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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05. 2022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여행 기록 이어가본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우면 경이롭다. 그런데 화려한 예술과 함께 투박하고 낡은 멋도 놀랍다는 것을 하루에 배우는 도시가 로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명 들으면 감탄하지만 아는게 없이 봐도 설레이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도시다. 기대했던 감동은 그만큼 좋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이 이어진다. 바티칸, 그리고 산탄젤로(Castel Sant'Angelo) 성은 로마의 2일차 선물이다.
 
취향도 관심도 다른 여자 넷이 여행에 나섰다. 괜찮을까? 오랜 친구들과 몇주 여행 갔다가 몇년 만나지 않게 됐다는 에피소드는 사실 흔하다. 연인, 가족끼리 가도 온갖 해프닝에 투닥대기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 조합은 어색해도 이상하지 않다.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진빈, 진빈의 대학 친구 소연, 나의 직장 친구 딸기. 나는 소연을 알지만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딸기는 나만 안다. 미국에 있던 소연은 딸기를 줌으로 처음 인사하고 로마에서 만난 사이다. 다만 우리는 나이든 여자들. 새 친구를 사귀는데 더 유연하다. 수다의 힘이다. 카톡에서 예의 바르던 그들은 금새 서로를 재발견했다. 나 빼고 셋이 찐 아미다. 나도 BTS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느새 셋이 좀 무섭다.
 
로마에서 단 하나 가이드 투어를 예약한 것은 바티칸. 인당 4만원이지만, 바티칸은 설명을 좀 들어야 좋다는 걸 9년 전에 경험했다. 그때는 유로자전거나라, 이번에는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했다.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이른 아침이 좀 호젓하다. 관광객이 많은 곳일수록 서두르면 좋다. 버스로 대충 부근에 도착한 우리는 바티칸 거리와 성베드로 대성당 주변을 느긋하게 돌아다녔다. 일찍 나온 인간이 최소한 사진은 편하게 찍는다.


투어는 10명 팀인데 우리와 신혼부부 세 쌍. 좋을 때다. 우리처럼 친구들끼리 온게 더 부럽다는 반응도 있는 걸 보면, 일단 여행은 무조건 옳다.

7시50분 지하철역에서 모여 슬슬 바티칸으로 이동. 거의 한 시간 기다리며 미리 설명을 들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얘기를 듣다보면 작품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바티칸 시국은 엄연히 국가다. 1000명도 안되는 인구이지만 거대한 성벽은 완벽한 요새처럼 보인다. 성벽 모퉁이의 조각은 어찌나 정교한지 눈을 뗄 수 없다.


나름 민소매 짧은 바지 피하고 경건한 차림. 입장하면 솔방울 정원과 20세기 작품인 지구 안의 지구. 지구 망가지는 걸 경고한 작품이란다.


바티칸 미술관은 소장품이 너무너무너무 많다. 뒤에 고흐와 달리가 평범하게 취급되다니. 회화가 어떻게 원근법을 받아들이고, 보색을 사용하며, 대칭이 됐다가 역동성을 갖추는지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설명 그대로. 사진 생략. 다만 확실히 라파엘로가 각인된다.  


로마는 베르니니의 도시라고 딸기가 말했다. 그의 습작 조각도 잠시 감상.


카라바조의 저 그림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는 남자의 시선이 처연하다. 당신은 죄가 없는가? 당신은 괜찮은가?.이전 시대의 그림과 달리 빛과 어둠이 강렬하다. 카라바조 작품을 더 보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건 그 다음날.


트로이의 목마를 경고한 라오콘이 포세이돈의 저주로 뱀에게 죽는 모습. 왜 그들의 신은 아비와 두 아들을 한꺼번에 살해했을까? 신의 분노란 고통과 공포를 감수해야하는 합당한 처벌일까? 무튼 너무 생생한 조각이다.


부조 같지만 그림자 처리했다는 천장, 화려하고 또 화려한 바티칸은 천장 감상하느라 정신 없다. 시스티나 소성당의 미켈란젤로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하다.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부터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프톨레마이오스 사연도 다 재미있지만, 앞쪽에 뚱하게 혼자 있는 미켈란젤로가 압권. 라파엘로 뒤끝 있구나. 아테네학당은 정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건 다른 전문가 글을 보면 된다. 나까지 뭐ㅎㅎ


토르소, 원반 던지는 남자도 미술책 작품 실물 알현


시스티나 소성당은 촬영 금지. 그림 훼손 이유는 설득력 없고, 80억원을 기부해 그림을 복원(했다기 보다 세월의 묵은 때를 닦고..)하고 다큐를 찍었다는 NHK 저작권 이슈가 어쩐지 설득력 있다. 뭐, 돈이 힘이 센견 바티칸도 마찬가지인가. (지금은 없어진 솔방울 정원 식당에서 이건희 회장이 식사를 한 적 있다는데 이후 바티칸 디스플레이가 모두 삼성 제품으로 바뀌었다고.. 홍보 효과에 더해, 뭐 좋은 일이다..)

