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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09. 2022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넌 귀엽다는 말이 듣고 싶었니? 난 섹시하다는 말을 한번도 못들어봤어", "난 자라면서 예쁘다는 말 대신 지적으로 생겼다, 똑똑하게 생겼다는 말만 들었어", "야, 나는 대학 면접 때 교수가 골상학적으로 공부 잘하게 생겼다고 하더라", "고등학교 때 여자애가 부드러운 맛이 없다는 얘기를 교사에게 들었어"
"니네 남편은 너를 귀여워하는 것 같아", "그럴리 없어. 네가 잘못본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 "말뿐이지", "그게 얼마나 스윗한거냐", "
그런 생각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학생이 보낸 안타까운 이메일 얘기, 다음달 일정 관련 차질 빚은 얘기, 출판 관련 구두계약 하고 온 얘기 등 온갖 수다를 떨지만 여자들의 수다는 어느새 아주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어릴때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말 같잖은 말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확신과 편견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문득 깨닫는다. 고집스럽게 나이들기 싫은데, 편하게 온갖 얘기 다 하는 친구들이 나의 거울이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된다.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구나.

게으른 인간이 토스카나 몬테풀치아노까지 와서 동트는 걸 봤다. 이 농가민박 만큼 멋진 곳이 없어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다들 색의 마법이 펼쳐지는 새벽을 기대하며 깨우지 않아도 하나둘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농가민박 7유로 조식에는 수제 햄과 살라미, 수제쨈, 수제파이 등에 커피와 쥬스, 과일. 이 동네 수제 햄은 어찌나 맛있는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오늘은 토스카나의 온갖 풍경을 감상하기로. 진빈과 소연이 무척 좋아하는 Rick Steves 여행책과 숙소의 안드레아의 조언을 참고했다. 릭 스티브스 플로렌스&투스카니 책은 무려 18번째 에디션. 수십년간 계속 업뎃한다고. 한글 여행책보다 낫다는데 그저 친구에게 감사. 진빈과 소연이 전날 늦도록 정리한 여정의 첫 목적지는 라포체 La Foce. 유료 가든은 가지 않았고, 지그재그 Z자 길만 보고 패쓰. 사진 저 정도 찍기 쉽지 않다. 딸기 만세.


지나가다 발견한 곳은 사이프러스 길이 멋진 곳. 우리나라 블로그 보면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집으로 알고 찾은 이가 많은데 틀렸다. 진짜는 다른 동네. 이날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그러나 뭔 상관이람. 이 곳도 정말 예뻤다.


왜 이렇게 가슴을 내밀고 찍었을까나.. 음. 그러나 실물보다 길쭉하게 나왔다.


워낙 근사한 장소이다 보니 실제 모델도 화보 촬영 중. 슬쩍 숟가락 얹어서 우리도 찍었다.


평소 내 사진을 잘 넣지 않는데, 여행 사진 찍는데 한계. 어쩔 수 없다. 우연히 들린 사이프러스 길에 이어 그 다음 목적지는 반뇨비뇨니
Bagno Vignoni. 동네 유명한 온천. 이젠 저기서 목욕은 할 수 없다고. 아마 숲속 온천도 있는 것 같지만.. 예뻐서 들린거겠지? 역시 모델샷. 사진 찍느라 정신 없는 우리.  


조금 더 가보면..산탄티모 수도원 Abbey of Sant'Antimo. 그냥 찍으면 다 화보다. 성당도 꽤나 근사하지만 패쓰. 여기는 약국이 유명하단다. 상점 구경 쏠쏠한 와중에 우리는 함께 쓸 샴푸를 샀다. 샴푸 라벨이 바로 떨어진게 흠..


점심은 몬탈치노. 바로 그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보다 좀 더 크다. 식당 Re di Macchia 는 진빈이 평점 보고 골랐는데, 라비올리(13유로)와 멧돼지 스튜(16)가 훌륭. 스타터 메뉴(10유로)가 가장 저렴한데 넘 푸짐하잖아.


몬텔치노에는 온갖 와인 테이스팅 샵이 많던데, 우리가 간 곳은 숙소의 안드레아 아저씨 픽.

Azienda Agricola Patrizia Cencioni - Brunello di Montalcino Winery. 진빈이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오늘 운전대를 잡아서 못 마셨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꽤 좋은 와인이라고,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마셔본 소연이 설명. 총 5종류를 테이스팅했는데.. 이게 무료다..... 포도밭 투어 빼고 시음만 하면 무료다.... 이게 왜 무료냐고 믿기지 않아 물었다. 그건 자신감이란다. 우리 와인 맛보면 안 사고는 못배길걸?
결국 와인 2병을 샀으니 그 말이 맞다. 무튼, 다 좋은데, 설명도 친절한데.. 아.. 잉글리...


알딸딸한 낮술로 기분 좋을 때, 더 좋아지는 마법의 장소. 바로 부근에 엄청난 사진 명소가 있다. 찍는 족족 화보라는 건 둘째 치고.. 밀밭에 부는 바람이 상쾌하다.. (라고 쓰지만, 이게 보리밭인지 밀밭인지 우리는 계속 떠들었다.. 결국 밀밭으로 정리) 사이프러스 나무가 원형을 이룬 곳인데, 부근이 더 멋있다.


딸기는 이 사진을 놓고..
드렁크 시스터즈.

음주 바이크 토스카나 여행.... 이라고 포스팅했다. 틀린 단어는 하나도 없다. 다만.. 음. 노코멘트.


친구와 인생샷 건졌다.


나도 친구의 인생샷을..


이 동네를 그러니까, 발도르차 평원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하다가,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기로 했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다. 그 햇빛과 바람, 길의 먼지까지 특별하다. 그리고 동네 곳곳이 다 그렇다.
와중에 특별한 한 곳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진짜 막시무스의 집.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참으로 처연하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 (나는 아니다) .. 현재 농가민박 아그리투리스모 테라필레 인데 홍보 사진은 오른쪽 끝. 첫째 둘째는 영화 장면.


밀밭이냐 보리밭이냐.. 수다 떨면서, 중간중간 사진 찍는데 집중. 자동차는 윗쪽에 세우고 꽤 걸었다. 오늘은 주로 차로 다녔는데도 16000보 걸었으니 꽤. 어느새 우리는 여기가 영화의 그 장소가 맞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농가민박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장소라는데 동의. 영화 속 막시우스가 걷는 그 길 뿐 아니라 양 옆의 황금들판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발도르차 평원을 넷이 걸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저녁은 어제 몬테풀치아노에서 산 햄과 살라미, 그리고 오늘 산 몬탈치노 와인. 숙소를 즐겨야지. 밥 먹고 우리는 각자 수다를 이어가며, 이렇게 정리도 하고.. 그런다. 오늘은 돌아다닌 곳이 많아서, 빨리 정리 올리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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