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이런 식으로 국가별로 찾아읽을지 몰랐다. 이집트 얘기에 이어 튀르키예, 시리아.
1.
오스만 제국은 전성기 때 세 개 대륙에 걸친 패권국가였다. 발칸반도의 남동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제국의 보수적 성격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했고, 무능한 술탄들이 권좌를 이으면서 흔들렸다. 1차 대전 후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뻔 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휘로 아나톨리아 반도에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남았다. 아타튀르크, 튀르키예의 아버지란 뜻이다.
2.
한때 젊은 온건 이슬람주의자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 에르도안에게 열광했다. 그는 1994년부터 이스탄불 시장으로서 효율적이고 깨끗한 시정 운영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가 이끌던 정의개발당은 2002년, 2007년, 2011년 선거에서 압승했다. 정치 안정에 경제 성장까지 토끼를 다 잡았다.
3.
그러나 에르도안은 장기집권을 모색했고, 언론탄압 등 권위주의 정부의 수순을 밟았다. 2015년 여당 단독 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연합했다. 2016년 쿠데타를 진압한뒤 공안 정치를 본격화했다. 한때 동지였던 귈렌 측 언론사, 기업체, 학교, 연구소를 폐쇄했고, 귈렌을 국가전복 혐의로 기소했다. 현직 군인 1만7000명을 숙청했고, 공직자 14만 명을 해임했다. 언론인과 지식인 5만 명을 투옥했다. 에르도안은 20년째 권좌를 지키며 21세기 술탄이라 불린다.
4. 튀르키예는 민주주의 후퇴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고,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했다. 지난 2년 터키 리라화 가치는 45%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70%를 찍었다. 정권의 정치적 구호는 선명해졌다.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내걸고 러시아, 중국과 밀착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 국경에서 민간인 수백 명이 희생당하는 교전을 벌이는 등 전쟁도 불사하고 있다.
5.
시리아는 2011년부터 내전 상태다. 50만 명이 희생된 비극의 출발은 10대 소년들의 낙서였다. 아랍의 봄이 확산되던 시기 "닥터, 너의 차례야"라고 담벼락에 낙서한 10대 소년들이 체포돼 고초를 당했다. 한때 영국의 안과의사였던 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이유로 촉발된 강경대응은 시민의 반발을 불렀다. 13세 소년의 끔찍한 시신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반정부시위가 확산됐고, 퇴역 장교 충심으로 자유시리아군이 결성됐다. 내전이었다. 아사드 정권과 반군은 모두 종파주의 프레임으로 정치적 이익을 노렸다. 소수 종파인 집권 알라위파는 시위대를 급진적 수니파 폭도로 몰았다.
6.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뒤늦게 잘못을 시인한게 시라아 정책이다. 내전 초기 아사드 정권의 잔혹한 대응을 비난하면서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했으나 군사적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지리멸렬한 아프간전, 이라크전 영향이었겠지만 결국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를 초래했다. 와중에 아사드 정권에 맞선 세력 중 극단적 ISIS가 등장하자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섰다. 이게 아사드 정권에 득이 됐다. 여기에 2015년 푸틴이 개입했다. 러시아는 ISIS 테러 조직 척결을 명분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7. 덕분에 내전은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끝났다지만 시리아 북동부 자치 정부, 튀르키예 영향권 지역 등으로 나라가 쪼개지면서 불완전 주권 국가 상태다. 인구의 절반은 피난길에 나섰고, 인구의 90%가 빈곤에 시달린다. 코로나 대응도 힘겨웠는데 이젠 지진 피해까지 대응이 잘될 것 같지 않다.
8.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이 아무리 생생해도 도울 방법이 안보인다. 소소하게 지진 구호 기부금을 내는 것은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측면이 더 크다. 독재자의 권위주의 정부가 국민에게 해롭다는 건 분명히 알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마침 #아랍의봄_그후_10년의_흐름 책이 내게 있었고, 시리아와 튀르키예 상황을 짧게 살펴봤다. 부디 이 끔찍한 상황에서 인류애가 그들에게 닿기를. 어두운 시대를 끝내 이겨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