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풍요가 치욕이 된 땅이어요. 1910년대 조선 전체에서 쌀 1040만석을 수확해 7.9%가 일본으로 갔는데 1931년에는 1351만석 중 55%를 보냈어요...”
오곡백과 익어가는 계절에 군산의 황금들녁을 보러왔지만, 지역의 역사와 음식을 연구해 이야기를 발굴하는 빅팜컴퍼니 안은금주님과 함께 하니, 모든게 달라졌다.
익산역에서 조금 가면 지금은 멈춘 임피역.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군산선을 따라 1912년 처음 세워졌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도로가 1908년 처음 뚫린 뒤 수탈용 신작로가 된 것과 같은 배경이다. 전군도로는 이후 조선 최초의 시멘트도로가 됐다. 덕분에? 군산 익산 김제 3대 곡창을 갖추고도 조선인들은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겨야했다. 임피역 미곡창고로 쌀가마니를 나르는 노동자들은 늘 배를 곯았다.
군산에는 3대 이상 살아온 이가 많지 않단다. 그 시절 농사를 짓고 쌀을 실어나르는 일자리를 위해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몰려왔다. 호남평야가 시작되는 진포(군산의 옛 이름)는 수탈을 위해 항구로 개발됐다. 익산 군산 김제가 탑3 곡창이라는데, 당시 조선인들에겐 남의 얘기였다.
일본인들은 고리대금업으로 땅을 빼앗고 자작농을 소작농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의 일본인 농장 수천 개 중 전북에만 350개. 군산 구마모토 농장의 경우, 논 3000정보에서 소작농 3000가구, 2만 명이 생계를 이어갔다.
쌀의 고장 군산에서 짬뽕과 빵만 먹고 가면 안된다고 했다. 해방 이후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의 출퇴근 열차, 새벽항에 나가던 생선장수들, 통학하는 학생들의 열차는 2008년 멈췄다. 소풍 온 아이들이 임피역 옆 정자에서 놀고 있는 가을이다. #마냐여행 #임피역수탈사 #군산근대사는_아프다
일제 식민지 시절 2만명을 거느렸던 군산 구마모토 농장에서는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나갔다. 노동생산성을 위해서라도 의사가 필요했다. 세브란스 의전원 출신 이영춘 박사가 군산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이다. 주로 일본에서 지내던 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자신의 군산 별장을 이 박사에게 내줬다.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에게 평생을 바친 그는 치료보다 예방에도 힘을 쓰면서 양호실이란 걸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농민 의료보험도 만든 한국의 슈바이처다. 왜 이런 분을 몰랐지? ‘이영춘 가옥’은 처음 들었는데, 설명을 볼수록 놀랍다.
조선인 최초의 의학박사면 돈과 명예를 챙겼어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그는 조선의 농민들 옆을 지켰다. 한달 중 열흘은 진료소를 지켰지만 20일은 인근 마을로 회진을 다녔다. 밤 11~12시까지 동네 마다 환자가 줄을 섰다. 하루 100명씩 진료하면서도 신명나게 일했던 그는 해방 이후 백방으로 자금을 구해 종합병원과 보건소를 세웠다. 그가 설립한 간호대학은 아직 남아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농부인 시절, 그들의 건강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 했던 그는 농촌위생과 보건의 체계를 잡았다. 당시 3대 질병이 기생충, 결핵, 성병이었다나.. 그가 보통학교에 양호실이란 걸 만든건 1938년의 일이다.
(구마모토가) 백두산 낙엽송을 썼다는 이영춘 가옥 외벽은 단아하다. 벽난로까지 설치한 거실, 다다미방 등 그의 거처는 문화유산으로도 인상적이다. 안은금주님은 군산 구도심의 히로스가옥은 당대 일본 지주들의 부유함만 짐작하게 할 뿐이지만, 이영춘 가옥은 당대 거인의 삶을 기리는 공간이라 했다. 씨없는 수박을 만든 분 만큼이나 위인전에서 들어봤을 법 한데 낯설다. 그가 보건소를 세운 개정면 영유야 사망률은 당시 미국과 일본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단순 계산하면 해마다 12만~20만명을 더 살린 셈이라고. 자식들에게 번듯한 부를 남기지 않았지만, 이런 어른이 계셨구나, 뭉클하다.
구도심 일본 지주의 가옥 사진은 8, 9, 10. 사찰에서 석탑이나 조각을 가져와 마당을 꾸미는게 유행이었다는데, 이 집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수영장도 있다. 부자가 부를 누리는 걸 뭐라 할 일 아니지만, 대다수 소작농들이 굶주리던 군산‘현’에 화려한 대저택을 지었던 일본인 지주들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영춘 가옥과 감히 비교할 이유는 없다.
