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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Feb 19. 2022

<제주여행> 먹고 마시고 웃고 쉬고, 더 뭘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K가 사직동 어느 가게를 지나가다 봤다는 티벳인지 어딘지 속담. 검색했더니 어느 일본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하네요. 최근 몇 달 사이 가장 많이 웃은 며칠이었어요. 걱정 말라,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그저 웃다보면 다른 일들이 마음 구석에 잠시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느낌. “항상 같이 하면 라이프 베스트로 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R님 말씀에 추억도 숟가락 얹고요. 함께 일할 때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 동반자들이 한껏 마음 포개주는 시간. 잊고 있었네요. 이 기분.


그림 같은 집의 앞마당 뷰. 뒷마당에 돌을 쌓아 직접 파이어피트를 만들어 일정을 준비해주신 R님에게 감사. 모닥불까지 “상황에 따른다”는 여행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완벽했어요.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 새벽에 달리는 경험을 말씀해주시는데, 하마트면 달리기에 솔깃할 뻔. 몸 쓰는데 젬병이고 운동에 관심 없는 제가 흔들린건 순전히 풍경 탓입니다. 이런 영화 같은 길이 어디 또 있겠어요. 그럴리 없지만 매서운 바람에 날려갈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세찬 바람에 풍차가 돌아가는 풍력발전이 이렇게 장엄할 일인가요.


제주는 곶자왈이죠… 늘 그렇듯 겸허해지는 시간. 저는 수직적 위계(?)를 주는 산을 좋아하지 않을 뿐, 수평적인 숲은 매우 좋아합니다. 이 길로 가도 될까? 척척 앞장서시던데 이유가 있군요. 걷는 동선을 지도 위에 구현해주는 relive 앱 바로 받았습니다.


골프장 풍경은, 듣던대로 예상대로 훌륭합니다. 곶자왈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름답다면, 완전히 정비되고 정리된 풍경. 나쁜 의미가 아니라 예뻐요. 엄청 추웠던 것만 기억하는데 하늘도 좋았군요.

다음날 구름  하늘은  그대로 멋지고요. 저는 그냥  좋아하는 인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사실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인간.

계획이 없는듯 하지만 상황에 따라 모든게 계획대로. 난생 처음 (산방산) 탄산온천도 경험했군요. 첫날 소맥으로 시작해 소주, 막걸리, 위스키, 더덕주, 상황(버섯)주까지 달린 것도 계획이었는지 여부는 불확실합니다만 그건 주님의 뜻대로. 첫날 비행기 타고 내려와서 이 술을 함께 달리며 마음 포개준 님. 진짜 고마웠어요. 중요한 회의와 회의 사이, 저녁과 아침 해장만 하고 떠나는 일정을 기꺼이 함께 해주시다니. 복많은 저, 정말 잘 해야합니다.


먹고, 마시고, 웃고, 쉬고.. 로 충만했습니다..

먹방도 빼놓을 수 없죠.


“막걸리가 술술 들어가요. 행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 같아요”

그의 행복을 키워준 제주 #신도어촌계식당 백반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수준. 굴무침은 짜지 않고 달았고요. 김치와 깻잎, 가지와 시금치, 브로콜리, 꼬막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찬. 고등어구이는 딱 적당하게 구워져 기름지고 큼직한 토막이 살살 녹더이다. 제육도 실하게 주시고 와중에 존재감 밀리지 않는 분홍소세지 부침. 양껏 리필하고 싹싹 비웠는데 9000원이라니. 계산할 때 미안할 지경이었어요.


다진 참치에 게우, 전복내장 크림을 올린 게우초밥은 새로운 맛의 즐거움. 결국 추가주문해 한 점씩 더 했죠. 고등어 참깨소바도 고소한 풍미가 훌륭한데 전복과 톳에 우니로 착각할 정도로 놀라운 당근 소스까지 제주 소바도 끝내줍니다. 인스타그래머블한데 음식도 멋진 #회심


바닷가 뷰맛집인줄 알았는데 찐맛집 판포 #바다를본돼지. 쌈무에 파인애플, 와사비 조합도 좋지만 싱싱한 제주 고사리와 백김치를 구워 멜젓에 츠르릅. 마지막에 게우소스 곁들인 솥밥도 행복한 맛인데 졸아든 멜젓이 다시 활약하죠. 2인분 셋트가 55000원이길래 뷰 값인가 생각했는데 고기가 안 줄어요. 2인분이 550g.. 일찍 안가면 웨이팅 있어요.


바닷가에 웅장한 기와 한옥들이라니. 주차요원 바쁘도록 붐비는 #미쁜제과. 요즘 여기저기 소금빵 난리더니 괜찮아요. 뷰가 워낙 좋지만 인근 신도어촌계 점심보다 디저트와 커피가 훨 비싼 호사.


