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미국에서 오래 산 소연은 영어로 말할 때 다른 사람이 된다. 일단 말이 많아진다. 스몰토크라 하나? 토스카나 농가민박의 안드레아가 워낙 친절하기도 했지만, 둘이 대화나누는 걸 보면 신났다. 거기 가봤냐, 어땠냐, 당신 덕에 뭐뭐뭐 너무 좋았는데, 그건 뭐냐, 아 그런가, 그래그래, 거긴 왜 좋은거냐. 너 그거 봤냐. 어쩌고 저쩌고. 소연은 더 많이 웃는다. 나는 영어 대화를 지켜보며 모나리자 미소만 짓는다. 한국어 쓰는 곳에선 나도 소연처럼 유쾌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사소한 일에 좀 더 편해져도 좋겠다.
안드레아는 토스카나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 맨날 비슷한 조언을 할텐데, 지치지 않고 여행자에게 공감해준다. 돌발변수에 유연한 해법을 내민다. 예의를 갖춘 농담도 잘한다. 숙소 리뷰에 온통 안드레아 칭찬 뿐이란다. 농가민박과 레스토랑을 관리하고, 여행자를 맞이하는 일 자체가 날마다 새로울리 없다. 진상 손님도 없을리 없다. 그래도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가 느껴진다. 한 페친이 내가 복많은 사람이라길래, 함께 복 나누자 했더니, (능동적으로) 복을 짓자고 했다. 안드레아가 복 짓는 사람이구나 싶다. 일로 만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 그건 사실 최고의 능력이지. 계산하면서 이 집의 화이트와인 두 병을 더 샀다. 꽤 괜찮은데 이집 레스토랑에선 14유로더니 그냥 사는 건 12유로. 몬테풀치아노, 몬탈치노 등 온통 레드와인 뿐이라 차갑게 먹는 화이트를 미리 챙기니 든든하다.
체크아웃을 하고, 안드레아 픽을 한군데 더 갔다. 몬테끼엘로 Cipressi di Monticchiello. 역시 사진으로 담기 어려운 풍광. 차로 다니며, 두 발로 걸으며, 발도르차 평원을 실컷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또 달랐다. 아침부터 빗방울 날리던 날, 먹빛 구름이 그림 같다. 딸기는 브뤼겔 작품 같다고 했다. 재미나게 설명 듣다가 비디오 촬영을 넘 늦게 시작했다. 딸기가 눈치 채고 입을 다물었다. (브뤼겔 봐도 잘 모르겠다...)
소연 영어도 왜 사연 없겠나. 미국 TA 시절 300명 대형 강의장에 처음 선 날, 순간 긴장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강의 후 교수는 친절하게 피드백을 별도로 받아줬고, 거의 대부분이 칭찬. 와중에 단 2명이 까칠한 평을 남겼다고 했다. 강의하려면 영어 좀 더 잘해야 한다고. 소연은 밤새 괴로워했는데.. 교수는 쿨하게 걔들 4학년이고 남자일거라 했고 실제 그랬단다. 어린 아시안 여성의 첫 영어 강의 추억. 298명의 칭찬 대신 2명의 삐딱한 반응에 상처받고 오래 기억하는게 우리다. 진빈은 TA 시절, “내 영어는 너희들보다 못하겠지만, historical thinking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고, 인기 좋았단다. 역사는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외우는게 아니라,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풀어가는 것이란 말을 적어둔다. 우리는 이 수다를 저 노래를 따라부르며 나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 BTS, Answer: Love Myself
끼안띠 지방으로 넘어가서 브롤리오 와이너리..인줄 알았더니 고성이다. Castello di Brolio. 연두색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올리브그린이라는 흐릿한 녹색을 이제 알게됐다. 깊숙이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들었는데 구경하고 나올 무렵엔 비온뒤 쨍한 하늘. 인당 6.5유로 와인 한잔 맛보는 건데 이런 성과 뷰 구경이 패키지라니. 절대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발도르차 황금들판에 취해있던 우리는 순식간에 맑고 투명한 토스카나의 하늘에, 푸른 포도밭에 반했다. 눈부셨다. 딱 한 잔 맛만 보고 간다.
