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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11. 2022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미국사를 전공한 친구가 서양사 개론도 가르친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 미드 '미세스 아메리카'를 같이 볼 때, 미국 남부기가 등장하는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인권을 법으로 보호하면서 불거진 일들을 설명할 때 엄청 멋졌는데.. 미국사만 하는게 아니었다니. 서양사도 가르친다면 이번 여행 설명이 더 친절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툴툴댔더니, 전공은 미국사라며 단호하게 잘랐다. 미술사를 전공한 친구 역시 옛날옛적 일이라며 단호하게 모르는 척. 심지어 피렌체 오기 전에 피렌체에 관한 책 한권을 읽고 왔다면서! 또 한 친구는 human development? 그게 뭐니?? 하여간에 내가 이런 친구들과 여행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믿는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갈 때 마다 애타게 설명을 조르고 있다. 예습을 해왔다면 좋았겠지만, 다들 바쁘게 살다가 뭉쳤기 때문에 주로 복습중이다. 물론 슬쩍 한 마디 던지는게 차원이 다르다. 한 친구가 모르면 다른 친구가 안다. 집단지성은 훌륭하다.


피렌체에서는 일단 두오모에 가야한다. 두오모 티켓 구한답시고 스페인광장에서 난리친 끝에 공식 사이트에서 결제. 브루넬리스키 패쓰가 인당 30유로다. 463계단을 올라야 하는 돔, 414계단 지오토의 종탑, 산조반니 세례당, 두오모 박물관, 유적지 산타레파라타를 묶은 패키지다. 우리가 가장 잘한 건 9시로 예약한 것. 10분 전에 도착해서 여유있게 입장했다. 10시 이후엔 일대가 온통 긴 줄들이다. 무튼 피렌체의 두오모는 워낙 유명하니 설명 패쓰. 아름답다...

지오토의 종탑을 비롯한 피렌체 전경...

우리가 이날 가장 무리한 건, 돔에서 내려오자마자 지오토의 종탑에 오른 일이다. 이른 아침이라 줄이 없을 때 올라가자고 호기롭게 나섰으나,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온 우리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나이에 왜 그랬을까 한탄하며 등반. 무튼 두번째 오를 때는 다리 상태가 달랐다. 정말 좋은 건 우리의 몸은 정직하게 비슷하게 나이들고 있다. 무릎에 무리가 가는거 아니냐, 발바닥이 아프다, 작은 글씨가 안 보인다, 지도 글자는 왜 이렇게 작은거냐.. 이런 대사에 넷이 진심 공감한다. 같이 늙어가는 건 좋구나. 외롭지 않다. 두오모와 종탑에서 피렌체에 반하는 순간들이야... 설명 생략. 우리가 왜 끙끙대며 올라갔겠나. 이날 하루 오후 일정까지 합쳐서 총 63층을 올랐다고, 19km 2.8만보를 걸었다고 앱이 기록했다. 돔과 종탑만으로 50층 올랐다고 나왔다. 피렌체는 이렇게 미친 일정을 따라갈 도시다.

두오모의 천장화를 자세히 본 적 없는데.. 가장 윗부분은 입체감이 너무 뛰어나 밖으로 나온 다리가 부조 같아 보인다. 와중에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똥침 그림이 있었단 말인가? 신화에 이어 성경, 경전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예술이 가능했을까?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눈치보던 화가들이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다는 얘기를 오후에 들었는데.. '이야기'에 관심 많은 나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게 재미있다. 옛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그리던 방식도 재미있다.


두오모에서 나와 산조반니 세례당 앞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감탄하면서 유명해졌단다. 실제 거리에서 사람들이 보는 문은 복제품. 진짜는 박물관 안에 있다. 9년 전에는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재미있었는데, 이번엔 패쓰.


두오모 박물관에서 만난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막달레나'는 각별했다. 사실 충격받았다. 영혼이 나가버린듯한 표정의 조각을, 이렇게 현실적인 모습이 이 시대에도 있었던가. 마침 학생들 상대로 설명하는 분이 있었다. 영어라.. 난감했지만,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면의 dignity와 faith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설명. 꾸밈 없이 초췌한 겉모습도 이 상황에서 중요한거 아닌가? 도나텔로는 겉모습 신경쓰지 말고 내면 보라고 겉을 드러낸걸까? 영어가 짧아서 더 듣지 못했다. 무튼 놓칠 수 없는 작품.


산타레파라타는 메디치를 비롯해 상인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밀려났던, 두오모 아래 묻혀있던 옛 유적인데 뒤늦게 발굴된 곳이라는 딸기의 설명. 바닥 장식이 인상적이다.


박물관부터는 우리는 둘씩 나뉘어 다녔다. 이날 점심은 딸기가 내게 쐈다. 왜? 그냥 나를 좋아해서라고 해석하련다. 소의 고기를 팔고, 가죽을 파는 도시 피렌체의 스테이크야 워낙 유명하지만.. 최소 단위가 600g. 둘이서 그냥, 막.. 어휴. 맛있었다.


이날 문제는, 피렌체 책을 독파한 딸기가 가보고 싶은 리스트가 좀 길었던 것. 일단 산 로렌초 성당. 화려한 장식으로 부유한 도시 피렌체를 드러내던 다른 명소와 달리 투박하고 단아하다. 제단도 그렇다. 메디치 동네에서?

