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Aug 16. 2022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덕분에 여행이

남자들, 특히 동료 아재 중에 요리하던 이가 거의 없던 십수년 전 그의 집에 초대받았다. 특이하게도? 그는 파스타를 했다. 아마추어의 솜씨는 넘어섰더라.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결국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은 놀랍지 않았다. 20여년 글로 먹고 살다가 요리사가 된 그가 언제고 책을 낼거라 기대한 것도 당연하다.
권은중님의 요리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과 달리 다른 일에 몰입했던 21년엔 이 책에 눈길 줄 겨를이 없었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동반책으로 일찌감치 골랐고, 펼치는걸 참았다. 덕분에 이탈리아 미식기행까진 아니더라도 훨씬 즐거웠던 건 당연하지 않나? 볼로냐는 계획에 없었지만 이탈리아 음식 얘기다. 모든 건 아는 만큼 더 재미있거늘. 이야기가 풍부해지면, 보는게 달라진다. 가는 비행기에서 펼쳤다.

파스타가 뭐길래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존심을 걸었나보다. 예컨대 북부의 토마토 고기 소스인 라구 소스를 남부 스파게티 면에 버무려주면 절대 안된다고. 쫄면으로 만든 평냉이라나. 그러나 파스타의 기원은 아랍이다. 11세기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를 거쳐 들어왔다. 치즈도 포도주도 몽땅 중동이 기원이다. 1570년 출간된 요리책에 따르면 "질 좋은 육수에 파스타를 삶아서 치즈와 계피, 설탕, 정향 등의 향신료를 뿌려먹는다"고. 마치 디저트 같다는 그의 평에 동의한다. 이후 화이트소스(베샤멜소스)에 비벼먹던 파스타가 붉어지는데 오래 걸렸다. 토마토소스 요리법은 1778년에야 등장했고, 그래봐야 양념. 파스타와 함께 먹게 된 건 다시 100년이 지난 19세기 일이란다. 20세기 초까지 파스타는 주로 가난한 이들이 삶은 면을 치즈에 비벼 허겁지겁 손으로 먹던 음식이다. 고향을 떠나 20세기초까지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는 500만 명이 넘는데 80%는 가난했던 남부 사람들. 스파게티와 피자가 이탈리아 음식을 대표하게 된 배경이다.

생면, 건면 역사와 배경도 재미나지만 무튼 볼로냐는 생면 탈리아텔레의 고장. 그리고 토르텔리니의 성지란다. 이탈리아 만두 라비올리 중 네모나게 만드는 북부식이 토르텔리고 그 중 작은게 토르텔리니.(메뉴 볼 때 정말 도움됐다ㅎ) 저자는 해외여행 필수품이 감칠맛을 내주는 말린 다시마라며,한국식 국물이 간절할 때 다시마와 파를 넣고 간단히 계란탕을 끓였고, 다시마에 양파와 당근, 샐러리로 채수를 낸뒤 토르텔리니를 넣으면 만둣국... 이거 꿀팁일세..

살루메에 반하고


이탈리아 여행 내내 파스타나 피자, 고기 요리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면 저녁은 주로 생햄(프로슈토) 등 살루메(소금에 절인 육류), 치즈, 올리브를 빵에 곁들이거나 샐러드로 만들어 숙소에서 먹었다. 매끼 질리지 않고 좋았던게 고작 몇 유로 밖에 안하는데 엄청나게 훌륭했던 살루메..  돼지 뒷다리를 소금, 바람, 시간으로 만드는 햄의 종류가 몹시 다양했고, 어느걸 주문해도 실패하지 않았다. 더 진하고 고소한 멧돼지 햄 등. 알고보면, 고대 에트루리아인이 세운 도시 볼로냐의 경우, 켈트족 목축 기술에 게르만족 유목 문화, 롬바르디아인의 돼지 사육 지식으로 살루메를 만들어냈다니.. 2000년 무렵 슬로우푸드 운동의 발원지로 뉴스에서 봤던 오르비에또를 비롯해 토스카나 도시들에서 특히 살루메가 좋았다.. 아아. 정말 좋았다.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 저녁 밥상
멀리 잘 안보이는데 더듬더듬 읽어서 바로 썰어주는 살루메를 사곤 했다. 얼마나 즐거운지.
뒷다리 살루메 통으로 사가는 이는 어떤 분일까


치즈를 즐기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하다보면 정말 아는 만큼 달라진다. 일단 치즈의 맛이 크게 여덟가지, 과일-채소, 우유-꿀-꽃, 동물-토스팅, 향신료-기타 축으로 나뉜다는 것도 신기하고, 채소 부문에서 건초향과 생풀을 베고 난 뒤의 향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저자의 고백에 맞장구치게 된다. 그게 대체 뭐람. 그래도 신기하잖아!


가장 비싼 치즈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발사믹 식초도 볼로냐 혹은 이웃 모데나 식품이라는데, 이탈리아 사람들 부심 가질만 하다. (딱 한 병 사온 화이트발사믹을 마침 생일 지난 K에게 줬다. 더 사왔어야..살루메는 못사와도 병인데..병이라서..ㅠ) 파르미지아노는 뇌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신흥 종교인 성공회를 만들어 가톨릭에서 탈퇴하려는 영국 왕 헨리8세에게 파르미지아노 치즈 100덩어리를 선물.. 하고도 결국 효과는 없었네.. 책에 나오는 치즈 만드는 모습의 설명도 어디가서 못들어볼 얘기.