로컬에서 음식, 농업, 환경, 역사, 사람을 연결해 이야기를 만드는 이와 함께 하면, 여행이 완전 달라진다.
군산 점심은 #장국명가. 간장게장이 짜지 않으며 슴슴한데 녹진하다. 묵은지는 아삭 식감을 유지하고, 고사리 고구마줄기 궁채 나물, 된장찌개까지 밥도둑. 지역 쌀로 지은 솥밥은 쌀알이 반짝반짝 달콤하니 밥을 남길 수가 없다. 박대구이는 신선하고 고소하다.
점심 직전 들린 #별뜰농원 은 숲속 휴식이 가능한 공간. 미숫가루를 담아준 컵은 커피콩껍질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이번 여행 컨셉은 지구를 위해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체험농장과 만나는 것. 프라이탁 제품보다 간지나는 에코백은 쌀 포대를 뒤집어 만든 것으로 설탕 적게 쓴 콩포트를 담아서 나왔다.
오후에 들린 #하늘정원 식물집사 체험에 조금 긴장했던 마음이 한없이 나풀댔다. 친절한 설명에 따라 커피찌꺼기로 만들어 커피향 나는 작은 화분에 망을 깔고, 상토 흙과 함께 바나나크로톤이란 작은 식물을 넣고, 바이오칩과 흙으로 덮는 일에, 똥손인 나는 삐질댔다. 분재를 닮은 예쁜 화분을 건지긴 했지만, 식물과 안 친한 나로서는 난생 첨 해보는 일이라.. 무튼 오늘 일정은 군산 평야의 노을로 끝. 더 뭘 바래.
40년 자리를 지킨 선명문구센터에서 아폴로와 쫀드기 맛보기.
구도심 골목 산책. 초원사진관
큐레이션 서점 마리서사
인상적인 목욕탕 굴뚝. 그리고 쌀 수탈을 위해 군산항 바로 앞에 있던 미곡창고가 이제 멋진 카페…
그리고.. 두둥. 군산의 재발견이랄 것도 없다. 작년 11월 먹방여행 반나절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방문. 그러나 오늘 해질 무렵 군산 옥녀교차로 인근 들판에서 만난 풍경은 이 땅의 재발견 마냥 경이로웠다.
토스카나 황금밀밭의 느낌을 군산 어느 논두렁에서 다시 만나다니. 편백나무가 마치 토스카나 사이프러스 마냥 우거져 작은 숲을 이뤘다. 수확을 앞둔 벼는 바람에 흔들리며 속세를 잊도록 마법을 부렸다. 해가 떨어지면서 시시각각 하늘과 구름의 색이 변하는데, 표현력 짧은 나는 계속 “미쳤다”고만 외쳤다. 내가 밟아보지 못한 이 땅의 곳곳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만으로 울렁거렸다. 비옥한 땅이 이모작을 허용한 덕분에 봄에는 청보리 밭의 초록들판에서 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녁은 바닷가의 50년 된 수협 창고를 힙한 수제맥주 플랫폼으로 만든 #째보선창비어포트. 제이홉 얼굴이 그려진 건물도 힙하고, 내부도 멋진데 핵심은 맥주다.
군산 평야에서 재배한 보리로, 군산의 야심작 맥아 발효 탱크 설비를 활용한다. 국내 보통 맥주는 수입 맥아를 쓰지만 여기는 직접 맥아를 발효시킨다. 더 생생한 맛은 둘째치고, 지역에서 모든걸 해결하면 탄소발자국도 줄인다. 전국의 수제 맥주 브루어리에 군산의 맥아를 공급하는 날이 올까? 전국 각지 어떤 빵집들이 이성당 팥을 쓰는 것처럼 군산이 키워낸 식재료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반갑고 고맙다. 코로나 탓에 제대로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모양인데 알고보면 버거 맛집, 바로 튀긴 감자칩 맛집, 토마토떡볶이 맛집이다. #마냐여행 #마냐먹방
이성당 건너편 게스트하우스 #다호 낮이나 밤이나 예쁜 모습. 여행의 만족도는 숙소가 좌우한다는 연의 말이 떠올랐다. #마냐여행
이튿날..
한국에 이런 카페도 있다고, 바로 군산에 있다고 떠들고 싶다. ㅇㅅㄷ 빵집 대신 롤케잌으로 아침을 하자고 했을 때, 뭔가 있구나 했다.