로렌초 성당 아래에는 도나텔로의 묘. 로렌초 메디치와 도나텔로가 워낙 각별했다는 딸기 설명. 미켈란젤로의 스승이던 도나텔로는 성격이 좋았나?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사람들과도, 교황과도 골고루 못 지냈던데.. 뭐, 천재들의 특권일수도.


메디치 가문의 회화가 대부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면, 조각이 바르젤로 미술관에 있다면, 책 1만권이 여기 도서관에 있다는데.. 시간 없어서 패쓰.. 유료가 아니었다면 3분이라도 보고 싶었는데ㅠ 산 로렌초 성당은 뒷마당도 단정하다.  


다음 목적지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꼭 봐야 한다는 딸기의 뜻에 따라 산마르코 수도원. 근데 휴관. 내일 아침 오면 표를 살수 있다고 했다. 바로 인근에 우리가 인터넷에서 표를 못구해 포기했던 아카데미아 미술관인데, 엄청난 줄을 구경하던 와중에 다음날 오후 표를 구했다. 내일도 즐겁겠네..
나와서 걷다보니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피렌체 중앙시장. 이 모든게 다 걸어서 10분 이내다...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반으로 후려치는 흥정을 잊지 마시길. 왜 상인들이 다들 방글라데시 출신인지..진짜 좋은 가죽제품인데 나름 저렴한건 제3세계 노동력을 싸게 이용한 덕분일까.

와. 진짜 시간 없어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와중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들린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은 정면에서 사진만 찍고, 그 유명한 약국으로. 성당 바라보고 왼쪽 골목.. 찾기 힘들었는데, 무슨 박물관 풍의 약국이란 말인가. 과거 수녀님들이 만들어온 고퀄 제품들이 이제는 고가 화장품 가게 같다. 이른바 고현정 수분크림이 70유로. 양가 어머님에게 드리려고 2개만 구입..들어가서 나오는데 5분. 이날 바빴다니까..ㅠ


오후 3시 직전에 리푸블리카 광장에 모여서 우피치 미술관 투어. 가이드를 맡아주신 마이리얼트립 마리 쌤은 진짜 피렌체의 역사와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쇄, 중세를 끝내고 인간 중심 르네상스로 들어가는 과정 등을 종횡무진 엮어서 설명했다. 너무 만족했던 가이드. 평소 미술관에 관심 덜하던 친구가 홀딱 빠져들었다.


이거 이렇게 설명해도 되나 싶은데.. 하여간에 수태고지 장면에서 이게 뭔 소리냐, 싶게 삐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마리아가 등장. 시모네 마르티니. 그 이전 이콘화는 표정도 구도도 딱 정해진대로만 하던 시절에서 드디어.


성모 마리아는 표정도 없어야 했고, 몸의 굴곡도 없어야 했고, 동작도 정해져있고, 예수님은 어른의 얼굴을 한 작은 사람이었고... 그 시대를 지나서 수도사 필리포 리피는 화가로 활동하다가 루크레치아 수녀를 만나 둘이 사랑의 도피? 결혼하는 당대의 스캔들을 일으켰고.. 성모마리아를 루크레치아의 아름다움을 담아 그렸다고. 진짜 인간의 얼굴을 한 성모마리아의 등장에 당대가 난리난 건 당연.. 그를 품은 건 메디치 가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메디치의 후원 아래, 기독교와 신화를 절묘하게 균형 맞추며 중세에서 벗어나는 그 시기의 이야기, 역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봄의 이야기도... (엄청 재미있지만, 일단 이 글 쓰고 자야하니까 패쓰ㅠㅠ. 나중에 보완)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천년의 중세를 끝장낸 인물로 단테의 역할에 빠져들었던 시절, 그러니까 9년전 그 사연을 남겼었는데...

<피렌체>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그 남자의 도시 
역시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는 그 아우라가 남다르다.


이하 그림 설명 패쓰. 나중에 보완해야지. 까먹기 전에 해야할텐데.


메디치 가문 사람들... 이거야말로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과 암투, 막장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얘기...


두 그림은... 정말 사연 나중에 기록. 귀족들이 누드화를 몰래 몰래 고가에 사들였던 사연은 내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쉬가 유디뜨 일화를 이용해 자신을 강간한 이를 단죄하는 그림... 을 실물로 영접하다니...


피렌체의 저녁... 훌륭하고 훌륭했다. 내장 스튜인 트리빠는 정말 내 취향. 멧돼지 라구도 좋다. 요리 넷에 와인까지 해도 100유로 안된다. 평점 4.8의  Osteria Antica Casa Torre. 서비스도 좋은데 야외 테이블 강추.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피곤한 하루였지만.. 베키오 다리를 지나 아르노 강가에서 한 잔 하는 작당은 도무지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와인잔까지 챙겨나왔다. 이날 일정이 넘 빡빡했던 탓에 내 기록은 부실하지만.. 이 시간이 얼마나 평화롭고 유쾌했을지, 굳이 설명 않는다.


강변 나가는 길에 만난 전통의상 퍼레이드는 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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