황돔 회는 아름답고. 전복 멍게 소라 갈치 숭어 홍삼 굴.. 읊어봐야 입 아픈 찬. 리필 가능한 찬 중에서도 생선껍질 튀김도 굿. 지리는 육수를 두 번이나 리필. 친절하고 가성비까지 좋았던 #블랙씨걸

두루치기에도 콩나물과 김치를 듬뿍 더하니 맛이 진해요. 김치찌개에. 계란말이까지 종일 몸 쓴 날의 평온한 저녁 #더애월.


가려던 식당이 휴무라니. 급히 인근 검색하다가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많아서 들어간 한림 #우정해장국. 소머리국밥인데 국물이 몹시 좋습니다. 다들 침묵하며 경건하게 영접.


다음날 아침은 원래 가려했던 #삼일식당. 진짜  동네 맛집. 얼큰하고 빨간 국물은 제 취향은 아니지만 그렇게 맵지는 않아서 거의 완탕. 비교하자면 전날보다 더 센 맛의 해장국입니다.


예정된 일정이라 마스크 쓰고 조심하긴 했는데요. 공항 붐비고 비행기 만석인걸 보니 식당들만 힘들게 버티나 싶기는 합니다.

#마냐먹방




“미쳤어요? 저 공 쳐본지 16년 됐어요. 언제 나간다고요?”


“그냥 옆에서 걸으세요. 우리는 어차피 세 명이라 넷 맞추는게 좋고, 누구도 마냐님이 잘 칠거라 기대 않을 겁니다. 기왕 머리 올릴 거면 이보다 더 편한 멤버 없잖아요.”


골프에 관심 없었어요. 애들 어릴 땐 주말을 업무에 쓰기 싫었고, 애들 자란 뒤에는 주말에 책과 영화 볼 시간도 부족했죠. 미국에서 1년 지낼 때 채플힐 시골 동네 골프장 월 가족 회비가 130달러 정도라 이웃 언니들과 좀 쳐본 정도. 귀국 후, 그러니까 국내 골프장엔 가본 적 없어요. 궁상이 특기인 제게 맞는 운동도 아니잖아요. 아니 운동과 가급적 거리를 두고 살아온 둔한 인간이 하필 가성비 나쁜 운동을 왜 하겠어요.


우연이 겹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서른 아홉> 주인공들이 계속 우연히 마주쳐서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냐는 둥, 꽃말을 아시냐는 둥 하는 건 게으른 설정이잖아요. 갑자기 공연장에서 부딪치고, 업무로 엮이고. 그렇게 엮인 이가 마침 손예진이고, 마침 솔로라니. 아 샛길로 빠졌지만 지나친 우연은 재미 없는데요. 그래도 일은 겹치고 겹쳐서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여러 조언을 받는 중에, 안하던 짓 해보는게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고, 그 얘기 꺼내면서 “골프라도 해보라는데?” 한마디 했더니 곧바로 중고채 사온 옆지기의 추진력이 있었을 뿐입니다. 마침 K와 점심 먹다가 (당신도 알다시피 뭔가 장비 사는데 진심인 박모 덕분에) 채가 생겼다고 했고, 마침 K는 세 명의 운동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였고, 그 셋이 마침 제가 무척 좋아하는 분들이고, 서로 무조건 응원하는 사이였던 거죠. 다만 일정이 어이 없었는데 남은 연습 시간은 2주 정도. 설 연휴부터 30분 레슨 4회를 포함해 약 2주의 특훈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또 쓸데없이 책임감이 강한 인간. 민폐를 끼치기 싫잖아요.


“앞으로 16년 만에 쳤다고 하지 마시고, 그냥 공친지 16년 됐다고 하세요”

K는 제게 사기 골프라고 투덜댔습니다. 결론적으로 골프 신동이라니 이건 넘 우연한 발견? 공이 앞으로만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앞으로 나갔어요.


따뜻하다는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무지막지하게 추워서 끝까지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그놈의 책임감으로 완주. 뭐 일파만파? 라는 룰 혜택과 더불어 벙커에 빠진건 다 빼놓고 치도록 특별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머리 올린날 성적이 101타! 내심 120 넘기지 않기를 바랬는데! (사실 벙커샷 감안하면 120 아래 간신히ㅎㅎ)


댓글 쓰며 깨달았지만 관대하고 다정하게 기회를 마련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즐거워해준 지인들 덕분입니다. 엉엉.


머리 올린다는 말도 무척 구리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또 첫 경험 하나인건 맞죠. 될대로 되라, 집나간 정신줄 찾는 와중에 얼떨결에 이리 됐습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뭔 일을 더 벌일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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