪어본 덕분인지, 첩첩산중 넘어야 할 산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도시도 플랫폼이 되어버려 승자독식의 구조로 수도권 중력만 강해지는 상태.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시도든 제대로 부딪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김 지사는 2500만 수도권 중력에 맞서 부산 경남은 물론 대구 경북까지 합친 1300만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필요하고, 그 인구가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기 위해 공간의 압축이 필요합니다. 결국 교통망이죠. 그렇다면 인프라 투자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간단할 리 없습니다. 김 지사는 결국 지역의 산업 거점에 인재를 제공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까지 재구축한다는 구상을 꺼냈습니다.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지역 교육 개혁에 적극 뛰어들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역할을 맡아온 교육부는 가만 있을까요? 오지랖 넓게 부처 이기주의까지 걱정되는 순간, 고질적 문제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지방 대학들이 줄줄이 문닫을 위기. 그 위기를 기회 삼아 김 지사는 대학과 기업,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는 회의체를 만들었습니다. 김 지사에게 대체 이건 어찌 풀거냐, 저건 어쩔거냐, 이것저것 묻고 또 물었습니다. 창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혼자 슬며시 웃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 논의가 더 필요합니다.
 
‘힘의 역전’에서 중요한 고리 하나는 서초동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일을 고리로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났고, 바뀐줄 알았던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 남용을 지켜봤습니다. 소수 엘리트가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검찰이나 법원에 대해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압니다. 그렇다면 그 힘의 균형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검찰이냐, 법원이냐 어느 쪽 이야기를 들어볼지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포럼 준비 당시 온국민 관심사였던 검찰 개혁 대신 오히려 살짝 관심이 멀어진 사법 개혁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훨씬 중요한 문제일텐데 검찰 뒷전으로 밀쳐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직 판사가 과연 이런 자리에 나올까? 사법농단이 밝혀진 계기가 된 이탄희 판사를 모셔야 하나? 일단 현재 법원 내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류영재 판사부터 만났습니다. 대중 강연에 나서는 것에 류 판사의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사법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해 국민의 관심이 더 필요했습니다. 어떻게든 더 알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사법농단은 사실 어려운 내용입니다. 실상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공모해 재판에 개입했고, 청와대에 법률 자문을 불사하는 로펌 역할을 했습니다.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를 농락한 사건. 류 판사는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업’을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했다”고 정리했습니다. 발표 당일 “원래 판사는 말솜씨가 없다”며 “판사가  말을 할 때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기 때문”이라고 살짝 ‘셀프 디스’로 시작한 류 판사의 강연을 듣는데,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학생들, 시민들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영상으로 추천합니다.
 
‘힘의 역전’ 마지막 연사는 리더십 전문가 신수정 KT 부사장으로 일찌감치 결정했습니다. 사회 다양한 분야의 현상에 대해 경청하는 참석자들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고민, 그래, 세상이 바뀌고 힘의 역전이 벌어지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으쌰으쌰 폭탄주로 만들던 화합의 리더십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우리가 애써왔던 일들은 꼰대의 관행으로 치부되지 않던가요? 류영재 판사가 온라인 세상의 ‘핵인싸’인 것처럼 신 부사장도 이쪽 세상의 구루입니다. 실제로 조직생활, 리더십에 대해 오랜 세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도움을 얻었던 기억이 적지 않습니다. 말씀 들어보니 리더십도 관점의 역전을 통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하더군요. 한 가지 더 확인한 것은 직장에서 우리가 힘든 것, 점점 더 리더 노릇하기 어려워지는 것 역시 원인은 기술 변화였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세상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더 가깝게 연결합니다. 일사불란하게 효율성을 위해 움직이던 시절에 배운대로, 계속 하던대로 해서는 필패입니다. 90년생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실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제 변화를 원합니다. 실패를 용인함으로써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졌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세상의 어떤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 설득되어야 일하는 시대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보면서 갑질하다가는 패가망신 당하는 시대.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처럼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곳곳에서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가 동력입니다.


짧은 소개에 대충 담았을 리 없습니다. 각자 치열하게 고민해온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이야기. 행사에 오신 분 뿐만 아니라 독자들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이것은.. 포럼 당일의 기록입니다.


이것은.. 2권 프롤로그. 힘의 역전, 정말 즐거운 여정이었어요. 과정에서 제가 얻은게 무척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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