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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27. 2022

<사울 레이터_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시간을 담은 사진

60여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가 세기적 작가로 유명해진건 여든살을 넘긴 이후. 세속적 성공 없는 평생 작업이 어땠을까 싶지만, 사진을 보니 그는 행복했으리라. 메시지 대신 거리의 시간을 담은듯한 사진들은 그가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는 느낌을 전한다.


#사울_레이터_창문을통해어렴풋이 전시가 호평인 이유가 아닐까. 다들 추천하는 이 전시, 드디어 '걸어서' 다녀왔다.(집에서 12분.. 그동안 게으름 피우다 이제야..)

힐튼 쪽에서 골목길 들어가면 이런 곳에?!?! 진입로 나무가 잘생겼다

사진마다 순간의 여운이 짙다. 흐릿하게 초점이 날라가고 창문이나 거울에 비쳐 다른 앵글을 보여주는 피사체가 잠시 시간을 멈춘다.


당대의 비평이란 때로 허망해서, 1940년대 컬러사진은 색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어 distorting truth 라고 비판받았단다. 롤랑 바르트도 그랬다니. 그 시절 컬러 사진을 시도한 사울 레이터는 21세기에야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빗방울이 맺힌 창 밖의 풍경, 눈발 날리는 뉴욕이 뉴욕답다. 영화 #캐롤, 테레즈의 사진이 사울 레이터에게 영감을 받았다더니, 나처럼 둔한 인간도 사진 몇 장 보니 알겠다.


연인 덕분에 누드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남겨져도 될까 싶지만, 아름다운 여성 솜스. 유명하지 않은 연인의 사진이 진짜 대단하다고 평생 응원한 동반자. 자신이 유명해지기 전에 솜스가 먼저 세상을 떠난게 사울에겐 정말 아쉬웠겠구나 싶다.

둘은 그림과 사진을 끝없이 얘기하고 작업하고, 솜스는 음악을 듣고, 사울은 그런 솜스를 바라보며 다정한 시간을 채웠다. 성공보다는 나를 아껴주고, 내가 아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사울은 말한다. 그게 인생이지. "We wasted ourselves in happy foolishness." 사울의 말처럼 이렇게 살았어야.. 화가이자 모델인 솜스 밴트리는 2002년, 사울 레이터는 2013년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사울 레이터의 말년을 외롭지 않게 한 한 사진가 동료들은 각각 사진들을 또 남겼다. 사랑과 우정 뿐이라니까. 


아. 슬라이드 필름 영사기, 어릴적 아빠의 애장품이었는데 이걸 여기서 보다니. 차례로 보여주는 필름을 보는 맛이 추억으로 살아나더라.. 슬라이드 필름 구경에 유리 칸막이가 사진가의 작업 느낌을 살려주고 전시 참 괜찮네.


무튼 빨간우산 로망이 생기는데 전시공간 피크닉 샵에 팔더라. 집에 우산이 몇개야, 하면서 참는 나란 인간. 대신 딸과 데이트 마무리는 동네 프렌치 #끌레망꾸꾸. 별도 주문하는 빵이 궁금해서 빵과 돼지고기 리예뜨를 주문하고, 메인은 홍합밥 하나만. 대신 사과파이 디저트까지. 선택 완벽했던 나를 칭찬한다. 빵과 버터가 끝내주고 리예뜨는 내 취향. 레몬 듬뿍 뿌린 홍합밥도 좋지만 사과파이도 예술이다. #마냐먹방.


아참. 사울 레이터 전시 원래 오늘이 마감인줄 알고 달려갔는데 두 달 연장. 초대권 선물해준 H.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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