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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Feb 06. 2023

<아랍의 봄, 그후 10년의 흐름> 이집트 여행 후일담


이집트 여행의 감상을 요약하면 경이롭고 서글펐다. 문명에 대한 감탄과 현대 이집트에 대한 감상이 엇갈렸다. 이집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여러가지 질문으로 이어졌다. 아랍의 봄 이후, 여름, 가을은 없냐는 푸념 섞인 질문도 있었다. 마침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10년을 돌아보고, 서아시아의 정세와 가까운 미래를 전망"한다.


'튀니지, 아랍의 봄의 트리거', '시리아, 초유의 내전 늪에서 소생한 아사드 정권', '예멘, 겨울보다 시린 봄', '바레인, 왕실과 대중 간 기나긴 갈등의 도돌이표', '이라크, 봄을 부르는 민중의 열망', '레바논, 모자이크 사회와 통합을 위한 국민의 외침',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좌절', '이란, 미완의 혁명과 시민 불복종 운동' 등 각국별 현황이 한 챕터씩 이어진다.

요건 추가 정리


와중에 하현정님이 정리한 이집트편 제목은 '빵, 자유, 정의'라는 오래된 문제로의 회귀'다. 여기에 인남식 님의 '국제정치의 이상을 좌초시킨 아랍의 봄'까지 보면 간신히 뭔가 흐름이 느껴진다. 서아시아 정치경제사회 문외한으로서 이집트 상황에 대한 내 요약은 이렇다.

- 2010년 6월 경찰의 마약 밀매 장면을 SNS에 올린 칼리드 사이드란 청년이 체포 뒤 숨졌다.
- 새삼스럽지만, 구타와 고문으로 참혹했던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며 이집트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 2010년 12월31일 송년 미사 직후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테러가 발생, 23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다. 평범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았지만 정부는 종파주의 폭력으로 규정하는 대신 사건을 무마했다.

- 2011년 1월 25일 시위 시작. 나흘 만에 25명이 숨졌다. 내세운 슬로건은 '빵, 자유, 정의'. 2월11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났다.

- 그때까지 이집트는 1956년 이후 군부 출신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 3인이 집권했다. 독재였다.

- 1981년 집권한 무바라크는 신성모독법으로 대통령이나 정부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불법화했다. 정치나 정책 공개토론은 불가능했다. 권위에 불복종하는 건 공포였다. 민주주의 리더십이 자랄 수 없었다.

- 곪은건 경제였다. 무바라크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1980년대 이후 국유기업 사유화, 식료품과 가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삭감으로 중산층이 몰락했다. 2013년 청년 실업률은 38.9%에 달했다.

- 아랍의 봄 이후, 2012년 무슬림형제단 출신 모르시 대통령이 선출됐다. 무슬림형제단은 복지 사업으로 오랫동안 바닥을 다졌다. 그러나 모르시는 1년 만에 물러났다.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고, 군부에 밀렸다. 군부는 이집트 국부의 40% 내외를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딥 스테이트'다.

- 무슬림형제단도 무능했다. 민주주의 이행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주요 엘리트 정치인을 포섭하는데 실패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능력이나 다양성보다 충성심을 우선한 탓에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 2014년 시시 대통령 집권 이후 시민 활동가, 언론인, 연구자 수십 명이 구금, 고문 당하거나 사망했다.

-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끔찍하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체포 뒤 처녀성 검사를 받아야 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에 수치심을 줬다.

- 독재자를 몰아낸 원동력인 '빵, 자유, 정의'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결되지 않더라. 일부 경제 지표는 나아지고 있지만 언론, 집회, 표현의 자유는 아랍의 봄 이전보다 후퇴했다.


시민의 저항으로 군부 독재를 끝냈지만, 이집트는 다시 더 강력한 군부독재로 회귀했다. 서아시아를 흔들었던 '봄'은 국가마다 상황이 다 다르지만 현재 상황은 비슷하게 나쁘다. 이를 미국 주도의 국제정세 속에서 다시 돌아본다면,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미국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거쳐 미국은 2004년 확대 중동 구상을 발표했다. 민주주의를 앞세웠다. 결국 형식적으로는 아프란과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나 혼돈은 더 커졌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 개입을 축소하고 전략 자산을 재편해 중국 견제를 위한 Pivot to Asia를 선언했다. 그런데 아랍의 봄은 이같은 전략 전환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민주주의 확산 기대는 오히려 사그라들었고, 난민과 테러로 브렉시트, 트럼피즘이 부상했다. 서아시아 얘기로 국한해서 보면 곤란하다. 다 연결된다.

아랍의 봄 이후 10여년,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일단 멈췄다. 인남식쌤은 세속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 자국중심주의, 문명론적 지역주의 득세를 주목한다. 불안정한 민주주의 시도보다는 차라리 안정된 권위주의가 더 낫다는 식의 결론은 조급하다. 벼락치기로는 여기까지.


여행은 낯선 나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 고대 문명을 보고 와도 현대 이집트에 대해 더 많이 보게 된다. 어떤 체제, 어떤 사회가 인류를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각국 상황은 정말 다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어디서든, 조금 더 평화롭기를, 조금 더 살만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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