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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16. 2022

<그랜드스탠딩> 도덕적 허세, 문제는 맞는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자기과시를 위해 도덕적인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 이게 그랜드스탠딩이다.

부제는 "도덕적 허세는 어떻게 올바름을 오용하는가"..


"암에나 걸리지 그래", "당신은 지금 살해 협박을 받아 마땅해"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도 될까? 그런데 미국 페미니스트 미디어 논평가가 실제 받은 트윗들이다.
폭력과 협박, 자살유도, 살해협박 등이 상대는 옳지 않고, 나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올바른 우리는 해도 된다는 착각이지만 좋아요, 리트윗이 쉽게 붙는다. 분노를 표출하며 죄책감을 덜어내기도 한다. 

도덕적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하면 다른 사람을 해친다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특히 도덕적 과시나 허세, 굳이 도덕으로 열내지 않아도 되는걸 난리치는게 문제다. 


그랜드스탠더는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보이길 열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닫고 (정확하게) 본 사안들을 도덕적 문제로 몹시 규정하고 싶어한다. 새로운 도덕적 비판을 찾아낼(아니면 발명할) 동기는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날조를 한다. (99쪽)


누군가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도덕적 견해와 가치관을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랜드스탠더는 대체로 자신의 의견이 전적으로 틀림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106쪽)


미국 사례로는 오바마케어 중단하라는 공화당 의원들이 그랜드스탠딩하고 있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비판했고, 트럼프도 후보 시절 노동자 지지층에 대한 호소에 대해 가짜 애국주의 그랜드스탠딩이라고 비난받았다. 국내 사례로는 마침 이날 핫했던 주성하 기자 페북 글 떠올랐다. 어떻게 감히, 탈북자를 북으로 보낼 수 있느냐, (위장) 탈북자를 남에서 받을 수 있느냐. 어떻게 저따위 말을 할 수 있느냐. 한마디로 왜 저러느냐.. 쟤는 나쁘고, 우리는 옳다는 종류의 이야기 중 일부가 그랜드스탠딩이다. 다는 아니다. 


정의 존엄 권리 평등 명예 전통 신념 가족과 같은 성스러운 단어들은 자신의 저급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행동을 영웅적이고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마법처럼 둔갑시킨다.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잔인해지고, 마음 맞는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길 원하는가? 자신의 행동을 하늘 높이 떠 있는 도덕적 언어로 포장해보라. '와! 용감하고 존경스럽고,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군!' (25쪽)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게 당위라면 모든 종류의 도덕적 이야기가 그것을 돕지 않는다. 오용될 수 있다. 임신중지는 옳지 않으니 막아야 한다, 방금 보고 온 영화 '엘비스'에 나오듯 흑인들의 저질 문화가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한다,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더럽혀진 여자는 죽여야 한다...다 도덕을 앞세운다. 
어떤 종류의 도덕은 진영 결집이 가장 큰 목적 아닌가 생각했다. 임신중지가 50여년 만에 여성의 기본권을 후퇴시킬 만큼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중요한 이슈인지, 다른 모든 이슈보다 앞서는건지 가끔 궁금했다. 단순한 논리로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렸으니,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는 종류의 선동 아니던가. 그래서 더 나쁜데, 그게 다 도덕적 과시, 그랜드스탠딩의 해악이구나.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시도가 어째서 진실로 이어질 확률이 없는지를 살폈다. “군중은 과도한 감정에서만 감명을 받는다… 과장하기, (기존 것을 그냥) 긍정하기, 반복에 기대기, 어떤 것도 추론을 통해 입증하지 않기가 공적인 모임에 나오는 연사들에게 잘 알려진 주장하기의 방법들이다”  (123쪽)


두 저자는 미국의 철학교수다. 사람들이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줄 착각하는 여러 연구 사례를 제시한다. 실제로는 우리 모두 평균치보다 더 낫다고 하기 어렵다고. 


