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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16. 2021

<빅니스> 꼬리를 무는 질문들


빅테크, 진짜 나빠?


지금 우리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기업집중으로 인한 '거대함의 저주(Curse of Bigness)'에 맞닥뜨려 있다. 이 저주는 일반 대중이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데 심각한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도 심대한 위험이 된다. 우리가 경제 독재는 정치 독재를 낳는 경향이 있음을 망각하고 부주의하게 경제민주주의의 이상을 단념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먼저 한 나라의 국민이 어떤 일이나 의제에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그러나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총체적 불평등과 물질적 빈곤은 민족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지도자를 키우는 위험한 자양분이 된다. (9쪽)

옛사람들이 '정치경제학'이라 했던 건 둘을 분리하는게 부질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치 체제도 경제 구조의 영향을 받고, 경제는 다시 정치와 결합합니다. 책에서 소개된, 그러나 이 글에서는 생략하는 매우 생생한 일본과 독일, 브라질의 사례들로 일반화하기도 어렵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치든, 경제든 권력화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걸까요? 독재든 독과점이든? 견제가 필요한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겠죠?

오늘날 미국의 상위 1%가 국민소득의 23.8%를 벌어들이고, 놀랍게도 국부의 38.6%를 통제, 지배한다. 상위 0.1%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국민소득의 12%를 차지한다.. 집중화된 경제로 회귀.. 2015년 미국 상위 100개 회사의 평균 시가총액은 하위 2000개 회사의 평균 시가총액보다 무려 7000배가 더 컸다. 1995년에는 31배 더 컸을 뿐이다. (20쪽)


독점은 혁신을 막는다. 

1980년대 초에 AT&T는 극적으로 해체하는 데 동의했다. 여덟 개의 작은 회사로 분할되었고 어떤 비즈니스를 할지에 대해 몇 가지 제약을 받았다.. 미국에서 진행된 최대 기업 해체의 마지막 사례이므로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깊이 살펴볼 가치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혼란이 발생했다. 기업 해산 이후 통신 가격이 낮아진 것을 지적하는 경제학자도 있지만, 진짜 영향은 그것과 다르고 훨씬 더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벨 시스템의 독점이 얼마만큼 혁신을 미루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AT&T가 지배하는 동안은 상상할 수 없었고, 아무도 상상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AT&T의 사체를 딛고 일어섰다.
예를 들어 전화 자동응답기뿐 아니라 가정용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연결시켜주는 모뎀 등 소비자에게 새로운 제품을 팔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이로 인해 AOL이나 컴퓨서브 같은 온라인 서비스 산업이 가능해졌다. 이런 기업들은 집에서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를 양산해냈고, 이는 다시 실리콘밸리의 창업 호황으로 이어졌다.
 (112쪽)

팀 우 말대로, 하나의 변수가 실리콘밸리 르네상스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독점 해체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통신사의 지배력 집중이 어떤 혁신을 막아왔는지, 망중립성 공부할 때 좀 봤습니다. 네. 제가 이런걸 열심히 정리하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 망중립성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팀 우는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2000년 무렵 국내 통신사들은 새로 등장한 서비스에 대해 망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망 이용대가와 규제를 요구했습니다. 국내 최초 인터넷전화(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다이얼패드'를 선보였던 새롬기술 얘기입니다. 결국 다이얼패드는 발신만 되고, 착신은 안 되는 반쪽 짜리 전화가 됐습니다. 규제 압박도 거셌다고요. 
"기업의 흥망성쇠를 몇 가지 이유만으로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술 혁신의 총아로 떠올랐던 새롬기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다이얼패드는 야후에 310만 달러에 팔렸다. 그 해 다이얼패드의 CEO였던 크레이그 워커와 빈센트 파켓은 그랜드 센트럴이라는 새 회사를 창업했고, 2년 뒤 이 회사를 구글에 9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2011년에 등장한 구글보이스는 이들의 작품이다. VoIP 서비스의 비즈니스 가치를 실제 따져보는 건 간단하지 않지만, 스카이프는 MS에 85억 달러에 매각됐다.".. 이 부분은 제가 2012년에 쓴 '망 없어도,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왜 망중립성인가'에서 발췌했습니다. 국내 통신사가 규제를 압박해 떡잎을 말려버린 그 새롬기술의 기술이 실제 스카이프까지 이어졌을지 알 수 없지만, 독점이 혁신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사례는 많습니다. 

국내 통신시장은 독점업체 한곳이 지배하지 않고 3사 체제입니다. 정부가 보호하는 walled garden 의 규제사업자라서 독점이 아니라 실질적 유효경쟁이 이뤄지는지 늘 감독 대상이지만, 실제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인지 저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망중립성을 막으려는 3사의 연대는 단단했고, 폐해는 컸어요. 통신3사가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mVoIP, 즉 모바일 인터넷전화는 다음의 마이피플에서 좌절하고, 카카오 보이스톡이 오랜 저항 끝에 자리 잡았죠.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혁신을 막는 독점, 나쁘죠. 망중립성 당시 정부는 딱히 그렇지 않았지만, 대체로 독점 방지에 행정력을 기울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복잡해요. 우리 시장만 갖고 따질 수 없어요. 

