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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7. 2022

<문경새재와 예천> 1박2일 완전정복

문경이 좋단다. 그게 전부였다. 아는게 없었다. 계획도 없었다. 문경새재 가보자.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나들이라니. 간만에 더 친절한 모드로 이 동네, 요 코스로 다녀오시면 됩니다~ 컨셉의 정리다. 좋은건 나눠야 좋으니까.  
 
사실 이 땅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 다녀본 곳도 별로 없다. 너어무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다. 일만 했다. 문경새재, 들어는 봤어도 몰랐다. '새재'가 우리말인 것도, 한자로 鳥嶺, 새도 날아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인지 몰랐다. 어렴풋이 옛 사람들이 경상도에서 한양 올라갈 때 지나가는 산골짜기 정도로 이해했다. 그래서 진짜 간단한 고갯길인줄 알았다. 무식해무식해..

첫 관문이 멀리 보이는데 길은 넓고 광활했다. 두번째 관문까지 가는데 오래 걸었다.


문경새재는 길인데, 보통 길이 아니다. 물과 숲이 길고 깊다. 몇 억년 전에 형성된 바위가 에워싸고 꽃과 나무가 절경이다. 낙동강 수원이라는 계곡물이 폭포들을 만들며 힘차게 흐른다.

가다보면 호랑이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고, 여우에게 홀리는 이야기가 있을법하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 가는 선비라면 속세의 성공을 잊고 산과 물을 벗삼아 자연에 머물고 싶어질듯 하다. 차가운 계곡 물에 지친 발을 담그면 복잡한 상념 따위 사라진다. 그저 나뭇잎 사이로 볕이 눈부시고 물소리가 우렁차다.


그래서인지 몇 걸음 걷다보면 비석들이 이어진다. 당대의 선비, 한량들이 문경새재에 빠져들어 남긴 싯구가 돌에 새겨져 남았다. 그 시절 벼슬아치들은 저마다 바위에 이름을 새기거나 기념비를 남겼는데 부질없다. 수백 년 지나 마음을 흔드는 시문은 남아도 출세한 이의 이름은 세월과 함께 지워졌다.

경상감사가 새로 임명되면 구관과 관인을 인계인수 하는 행사가 열렸다는 교귀정. 꽃과 나무, 돌과 물, 산세가 가장 빼어난 곳에 정자를 남았다. 취타대까지 총 300여명이 이 산속에 모여 행사를 가졌다니 어마어마한 의전 만큼이나 백성을 굽어 살폈기를.


계곡의 큰 바위 이름은 꾸구리 바위.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구리가 살았는데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했다는 설명이 표지판에 나온다. 맑은 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보였고, 바위는 영험해보였다. 여자는 고작 물고기 따위에게도 희롱당하는게 당연하듯 만들어진 설화.


또다른 바위굴 설명을 보면, 소낙비를 피하던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진 후' 처녀가 아이를 낳고.. 어찌저찌 아들이 아비를 찾아 행복하게 살았다는데, 도무지 개연성이라곤 없는 황당한 이야기 '어허 그 빗줄기가 마치 새재우 같구나' 해서 아비를 알아보게 됐다는데 와아.. 사내의 로망이란.


킹덤 등의 장면이 생생한 문경 사극셋트도 나오는 길에 구경. 작은 광화문, 궁전, 기와집, 초가집이 드라마에선 그럴싸하게 나오다니. 셋트장 초가집 초가가 비닐이란 사실에 동심 깨진 기분은 덤.그래도 꽤 볼만 하다. 바쁘지 않다면 들려보자. 입장료 2000원. 마침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팀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구경하고.


꼿꼿하게 치솟은 기개 어린 나무, 풍파에 굽이굽이 생명력 넘치는 나무, 잘생긴 나무들 틈에 밑둥에 구멍이 크게 뚤려 속이 비어버린 나무가 눈길을 붙들었다. 오래된 상흔이 분명한데 그래도 높이 자라 연두색 잎을 또 틔웠다. 살아만 있으면, 세월을 버티고 이겨낸다. 자연은 그렇더라.


