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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Nov 24. 2022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밥줄의 배신


"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쿠팡물류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원하고 몇 번 탈락한 뒤였기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흥분하며 너무 좋아했다. 근무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였다. 고객의 주문량이 많을 때는 새벽 6시까지 연장근무도 했다.

2020년 10월 11일.. 집에 오자마자 까치발로 곧장 욕실로 들어가 땀과 먼지로 덮인 옷들을 문 앞에 벗어 놓고 씻으러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나는 욕실 앞에 가지런히 놓인 아들의 휴대폰과 소지품, 동생에게 주려고 사 온 웨하스를 책상 위에 오려 두고, 벗어 놓은 옷가지들은 물에 담가 둔 뒤 욕실에서 잠든 아들을 깨우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남편을 불러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욕조에 엎드려 있었다…. 의사는 아들이 병원에 도착하고 한 시간쯤 지나 사망선고를 내렸다. 나는 사망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의 손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었고, 얼굴은 출근하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쿠팡C팀 야간 전화.. 출근 신청을 했는데 코로나 자가진단을 하지 않아 연락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들이 새벽 퇴근 후 사망했다”고 짧게 말했다. 잠시 멈칫하더니 “근무 취소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근무 취소하겠습니다. 다음에 근무 지원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억장이 무너졌다."


마지막 일터, 쿠팡은 밥줄을 배신했다. 2020년 10월 아들 장덕준씨를 떠나보낸 엄마 박미숙씨의 기록으로 책이 시작됐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쿠팡 책이라 해서, 자식 잃은 부모의 진짜 목소리를 이런 식으로 마주할지 몰랐다.

코로나로 물량은 늘었는데 인원 보충은 없었다. 1년 만에 장씨는 15kg가 빠졌다. 바지 사이즈는 34에서 28인치로 줄었다. 하루 5만보를 걸었다고 찍히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지 못했다. 퇴근하면 잤다. 일어나면 출근했다. "우리는 노예예요.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 


쿠팡은 2022년 3분기 당기순이익 1215억원(9067만달러)을 기록했다. 로켓배송 시작 후 8년 만의 흑자다. 2021년 매출 22조원에 한번이라도 제품을 구매한 활성고객 숫자가 1794만명에 달했지만, 영업적자 1.8조원, 누적적자가 6조원에 달했다. 당연히 쿠팡의 반전에 박수가 쏟아졌다. 2021년 쿠팡은 5.4만명의 임직원을 직적 고용, 삼성전자(10.8만명), 현대차(6.8만명)에 이어 3위의 고용기업이 됐다. 여전히 도전 중인 이 기업의 빛과 그림자 낙차는 그래서 더욱 깊고 어둡다.


쿠팡의 산재 승인 건수는 2021년 1235건이다. 불과 6년 전 49건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21년 동종업계인 CJ대한통운 33건, 로젠 0건, 한진 11건이라는 숫자에 처음 무척 놀랐지만, 직접고용을 피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쿠팡맨을 직접고용해 나온 통계라, 비교는 어렵다.

고속성장 뒤에 쿠팡맨, 쿠팡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2015년 하루 56.6개의 상품을 배송했는데 2017년엔 210개로 늘었다. 업무량은 폭증했지만 임금은 제자리였고, 이들은 자발적으로 야간배송에 뛰어들었다.


과로사를 부른 근면성실은 노동자들의 선택이었다고 쿠팡은 말한다. 하지만 불안을 활용하는 고용 형태가 있었다. 장덕준씨의 경우, 3개월 단기 계약으로 시작해 9개월, 12개월 계약을 갱신하고 끝내 정직원의 좁은 구멍에 들어서려면 스스로 갈아넣어야 했다. 이게 장덕준씨의 선택인가? 더 많이 일해도 일당이 제자리라서 야간배송을 선택한 쿠팡친구들의 선택은?


지난 2020년 3월, 46세 김정현씨는 안산의 한 빌라 계단에서 배송 도중 숨졌다. 두달 뒤 고영준씨는 쿠팡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숨졌다. 51세 최영애씨는 21년 1월 영화 18도까지 내려가도 난방이 되지 않는 물류센터에서 숨졌다. 20년 한해 설비투자가 5000억원에 달했으나 물류센터 냉난방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쿠팡이 마지막 일터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야간노동을 계속하면 13년 빨리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20년 전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을 거부하고 야간노동 철폐를 요구했다. 이제 야간노동은 쿠팡이나 컬리를 비롯해 서비스 업종에서 확산된다.


우리나라는 야간 노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지침은 주야간 교대근무 때 야간 근무가 연속 3일을 넘기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주야간 교대할 때 얘기다. 쿠팡처럼 계속 야간노동만 할 때는 지침조차 없다. 이런 노동형태가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한 셈이다.

