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찾아낸 선구안의 안목
큐레이션에서 중요한 건 큐레이터다. 무엇을 골라서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누가 골라주느냐. 책을 고를 때도 중요한 기준이다. 이 책 추천사를 보다가 당황했다. 누구? 달라이 라마?
”우리 안에는 어떤 괴로움과 고난 앞에서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잠재력이 있습니다. 여기, 긴 세월 숲속에서 마음을 닦은 나티코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의 삶을 이롭게 할 지혜를 전합니다”
마인드풀니스 분야의 책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23년 1월에 소개하는 책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는 마음을 다잡거나, 달래는 이야기도 괜찮을테니. 마침 내가 목요일마다 근무하는 서점 북살롱텍스트북에서 2022년 12월 책으로 추천했다. 누가 골라줬다고? 안목을 신뢰하는 서점 사장님이 골랐다. 그럼 됐지. 그런데 달라이 라마까지 추천했다고? 심봤다. 이게 서점 사장님 추천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니고!
책 부제는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저자는 2022년 1월 세상을 떠난 전직 승려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 사람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분이란다. 20대에 이미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17년 간 수행했고,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소통한 구도자.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했단다. 뭔가 전형적인 이야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반한 한끝 차이가 있다.
완벽은 커녕 헛점 많은 공통점
그의 좌충우돌 명상 도전기를 보다가 이건 나잖아! 웃음이 터졌다. 스페인에서 일하던 시절 처음 명상을 접했을 때 기억이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계속하면서 호흡만을 생각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제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경영진 회의에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저녁에 또 가스파초를 먹어야 하나? 언제쯤 스웨덴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자친구가 왜 나를 찾을까?”
그는 명상에 익숙해지기 전에 일단 떠났다. 인도로, 세계식량기구라는 유엔 산하 기구 재무책임자로. ”이상주의적 희망에 들뜬 서양 젊은이가 인도에 도움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인도에서” 같은 뻔한 흐름이었다. 그시절 3주간 히말라야 산행을 떠나면서 “역사상 가장 멍청한 배낭여행자”였다고 고백한다.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양장본을 넣고 다닐 만큼 허세 가득한 여행자는 저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밤에 천막을 치고 나면 예외 없이 너무 피곤해서 한 글자도 읽지 못했지요.”
친구 ㅎㄹ는 내가 작년 이탈리아 한달 여행에 양장본 6권을 싸들고 갔다고 놀리는데, 나는 최소한 양장본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적허영인’으로서 나티코에게 감정이입한 건 어쩔 수 없다. 히말라야에 까라마조프! 양장본! 난 이탈리아에서 세 권은 결국 한글자도 못 읽고 베네치아 숙소에 두고왔다. 제목이 메디치 어쩌고 이길래 인문학 3부작인줄 알았는데 소설인것도 가서 알았지.. 친구가 딱 펼쳤는데 야한 장면이 구체적으로 서술되던 책. 읽고 왔어야 했는데.. 아아.
이렇게 툭하면 삼천포로 빠지는게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나키코는 다시 명상 캠프 비슷한 곳에 들어갔는데 이번 명상 얘기는 더 생생하다.
'자, 시작해볼까. 45분 동안 방해받지 않고 마음챙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호흡만 잘하면 돼. 그간의 절망은 이곳에서 다 떨쳐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거야. 어쩌면 헤일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까? 어제 나왔던 음식은 고향에선 개도 안 먹을 정도로 형편없었어. 그런데 이 근처에는 나무마다 뜨거운 햇살을 받아 잘 익은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아니, 아니, 집중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아, 그런데 커피는 진짜 아쉬웠어. 가만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우리 같은 서양인 배낭족들이 자금을 대니까 이곳이 돌아가는 걸 텐데. 모금함은 우리가 다 채워주는 데, 네스카페 하나 변변히 대접하지 않는다니! 괜찮은 이탈리아산 커피메이커를 하나 갖춰놓으면 투자금 쯤은 금세 회수할 텐데. 코르타도(에스파냐의 전통적인 우유를 넣은 커피), 카푸치노.. 이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명상하면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관심을 빼앗기다니. 누가 나한테 사원 식단을 신경 쓰라고 했나? 그나마 아무도 못 들어서 다행이네. 난 누구보다 진지하게 명상해야 할 사람이야. 정신 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해. 내 몸을 느껴보자. 다 내려놓고. 부처님은 내려놓는 걸 좋아하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들이마쉬고 내쉬고…그러네 왜 이렇게 지루하냐! 뭔가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설마 이게 다라고? 내 안에서 불꽃이 터지려면, 천상의 쾌락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난 준비가 다 됐다고!’
