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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6. 2021

<K-를 생각한다>20대와 그들의 평가가 궁금한건 누구


20대 남자가 20대(90년대생), 그리고 50대(586)를 분석하면, 궁금해하는 건 누굴까요. 책을 산 이들을 보니 40대 이상 남자들이 관심을 갖는군요. 아재들이 20대의 평가를 듣고 싶은 걸까요. 저는 20대 여성 L의 반응이 충격이었어요. 책에서 분석한 것은 다 날리고, 586에 대한 인상을 딱 한 마디로 정리. 성추문 많은 아재들이라 본다고요ㅠ 586이란 무리에서 여성이 지워져있다는걸 놓친 저를 발견했습니다.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6월 책. 함께 읽기 좋은 책입니다. 2030의 생각을 들어야 퍼즐을 맞출 수 있고, 2030은 586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해서.. 일부 페친들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전 엄밀히 586은 아니라서)

책 재미있습니다. 20대가 이런 책을? 노노. ㅎㅈ님이 말했죠. 생애주기에서 20대가 가장 똑똑한 것 같다고요. 괜찮은 허세에, 철학을 논하고, 예술가들 걸작이 나온다고요. 유시민 이사장이 항소이유서를 쓴 것도 20대 시절이잖아요. (함께 한 2030이 누군지 모르는게 새삼 슬펐지만) 강준만쌤이 <김대중 죽이기>를 쓴게 30대. '인물과 사상'으로 판을 흔든게 40대 초반이었죠. 간만 2030이 생각하는 그 세대 논객들을 꼽아봤습니다. ㅅㅇ님은 이슬아 작가를 떠올렸고, 90년생 이길보라 감독과 <지금은 없는 시민>의 강남규 작가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80년대생 누가 있냐, 잠시 침묵을 거쳐 ㅎㅈ님이 천관율님을 꼽았습니다.

책은 20대가 썼지만 어르신의 학술적 문체로 쓰였습니다. 이건 신기하더군요. 동의하든 않든 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좋습니다. 다만 가끔 근거는 애매합니다. 예컨대 K방역의 핵심 동력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 공동체가 연대의식을 깨우치고 집단적 고양감을 얻는 것은 민주주의보다 민족주의에 가깝고,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무심한 병영국가시스템 덕이란 겁니다. 자유, 개방, 투명성 같은 자유주의 가치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가 위험에 처한 거라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적 시민성이 강할수록 방역 참여에 적극적인 이유를 분석했던 이 기사처럼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쪽에 더 맘이 갑니다.


성급한 일반화에 빠지기 쉬운 세대 분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2040을 한꺼번에 묶어버린, 게으른 MZ세대 분류법도 좋아하지 않고요. 이런 구별짓기 대신, 즉 사람의 특성(나이, 출신지역, 인종 등)이 아니라 상태(취미, 취향, 주택소유 유무 등)를 보고, 그 상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라는 이 글의 주장에 동의했죠.


근데 ㅎㅈ님 지적대로 저자는 '90년대생은 이러이러하다'고 하는게 아니라, '90년대생인 본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다'고 풀어나갑니다. 90년대생의 솔직한 접근은 자세 잡고 들어야죠.


그는 90년대생이 주도한 온라인 공간의 특징을 '투쟁'이라 합니다. 심한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 탓이라고요. 저성장, 고용불안, 계층화 같은 경제적 문제에 더해 인정 투쟁을 유도하는 SNS 환경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분노 표출 공간이 한 몫 했다는 겁니다. 왕따, 이지메인 '디지털 멍석말이'는 댓글 조롱에 머물지 않고, 폭력을 드립, 밈, 놀이로 이어가 사람을 끝내 죽여야 끝난다는 20대 설명을 들으니 그냥 넘길 현상은 아닌거죠.

90년대생이 공적 가치 뿐 아니라 가족주의 같은 사적 가치도 덜 추구하는건 그럴 심리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고, 이런 탈가치화가 비혼, 저출산의 배경이라고요. 근데 사실 앞세대가 더 못사는 시대를 거쳐왔는데 왜 90년대생만? 저자는"충분히 타당한 의문..그러나 90년대생들이 압박을 느끼고 투쟁적이 되었다는 것은 객관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주관적 심리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공정 역시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공정감'이라고요. 이렇게 심리적 정서적 이유로 풀어나가면, 듣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달리 뭘 어찌. 그리고 한 가지 관점인거잖아요. 90년대생인 ㅅㅇ님은 "탈가치화? 난 아닌데요? 난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데요? 왜 90년대생을 매도하죠? 이게 정답이라고요?"라고 반문했습니다. 당연하죠. 매도라고 느끼는 그 감정도 이해하지만, 그냥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걸로.