#트레바리 #디지털탐구생활 7월 책. 여행중 책 소개만으로 후보작 세 권을 골랐는데 멤버들이 투표했다. (나만 낚인게 아녔..)  문제의식은 좋은 책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말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트레바리 토론 규칙처럼, 표현의 자유가 무한하지 않다는 시대적 고민에 어울린다.


책의 문제는 바로 그 그랜드스탠딩의 정의가 명료하지 않다는 한계, 그랜드스탠딩과 선한 소신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랜드스탠딩에는 대응해줘야 한다는 주장. 그 방법이 좋아요를 하지 않는등 무시하거나 지적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게 전부? 아니 '좋아요' 안해도 자극적 언사는 늘 받아쓰는 미디어가 확산시키는데? 무엇보다 도덕적 과시, 허세를 비난하는 건, PC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니들만 옳아? 라고 마땅히 존중해야 할 것도 공격할 빌미가 되지 않을까? 
저자들이 끊임없이 자기들은 그랜드스탠딩 설명으로 그랜드스탠딩 하는게 아니라며 끝내 동의 않는다면 독자 탓이라 셀프방어를 반복하는 것도 딱하다. 온갖 연구자료에 더해 니체까지 인용해서 주장을 펴는데, 이건 지적 허세로 도덕적 허세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선용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했다. 두 저자가 백인 남자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딱 맞췄다. 음... 
이 중요한 이야기를 쓸려면 잘 썼어야 했다는 어느 님 주장에 우린 다들 공감했다. 


번역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면 토론이 뜨거워진다. 할 말은 많고, 책의 한계를 직접 뛰어넘어야 하니까. 그래서 좋았다. 대표적 그랜드스탠더로 ㅈㅈㄱ 언급된 것도 흥미로웠고. 도덕적 과시에 대한 해법으로 미적, 경제적 접근을 말한 찬우님 분석도 기록해둔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더 멋있는 것, 후진 것으로 과시와 허세를 눌러줄 수 있을까? 경제적 대응은 쉽지 않지만 허세나 과시형 분노가 아니라 진짜 좋은 이야기에 보상하려 했던 얼룩소 모델도 그런 맥락이지. 


어쨌든 그랜드스탠더는 명성과 지배력을 목표로 한다. 지배를 위해 타인을 비방한다. 반면, 탁월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있는 목표, 즉 인간이 이뤄야 할 선한 목표에 쏟는다. 탁월한 사람은 도덕적 말을 포함해 도덕성을 자신의 지배력에의 의지를 만족시킬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다...그리하여 탁월한 사람은 그랜드스탠딩을 하지 않는다. (205쪽)  우리 기왕이면,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도덕적으로 다들 평균 이상 가기 어렵다지만, 인간이란 모름지기.... 


 <그랜드스탠딩> 내 발제문이다. 
 
 1. 겪어봤나요?  
 - 공적 담론에 담긴 도덕적 분노에 공감한 경험이 있나요? 이제 보니 그랜드스탠딩 같아요?
 - 정치인이나 연예인, 공인 중 그랜드스탠더로 떠오르는 이가 있나요?
 - 그랜드스탠딩, 도덕적 과시와 소신발언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내 안의 도덕적 허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기회주의자, 위선자와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2. 그래서요?  
 - 선동에 따른 정치적 양극화가 그랜드스탠딩을 경계하면 줄어들까요?
 - 칭찬도 비난도 신중하게 하는 방향에 공감하세요? 아니라면 뭐가 가능할까요?
 - 온라인이라서 더 문제가 되나요? 인정욕구가 다를까요? 좋아요의 이익과 해악을 저울질할 때 개선 방안이 있을까요?
 - 혐오와 차별, 폭력적 표현을 줄이기 위해, 규범을 바꾼다? 그랜드스탠딩 관점 혹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하면 좋죠?
 
 3. 번외
 - 이 번역은 요렇게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표현이 혹 있으세요?
 - 책이 기대와 달랐던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이 주제로 다르게 풀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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