그는 한달 코스의 캠프를 나흘만에 중단했다. 처음부터 훌륭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마인드풀니스, 책처럼 다 잘되는게 아니다. 고수도 그렇다. 태국 숲 속의 눈파란 스님으로 17년 수행한 그는 계속 속삭인다. 나도 서툴렀다고, 나도 실수 투성이었다고, 허세만 가득했다고, 수행 후의 나도 극단적 선택을 할 뻔 했다고, 나도 감정적이라 흔들렸다고. 나도 틀릴 수도 있다고.
"혹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극도로 우울해하거나 자기 자신이 그 혹독한 시간을 겪고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런 시기를 겪었지요. 심지어 마음을 수행한 승려도요. 그리고 기어이 이겨냈습니다."
와중에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
유쾌하고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좌충우돌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수행자, 구도자로서 얻은 깨달음과 성찰이 원래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단번에 현명한 인간으로 거듭날리 없지만 몇 가지 나도 담아둔다.
일단 그가 얘기하는 마법의 주문. 사실 책 제목이기도 하고, 끌린 이유이기도 하고.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분노는 나의 힘, 이지만 늘 날을 세울 수는 없지. 이 말도 담아둔다. 그대로 좋아하긴 어려운 인간들이 줄줄이 떠올라서, 일단 기운을 덜 소모하기 위해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기로. 이게 피하는 건데, 그래도 뉴스를 끊지는 않겠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법의 주문이 몇 더 있다. 예컨대 '그랬어야 하는데..'에 맞서는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는 식이죠. 예컨대 아빠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명색이 친구들인데 그런 건.. 이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 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하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날뛸 때라도 할 수 있는 일. 먼저 조심스럽게 한 발 멀어집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지고.”
꽉 쥔 주먹을 펴는 연습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힘을 빼고 활짝 폅니다.. 자주 해보길. 간단한 동작이지만 우리가 유난히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펼치도록 했던 건 이 문구다. 서점에서 큐레이터가 포스트잇에 써서 표지에 붙여놓았다. 다정함에 꽂혀있는 나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 보면서 '친절함', be kind 라는 단어를 추가했고, 그 열쇠가 여기 또 나온다. 드라마 대사를 나티코가 재인용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좋은 책이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용기를 내어 차례로 벽을 넘었던 나티코. 덜 용감한 우리를 위해 인생탐험을 진하게 했던 이가 기록을 남겼다. 평생 깨달음을 이렇게 유쾌하게 남기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맙다.
들어보셔도 좋겠다. 1월에 소개한 건 이 책과 함께 한 권 더 있다. 오래된 고전. <인듀어런스>. 두 권을 소개한 조용한생활 1월호
행복한 새해를 위한 마음 가이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와 <인듀어런스>
팟캐스트 준비용으로 남긴 메모를 붙여둔다.
1월 책은.. 새해. 인생에 대해. 나를 돌아보는 법, 아끼는 법. 그리고 성공보다 위대한 실패를 통한 인간 승리. 삶이란.
어떤 책 2022년 1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스웨덴을 휩쓸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했다. 20대에 눈부신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저자의 여정과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을 담은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스웨덴에 이어 한국에서도 세대를 불문하고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출간 이래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다.
저자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승려로서 지킬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자 마흔여섯의 나이에 사원을 떠나기로 하고 승복을 벗었다. 환 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유쾌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급격히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계속해서 전했던 그는 2022년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나티코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다. 2020년 말 스웨덴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의 열광 속에 그해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30만 부 판매되었고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추천사 우리 안에는 어떤 괴로움과 고난 앞에서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잠재력이 있습니다. 여기, 긴 세월 숲속에서 마음을 닦은 나티코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의 삶을 이롭게 할 지혜를 전합니다. - 달라이라마 진정 솔직하고 진실한, 조금도 꾸밈없는 책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마음의 지혜를 다루지만 이 땅의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어떤 책은 단어 사이사이에 손에 잡힐 듯한 평화를 품고 있어서 펼치면 당신 안에도 그 평화가 싹트게 해주곤 한다. 내가 한 자리에서 이 책을 읽으며 느꼈듯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천천히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해가 따뜻하게 내리쬐는 오후처럼, 혹은 그윽한 한 잔의 차처럼 음미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글이 당신 안에서 무엇을 부르는지 알아차리길 바란다. 우리의 매사 서두르는 세계에서 자꾸만 잊게 되는 그 고요한 존재를 느껴보기 바란다. - 아디야산티 (영적스승) 그의 원고를 다 읽고 난 뒤에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고 한참이나 창가를 서성였습니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 그가 들었던 직관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진실하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해줘서 고마워. 내 안의 아름다운 측면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제공해 준 것도 정말 고마워.” 우리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 도종환 시인
그도 우리 같았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계속하면서 호흡만을 생각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제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경영진 회의에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저녁에 또 가스파초를 먹어야 하나? 언제쯤 스웨덴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자친구가 왜 나를 찾을까?