9년 만에 다시 와도 여전히 놀라운 시스티나 소성당의 미켈란젤로. 4년4개월 누워서 천장화를 그릴 때는 다시 내려오기 귀찮아 18시간 내리 그린 적도 있다는 에피소드. 천지창조 시리즈에서 아담의 손가락에 아슬아슬 떨린다. 다만 아담 못난 놈. 선악과 먹은 책임을 부인 이브에게 떠넘기고 저는 죄없는척 억울한척 했단 말인가. 뱀에 유혹당하고 아담 못살게 군게 전부 이브 탓이란 말인가.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확 늙어버린 건 대체..
미켈란젤로가 6년 동안 혼자 작업했다는 최후의 심판.... 못살게 군 이를 거시기 뱀에게 물리는 인간으로 그려놓고, 본인은 더 끔찍한 자리에 넣은 에피소드가 또 흥미롭다. 창작자의 힘은 맘대로 그려넣고 남기는 것이로구나. 무튼 미켈란젤로 천재 천재다. 두 작품 모두 인터넷에 널렸으니 이미지 생략.

성베드로 대성당은 사진으로 그 위엄을 도저히 담지 못한다. 아름답고 경이롭다. 스케일과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와중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눈물 흘린 일행 있다. 미켈란젤로..

결국 아이를 잃은 엄마의 참혹한 고통. 헤아리기도 표현하기도 어려운 피에타.


베르니니라는 당대 천재를 추앙하고 추앙했다. 계속 천장만 바라보다가.. 눈 마주친 저 남자. 근데 저 두 남자는 무슨 사이였을까.


성베드로 대성당 앞 오벨리스크


나의 친구 진빈 소연 딸기


식당은 부근에서 구글 평점 높은 곳으로 골랐는데, 알고보니 고깃집이었던 인테르노92. 어쩐지 리뷰가 다 저녁이더라니. 스테이크 전문인거 같은데 점심이라 가볍게 육회로 시작해 햄 플레이트..가 아니라 랙, 진짜 랙에 걸어준다. 이탈리아 육회인 타르타르, 고소했다. 올리브유는 향기로와서 빵만 먹어도 행복. 종류별 햄도 환상적이다. 짠데 치즈 짠맛이라 맛좋은 파스타와 와인까지 총 88유로.


그리고 정말 예기치 않았던 산탄젤로. 성천사성.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무덤인데 로마 제국 멸망한 뒤 로마 교황청의 요새로 사용됐다고 한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 여주인공이 뛰어내리는 성벽의 배경이라는데... 139년에 세워졌다는 이 성은 꽤나 원형이 남아있고 그 투박함에, 웅장함에 빠져든다. 황금으로 가득하고 화려하지만 균형이 뛰어나 부담스럽지 않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잠시 걷는 거리의 산탄젤로는 회색과 잿빛 성채 전체의 공기가 다르다.


오래되고 낡은 성은 화려하지 않아도 숙연해진다.


이 성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하고.. 모형과 그림도 좋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산탄젤로 옥상에 오르면 로마를 아래로 굽어볼 수 있다. 멀리 바티칸부터 테베르 강의 고요한 아름다움, 낮은 건물들이 펼쳐진다.


엄마 아빠를 찍어주는 꼬마가 넘 귀여워서 그만 도촬....


저거 갈매기 맞지? 무튼 로마는 갈매기의 도시. 포로 로마노에서 특히 느꼈지만, 어디서나 도도하고 위엄있다.


다시 걸어 나보나 광장에서 젤라또.


친구가 바퀴 떨어진 낡은 여행가방을 이번에 버리겠다고 벼르고 왔다. 덕분에 리나센토 백화점 구경. 아니 백화점 지하에도 고대 수도관이 보존되어 있단 말인가? 어디에나 유물유적 로마로마.
이날 저녁은... 야외 테이블도 차 다니는 길은 피하자는 교훈을 얻었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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