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최악의드라마 가 최종회 끝나자마자 실트윗 키워드에 올랐다. 겨울에서 봄까지 #그해우리는 여운에 더해 행복한 시간을 이어간 #스물다섯스물하나 고마울 뿐인데 어쩔. 김태리남주혁 제대로 멜로 하나 더 찍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왜? 둘이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둘의 이별이 아주 설득력 있는 편은 아니지만 해피엔딩 염원이 분노로 나온다. 풋풋하고 싱그럽고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모든 장면이 예뻤는데, 그래서 더 문제였다. 작가는 처음부터 나희도에게 김씨 딸을 두고, 백이진과 연결 가능성을 차단했는데 다들 납득하려면 뭔가 더 필요했던 모양이다. 쉽게 포기 안되는 두 사람의 해피엔딩. 첫사랑의 추억보다는 그저 결혼에 골인하는 최종회에 우리가 익숙하긴 하지.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믿는걸까? 나희도와 백이진이 뜨겁게 사랑한 만큼 결혼하고 영원히 알콩달콩? 결혼이 미래인 이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가? 결혼이 현재이고 과거인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나? 사랑은 판타지로 머물러야 하나? 현생이 힘드니 드라마라도?
“넌 항상 나를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끌어…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져
너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내 응원은 그런 너에게 보내는 찬사야
그러니까 마음껏 가져”
“너는 존재만으로도 날 위로하던 사람이었어."
"너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일으킨 사람이었어."
"나도 나를 믿지 못 할 때 나를 믿는 너를 믿었어. 그래서 해낼 수 있었어”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결혼 같은 마침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이기주의라고 했는데, 나를 아끼는데 머물지 않고 서로를 아끼는데 진심이었다. 알랭 바디우가 <사랑 예찬>에서 말한 “사람의 관계에서 평생 탐색하고,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울타리로서 사랑”을 하긴 했다. 한 시절.
말랑말랑 드라마에 행복한데 사랑론을 얘기하는 내가 좀 한심하긴 하지만. 오늘 마침 일행들과 떠든 얘기 중 한 대목.
“열정으로 가득한 삶, 지적인 열락을 나누는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난 이런걸 요즘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과 우정이 섞이는 중이다. 남편과 친구의 우정을 보면 저건 사귀는거지 싶은거나, 내가 요즘 아낌 없는 우정과 사랑을 즐기는거나 다 이어지는 얘기ㅎㅎ 저 멘트는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의 설레임을 전도할 때마다 끄집어낸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도, 필수적 리츄얼도 아니라 생각한다. 사랑은 그보다 훨씬 크고 깊고 다양하다. 사랑 좀 더 키워서 우리도 계속해야하지 않겠나. 스물다섯스물하나의 사랑은 그 자체로 완성형. 비록 아쉬운 장면들이 있을지언정 예뻤다. (페친들의 주옥같은 댓글을 보려면 원 게시글로..)
그리고 단상 하나 더...
“기자 남자친구는 만나지 말아야겠어”
비혼주의에 연애도 않겠다던 딸이 기자는 남친으로 별로라는 얘기를 하다니. 드라마 2521 같이 보는 보람이 없지않네. 백이진 넘 탓하지 마.
9.11.. 엄마가 평생 가장 열심히 일한게 저 때야. 한 달 동안 새벽 4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했어. 아, 마침 국제부 기자였어. 엄마 일복 많잖아. 신문 1면부터 2, 3, 4, 5, 6… 모두 9.11 소식으로 채웠지. 석간이라 밤새 들어온 새 소식들로 정신 없었지.
그리고 백이진처럼 아빠도 저때 미국에 있었어. 한 달 동안 미국 특파원 선배들을 도와 9.11 소식을 보도했지. 미국 국무부 단기 연수를 가게 되어 9월8일에 출국했는데 가자마자 초유의 사태가 터진거야. 그날 한국 시간으로 밤 늦게 비행기가 뉴욕의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을 속보로 보는데 머리가 아득하더라. 국무부 건물도 공격을 받았다는데 아빠는 연락이 안되고.
…별 일 없을거라 믿으면서도 심장은 싸늘해졌던 그 밤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9.12 새벽에야 간신히 남편과 연락이 닿았다. 그의 연수는 취소됐고 바로 취재에 투입됐다. 너무나 끔찍한 참사 앞에서 다른 각오는 필요 없었지. 남편도 나도 각자 정신 없던 한 달이었다. 그도 백이진처럼 고통스러웠을까? 그때는 서로 바빠 그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도 없는데, 그저 잊은걸까?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을 줄줄이 취재했던 남편. 같이 술마신 기억은 있는데 대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다니. 아마 드라마 백이진 처럼 멋지진 않았던걸까.. 그때는 콩깍지 유효할 때인데.. 음..
백이진이 고유림 보도하는 걸 보면서 딸이 분개했다. 기자는 원래 저런 인간들이냐고. 기자든 누구든 각자 자기 일을 할 뿐이지만, 누군가를 배신(?)하면서 일하는건 본 적 없다고 말해줬다. 기자들 그리 나쁜 말종이 아니라고 해줬다. 기레기 논란이 많지만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도 있는걸.
딸. 엄마는 기자도 남친으로 나쁘지 않았어. 서로 바쁜걸 이해해서 오히려 좋았어. 사실 직업이 뭔 상관이겠니. 어떤 사람이냐, 그것만 보면 되지. 제발 연애나 하면 안될까? 넌 연애로 젊음을 낭비할 때인데 아까워 아까워. 비혼주의 반대 않는데 제발 연애 좀.. 이런 드라마 보는 보람 좀..
“나는 네 거 다 나눠가질 거야. 슬픔, 기쁨, 행복, 좌절 다. 그러니까 힘들다고 숨지 말고 반드시 내 몫을 남겨 놔. 네가 기대지 않으면 나 외로워”..
근데 나희도의 저 멋진 대사와 달리 백이진은 저래놓고 뉴욕 스테이? 문지웅은 알바해 고유림 보러 러시아 가는데, 넌 안되겠다.. 딸이 백이진 말고 문지웅을 만나면 좋을텐데
사랑만 해도 아까운 인생에 다른 핑계로 숨고 떠나는거 나쁘지. 엄마 나희도 대사처럼 사랑과 우정에 전력을 다할 때가 정말 젊은 날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