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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08. 2022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토스카나 여행 팁. 좋은 숙소를 잡아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토스카나 여행에 로망을 가진 친구에게 붙어라.
딸기의 명언이다. 로망을 가진 이는 이기지 못한다. 십수년 토스카나 여행을 꿈꾸던 이가 실제 토스카나를 가게 될 때는 얼마나 고르고 골랐겠나. 2주 정도 가고 싶었다는데 3일로 줄였으니 또 얼마나 고심고심했겠나. 소연 덕분에 토스카나 여행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단 숙소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하다. 새벽 산책을 나선 딸기는 해뜰 무렵 좋은 풍경을 담아왔다. 나는 어젯밤 여행 기록 쓰느라 늦게 잠들어 놓쳤다. 다들 지나간 여정이 헷갈리기 시작한다고 하면서, 내가 쓴 기록은 거의 공부하는 수준이라 힘들다는 불평도 접수. 흥.


농가란 단어의 느낌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낡은 시골집인데,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명소 같다. 이게 브랜딩일까? 한국에 대한 로망이 커지는 시대에는 우리도 뭔가 달라질까? 토스카나가 워낙 아름답기도 하지만, 와인 브랜드로 호감을 높인듯 하다.
숙소 뒷편에 몬테풀치아노 마을이 보인다. 이 동네 평원은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끝없이 펼쳐지고, 언덕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숙소는 정말 훌륭하지만 가장 멋진건 안드레아. 몬텔풀치아노에 데려다주고 데리러온다. 와이너리 투어, 레스토랑 등 온갖 추천에 일정까지 조언해준다.

농가 숙소의 수영장이 호텔 부럽잖은데?

몬테풀치아노는 작은 마을이다. 성당은 소박하고, 오래된 건물은 튀지 않는다. 하늘과 평원이 열일해서 그냥 자연과 어우러져 예쁘다.  


그런데 깜짝 놀란 고서점. 이건 무슨 소설에 나올법한데? 입구는 작고 그냥 지나칠뻔. 고서적은 낱장으로도 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온전한 책 상태가 아닐 수도 있지.


무엇보다 쥔장의 포쓰가 영화를 찍으셔도 됨.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터뜨렸는데, 흘깃 보더니 낯선 아시아 여자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본다. 나름 고서점 연합회 인증 업소랄까. The international league of antiquarian bookseller certifies 어쩌고.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나왔지만, 원래 영화가 되려면.. 쳇.

이번 여행의 기획자 소연이 토스카나에 관심이라 다행이다. 그와 진빈은 나파밸리에서 여러번 다녀왔다지만, 나와 딸기에게는 인생 첫 와이너리 투어. 당초 포도밭 와이너리 3군데를 셔틀로 데려다주는 코스를 가려고 했는데 인당 160유로라 하더니 220유로? 그건 아닌것 같다고 했더니 안드레아가 바로 다른 추천을 해준다. 몬테풀치아노 데리치 와이너리 투어는 인당 20유로. 무슨 차이냐고? 포도밭에 직접 가지 않았고, 한 군데라는 이유인데, 해보니.. 이거면 넘치도록 충분! 진짜다.


데리치 와이너리는 1337년에 이곳에서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건물 같았는데 지하로 몇층 정도 계속 내려간다.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곧바로 가디건을 꺼내입었고, 어느새 너어무 춥다. 냉방 따로 안해도 석굴의 온도가 낮단다. 이 정도로? 돌이 뭔가 다른걸까? 드디어 와이너리. 1만3000병이 나온다는 거대한 오크통도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데, 이건 내부 청소가 어려워 요즘 안쓴다고. 현재 쓰는 것은 오른쪽 통들.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우물이 있다. 누군가 독이라도 탈까 잘 지켜야 했다고. 나는 못 알아들었지만, 진빈과 소연이 통역과 다름 없이 요약해줬다. 너무 일기예보를 잘 맞추는 이 집안의 선조는 마법사로 오해받아 처벌받을 위기에서, 사실 고슴도치를 관찰하며 날씨를 맞췄다고 자백했단다. 결국 덕분에 작위를 받고, 고슴도치가 이 집안 문양이 됐다고. 뭐 이런 사연 없다면 오래 갈 수 있나? 아니면 오래 가기 위한 사연이 어디선가 살이 붙었을까? 하여간에 이야기 없이 오래 가는 건 없다.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하나 슬슬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드디어 시음! 냉기에 덜덜 떨던 지하에서 올라오면 설명이  이어지는데 모르겠고.. 차례로 따라준다. 원래  정도인가 했는데, 나파밸리에 비해 아주 넉넉하게 준거라네. 그것도 무려 6종이나! 10유로대부터 60유로까지 가격대도 다양한 와인. 빵과 치즈, 살루미  안주도  괜찮다. 이게 인당 20유로? 미국 나파밸리엔 이렇게 저렴하고 합리적인 와이너리 투어는 없다고 소연도 인정. 정은은 6 대신 3 구성인데 15유로다.
이렇게 다양하게 비교하면서 마시면 좋은 와인은 다르다. 가장 비싼 와인과  아래 와인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가 와인과 고가 와인은 확실히 향과 맛이 다르다. 와인을  모르는 나와 딸기에게도 그랬다. 너무 마음에 들어 가장 좋은 순서로 홀짝거리기 시작해  마셔버렸다. 마침 아침도  먹은 빈속에 와인 6잔을 간단한 주전부리와 함께 먹다보니... 취했다. 취해서 너무 좋았다. 낮술이 최고지. 기분 좋게 알콜을 영접하면, 가벼운 흥분이 이어지며 신난다.... 여행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거야? (다음날 아침에 대화를 나누다보니 데리치 와이너리 후계자란 분이 와인을 두 잔 더 주셨다. 기억났다. 소연이 주문하는데 2016 2017 빈티지 비교해보라고 우리 모두에게 써비스. 난 거의 빈속에 8잔을 마셨던거야! 어쩐지 방방 취해서 춤추며 걸었..)