어떻게 하라고? 우리의 상반신은 일종의 물병과 같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몸 안에 물이 차오른다고 상상해보세요. 숨을 내쉴 때는 수위가 내려가서 병이 비워집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물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차오릅니다. 호흡이 엉덩이에서 또는 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런 다음 물이 배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차오르는 기운을 느껴보는 겁니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이 파도에 자신을 잠시 내맡겨봅니다. 자세가 썩 편하지 않다면 , 자기 몸에게 다정하고 부드럽게 물어보길 바랍니다. 어떻게 호흡하는 게 제일 좋니? 가슴을 조금 더 펴면 공기를 들이마시기가 더 편하니? 어깨를 살짝 내리면 어떨까? 이 정도면 됐다고 느껴지는, 몸 속 깊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당장은 이렇게 호흡만 하면 됩니다. 다른 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요. 휴가를 떠난 셈입니다. 전두엽의 스위치도 꺼버렸습니다. 이 순간,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순간, 짜내야 할 기획안도, 제시해야 할 의견도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사항도 전혀 없어요.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은 오로지 호흡뿐입니다. 원하는 시간 동안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 일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처럼 몰입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이후 그는 1년간 문학 공부 뒤. 인도로 건너가 국제연합의 세계식량계획 집행 재무관리자로. 이상주의적 희망에 들뜬 서양 젊은이가 인도에 도움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인도에서.. 3주 내내 히말라야.. 산행. 복잡하던 삶이 나날이 단순해지지요. 결국엔 날씨와 몸, 음식, 음료, 휴식으로 압축됩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는 역사상 가장 멍청한 배낭여행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양장본을 넣고 다닐 만큼 허세 가득한 여행자는 저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밤에 천막을 치고 나면 예외 없이 너무 피곤해서 한 글자도 읽지 못했지요 사랑에 빠졌고. 몇 주 동안 영화같이 아름답고.. 결국엔 차이고 말았습니다. 꿈같은 나날을 2주쯤 보냈을 무렵, 제가 헤일리를 좋아하는 만큼 헤일리가 저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사소한 걱정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헤일리가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가슴속에서 뭔가가 맺히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덩어리는 급격하게 커져서 제 감정을 점점 더 차단했지요. 갑작스러운 행복은 오히려 두려움을 낳았고, 두려움은 두꺼운 방어막을 세워서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면 장난기와 유쾌함, 익살스러움은 사라지고 행동거지는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집니다. 말을 잃고 몸은 경직됩니다.. 헤일리가 부드럽고도 사려 깊은 태도로 말을 꺼냈을 때 “그래, 내가 지금의 나 같은 놈과 사귀었다면, 나도 그놈이랑 헤어졌을거야”
명상 수련 두번 째 날. 자, 시작해볼까. 45분 동안 방해받지 않고 마음챙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호흡만 잘하면 돼. 그간의 절망은 이곳에서 다 떨쳐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거야. 어쩌면 헤일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까? 어제 나왔던 음식은 고향에선 개도 안 먹을 정도로 형편없었어. 그런데 이 근처에는 나무마다 뜨거운 햇살을 받아 잘 익은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아니, 아니, 집중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아, 그런데 커피는 진짜 아쉬웠어. 가만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우리 같은 서양인 배낭족들이 자금을 대니까 이곳이 돌아가는 걸 텐데. 모금함은 우리가 다 채워주는 데, 네스카페 하나 변변히 대접하지 않는다니! 괜찮은 이탈리아산 커피메이커를 하나 갖춰놓으면 투자금 쯤은 금세 회수할 텐데. 코르타도(에스파냐의 전통적인 우유를 넣은 커피), 카푸치노.. 이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명상하면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관심을 빼앗기다니. 누가 나한테 사원 식단을 신경 쓰라고 했나? 그나마 아무도 못 들어서 다행이네. 난 누구보다 진지하게 명상해야 할 사람이야. 정신 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해. 내 몸을 느껴보자. 다 내려놓고. 부처님은 내려놓는 걸 좋아하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들이마쉬고 내쉬고…그러네 왜 이렇게 지루하냐! 뭔가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설마 이게 다라고? 내 안에서 불꽃이 터지려면, 천상의 쾌락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난 준비가 다 됐다고!