국내 빅테크는 골목상권 해치는 지배자일까, 국경없는 시장의 쪼랩일까?


카카오가 네이버의 시총을 뛰어넘었습니다. 카카오 65.7조, 네이버 63.9조. 가뜩이나 어려웠던 팬데믹을 넘기며 시총 규모로는 국내 빅테크가 진짜 커졌어요. 사실 제 질문은 여기서 출발했어요. 국경도 국적도 소용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시총 1866조원(16500억 달러)의 구글에 맞서 카카오 네이버가 도토리 키재기한들 괜찮을까? 시총 554조원 삼성전자가 2455조원 애플과 맞서려면?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지만, 75조 짜리 쿠팡이 1946조원 아마존과 달리 한국 시장만 수성하면 되는걸까? 그게 지속가능할까? 골목상권을 해치는 주범으로, 중소 사업자의 공적으로, 특히 언론사들을 다 망친 악당으로 인터넷기업을 말하지만, 이들이 없다면 구글이 다 먹었을 시장 아닌가요? (시총은 21.6.17 기준을 썼는데... 정리 마무리 않고 냅두다가 지금은 8월ㅠㅠ) 
 

애국주의에 빠지고 싶진 않지만, 해외 기업은 조세회피처를 통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거나 덜내고, 고용도 적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생각합니다. GAFA 독점을 해체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동시에 국내 빅테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공권력과 독점 기업이 거의 한 몸인 중국은 또 어찌될까요. 폐해가 생긴들, 그동안 초고속 성장은 그 덕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상관 없이 기업 가치가 움직입니다. 노동과 자본에 더해 기술이란 변수가 더해진 결과라 봐야할지, 미래 가치를 어떻게 산정한 것인지 복잡합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코인 시장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기준이 달라진 건 분명합니다. 이런 가치가 국부를 형성한다고 보면 되는 걸까요? 그럼 일단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 해외 기업과 경쟁하려면 독점 얘기 안된다는 주장이 말이 되는 건가요?


미국 빅테크 규제, 정권 따라 달라진다면?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구글이 자사 검색 엔진을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하도록 해 경쟁사의 검색 시장 진입을 막은 혐의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안은 10년쯤 전에 국내 사업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한 사안이죠. 그때 우리 정부는 이거 괜찮다고 면죄부를 줬어요. 미국 당국이 이제 와서 페이스북에 대해 M&A를 통해 인스타그램, 왓츠앱을 합병하면서 SNS 시장을 독점화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좀 당혹스러워요. 페이스북이 단돈 10억 달러에 인스타그램을 인수했을 당시 타임의 보도였다네요.  
'인스타그램 인수는 투자자들에게 페이스북이 신생 경쟁기업들을 무력하시키고 모바일 생태계를 장악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156쪽)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다 그냥 뒀으면서. 팀 우는 당시 영국 보고서를 인용, 페이스북에는 인스타그램과 달리 사진 찍기 앱이 없어서, 인스타그램은 광고 수입이 없어서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고 전합니다. 터무니없죠. 팀 우 말대로 10대에게 물어보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경쟁자였다고 했을텐데 말입니다. 

플랫폼 독점 종십법이란 것도 나왔습니다. 딱 GAFA만 적용받는 법이라죠. 그럼 사이즈만 문제인가요? 이 책을 통해 미 정부가 왜 오락가락하는지 이해됐어요. 근데 그게 괜찮은건 아니잖아요? 앞으로도 이 사이클이 정치경제 한 몸처럼 움직일까요? 바이든 정부 같은 기회를 맞아 팀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특별 고문이 된 팀 우와 FTC 위원장 리나 칸이 대활약하고 또 끝? 
리나 칸이 소비자 후생을 앞세우는 논리에 독점 규제가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건 물론 매우 중요한 변화이긴 합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죠. 그리고 아주 힘든 투쟁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팀우는? 그래서 세계 거버넌스는?


전 지구적 기업집중 현상이 가져온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개별 국가의 반독점 당국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145쪽)


GAFA를 어떻게 할까요? 한 정부의 힘으로만 되는게 아닌데 주요 국가 공조는 잘 될까요? 최근 합의한 조세 원칙은 합의안 나오는데 거의 10년 이상 걸렸어요. 다만 방향이 뚜렷하다면, 그 사이 정부가 바뀐다한들, 다른 변수가 등장한다 한들, 거기에 휘둘릴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방향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미국에서 독과점 해체를 통해 얻은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앞으로도 증명할테고..그게 또 새로운 기준이 되지 않을까요? 세계 거버넌스가 잘 작동할 거란 기대는 현재로서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더구나 중국이 있거든요. 미중 무역전쟁은 이 문제에서도 결코 합의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죠?

팀 우는 거대기업의 권력을 정부가, 세계기구가 어찌하지 못하는 시대를 직시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려면 사적 권력의 통제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183쪽) 재분배를 말합니다. 어찌될까요. 분명한건 우리가 이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주체란 겁니다. 질문이 꼬리를 무는데, 해법을 늦추면 독점의 폐해가 경제 뿐 아니라 정치까지 좀먹겠죠. 미룰 수 없는 질문들이라면, 계속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지구적 현재진행형 이슈란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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