5시간 정도 걷는 걸음마다 마음이 씻기는 기분의 문경새재 산책. 완벽하지 않은 어색함에도 웃어넘길 여유가 있었다. 입구에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아니 문경새재에 왜?? 설마 사과? 옆에 사과 조형물이 이어진다. 아니 백설공주의 사과는 독사과였는데ㅎㅎ


문경새재도립공원 담당자는 분명 부지런했다. 예산도 넉넉했나보다. 같거나 미묘하게 조금만 다른 내용의 비석과 표지판이 둘 씩 나오는 건 그러려니. 생태 설명 표지판도 좀 웃겼다. 처음엔 심드렁 시큰둥 보다가 어느새 문며들었다. 하나하나 읽고 구경했다. 덕분에 오래 걸렸다. 50m 마다 비석이나 표지판이 나오는거 아니냐고 웃었다. 한시 비석을 보면 오선배와 정은은 서로 한자를 맞춰보며 읽었다. 까막눈인 나는 구경만 했다. 우리는 급할게 없었다. 느긋하게 쉬엄쉬엄 즐겼다. 문경새재 아리랑 비석을 보다 버튼을 눌러 실제 소리를 듣고, 정자에 누워 시덥잖은 수다를 떨었다. 정은이 서울 집에서 내려온 보온병의 커피는 따뜻했다.


먹방 부심, 맛있으면 살 안찌겠지

이런 식당을 어떻게 찾았냐고 일행들이 감탄할 때, 나는 나를 칭찬한다. 급히 찾은 집이 괜찮을수록 먹방러 부심이 타오른다. 사실 별거 아니다. 후기 몇 개 보면 안다. 광고주 돈받아 호들갑인지, 그냥 좋은 식당을 만난 즐거움인지.

일단 지도앱에서 목적지 부근 이동 가능한 범위에서 '지도내 검색'으로 맛집을 찾는다. 목록을 쓱 살피면서 리뷰도 골라 보고, 인스타에 비슷한 사진만 올라왔는지 가끔 본다. 부근 목적지 순위를 보여주는 티맵 T지금은 때로 교차검증에 괜찮다.

뭐든 다른 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내 경험만 앞세우면 좁아진다. 피드백은 귀한 정보다. 이해관계 바이어스 등은 적절하게 감안해야지. 목소리 큰 그룹과 전체 분위기도 균형있게 봐야지. 반대를 위한 반대, 맹목적 찬성 모두 걸러내면서 봐야지.. 아, 삼천포 주의ㅠ


문경새재 맛집 검색하면 음식점 밀집 구역이 뜬다. 비슷한 메뉴인데 초심 사라졌다는 집도 있고, 기쁘게 소개하는 집도 있다. #시골손두부 는 후자. 능이두부전골 3인 대신 2인용 소짜(3만원)에 비지장(8000)을 추가했다. 능이 향은 건강한 기분을 주는데도 풍미가 훌륭. 청국장 느낌 비지장은 양 적지만 흡족했다. 각종 나물이 넘 좋아서 두번 리필해 싹싹 비웠다. 잘 먹고 기분 좋게 10분 거리 문경새재로.  


저녁 식당은 숙소 부근 검색해 4분 거리 #좋은연. 삼겹살인데 연잎가루를 뿌리고, 연근을 함께 굽는다. 200g 1만원 삼겹살도 상태 좋지만 연근과 버섯 무한리필. 노릇하게 구운 연근과 함께라면 삼겹살도 살찌지 않는다고 믿으며..


정은의 문경 에어비앤비 검색에서 예천 숙소가 걸린건 운명?  #죽림주간 진짜 근사하다. 쥔장의 한옥 리모델링 후기가 있다!

O선배가 준비한 와인잔! 그리고 치즈, 내가 들고간 올리브에 와인 불멍의 시간..

 

죽림주간은 디테일한 배려에 감탄행진. 특히 맘대로 드시라며 쌀과 계란, 우유, 빵, 라면, 햇반, 잼과 양념류 구비. 좋은 커피도 있지만 식탁엔 루이보스티를 우려놓은 물병이 다정하다. 덕분에 이튿날 아침은 남은 올리브와 냉장고 쨈으로 빵 한조각. 그리고 계란프라이와 커피. 사과 고장의 사과파이(라기보단 사과쨈빵). 셋이 와인 두병반 비웠는데 해장 없이 쿨한 우리.


숙소를 떠나기 바로 골목 건너 예천권씨 초간종책을 둘러봤다.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할아버지인 권오상(權五常) 1589(선조 22) 지었다는 설명. 초간? 마침 다음 목적지가 초간정 원림이었다. 8  남도여행 당시 명옥헌 원림이 좋았던 기억에 검색 목록  내맘대로 고른 . 숙소에서 8 거리인데, 알고보니 예천권씨 초간 권문해 선생의 본가와 정자를 차례로  셈이다. (문경과 예천은 곳곳에 사과나무 대신 벚나무길이다. 올봄 벚꽃을  동네에서 원없이 보다니)  


초간 권문해 선생은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분이란다. 문경새재의 잘생긴 바위마다 잘난 관리들이 이름을 남기고자 비를 새겼지만, 실제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건 이런 기록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이름 새긴 돌을 남기긴 했지만 부질없다. 하지만 저작은 남는다. 물론 초간 선생은 집과 정자도 남겼다. 그것도 몹시 근사한.