한달 코스를 나흘 만에 중단
미움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리죠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슬픔 이상하게도 그해 내내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맺히더니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그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려 애썼습니다.. 어느날.. 한계에 다다른 기분. 이 상태로는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지요.. 불상 앞에 무릎 꿇고.. 합장하고, 불상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내 힘으론 역부족이에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요. 도와주세요.. 절을 올렸습니다. 한 번, 두 번, 세번.. 가슴에 맺힌 슬픔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부하지 않고 그 느낌이 저를 감싸도록 놔뒀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처음엔 주저하는 듯하더니 점점 더 강렬하게 솟구쳤습니다. 통곡..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제 안의 번뇌가 다 씻긴 것 같은 느낌.. 무기력함을 마주하자 기쁨의 문이 다시 열렸던 것입니다. 슬픔 대신 경외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불안, 불행. 그러지 말았어야..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는 식이죠. 예컨대 아빠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명식이 친구들인데 그런 건.. 이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 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하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날뛸 때라도 할 수 있는 일. 먼저 조심스럽게 한 발 멀어집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지고.” 영국 사원. 일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것.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숲속 승려답지 않은지, 그들이 일하는 방법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부적절한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좀 더 점잖고 신중한 방법인지 혼자서 곱씹었..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제 모습은 아마 언짢음과 짜증으로 가득했을. 그때 아잔 스시토 스님이 저를 온화하게 쳐다보면서 “나티코, 나티코.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 손동작.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힘을 빼고 활짝 폅니다.. 자주 해보길. 간단한 동작이지만 우리가 유난히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줍니다. 물건이나 감정, 신념 등 대상은 상관없습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자유 햇볕이 뜨거웠습니다. 겉옷을 벗고, 잠시 뒤에 하나 더 벗었습니다. 원래 일광욕을 좋아했던지라 결국 옷을 다 벗어 던졌습니다. 그런 다음 엠피스리 플레이어의 헤드폰을 쓰고서 ‘승려가 들을 만한 최고의 노래 100곳’을 골라서 틀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샤키라의 힙스 돈 라이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베른 알프스에서 가장 뻣뻣한 엉덩이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4
다시 내면의 목소리.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 설마. 말도 안돼. 내 삶은 지금 이대로 너무 좋다고! 놀랐고 두려웠고. 마흔 여섯. 갑자기 제 안에서 집에 가야 할 때가 됐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6개월 고민. 건강 문제. 몸은 혈액을 응고시킬 수 없게 됐고.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인데 인제 와서 손을 떼는 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지금 당신은 그 무엇도 아닌 승려지요. 당신의 정체성이 그곳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밖에 나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겁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그 시절 괴로운 나머지 난생 처음으로 이대로 생을 끝내야 하나 고민하기도. 더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극도로 우울해하거나 자기 자신이 그 혹독한 시간을 겪고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런 시기를 겪었지요. 심지어 마음을 수행한 승려도요. 그리고 기어이 이겨냈습니다. .. 끈질기게 노력한 덕분에 얼마 지나자 연속해서 두 번까지 호흡할 만큼 버킬 수 있었습니다. 숨통이 트이자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18개월 만에 드디어 다시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안네는 특별히 고대하는 일이 있는지 질문. 저는 사랑에 빠지길 고대한다고 대답. 내가 본 가장 멋진 애인 구함 광고였다고. 친구의 친구 엘리사베트. 보약 같은 사람이지요. 우리의 육체적 친밀감과 애정도 보약이고, 우리가 함께 보내는 일상도 보약이며, 이미 어른이 된 엘리사베트의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보약입니다. 엘리사베트가 만드는 음식과 삶을 향한 뜨거운 열정, 익살스러움과 웃음, 숨결마다 느껴지는 지혜, 이 모든 게 제게는 보약이요, 치료제였습니다. 여느 연인처럼 우리도 때로는 힘든 시기. 무심코 서로의 상처를 물어뜯기도. 결혼반지 문구 이제껏 가장 멋대가리 없는 문구. 13세기 페르시아의 현명한 임금. 이토록 정의롭고 복되고 훌륭한 방식으로 다스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황금반지.. 안쪽에 비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원한건 없다. 모든게 일시적 참 나쁜 소식. 하지만 좋은 소식이기도
