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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9. 2023

<이집트 5일차>룩소르, 왕의 계곡과 카르낙 신전에서

<이집트 0일차> 사우디 거쳐 18시간

<이집트 1일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낙타

<이집트 2일차> 나일강에서 필레신전과 바람을 만났다

<이집트 3일차>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의 OOO

<이집트 4일차> 악어신, 독수리신 신화에 빠져들다가


룩소르 서쪽, 죽은 자들의 지하도시


나일강 서쪽 룩소르에는 죽은 자들의 지하도시가 있다. 4500년 전 기자의 파라오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올렸으나 그 후손 파라오들은 생각이 달라졌다. 피라미드는 대부분 도굴꾼에게 털렸다. 영생을 약속한 미이라도 훼손됐다. 화려한 피라미드로 권세를 과시하다 털리느니 사막에 비밀스러운 무덤을 갖는 게 나았다. 3000~3500년 전, 무려 500년에 걸쳐 왕들은 비밀 무덤을 만들었다. 그냥 보면 아무 흔적이 없는 암벽 계곡이지만 왕들의 공동묘지는 이렇게 조성됐다. 선대 왕들의 무덤을 건드리지 않고 새 무덤을 만들려면 무덤 지도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왕들의 계곡’에서 64개의 무덤이 발견됐고, 엑스레이 탐사로 계속 찾고 있다. 100개는 훌쩍 넘길 전망이란다. 석굴 무덤이 이 거대한 계곡 지하에 100개 넘게 있다면, 그게 지하도시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망자들의 도시다.


오전에 람세스 4세, 메렌프타, 세티 1세, 람세스 1세의 무덤에 들어갔다. 그동안 아스완과 아부심벨에서 본 신전들과 달리 확연히 색감이 선명하고 다채롭다. 수천 년 땅속에 묻혀있었던 덕분이다. 람세스 4세 무덤의 첫인상은 예뻤다. 벽면 가득한 상형문자와 그림이 궁전 벽 마냥 화려했다. 거대한 석관까지, 이게 무덤이구나 했다.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렌프타 무덤에는 네모 석관 옆에 파라오 형태의 석관도 있다.

이 석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태양신 라의 아들들. 그러나 이들도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끝내 다 털렸다. 왕국 말기 재정난으로 인한 임금 체불에 열받은 노동자들이 아예 무덤 입구와 도굴 통로를 동시에 만드는 상황도 벌어졌단다.


파라오의 안식이 보호받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들이 남긴 문명은 경이롭다. 우리는 세티 1세 무덤에서 다들 경악했다. 무덤 몇 보는 표는 비싸지 않은데 세티 1세 무덤만 별도로 비싼 티켓을 판매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하의 시스틴 성당’,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는 설명이 아쉬웠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표현을 찾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들어가는 입구의 천정과 벽화부터 예사롭지 않다.

신은 대등한 파라오의 아우라가 대단하다.

기둥마다 입체적인 벽화의 스케일도 어마어마하지만, 색감과 패션도 럭셔리한 느낌이다. 게다가 상형문자 자체가 디자인의 백미. 그리고 문명인 답게 손대지 않고 설정샷만 찍었는데, 저런 엄청난 유적에 손대는게 어렵지 않다. 그냥 막 존재한다. 줄이라도 쳐놓지 않은게 걱정될 정도로.

3300년 전 촛불 켜고 작업했을 텐데 벽화와 부조의 색깔이 미쳤다. 그 어느 브랜드 패션쇼보다 멋지다는 소감도 나왔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 벽화에 누가 제네시스 디자인이 따라 했다고 하던데 어느 미술관에 걸렸어도 감탄할만하다.

천정에는 악어신, 하마신, 소신, 호루스, 신들의 위엄이 이어졌다. 석관을 비롯해 부조까지 다 뜯어간 유럽인들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박물관에 세티 1세 무덤의 흔적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의 탐험가라지만 실상 당대의 도굴꾼들. 수천 년 시달린 무덤은 여전히 아름다워서 조금 더 서글프다.

세티 1세 아들 람세스 1세의 무덤은 바로 옆이다. 붉고 검은색이 선명하지만 아비의 무덤만 못했다.