이게 공정감 컷은 아니지만. 성적을 받아도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구조랄까요


온라인 커뮤니티는 투쟁공동체가 되어버렸다는 선언.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이자 여성 혐오 사회라고 생각하고, 온라인의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586의 시혜적 정책과 여성 단체의 사회적 헤게모니가 맞물려 20대 남성을 탄압한다고 생각.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진이들의 커뮤니티에서 듣고 싶은 내용을 취사 선택하여 분노를 표출하고, 공통의 의견을 확인하며, 자신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일련의 행동 자체다"
 

무엇이 진실이지 중요하지 않지만, 부족들은 각자의 세상에서 듣고 싶은 얘기에 분노한다면..이 문제는 분노의 압력을 좀 줄이면서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걸까요. 저는 또 엉뚱한 대목에 꽂혀서...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결국 성취감, 노력하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 이런 긍정적 정서는 다수에게서 박탈된 상태. 소수도 경쟁에서 한숨 돌릴 여유 없음. 어떤 개혁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까? 구성원 다수가 세계시장과 연결된 상층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적자본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그리하여 그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면서 지속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심리적 압박은 상당히 완화될 수록.. 일상의 만족을 찾은 이들은 미디어, 콘텐츠,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집착도 어느 정도 내려놓아 투쟁성도 낮아질 것"


아.. 대체.. 음.. 해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저성장 시대에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도록 하고, 지속적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고, 심리적 압박은 줄이고, 일상의 만족을 찾도록.. 어떤 개혁으로 정말 될까요? 저자도 답을 요구한게 아니라, 해법을 위한 팁을 준 셈인데, 어렵습니다. 와중에 그나마 신뢰하는게 국가 시스템이란 것도, 모든 것을 해줘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기대가 너무 커서) 동시에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풀기 어려운 문제죠. (T는 이걸 어리광이라 단호하게 정리)


586 분석엔 좀 난감합니다. 저자는 586을 학생운동에 참여했거나 강하게 동조한 이들로 좁혀서 말합니다. 80년대 운동권의 급진적 혁명론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한국은 더욱 발전하여 선진국 하나로 우뚝 섰다는 점에서 "그들의 현실 인식은 철저하게 틀린 것이었고, 자연히 전망도 답도 들어맞을 리가 없었다"고요. 그리고 왜 그렇게 틀린 세계 인식을 하게 됐는지 찬찬히 풀어나갑니다. 종횡무진 누비는 설명이 다이내믹합니다. 다만, 저는 586을 그리 좁혀도 되나, 90년대생과 마찬가지로 그리 일반화할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주변 586들 중 NL만 있는건 아니라서 586이 북한같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는 전제 자체에 동의가 안되요. 586 정의 자체를 좁힌 탓이겠지만, 이건 아주 일부 얘기. 그리고 당대의 현실 인식이 다 틀렸다는 것도 지나치게 단정적이란, 이것은 제 느낌. 586에서 여성이 지워졌다는 것도 새삼 당혹스러운데 묶어서 비판하는 건 과해요.

다만 저자가 자기 주관적 비평이라고 전제한 일갈.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재벌, 검찰, 보수언론의 연합체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깨닫는다면, 그들이 체제를 통해 수혜를 입는 것을 자각하고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 586들은 책임을 지는 주류의 어려운 길보다는, 책임지지 않고 주류를 비판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토론하던 20대들이 여기에는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87년 이후 그들은 언제나 쉬운 길만 택했다는 지적은 세대를 초월한 얘기 같지만, 586들은 보수언론, 제국주의와 싸워왔던 망령에 휩싸여 지금은 권력을 쥐고도 주류의식이 없다는, 이런 시선은 더 성찰하라는 경고죠. 성찰하지 않는 세대라 싸잡아 비난하니 아프지만, 성찰해야죠.

(운동권 특유의 조직 방법으로 '언더'와 '오버'의 분리를 언급한 것과 관련, ㅅ선배가 '언더'와 '오픈'이라고 바로잡는 페북글을 남겨주셨던데.. '언더', '오버' 키워드는 게임에서 나온 개념일 수 있다는 토론 얘기도 신기. 다른 세대의 프레임이란걸 감안해야..)

토론한 이들은 이게 세대 문제가 아니라 나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얘기도 해주셨고, '통통 튀는 386, 차인표 신애라' 뭐 이런 제목의 기사로 386을 처음 접해서 그런지 인상이 나쁘지 않다는 80년대생 고백도. 저자도 매도할 생각은 아니었을테니, 한 가지 관점으로 듣겠습니다.

다문화 챕터는 오, 강추. 제가 놓친게 얼마나 많은지 새삼 절절. 저는 좁은 세상에 살고 있고, 현실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깨달음. 교육 챕터도 남는 질문이 많습니다. 교육 탭터에 대한 제 발제는 이랬어요. '겉의 가치'와 '속의 요구'의 충돌이 문제의 본질일까요? 질문이 잘못됐다고요? '속의 욕망'을 과연 부정해야 하는거냐는 저자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능력주의가 나쁜건 아니다? 다시 글로벌 화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적절한 선이란게 있을까요?


지난달 <쌀 재난 국가>에 이어, 이 책도 반응이 좋았어요. 끌어나가는 힘이 좋다니까요. 20대의 시선, 함께 볼만 합니다. 그리고 다 동의할 필요 없이, 2030과 책 얘기 나눠볼 수 있으면 훨씬 좋습니다. 무엇보다 20대가 이런 역작을? 이런 반응 하지마세요. 어제 토론 중 박성민 비서관 얘기도 나왔는데요. 존경하는 K님이 4월의 이 인터뷰를 보고, 586 기득권 대신 이런 청년들이 정치와 행정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했었죠. 일찌감치 정치에서 경험을 쌓는 서유럽 청년 정치인을 언제까지 부러워만 하겠어요. 20대들이 더 잘하는 일도 많을테고, 더 도전적이어야 마땅합니다. 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문을 더 열어주면서, 경험이 좀 더 많은 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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