자애, 연민, 희열, 평온 부처님은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꼽았다. 1) 자애 2)연민 3) 희열 (공감적 기쁨) 4) 평온 .. 폭 넓은 지혜를 담은 감정. 어떻게?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 자신에게 먼저 연민을 베풀 수 없다면.. 스스로 비판하고 가혹하게 대하며, 우리 자신도 연민의 대상임을 깨닫지 못하고.. 내 마음의 고통에 좀 더 공감하고 세심하게 살핀다면 삶을 더욱 멋지게 가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가혹하게 바라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베풀 수 없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
믿음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일상. 사람들은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식탁에 올릴 음식도 마련해야 해요. 이슬람교 금언. 무함마드 언행록에 ‘알라신을 믿되 타고 갈 낙타는 묶어두라’. 이분법적 사고로는 믿음에 빠지면 다른걸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안됩니다.절대로. 가령 소득신고를 할 땐 절대로 세상을 그냥 믿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서류를 모조리 꼼꼼히 챙기는게 좋다. 믿음과 순간의 지성은 쌍둥이 나침반
강연할 때 메모를 준비 않음.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제 안에서 뭔가가 시들고 약해질 것 같아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중년 남성이 대본도 없이, 또 중간 휴식이나 음악이나 시각 자료도 없이 무대에서 두 시간 혼자 떠든다면?
루게릭. 위키에서 3~5년. 의사는 1~5년. 이 글을 쓰는 현재 1년 하고 9개월. 삶이 동시에 두 가지 국면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서서히 깨달았다. 절망과 충격에 오장육부가 갈가리 찢기는 것.. 동시에 제 안의 다른 부분은 너무나 담담하게 새로운 현실을 조심스럽게 열린 눈으로 마주했다. 저항하지 않았다. 이상하긴 했지만 딱히 낯설진 않았다. 제 안에 의지할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 늘 깨어 있으면서 현실에 절대로 맞서지 않는 부분, 바로 알아차림.
죽음 지금까지 내가 진실하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해줘서 고마워. 내 안의 아름다운 측면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준 것도 정말 고마워. 그런데 내가 바랐던 때보다 훨씬 일찍 마지막 숨을 거둘 날이 올 것 같아. 차분히 생각해보니 용서받지 못할 일이나 깊이 후회할 일, 바로잡지 못할 일을 저지르진 않았어. 내 어깨를 짓누를 만큼 묵직한 업을 짓지는 않았어. 그래서 때가 오면, 이 필멸의 고리를 벗어던질 때가 오면, 그동안 바르게 살았음을 알기에 난 환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숨을 거둘 수 있을 거야. 마법 같은 순간… 강렬하고 멋졌으며 즐겁기까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단정적 고백.. 승려 시절 배운 것들.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법과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 법을 17년 동안이나 수행했으니.. 소중한 기술. 질병에 분노하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잎은 시들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버티지만, 일부는 여전히 파릇파릇한 초롯빛일 때 떨어지지요. 모든 오래된 종교와 영적인 전통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떄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그리고 내일은 그보다 더 많이.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가 그 점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상대를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 때, 지금 누리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제게 정말로,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남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덜 중요해졌습니다. 반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해졌습니다. 상황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또는 어떻게 될지를 곱씹는 대신 매 순간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사는 것 또한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의 반경 대폭 줄면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지요 노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제 의견을 주장하는 건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요 저 자신과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도 더없이 중요해졌습니다. 지금은 여러모로 힘든 상황. 그러니 자신에게 다정히 귀를 기울여야. 자신에게 친절히 말해야
인내심, 관대함, 정직함, 당당함, 용서하는 능력,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 공감, 경청, 연민, 이해심, 사려 깊음..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는 딱히 이런 자질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장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저는 이런 내면의 힘에 더욱 주목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강한 힘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죽음과 싸우고,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을 영웅적이라 묘사할까요? 죽음은 왜 늘 무찔러야 할 적이나 모욕으로, 실패로 그려질까요? 저는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의 반대에 더 가깝지요. 증명할 순 없지만, 저는 늘 죽음 저편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느껴왔습니다. 때로는 뭔가 경이로운 모험이 저를 기다린다는 느낌마저 들지요.. 내가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당신의 눈이었으면 좋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