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May 21. 2022

<소뿔농장> 서로 부축하는 힘과 진솔한 언어의 치유

1.

닭도 오래 살면 30년 수명을 누린단다. 대부분의 닭은 60일 이내에 치킨이 되지만 그게 순리는 아녔다. 닭도 천수를 누리면 안될까? 그런 마음으로 알을 낳지 않는 경로닭을 비롯해 80여 닭, 인연이 닿은 유기견들, 오리, 길냥이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양평 #소뿔농장 이다. 풀네임은 #별총총달휘영청소뿔농장. 수익보다 생명의 가치에 마음을 쏟는 소뿔농장 채소 꾸러미를 3년 째 받고 있다. 이런 곳은 잘되면 좋겠다, 후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향이 진한 채소들, 먹을 때마다 고마운 청란, 바리스타 겸 농부 이미아 님이 내려준 드립커피와 제철 농산물이 #마냐밥상 즐거움을 키워준다.


2.

코로나 탓에 3 만에 드디어 농장을 찾았다.  역사적 팜파티 메인 요리는 비름나물, 망초나물, 국화과  나물, 민들레 등등을 넣은 비빔밥. 이런 나물 호사는 자제할  없어서 숟가락질 바빴고,   보들보들 미나리와 오징어 넣은 전도 기막혔던 #마냐친구밥상. 매달 꾸러미 받는 농장주 분들도 다들 재첩국, 얼갈이김치, 나물, 막걸리, 식혜, 수정과, 아이스크림, 마들렌, 바리바리 뭔가 준비했다. 때마다 호텔급 디저트를 구워오시는 현정님의 까눌레, 피낭시에는 오늘도 대단했지만, 보답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 드디어 레몬 쿠키, 그레놀라 쿠키, 고디바 넣은 초코쿠키 구워오신 지연님도 다정했다. 소뿔 꾸러미를 통해 먹을 것을 받으면 사랑받는 느낌이란  아셨다나.  도저히 솜씨 자랑할 엄두가 안나서 아이스박스에 맥주를 채워갔다.


3.

톡방에서만 만나던 분들을 오랜만에 꼭 끌어안고 인사했다. 다정함을 나누며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는 순간은 농밀하다. 특히 세월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연을 맺기 시작한 분들, 정혜신 쌤의 ‘당신이 옳다’를 통해 공감의 힘을 실행하는 분들이 여럿이라 그런지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각별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한 존재만이라도 연결되면 살 수 있다는데, 서로를 부축하는 마음들이 엮이고 쌓인다. 그게 어떤 건지, 새삼 실감하는 사연들이 이어진다. 아니, 다들 왜 이리 말씀들은 또 잘해.


4.

누구나 속마음을 얘기하면 시인이 되고, 달변이 된다는 혜신쌤 말씀. 평소 방어하는 마음, 조리있게 말하려는 욕심이 아니라면 모두 진심에 강하단다. 알고보면 고등학교 적성검사에서 농업이 가장 적합한 직업으로 나왔다는 친구 ㅈㅂ, 맨날 전쟁과 분쟁, 테러만 얘기하다가 착하고 선량한 기운에 놀랐다는 친구 ㄸㄱ와 동행했는데 기꺼이 함께 어울려서 좋았다.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의 진솔한 고백도, 서로 부축한 경험의 강력한 힘을 아는 이들의 간증(?)도 진하고 진했다. 영혼을 달래주는 가수 시와님을 무려 이벤트 분위기 띄우는 분으로, 혜신쌤을 사회자로 쓰는 소뿔 농장주들의 패기.


5.

가혹한 일을 겪고도 그게 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이제는 안다. 어떤 일을 겪으며 느낀 감정들을 정확한 언어로 정리하는 건 엄청난 일이다. 외상 후 성장이란 단어를 오늘 지연님에게 배웠다. 고통스러운 일을 취재하며 몹시 힘들어도, 객관적 시선을 지킨답시고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기자들은 알게 모르게 상처가 깊단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기자들을 조사했는데,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멕시코 기자가 2위,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던 한국 기자들이 1위였단다. 한국 기자들이 어려운 건, 제대로 된 치유, 상담의 과정을 기대할 수 없는 풍토 탓이 컸던 모양이다. 상대를 깊게 볼수록 기자도, 상담가도 때로 흔들리고 무너진다. 당사자만큼이나 힘든게 당연하고, 나만 힘든게 아니라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인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단다. 이런 과정은 누구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각자 차례로 이야기를 털어놓는 오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사실 이런 분들을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어 소뿔농장주를 포기 못하고 값을 치른다.


6.

농장에서 방금 딴 딸기는 알은 작지만 식감은 탱글하고, 새콤달콤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맛. 까눌레까지 욕심내는 바람에 배불러 미치겠는데 정말 홀린듯이 딸기를 계속 해치웠다. 어린 꼬마 친구들은 어른들이 베어물고 남은 딸기 꼭지를 모았다. 닭들이 잘 받아먹는다나. 이 귀한 딸기는 꾸러미 배송시 뭉개질 수 있어 보통 잼이나 쥬스로 보내주신다. 평소엔 맛있었지만 생딸기의 놀라운 맛을 보니 아쉽다. 5월 꾸러미에는 딸기잼을 비롯해 아욱과 돌미나리, 양파, 각종 로메인 등 유럽형 샐러드 채소, 생 오레가노, 그리고 여느 때처럼 커피와 청란이 알차게 들었다. 당분간 녹색 부자다. 이번주 강연 준비에 독서모임이 겹쳐 수면부족에 시달린 백수로서 무척 피곤했는데 영혼의 먼지를 닦아낸 기분이다. 멋진 사람들의 기운 덕이다.


7.

농장주 공식 사진가 종진쌤이 촬영 자리를  못잡고 신예에게 밀렸다. 예닐곱살로 보이는  신동은 이미 유튜버란다. 직접 찍으며  뒤집어 본인 얼굴까지 인증하는 솜씨. 놀라운 세대의 진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