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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Nov 25. 2022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이게 2022년 풍경?


지난 봄, 식탁 위에 사놓은 식빵을 보고 딸이 따져물었다. 어떻게 파바(파리바게뜨) 빵을 살 수가 있느냐고, 거기 노조위원장이 53일이나 단식해도 들은 척 않는 나쁜 회사라고, 자신과 친구들은 다 불매중이라 했다. 파바의 문제에서 SPC 계열사 전체로 불매운동이 확산된 것은 가을이다.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도 문제였지만, SPC측의 몰상식한 대응은 노동 존중이 전혀 없는 회사라는 점을 드러냈다.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를 읽고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하기 앞서, 클럽장으로서 한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책장에 묵혀두었던 이 책을 꺼냈다. 부제가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후자가 쿠팡 이슈라면, 전자는 SPC 이슈다. 하아.. 2022년 한국의 노동자는 어디쯤 온걸까.

(일단, 이 책과 연결된 문제적 그 책 리뷰...)

이 책과 쿠팡 책 묶어서.. 오디오매거진 #조용한생활 11월호 #책읽는코너 진행했다.. 준비하느라 두 책 탐독하는 내내, 슬펐다..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제목으로 빌렸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김훈 작가는 "‘정의란 무엇인가’ 보다는 ‘무엇이 정의인가’에 가까운 문제 제기"라고 추천했다. 전자는 거대하고 포괄적 질문으로 추상관념화된 ‘정의’의 현실적 실체를 묻는다면, 후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가 부딪히는 갈등의 현장 쪽이라고. 책은 <시사인> 전혜원 기자가 현장의 노동을 취재했던 기록을 재정리한 것이다. 그는 "유독 노동을 전하는 기사는 양극화됐다""경제지나 보수언론은 익명의 재계 관계자를 이용해 노조 혐오 부추기고. 진보는 노동자를 선량한 피해자로만 그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훨씬 더 논쟁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공론장에 많이 나와야 한다"며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마지막 한국노동의 딜레마 이야기를 보면, 그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종속적 자영업자?


이 편의점 사장님을 보자. 오전 6시 결제단말기POS를 켠다. 본사는 2시간 마다 영업 여부를 체크한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자기 능력껏 매출을 올릴 여지도 없다. 밖에서 더 싼 상품도 본사에서 비싸게 사야 한다. 수익은 65를 챙기고 35를 내준다. (보통 7대 3인듯..) 책에는 8000만원 들여 편의점을 오픈한 사장님이 하루 9시간 일하고 월 110만원을 버는 사례가 나온다. 알바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힘들어한 건 이런 사장님들인데, 이게 노사갈등인가? 사장님이 '사'측 맞나? 이건 노노갈등이다.


저자는 이런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를 '은폐된 고용'이라 정의한다.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이른바 본사에 '종속적'인 이 자영업자는 기존 노동법 체계에 없는 낯선 범주다. 본사 지시에 순응하고 자율적이지 않은 편의점 사장님, 파리바게뜨 같은 빵집 사장님, 커피전문점 사장님들이 있다. 이들은 노동자의 권리는 하나도 누리지 못하면서, 실업률을 낮추는데는 기여하고 있다. 한국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4.6%에 달한다고. 일본(10%), 미국(6.1%)에 비해 턱없이 높다.


SPC 폐해는 너무 많이 보도됐으니 생략. 여성들의 유산율이 일반 직장의 두배라는 것은 통계가 잘못된 거라고 회사측이 반박하던데, 회사측 억지가 너무 많다보니 그것만 믿어주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시정하라고 한거 무시하고 몇 년 버텼던거나, 돈 아낀다고 산재 방치한거나..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던킨, 배스킨.. 너무 많아서 힘들지만.. 불매한다. 가맹점주만 다치는거 아니냐고?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다. (기업이 잘하면 소비자는 알아서 응원한다. 쿠팡 리뷰에 덧붙여놓은 매일유업 사례 참고)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님들의 지위는 전세계에서 논란이다. 프랑스는 이들의 계약해지는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2012년에 내렸다. 영국 대법원은 '위장계약'이라 판결했다. 미국은 가맹점주들을 독립사업자로 잘못 분류했다며 3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은 세븐일레븐 가맹점주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인정받았다. 비록 지방노동위원회의 인정 이후 중앙노동위가 판단을 뒤집어 소송중이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식당을 차린 경우가 등장한다.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프랜차이즈 본사에 자신의 사업밑천(자본)과 노동력을 다 제공하며 종속된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쿠팡에는 쿠팡친구와 쿠팡플렉스 두 종류의 배송기사가 있다. 전자는 쿠팡이 직접 고용하지만, 후자는 일반인이 자기 차로 로켓배송을 수행한다. 교통사고가 날 경우, 쿠팡친구는 수술비와 입원비, 평균임금 70%를 보전받지만, 쿠팡플렉스 기사들은 보상 불가. 직접고용이 아닌 다른 택배운송사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지위는 켄 로치 감독이 <미안해요 리키>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그가 부딪치는 비참한 상황에 리키의 잘못은 없다. 그저 구조가 나빴다.