"우리나라 절의 스님이나 양반집 종부가 만드는 된장과 간장이 1인극이라면, 이탈리아 치즈는 오페라처럼 종합 예술"이라며 썰을 푸는데... 일단 무대부터 압도적이라고. 치즈를 만드는 깊이 1m가 넘는 칼다야라는 구리 수조에 비가열 우유를 저온살균하고, 우유를 굳게 하는 효소인 레닛을 넣어 45kg 짜리 큰 북 모양 치즈를 만든 뒤 다시 3m 깊이의 소금물 수조로.. 한달 후 건져내어 10m 높이의 지붕 높은 숙성실로..  10세기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에서 만들던 방식이라는데, 책에 삽입된 사진에 괜히 감동하고.... 파스타에 뿌려먹는 것은 부드러운 1년산, 샐러드 등 치즈 맛을 입히는 요리에는 2년산, 와인 안주로는 3년산 치즈를 쓰는 것이 좋다는데, 이건 뭐 잘 모르지만 그러려니 넘어간다. 치즈 맛을 구별하기는 커녕, 그저 와 이번엔 또 맛이 다르네 하면서 넘어가는 정도. 더 공부할 의욕까진 안 생겼다. 햄과 치즈를 곁들여 날마다 디오니소스를 경배하는 와중에 뭘..

슬로우푸드, 저 치즈들.. 하나하나 맛보려면 장기 체류해야...


와인을 마시며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술도 이 책 덕분에 나는 람브루스코. 볼로냐의 와인이란다. 그 맛을 아는 연은 비추했고, 친구들도 맛보더니 다들 거부ㅠ 도수가 높지 않고 단맛 나는 탄산음료 느낌이라 무척 독특한 건 맞다. 가장 비싼 것도 10유로 대의 저렴한 종류다. 하지만 저자는 "피에몬테의 네비올로가 혀로, 시칠리아의 에트나 로쏘가 마음으로 마시는 와인이라면 람브루스코는 머리로 마셔야 하는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포도주가 비싸게 팔리니 곡식 대신 포도만 재배하다 굶주린 대중의 분노를 어찌하지 못한 로마의 멸망 얘기에 더해, 값싸게 서민들을 달래준 이 술을 어찌 그냥 넘기겠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와인은 반드시 물을 섞어먹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물 섞은 맛이긴 하지만서도... 무튼 알고 마시니 괜히 달랐던 람브루스코.

이탈리아 와인이 다른 나라와 다른 이유도 내 취향의 서사다. 이탈리아 농민이 보유한 와이너리는 평균 2헥타르. 프랑스(11헥타르), 미국(27헥타르)보다 적다. 와인 연구 개발은 커녕, 독자적 마케팅도 어렵다. 이탈리아 와인을 살린 열쇠는 협동조합. 조합원이 된 농민은 단순히 포도나 와인을 거대 유통업자나 주류 제조사에게 넘기는 가난한 생산자가 아니라 조합의 결정에 1인1표를 행사하는 경영자가 됐다고.


볼로냐 볼로냐 볼로냐


이슬람의 와인으로 불리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은 커피를 즐기면서 9세기에 이미 종교와 철학을 분리하는 냉철함을 보였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여 신학과 철학의 진리가 각각의 영역임을 논증했다. 이슬람에서 철학의 독립은 사회과학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정치가 종교로부터 독립하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 이런 유연한 사고방식 덕분에 아랍에서는 수학, 과학, 의학 등 새로운 학문이 쏟아져 나왔다. (202)


읽다보면, 이탈리아의 좋은 건 다 이슬람 아랍 세계에서 왔네? 아랍은 대체 왜 무너진거지? 새삼스럽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권력 다툼 와중에 시민계급은 양쪽의 눈을 피해 성장했는데, 이탈리아 도시들은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슬람 세계와의 교역을 독점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쌓았다고 한다. 선진문물을 빨리 들여와서 부강해졌다는 건데, 대체 아랍은...

무튼, 이들 도시는 공화정을 시도했고, 법이 필요했고.. 볼로냐의 이르네리우스가 주석을 단 로마법의 해석에 많은 유럽 젊은이가 법학을 배우기 위해 볼로냐로 몰려든게, 무려 1088년 볼로냐에 대학이 생긴 계기란다. 그 시절 대학이란건 교수와 학생이 숙식 같이하면서 공부하는 기숙 학원 형태. 볼로냐 대학이 모든 대학의 모교라 불리는 까닭은 학생과 교수의 자발적 공동체였다는 독특함 덕분. 학생이 방을 구하고 돈을 갹출해 명망 있는 학자를 불러와서 수업료를 지불하며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볼로냐 대학은 왕이나 주교, 혹은 선지적 교육자 어느 한 사람의 명으로 세워진 게 아니라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학생조합을 모태로 만들어졌다니. 그 시절에! 이 동네는 기존 질서에 도전적이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던게 분명하긴 하다. 저자 말대로 "교황과 황제에 맞서고, 대학을 세우고,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고, 중소상인과 농업인을 보호하는 협동조합과 공동체를 만든 게 정말 우연일까?" 볼로냐는 대학의 기원인 동시에 중세의 암흑시기, 13세기에 이미 여성 박사와 여성 교수를 배출했다. 1236년 볼로냐 법대를 졸업하고 처음엔 자기 집에서 강의하다가 결국 볼로냐 대학이 교수로 모신 베티시아 고차디니 라는 여성의 이름을 기록해둔다.


정말 야금야금 여행 내내 즐기다가, 아테네로 떠나기 직전 베네치아 공항에서 길고 긴 줄에 선채로 완독했다. 이탈리아 여행의 고마운 동반자였다. 뭐, 여행을 가지 않아도 글이 남기는 상상과 여운만으로 즐거울거란 거 보증해본다. 이탈리아 마냐밥상이 벌써 그립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중국이 주도하는 희귀금속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