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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29. 2022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 단 하나의 그림은

한참 화가들 세상에 빠졌는데, 갑자기 스트라빈스키 곡 같다고 했다. 전시장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음악이 들리자 K온니의 반응은 자연스러웠다. 윗층에는 '전함 포템킨'으로 유명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10월(1927)'이 벽면 가득 상영중이었다. 무성영화라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의 힘이 컸다. 잠시 머물기 딱 좋은 공간에서 K온니는 음악에 빠졌다. 스트라빈스키에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를 거쳐 차이코프스키 같다고 했다. 음악의 DNA에도 딱 들어보면 바로크풍 마냥 어느 작곡가의 스타일이 분명하단다.

금새 진지한 K온니

‘10월'은 1917년 혁명을 10년 만에 그린 작품. 러시아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빌린 음악은 웅장했다. 아. K온니 본캐가 작곡가였지. 내 귀엔 다 비슷하지만, 예술이란 본래 다른 눈과 귀를 열어주는 것. K온니를 통해 들으니 또 달라졌다. #러시아_아방가르드_혁명의예술 전시에서 음악 인상기라니. 와중에 1916년 '스페이드의 여왕' 영화의 앵글은 어찌나 현대적인지.


거대한 대륙이지만 얼어붙은 땅이 예술적 상상력을 남다르게 키운듯한 러시아.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모두 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이끈 칸딘스키, 말례비치도 그랬다. 심지어 곤차로바와 라리오노프는 사랑과 예술을 엮어버린 연인이었군.

K온니는  시대가 부럽다고 했다. 천재들이 당대의 고뇌를 나누며 기성 질서에 함께 저항한 그런 시대. 1930 말례비치는 간첩죄로 체포됐고, 블라지미르 마야꼽스끼는 36세로 자살했다. 개인은 스러지고 혁명의 고난과 좌절이 예술로 남았다. 사상과 철학, 문학도 남다른  시절 러시아. 100  우리는  남길  있을까.

개인적으로 모스크바대 교환학생 출신으로서 러시아에 대한 애정이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무렵 그들의 혼란을 기억한다. 지성의 뿌리가 깊었던 그들은 침략자가 된 2022년 러시아를 어떻게 기록할까. 전쟁을 멈추라고 시위하는 시민들과 푸틴에게 열광하는 시민들로 쪼개진 건 21세기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지만, 대륙의 스케일만큼 고통도 크다.


"아방가르드는 비율이 하나도 안맞아. 선도 이상하지. 기성 질서에 반항했잖아." 음악가인 K온니의 아방가르드 회화 해설은 또 달랐다. 추상주의, 절대주의, 구성주의 같은 어려운 단어 대신 명쾌했다. 공연 연출도 하는 온니는 원래 예술은 다 통한다고 했다. 몸의 비율도 맞지 않고 수평도 삐뚜름한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유대인 비너스(1912) - 미하일 라리오노프 / 화가의 자매 안나 로자로바의 초상(1912) - 올가 로자노바
투우(1919) - 블라디미르 베흐테예프, / 부엌(1915) - 나데즈다 우달초바
추수꾼(1912) - 나탈리아 곤차로바 / 풍경(1910년대) - 니콜라이 골로샤로프


“사물을 묘사하는 부담에서 예술가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던 말례비치의 그림이 다르게 보이고, "색은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힘"이라고 했던 칸딘스키의 색에 빠져든다. 천재들의 시기를 지나 오늘의 러시아를 생각하면 슬프다.

즉흥 No.4 (1909) - 바실리 칸딘스키
즉흥(1913)  / 즉흥 No.217 회색 타원(1917) - 바실리 칸딘스키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1913) / 절대주의(1915) - 카지미르 말례비치


도슨트 부럽잖은 K온니와 전시 나들이. 그러나 이날 전시에서 심장을 건드린 그림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드르 티실례르의 '장애인들의 시위'(1925). 어찌됐든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한 상황 덕분이다. 다리와 팔이 없거나,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이들의 절규는 그만큼 더 절박하다. 존엄한 존재로서의 아우라가 더 강하다. 저 외침에 공명하는게 문명. 인류의 진보가 의미 있으려면 더 뭐가 필요하지?

이번 전시, 말례비치의 ‘절대주의’가 1조 가치, 보험가액만 160억원이라는 기사가 있던데, 그 그림보다 이 그림이 훨씬 더 강렬했다.

장애인들의 시위(1925) - 알렉산드르 티실레르


아방가르드 시기의 예술가들은 여러모로 도전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다 섬유예술로 빠져서 소비에트 모던 패션을 이끌었고, 건축과 디자인으로도 벽을 넘었다. 설명 영상을 보는데 단어만 몇 들린다. 보줴 모이! 고골의 '검찰관' 공연 포스터 디자인을 보면, 고골 같은 당대 천재 작품을 무대로 옮겼고, 포스터 하나 예사롭지 않은 시대의 존재감이 실감난다.

‘검찰관’ 연극 포스터(1927) - 안드레이 사신

2022년 100년 전 러시아를 구경하는 건 어쩐지 느낌이 또 다르다. 전시를 보고 우리는 마르가리따와 나초를 먹었다. #온더보더 치즈딥 좋다. #마냐먹방 포스팅이 요즘은 자꾸 이상하게 길어진다. 주객전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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