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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23. 2022

미디어가 가짜뉴스에 기여하는 법


평평한 지구를 믿는 ‘International Flat Earth Research Society’란 조직이 있다. 1956년에 시작했으니 역사가 꽤 된다. 몇년 전 cnn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전세계에서 늘고 있고, 미국인 8000명 조사에서 6명 중 1명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어제 창비학당 강연 제목은 ‘가짜뉴스와의 전쟁,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미디어가 ‘루머'일만큼 뿌리가 깊지만 소셜미디어 시대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와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진짜 미디어의 기여를 간과할 수 없다. 진실을 ‘논란'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문제다.


어떤 미디어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는 커녕 방해한다. 양쪽 주장을 논란으로 몰고 가 피곤하게 만들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라 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빌미를 제공한게 이런 해석이다. 스웨덴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는 객관성과 중립성을 뒤섞지 말라고 일갈한다.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과 근거 없는 주장을 똑같이 다루지 말라는 얘기다. (그의 신간 '진실의 조건' 소개만 봤다)


박정훈님 글​을 보다가 놀랐다.


'페미 논란'도 꾹 참았던 안산, 전장연 논란에 꺼낸 한마디 (조선)

'페미 논란'땐 침묵한 안산, 전장연 논란엔 딱 한마디 꺼냈다(중앙)

'전장연 지지·후원 인증' 안산·핫펠트, 논란에 밝힌 입장은 (한경)


인권 문제가 왜 논란으로 포장되나. 양쪽 주장이 다 있으니 사실보도라고, 미디어의 책무를 다했다고 할건가.

가세연이 조민씨를 무단촬영한 사건을 놓고, 수십 개 보도가 쏟아졌는데 민언련의 모니터링 결과는 이렇다.


가세연 영상 단순전달 52%

가세연 영상 논란 44%

가세연 영상 비판 3%


명백히 잘못된 행위를 놓고, 단순전달한 것도 무책임하지만 논란으로 몰고 가는 해악도 만만치않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격추됐다. 모든 증거는 러시아를 향하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짓이라고 우겼다. 러시아 방송은 우크라이나 책임자가 범죄인처럼 생겼다는 관상가 분석까지 보도했다. 이런 선동은 사람들이 거꾸로 믿어주기를 기대하는게 아니다. 뭔가 의구심을 가지는 걸로 충분하다. 명백한 사실 대신 의혹과 논란이 이어지면 그만이다. 논란은 진실에 대한 관심을 줄인다. 틀린건 틀렸다고, 아닌건 아니라고 해야지 그게 왜 논란인가. 끝없는 음모론에 계속 반박하는 것은 피곤하고, 가치없는 일이지만 어느새 지구는 평평해진다.


나는 무보수에 연간 2~3회 회의비 30만원 받는 일로 낙하산 알박기 논란의 당사자가 됐다. 조선일보 기사는 수정됐으나 남아있고, jtbc와 채널a, mbn,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데일리안, 뉴데일리 등이 확인 없이 받아썼다. 검색에 박제되기 싫어 언론중재 절차를 밟으려니 꽤 번거롭다. 논란 타령이 당장 쉽겠지만, 취재하고 확인하고 사실만 보도하는게 그렇게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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