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편지를 보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했다.
”네 아버진 바람을 피웠어. 남자들이랑”
겉으로 보면 이상적인 남편이자 완벽한 아버지였는데… 십대 소년들과 섹스를? 우리 가족은 완전 엉터리였다는 이 자전적 고백은 그래픽노블로 출판되자마자 2006년 타임지 선정 10권의 책 중 하나로 꼽혔고, NYT 등 모든 언론이 난리쳤으며 결국 뮤지컬 <펀 홈>으로 만들어져 토니상 5개 부문 수상으로 이어졌다. 진짜로 여자가 되고 싶었던 아빠와 남자가 되고 싶었던 딸. 가족 희비극(A Family Tragicimic)이라는 부제 답게 유머를 장착한채 삶과 죽음, 사랑, 예술과 문학을 조화롭게 펼쳤다…고 밖에 못하겠다. 어마어마했다.
저자는 엘리슨 벡델. 작가로, 만화가로 대단한 분이라지만 난 ‘벡델 테스트'로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아주 간단하게 영화의 젠더 감수성, 성평등 수준을 확인하는데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이다. 온갖 흥행작 중 이 테스트 통과한 영화가 많지 않았다나. 1983년부터 25년에 걸쳐 연재했다는 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비언들, Dykes to Watch Out For>을 통해 제안했단다.
’펀 홈'의 펀은 Fun 이 아니라 Funeral 의 줄임말. 가업이 장례업이었다. 문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고교 영어교사이자 장의사였다. 조금 특이한 아버지였고, 44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엘리슨은 아버지의 수상한 죽음을 추적하면서 평생 자신을 숨긴 게이 아버지 브루스 벡델과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자신의 성장담을 엮었다. 아버지와 딸은 성 정체성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사유로도 이어진다. ”아버지가 버텨 온 거짓의 끝이 내 진실의 시작"이라는 딸의 기록이 그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이유다.
아버지가 밑줄 쳐놓은 책들을 살피며 딸은 탐색한다. 카뮈의 <행복한 죽음>, <시시포스 신화>, 자살이 비논리적이라는 카뮈의 결론을 아버지는 몰랐을까? 교통사고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죽음이라 했던 카뮈는 1960년 그의 스포츠카가 나무를 들이받아 죽었다. 죽음을 전혀 모른다는 듯 살았던 아버지는 장의사였다. 스콧 피츠제럴드 <낙원의 이쪽>에 푹 빠졌던 아버지는 “그 기묘한 정서적 파탄이" 자신을 닮았다고 했다. 피츠제럴드는 44살에 죽었다. 아버지도 같은 나이에 죽었다. 죽은 날짜도 피츠제럴드와 3일 차이다.
동성애자였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도 계속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도치(inverts)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는데, (도치.. 뭔가 번역이…) 저자는 말한다. 아버지와 자신은 서로가 서로의 도치였다고. 자신이 아버지의 남자답지 않은 무언가를 메우려 했다면, 아버지는 자신을 통해 여성스러운 뭔가를 표출하려 했다고. 서로가 목적이 엇갈린 전쟁이었고, 당연히 끝없이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요즘 패널로 즐겁게 참여하는 팟캐스트 매거진 김혜리 기자의 <조용한 생활> 6월호 '책 읽는 의자' 코너에서 이 책을 다뤘다. 요건 좀 짧다. 29분27초.
https://podbbang.page.link/fWKkTW3QuJwiATL5A
함께 다룬 책은 <태어난게 범죄>
https://brunch.co.kr/@manya/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