택배기사, 캐디, 학습지 교사 등을 '특수고용노동자'로 부르며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2008년부터 산재보험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남의 물건을 모으고 배송해야 택배다. 쿠팡플렉스 기사들은 자사가 매입한 물건 배송이라 택배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한다. 법은 여전히 구멍 투성이다.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618만명) 칸막이는 낡았고, 플랫폼노동자(179만명), 프리랜서(300만~400만), 특수고용노동자도 지위는 애매하다.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을 쿨하게 적용할 수는 없을까? 건강보험 가입률은 97%로,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나머지 2.9%는 기초생활 보장제도로 지원받는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안될까? 살아가면서 개인이 마주하는 위험, 생계가 곤란할 때까지 장수할 위험, 본인이나 가족이 병에 걸릴 위험,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 다칠 위험..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는 사회보험.

2019년 김용균법, 즉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보호 대상을 '노동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넓히긴 했다. 하지만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을 불안정한 노동자들로 확대한다는 것은, 기존 수혜자들의 부담이 함께 늘어나고, 정규직은 실업급여 수혜 가능성이 낮은 탓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타자화하고, ‘민노 좀비'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시대에 노동의 연대란 점점 어려운 상황이거늘.


보편적 노동권을 둘러싼 줄다리기 역시 글로벌 이슈다. 우버 기사가 자영업자 아닌 노동자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철가방' 배달원과 지금의 라이더는 다른가? 앱의 등장만으로 노동자가 자영업자로 변신한다고?

테크 동네에선 유명한 사건이지만, 미국 캘리포니아가 이 문제에 좀 적극적이었다. 2019년 ABC테스트를 통해 1) 노동자의 업무수행 과정을 플랫폼으로 통제 지시 2)운송과 배달은 각 회사 통상적 업무 3) 플랫폼 노동자가 자기 사업 따로 벌이지 않는다는 기준으로 노동자로 규정했다. 우버 등은 무려 2억 달러를 들여 반대 로비에 나섰고, 그들을 면제해주는 주민발의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2021년 이게 위헌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상태.. 갈 길 멀다.


기술이 산업을 대체하고, 인간을 대체한다


법인택시 기사는 하루 12시간 월 26일 근무해 사납금 떼고 210만원을 가져간다. 개인택시는 250만~350만원. (고된 노동이지만) 라이더들이 이보다는 더 많이 벌면서 택시 기사가 줄었다. 어쩌다 이렇게 뒤쳐진 직업이 됐을까. 택시회사 사장님들은 지역 유지라 국회의원과 친하고, 기사들은 최저임금도 못챙기는 구조가 수십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한때 내비 없이 척척 길을 찾던 택시 기사들은 고숙련 노동자였으나, 이제 그 핵심 경쟁력을 잃었다. 정부가 울타리를 쳐준 면허 시장에서 친절은 처음부터 중요한 덕목이 아니었다. 택시 면허는 2016년 9600만원에서 2019년 6400만원으로 떨어졌다는데, 뉴욕 택시 면허가 100만 달러에서 15만 달러로 추락한 걸 감안하면 뭐..

타다는 소비자로서 진정 좋아하던 서비스였으나, 기사들이 1억 모아 면허 살 때, 타다는 면허권을 사지 않고 영업했으니... 갈등이 필연이라면, 그걸 잘 해결하는게 정부의 역할인데, 시대에 역행하는 최악의 수로 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2019년 몹시 분노했던 사건이다.


사람들이 밀려나는 건 숫자로 봐도, 사연으로 봐도 당혹스럽다. 2019년 톨게이트 수납원 집단해고 사건도 구구절절하다. 하이패스 시대에 그들은 자회사 직접고용 혹은 화장실 청소 등 다른 업무로 전보됐다. 현대차에서는 17~25년 정년퇴직 하는 1.7만명 중 1.4만 명이 생산직. 그런데 없어도 돌아간단다. 기존 정규직 노동강도가 높지 않고(울산공장 편성효율 55%, 해외 공장 90%대) 자동화, 모듈화로 해결 가능하단다. 독일 연구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 되면 자동차 산업 고용은 25% 감소히고, 자율주행차 관련 소프트웨어 등에선 15% 증가한다고... 완전 다른 사람들이다. (책 뒷부분에 정색하고 나오지만, 와중에 완성차 노조는 65세 정년을 요구하고 있다.. 연금 나올 때까지 회삿밥 먹는걸 법으로 보장하란 얘기. 등 따신 사람들이 난로까지 껴안겠다고...물론 한국의 실질 은퇴연령은 72.3세, 노인빈곤율은 43.8%.. 둘 다 OECD 1위다.. 이건 다른 방향에서 풀어야하지 않겠나..)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등 정규직 전환 방침에 등장한 저 청원에는 27만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인천공항은 높은 토익점수와 스펙이 보장돼야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라며,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그냥 다 전환하는 것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인천공항 정규직 평균 연봉이 9129만원에 달하는 것도, 신입 초임이 4507만원에 달한 것도 몰랐지만, 저들은 정규직 전환되어도 연봉이 3850만원이었다. 10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인 비정규직보다 조금 더 인간적일 뿐인데, 그것도 공정하지 않은건가. 책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신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진보언론은 저걸 꼼수라 했다지만, 저자는 "임금격차도 덜하고 저항도 덜하다"며 "괜찮은 자회사 모델을 만들어갈 책임은 공공부문 노사 모두에게" 있다고 했다.