다른 나라는 야근 노동자들에게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한다거나, 3일 이상 못하도록 하거나, 근무와 근무 사이 최소 13시간의 휴식을 보장한다. 야근 수당을 1.5~2배가 아니라 1.1~1.2배로 정해서 돈 때문에 연장근무나 야간근무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사람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 강도도 한계가 있다. 쿠팡 노동자 33%가 하루 10회 이상 25kg 이상의 물체를 든다. 92%가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굼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해 같은 동작을 한다. 고용노동부 고시한 ‘근골격계부담작업 11개’ 영역이고,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노동할 뿐이다. 덴마크에서는 5kg 이상 물건을 하루 2시간 이상 반복 취급하거나, 10kg 물건을 주 이틀 이상 취급하거나, 30kg 물건을 하루 5회 이상 취급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1.5~2배 높아진다는 연구가 나왔다.


쿠팡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 '모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오전7시 전' 배송한다. 고객 경험의 혁신을 만들었다. AI는 수억 건의 주문을 선제적으로 예측해 물류와 배송 네트워크의 설계를 최적화했다. 이렇게 똑똑한 AI가 노동자의 몸이 감당가능한 적절한 작업량과 동선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다.


'시간빈곤사회'에서 새벽배송은 어떤 이들에게 구세주다. 어떤 이들에겐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나는 타인의 야간노동을 가급적 피하고 싶다. 새벽배송 대신 일반배송을 택하고, 다른 옵션이 없는 마켓컬리를 가급적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맘 편한 것만으로,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책은 #트레바리 #디지털탐구생활 10월 책. 당시 클럽장으로서 따로 하나 더 본게 #노동에대해말하지않는것들.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11월호 #책읽는의자 코너에서는 후자를 메인으로 두 권을 소개했다.

트레바리 발제는 이랬다.


1. 쿠팡화된 노동은

- 어떻게 하면 알고리즘이 노동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하면 산재를 줄일 수 있을까요?

- 야간노동, 강도높은 노동을 노동자가 원하는게 현실이라면요?

- 어떻게 하면 인간존중, 노동의 존엄성이란게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2. 쿠팡하는 우리는

- 쿠팡, SPC 등 당신은 불매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 착한 소비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 가능할까요?

-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나요?

- 노동자의 정체성, 소비자의 정체성, 시민의 정체성이 충돌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나는 책을 읽고, 또다시 쿠팡을 해지했다. 뉴스가 나오면, 해지했다가..또 필요할 때 다시 가입한 일이 벌써 두 차례. 나의 불매운동은 완벽하지 않다. 다만 하는데까지 해본다.


이 책과 묶어 #조용한생활 11월호 녹음했다.




10월 어느날 메모를 덧붙인다.



어제 #트레바리 #디지털탐구생활 책은 #마지막일터_쿠팡을_해지합니다 였는데, 토론은 쿠팡 못지않게 #SPC불매운동 얘기로 뜨거웠고, 와중에 내 관심사는 #매일유업 현상이다.


2030 여성들로 추정되는 트위터리안들은 매일유업에 진심이다. 이미 몇 달 전부터 SPC 불매운동에 불을 지폈고, 용서 못할 브랜드와 호감 브랜드가 분명하다. 덕분에 오늘 아침 매일유업 실트윗이 2.5만개에 달한다.


매일유업이 SPC 빈 자리를 채워 호빵도 만들어달라고 조르는 소비자들이라니. 신제품 나오면 그게 얼마나 좋은지 자발적으로 홍보에 열 올리는 소비자들이 한 부대가 있다. 기본 1만 단위 리트윗되는 칭찬과 응원 보고 있으면 첨엔 놀랍고, 그다음엔 웃음이 난다.


제3세계 아동노동착취로 나이키가 혼쭐 난 과정에는 1996년 라이프 잡지 표지 사진이 컸다. 노예처럼 축구공을 만들던 파키스탄 꼬마의 사진과 사연이 공개되면서 나이키 시가총액이 반토막났다. 나이키는 개과천선했고, 더 큰 기업이 됐는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돈도 쓰고 엄청 애썼다.


기업 브랜드를 살리고 죽이는 게 소비자란걸, 평소에 잠잠하다고 안 챙기면 큰 일 난다는 걸. 더 많은 사례가 보여주기 바란다. 매일유업 흥하는 동안 남양유업은 매출이 반토막났다. 나 역시 꼼꼼하게 상품명 뒤로 숨은 남양을 찾고, 절대 사지 않는다. 딸의 항의에 SPC 안 사고 있고 책을 읽은뒤 쿠팡을 (또다시) 해지했다. 불매운동은 그들이 나이키처럼 더 좋은 기업 되라는 응원이다.


아참, 쿠팡은 물류센터 냉난방 못한다고 했는데.. 아마존도 똑같이 버티다가 결국 에어컨 다 설치했다. 안되는게 어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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