친구들과 해외여행은 대학 시절 이후 처음이란걸 문득 깨달았다. 우리에겐 휴가가 넉넉하지 않았고, 대개 가족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지. 여자들끼리 다니면 정말 재미있는데, 엄마들은  다니던데, 일하는 여자들은  그걸 못하고 살았지? 어떤 친구들은 이번 여행 얘기에,  여자들은 남편이 여행을 허락했냐고 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해방' 적은 없었던게 아닐까?


투어를 마친뒤 안드레아가 점심 식당도 추천해줘서 갔는데.. 늦은 오후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을 잘 못하는 걸 깨달았다. 처음으로 와인 없이 음식만 시켰더니 파스타 2개와 돼지고기 포르게타까지 40유로. 이 시골마을은 왜 이렇게 착하냐고 했던 것 같은데..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들려 구경하는 재미는 로마 같은 대도시나 오르비에토, 코르도나, 몬텔풀치아노 어디나 마찬가지. 이 동네 인심은 정말 대단해서 직접 만든 토스카나 살루미 200g, 살라미 100g, 포르치니 치즈 등을 잘 몰라서 이것저것 샀는데 11.9유로. 이래도 되나 싶게 많다.


안드레아가 추천해준 뷰 맛집 Poliziano 에서 에스프레소. 이탈리아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대하지 마시라. 그냥 작은 커피잔에 얼음 동동 띄웠는데 우리가 아는 아아가 아니다. 저 자리는 잘 안 나서.. 저 뒷자리에서 분위기만 잡았다.


오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 나는 내 친구들이 비키니 입는 여자들인지 몰랐다.. 배신감... 태양은 뜨겁고, 물은 차갑고.. 잠이 부족한 나는 수영하는 척 하다가 썬베드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낮술의 여운 속에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 이게 무슨 호사람. 최고다.


토스카나의 해질 무렵을 보면서 저녁을 보내기 위해 다시 나섰다. 내가 탱자탱자 노는 사이, 진빈과 소연은 영어 설명이 한 줄도 없는 농가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는데 성공했다. 장하다.
저녁은 인근 피엔자 Pienzza 마을. 오래된 마을 주변에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식 마을이 붙어있다. 좋은데? 전통을 살리면서 느리게 즐기는 사람들. 이 동네 일자리는 주로 와이너리와 관광일까? 별개 다 궁금해지고.. 무튼,
여행을 위해 16년 전에, 10kg 쯤 날씬했을 때 산 원피스를 큰맘먹고 꺼냈다. 진짜 좋아하던 옷인데, 이걸 못 입고 몇 년을 살았구나.


토스카나 여행, 그중에서도 몬텔풀치아노 주변이라면 이런 식당 꽤 있을법 하지만 역시 안드레아 픽.. 피엔자의 Ristorqnte la Terranzza della Val d'Orcia.... 이런 뷰에서 토스카나 화이트 화인 16유로란 얘기만 남겨놓는다. 뭘 바라겠어. 이 동네 좋다.  


이건 사진 찍고 확대 많이 한 버전. 이거 실물은 내일 찍어보련다.


토스카나 사진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색감이 확 달라지는 것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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