무덤의 수준은 당대 파라오의 권력에 비례하겠지. 그 차이가 너무 확연하다. (순서대로 썰 풀었지만 고백건대 영상은 3, 2, 1 순서로 감동이 컸다.. 차이가 있긴 있는 게 인생)


무덤에 홀리는 바람에 시간 부족으로 서둘러 가보자고 했던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신전. 보는 순간 모두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구도 가려진 무덤들과 달리 거대한 신전이 산자락 암벽 아래 위풍당당한 자태를 드러냈다. 각 잡힌 신전의 기둥들이 멀리 서봐도 어마어마했다. 3500년 전 이집트 번영의 시대를 열었던 여왕의 흔적은 달랐다. 웅장했다. 어린 후계자를 대신해 섭정 역할을 맡아 파라오가 되면서 남장을 했다는 그녀의 석상엔 턱수염이 있다. 성공한 파라오였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다지 인기는 없었다는 얘기,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가 그녀를 지우려 시도한 얘기 등은 씁쓸하다. 3층 가장 안쪽 석상들 머리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감이다. 왕이 일찍 죽고 왕자가 어릴 때, 후궁인 생모 대신 정비인 왕비가 파라오가 된 건데, 뭐랄까 이건 드라마 같다.


룩소르 동쪽, 산 자들의 신전


나일강 동쪽 룩소르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큰 신전이 있다. '페르 아문', 아문의 집, 즉 태양신 아문-라의 집으로 불렸던 Karnak 카르낙 신전이다. BC 20세기 무렵부터 무려 2000년에 걸쳐 건축된 곳이란다. 세상사 뭐 그리 꾸준히 지었겠나, 한 시절 방치되기도 했을 테고, 한 시절 각광받기도 했겠지. 투트모세 1세가 신전 주변에 거대한 벽을 둘렀고, 하트셉수트 여왕이 14개의 기둥과 오벨리스크를 건설했고, 투트모세 3세가 주위에 벽을 쳤단다. 종교가 바뀌면서 쇠퇴하기도 했고, 하여간에 증축에 증축을 거듭했다는데.. 일단 멀리 신전이 보이는 곳부터 광활한 광장. 입구에 수많은 염소 스핑크스가 도열하고 있다. 이 신전에만 600여 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는데 다 약탈당하고 1992년 대지진에 부서지고, 100여 개 남았단다.

파르테논 신전 정도 멀쩡할 뿐 기둥뿌리와 부서진 벽, 돌무더기만 남은 그리스 아고라에서도 폭풍감동했던 이로서 그래도 꽤 보존된 카르낙 신전은 질과 양, 아름답고 정교한 수준과 건축물의 크기와 전체 신전의 규모까지 놀랍다.  포로 로마노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건 기원전 2000년부터라고. 그리고 포로 로마노는 는 약탈당하지 않았잖냐. 천년 넘게 모래 속에 반쯤 묻힌 채로 서서히 허물어진 세월에도 불구, 이집트 문명의 한 시절을 보여준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미로처럼 돌기둥과 석벽이 이어져서 좀 아득하다.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벽마다 기둥마다 새겨진 그림과 글자들도 아우라가 다르다. 뒷부분에 가면 상태가 좀 더 아쉬운데, 너무 오랜 세월 방치되어 많은 이들이 석재로 쓰려고 떼어가곤 했단다.

오벨리스크도 몇 개 안 남았고, 무너져 밑동만 남은 것도 있지만 하여간에 온갖 것들을 다 품고 있는 신전. 태양신 라 석상을 통해 신의 얼굴을 상상한 이집트인들을 잠시 상상했다. 여성의 눈과 턱선, 남성의 코, 하여간에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녀 구분 없이 빚어낸 모습이다.

작은 키의 오벨리스크에서 도도한 고양이 한 컷. 이집트에서 고양이가 살아온 세월도 7000년이다. 그 시절부터 있던 생명이란다.

신전의 한 켠에서는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금빛 장식의 테이블, 잘 차려입은 웨이터들.. 각종 공연과 행사, 연회, 심지어 결혼식도 열린다는데 참 요지경이다.


그 시절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를 숭배하며, 신들의 보호를 청하며 태양이 뜨는 동쪽에서 생명의 기운을 노래했고, 태양이 지는 서쪽에서 죽음 너머의 영생을 기원했다.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카르낙 신전과 왕들의 계곡은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하늘의 뜻에 따라 7000년 역사를 이어온 나라는 화려한 과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관점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나라다.


지난 8개월 간 #메디치미디어 이집트 예습까지 한 이번 여행팀 이름은 #룩소르학교. 가이드 모히 덕에 이집트의 역사, 신들과 파라오의 관계, 부조와 벽화에 담긴 이야기를 계속 반복학습한다. 진짜 학교였다니. 그저 아름다움에 감탄만 해도 좋겠지만, 난 이게 조금 더 좋다. #마냐여행


가이드 모히 지시대로 찍은 설정샷

찍느라 정신없는 나


엄청나게 학습한 상형문자 알파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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