다음 목적지는 시에나. 토스카나로 와서 다닌 곳이 모두 작은 마을 급이라면 이젠 도시. 역시 주차하고 도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온 뒤 하늘이 열일하기 시작했다. 그냥 하늘만 봐도 다르구나. 검색해서 찾은 평점 4.7 식당 Osteria degli Svitati 음식은 훌륭. 앞의 단체손님 탓인지 40분 기다린게 좀 아쉽지만. 멧돼지 트리빠(곱창스튜, 10유로)와 안초비 곁들인 치즈 요리(7.5)가 정말 맛있었다. 대구 요리와 Pici 파스타도 기본 이상. 와인 한 잔 곁들여 45.5 유로. 사실 시에나 도심에도 괜찮은 식당 많아보인다.
시에나 대성당..... 사실 좌절의 연속이지만, 됐다. 잘 봤다. 13세기 건축된 성당 자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다만 '천국의 문'porta_del_cielo 을 보고 싶었는데... 오후 3시쯤 표 줄을 섰더니.. 가장 빠른 시간이 6시란다... 아아. 이게 쉽게 볼 수 있는게 아니구나... 할 수 없지. 시에나를 오후 몇시간이 아니라 하루는 있어야 볼 수 있는 곳. 코로나 덕에 사전예약이 활성화됐다지만, 하여간에 참고.
천국의문 들어가는(이렇게 쓰니 무척 있어 보이네..) 20유로 티켓 대신 13유로를 샀다. 성당도 보고, 뮤지엄도 보고.. 성당 옥상에 올라가 시에나 전경을 보는 티켓... 성당은 멋있었는데.. 좌절의 연속. 도나텔로 작품이 있다는데, 그 사진이 앞에 있는데 끝내 못찾았다... (알고보니 돔 전체가 그의 작품. 세례자 조각상은 어디 임대 나간듯.. 없었다ㅠ)
무엇보다.. 옥상 전경... 기껏 계단 올라갔더니 줄이 길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물어봤더니 10분 당 14명 입장. 줄 끝에 있던 우리는 아마 40분 쯤 기다리라고.. 도저히 그 일정은 안됐다... 이것도 빨리 포기.
대리석 바닥이 어마어마했는데.. 함께 가지 않은 딸기가 뒤늦게 감탄하며 아쉬워했다. 무지 멋진데 사진 찍기 어려움.
일 캄포. 시에나의 광장이다.
예쁜 도시 맞다. 하늘은 계속 열일.
우리가 시에나 일정을 서두른 건 산 지미냐노 San Gimignano. 탑의 도시란다. 13세기엔 분명 전성기였다는데, 교황파와 신성로마 황제파로 나뉘어, 가문끼리 파벌끼리 권위의 상징인 탑 올리는데 열 올렸고.. 70여개 탑을 올렸다가 지금 남은게 12개? 13개? 하여간에 지들끼리 싸우다가 쇠락한 도시란다...역사는 그렇다치고.. 그로사탑, Torre Grossa 을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시라... 그냥 토스카나의 하늘과 평원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냥 혼이 나갈 만큼 멋있다. 다만... 계단은 가파르고.. 옥상에선 바람이 몹시 불어, 하마트면 '7년만의 외출' 찍을 뻔.. 원피스 자락 잡고 다니느라 힘들었....
산 지미냐노는 상점들이 무척 좋다. 세계 대회에서 1등 했다는 젤라또도 맛있고. 끼안띠 와인 미니 100ml 병도 예쁘고.. (750ml는 12유로)..
멧돼지 박제가 쫌 많이 거슬리지만.. 살루미 집도 장난 아님.. 우리는 보통 토스카나 햄은 100g 3.5유로인데 멧돼지 햄은 8유로... 14유로 어치 햄을 샀다.
그리고.. 오늘, 여행자의 안식을 주는 도시는 피렌체... 늦게 도착했지만, 살살 걸어나오다..(중간에 택시 타고)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아침에 비가 온 후, 시에나, 산지미냐노, 피렌체까지.. 오늘은 하늘이 다 했다. 야경까지 그렇네.
숙소로 오는 길은 걸어서... 베키오 다리를 바라보며 온갖 로망 실컷 수행.
에어비앤비로 고른 숙소는 진짜 훌륭훌륭. 두오모 등 도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네 명이 묵기에 정말 쾌적하다. 근데 지금껏 머문 숙소 중 가장 저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