첫직장 중소기업인 대줄자가 대기업 정규직으로 점프하는 비율은 7.5%. 취업 재수 삼수라도 해서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이유… 그런데 너무 많은 울타리 밖 동료 시민을 배제한다면?

공정은 우리 시대의 블랙홀. 불공정 논란에 불이 붙으면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소득이 높고 안정적 일자리를 둘러싸고 공정 담론…내 밥그릇 빼앗아가거나 내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아서 불공정하다는 거지, 사회적 공정성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절차적 공정성이 문제라고 은폐.


수능이 학업성취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측정? 이 교육제도 안에서 혜택받은 사람이 더 잘하는 구조. 이미 편향된 사회.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건 결국 재분배 정책, 복지시스템.. 만약 기본 사회최저선을 보장해준다면.. 무한경쟁해서 의사가 되려고 할까?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2020년 산재 사망 2062명.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 실형선고 비율 0.57%.
산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산재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위험 관리 못한 기업 범죄냐, 노동자가 안전규정을 안 지킨 문제냐. 영미법 국가들은 기업을 먼저 처벌하는 법리, 대륙법계는 기업 범죄능력 인정하지 않는다고.


올들어 9월까지 철도 관련 사고로만 21명이 숨졌다. 구의역 김군 사건 이후 달라진 건 없다. 사고마다 코레일 선로보수 작업지시서에는 구체적 '경고'가 분명 찍혀있지만, 외주 업체 소속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외주화가 가져온 소통 부재다. (대체 기차 사고는 요즘 왜 그리 많이...)


23세 김정민씨는 인천 남동공단 영세 도금업체에 입사한지 한달 만에 마스크 없이 맹독물질을 다루다 희생됐다. 시안화수소의 시안이 청산가리라니. 환기시설도 없었다. 원청이 누군지도 모르는 5차, 6차 하도급 맨 끝에서 사람들은 쓰러져나간다. 신규 화학물질이 매년 300~400종 도입되고, 산업 현장에서 1.7만개를 쓴다는데, 안전조치를 의무화한 관리 대상 유해물질은 173종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되풀이되는 연예인의 죽음도 직업병, 산재라 주장한다. 직장내 갑질로 인한 극단적 선택도 마찬가지다.. 읽다보면 질린다. 이토록 많은 죽음이 우리의 일터에서 줄을 잇고 있다니..


노동권 후퇴에, 재계는 어쩜 이렇게 노골적일까


현 정부는 노동권 강화보다는 기업부터 살려 모두가 행복하다는 낙수효과 쪽을 신봉한다. 김용균씨의 목숨과 바꾸다시피한 김용균법, 강화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로에 섰다. 경제신문은 '법조계 일각', '중대재해처벌법 대응팀을 운영하는 한 로펌 관계자'를 인용해 법을 공격한다. 기소된 업체는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주52시간 제도가 2004년에 도입된거라고?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동안 기사 제대로 안 본거지.. 나만 그랬을까..) 당시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8시간X5일) 줄이면서, 다만 노사가 합의할 경우, 12시간 추가 가능해 52시간이 나왔다. 그럼 그동안엔? 정부가 영악했다. 신박했다. 주 52시간을 '주말빼고 주중' 5일 기준으로 해석했다. 주말에는 토요일 8시간, 일요일 8시간 더 일해도 된다고 총 68시간 괜찮다고 했다.

정부는 2022년 11월 현재 52시간제를 완화하도록 법을 고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앞세웠다.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유연화' 방안을 내놓았다. 어찌되나 지켜보자.


한국 노동의 딜레마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 격차가 너무 심하다. 공부 잘했으니 많이 가져간다? 그래서 다들 죽을만큼 경쟁하고, 누군가 희생되는걸 지켜본다. IMF 이후 하청 쥐어짜기가 본격화한 시절을 돌아보면, 이게 꼭 정답은 아니다. 독일과 스웨덴은 ‘어느 기업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어떤일을 하느냐’로 임금을 결정한다고.

호봉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리와 충돌한다. 저자는 한국의 연공급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들이 독특하게 누리는 렌트(지대) 같은 거라 지적한다. 호봉제 대신 직무급은? 노조는 하향평준화를 우려하지만, 노동시장 정의를 위해 다시 고민할 일이 수두룩하다. (책을 보시라..)


꽉 채우고 담은 책이라, 정리가 쉽지 않다. 그냥 내 기억용 메모다. 읽다 지치면 저 위의 팟캐스트라도 듣기 권한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알건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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