높은 담쟁이 담장을 끼고 돌아가니 갑자기 별천지가 열린다. 넓은 마당에 벽돌집 몇 채가 그림처럼 자리잡았다. 타샤의 정원을 본 적 없지만, 누구의 정원이라 불러드리고 싶다. 꽃과 나무에 깃든 정성이 정원은 물론, 작은 화분에서도 다정하게 빛난다. 원래 한전 사택이었단다. 엄마는 롤케잌을 만들고, 화가 딸과 첼리스트 딸이 함께 운영하는 #첼로네시아 @cellonesia_campusfornomads. 임대 가능한 공간인데, 솔직히 여기서 결혼식이라도 본다면 행복할 것 같다. 햇볕 쏟아지는 마당에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공간 어디에 앉아도 인생샷이다. 이 가족의 아버지는 목공 소품으로 공간에 조화를 더한다. 탱자에이드와 (뺏어 맛본) 땅콩크림 롤케잌을 강추한다.
55세에 사기를 당한 남자는 망연자실했고, 여자는 조용히 새 길을 모색했다. 이모님이 하던 한과 만들기를 배웠고 부부는 밤낮없이 애썼다. 군산 명물 흰찰쌀보리를 활용한 #옥산한과 담백한 맛에는 부부의 세월이 녹아들었다.
“한과를 1년에 몇 번이나 드세요? 설과 추석 두 번? 세 번 드시면 어때요? 애들이 안 좋아한다고요? 별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 겁니다. 한과 만들기 체험학습 온 친구들은 참 좋아해요. 새우깡만 먹지 말고 한과도 가끔 드세요”
예전엔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열흘 동안 유과를 준비했다. 찹쌀을 일주일 이상 불리면(침지) 암모니아 냄새가 나지만 쌀알은 삭지 않고 그대로다. 깨끗이 씻고 가루로 빻아 떡 반죽을 만들어 하루, 말리는데 하루 걸려 납작하고 딱딱한 ’바탕’을 만들고 두 번 튀긴다. 삼국시대에 차잎가루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다식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 부부 다음 세대는 한과를 계속 먹을까? 어느 정도 성공한 이 부부는 학생들 체험학습을 비롯해 누구에게든 열흘여 정성 이어지는 한과 공정을 전수하고 있다. 그저 한 집이 잘된다고 군산 보리가 더 팔리지는 않는다. 로컬 음식을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져야 하고, 관광상품으로 더 세련되게 개발돼야 한다. 한과 하나에 생각 많이 주는 #군산미식여행.
점심은 선유도 #한세월식당 꽃게탕. 이거 뭐냐 감탄사 터지는 달콤한 국물 맛. 싱싱한 여름 숫꽃게 살이 달다보니 국물 맛도 끝내준다. 6만원에 네 명이 쉬지 않고 먹었다. 계절별미란.
군산은 산이 모여 있다는 뜻이지만 알고보면 섬이 모여있었다. 옛 ‘고’자를 쓴 고군산 군도는 그 섬들의 바다에 촘촘이 이어진다. 전북 군산 건너편이 충남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 주제에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선유도까지 갔고, 유람선을 탔다. 1시간 20분 동안 섬들 사이를 누비는 시간은 이 좋은 계절에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했다.
일정은 잠깐 15분 트래킹이라는 말에 속아 대장도 대장봉으로 이어졌는데.. 계단이..계단이… 정신줄 놓은 나..
선유도 바닷가 잠깐 찍고, 잠깐 뛰고ㅎ 담엔 선유도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짚라인 타겠노라 결심 후ㅎ 서울로 돌아간다. 어제보다 더 황금빛이 짙어진 들판을 보니, 빠르게 색깔이 바뀌는 가을이구나.
#탄소중립여행 자차 대신 기차 타고, 텀블러 각자 챙겨서, 지역의 식재료로 미식을 살려내는 집들을 즐겁게 만났다.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대에 농업과 협업을 모색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필연일 것 같은데..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해 고안된 원더백이 탄소중립 제품으로 기업들과 협업하는 사례는 담에 더 공부해보기로 하고.. 미래를 다양한 관점에서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여행도! 지역 르네상스도! 이렇게 알차고 유쾌하고 재미난 #마냐여행 와우우. 파니님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닐래요!
이번 여행, 172.09kg 탄소를 줄였다. #여행만했을뿐인데 #탄소중립실천 일정 몇 개는 바뀌었지만ㅎㅎ
B컷들. 정신줄 놓고 흥에 취한 나에게 관대하기로 했다. 피사체에 대한 다정함으로 인생샷 남겨주신 님들에게 고마워해야지. 또 하루 멀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