초간정 원림의 정자는 미스터 선샤인에 등장하기도 했다지만 문이 잠겨있다. 담장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긴 했는데 정자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정자는 원래 밖에서 구경하는게 아니라, 정자 안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속세의 성공을 뒤로 하고 낙향한 이들이 자연과 벗삼아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 곳. 문경새재에서도 느꼈지만 이 동네는 산과 물이 예술이다. 초간정은 멀리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시내가 굽이쳐 직각으로 꺽이는 곳에 자리잡았다. 물소리가 맑고 초간정을 둘러싼 돌과 바위, 나무와 꽃이 기막힌 풍경을 만들어낸다.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360도 주변을 돌면서 그 모습을 만끽했다.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은 이런 곳에서 남겨졌구나, 웅장해진다.


사진 잘 찍는 정은의 컷. 렌즈 위치를 낮추면 이런 풍광이 들어온다. 좋구나.


주변 정경이다. 좋지 아니한가.


저 멀리 산을 왜 깍고 있는지, 궁금. 그 시절엔 초간정을 품어주는 근사한 산이었겠지.


초간정에서 9분 정도 벚꽃길을 달리면 용문사. 가까워서, 또 한줄평이 좋아서, 사진 보니 괜찮아서 골랐는데, 초간정 원림과 용문사를 고른 나를 또 칭찬한다. 엄청난 곳이 얻어걸렸다. 여행 운이 좋았다.

신축중인 일주문이 너무 거대해서 잠시 질렸지만 절 아래 상점가가 전혀 없는 것도 인상적인 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에서 절 전경이 보이는순간, 그 아우라에 압도당한다. 예사로운 곳이 아니다.


1008개의 불상이 그려진 1709년(숙종 35) 천불도 설명부터 보게 됐는데, 실제로는 보지 못했다. 코로나로 잠긴 건물. 하지만 용문사 자체가 천년 고찰. 신라 경문왕 때 두운선사(杜雲禪師)의 암자가 시초다. 그리고 사전정보가 없어 못보고 갈 뻔 한 국보가 있었다. 1173년(고려 명종3) 국난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대장전大藏殿과 윤장대輪藏臺. 대장전을 경전을 보관하기 위한 전각이고,  윤장대는 말하자면 책장이다. 회전식 책장. 처음 보는 모양새다. 사진 촬영 불가라, 건물 밖에서 찍은 사진만 남긴다. 가운데에 불상이 자리잡고 왼쪽과 오른쪽 창 안 쪽에 윤장대가 있다. 솔직히 경이롭다.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의 차이를 물어가며,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의 이름은 왜 다른지 등등 정은의 설명을 들으며 전각마다, 불상마다 감탄하던 중이었는데, 윤장대의 아우라가 가장 압도적이다. (다른 전각 사진을 패쓰한 이유라 하고 싶지만..사실 잘 못 찍었다ㅠ)


용문사에서는 사찰음식 강좌가 열린다는데 19년 플랭카드다. 역시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겠지. 이런 절에서라면 꼭 배우고 싶어지는 와중에 뜰 가득한 장독을 보니 역시 어마어마하다.


절 자체가 꽤 높은 계단이 이어지며 산자락에 자리잡은 덕분에 산이 아름답다는 감상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의종 20년(1166)에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회담장소였다는 '자운루'까지 용문사 곳곳이 다 역사다. 이런 절이라니.


비 예보에 둘쨋날 일정은 거의 잡지 않았는데 다행히 오전엔 빗방울이 드문드문 무척 약해서 구경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역시 여행자의 행운! 절에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호젓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 특별한 행운이다.


 
점심은 예천에서 문경가는 부근의 용궁. 온동네가 순대 마을이다. 마침 검색한 #용궁단골식당 갔더니 백종원쌤 사진! 벽 하나가 유명인사들 사인이다. 따로살코기국밥(8000) 한그릇만 시키고 각 1.1만원인 모듬막창순대, 오징어불고기, 돼지불고기. 순대 즐기지 않는다는 O선배도 기꺼이 드신 순대는 막창껍질이라 꼬숩다. 매콤 불고기들은 밥도둑이고 국도 싹싹 비웠다. #마냐먹방 이번 여행도 흡족하다.

점심 이후 느긋하게 2시간반 거리를 오선배 최애 덕평휴게소(화장실에 중정 있는 휴게소라니)에서 노닥거리다가 3시간반 걸려 왔다. 만약 오후까지 남았다면 문경에서 패러글라이딩이나 짚라인을 탔을까? 우리는 셋 다 휴게소 부근 프리미엄 아울렛엔 관심 없다는 공통점을 확인. 그저 이런 여행 더 가야겠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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