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년 전 무덤을 보러 왔다. 이집트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고대 로마의 포로 로마노 유적에도 감탄했고, 더 오래된 그리스 아고라의 돌무더기 흔적들에도 감동했지만 그야말로 문명의 기원에 발을 딛는 곳이 이집트다. 카이사르가 포로 로마노에서 쓰러진 건 기원전 44년이고, 그리스 아고라는 기원전 900~700년이라는데, 이집트 역사는 길게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간다. 이집트 왕조는 기원전 3100년 무렵 일대를 통일했고,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무렵 고왕국 시대에 절정이었다. 달을 탐사하는 인류는 아직까지 피라미드의 비밀을 다 풀지 못했다. 파라오의 부활과 영생을 위해 만든 무덤에서 오히려 영원하지 않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모래바람 속에 4500년을 버텨온 돌만 시간이 무색하게 그대로다.
이집트에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 120여 개가 발굴됐는데, 그중 가장 큰 대피라미드가 카이로 기자 지구의 쿠푸 무덤이다. 2.5톤 석재 230만 개를 210단으로 쌓았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데, 가까이서 보면 석재 하나가 성인 가슴 높이다. 146m 건축물이다. 기자에는 쿠푸와 카프레, 맨카우레 등 큰 피라미드 셋과 작은 피라미드 6개가 있다. 태양신 라의 이름을 따서 카프에 라, 맨카우 라 에서 나온 이름이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SOC 사업이다.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나일강은 해마다 범람해 비옥한 흙을 남기는데 물이 빠진 뒤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웠다. 즉 땅이 물에 잠기는 4개월 간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한기였고, 농부들의 일감이 없어 먹고살기 막막할 때 피라미드 공사가 이뤄졌다. 피라미드 인근 노동자들의 거주하던 유적지에는 빵과 맥주를 대량생산한 흔적이 남아있다. 소뼈도 나와 소고기 먹고 일했구나 한단다. 강대한 권력이 시민을 노예처럼 부려 어마어마한 권위의 상징을 남겼구나 싶었는데 나름 사람들을 굶기지 않고 민심을 달래는 통치 전략이었다.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그렇게 나일강이 범람하던 우기에 맞춰 한 해 4개월씩 20년에 걸쳐 완공됐다.
피라미드 옆 사막에서 낙타를 탔다. 말보다 훨씬 키가 크고 꽤 흔들렸다. 솔직히 말해 무섭다. 탈 때와 내릴 때, 즉 낙타가 앞다리부터 긴 다리로 일어섰다 앉을 때 정말 떨어질까 겁나서 손잡이를 꽉 붙잡고 매달렸다. 몇십 미터 터벅터벅 가서 피라미드와 사진 찍고 돌아오는 게 전부인데 이게 놀이기구보다 스릴 넘친다. 그리고 정말 짧은 순간, 경이로운 느낌을 만났다. 낙타의 움직임에 금방 익숙해져 걸음마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는 와중에 새 떼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지평선 위로 사막의 하늘은 쨍하게 빛났다. 가벼운 산들바람에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면, 그저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진 어수선한 풍경과 바람, 흔들림 그 모든 게 찰나의 경험으로 남았다고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그랬다. 5달러에 꼬마에게 상납한 팁 1달러까지 너무 싸게 산 선물이었다.
100 이집트 파운드(약 4200원)를 내면 두 번째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쿠푸의 피라미드에 들어가려면 4배쯤 비싼 티켓을 사고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가이드 모히가 별거 없다며 굳이 가보려면 두 번째를 추천했다. 허리를 굽히고 가지만 기어가지는 않아도 됐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허리 숙인 자세가 힘들어질 무렵 몇 평 되지 않은 작은 공간이 나왔다. 벽에는 1818년 3월 2일 Belzoni 라는 이름이 새겨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차력사로 석상 나르는 일로 시작해 무덤 발굴 탐험가로 이름을 남긴 이란다. 4500년 전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고작 200년 전 탐험가의 이름만 보다니. 정말 별거 없긴 한데 그래도 들어가 본 게 어딘가.
쿠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카프레 피라미드 앞에 그 유명한 대 스핑크스가 있다. 용맹한 암사자의 몸에 파라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코는 풍화에 떨어져 나갔지만, 머리의 코브라 관과 턱수염은 프랑스가 약탈했고, 그걸 또 해상에서 영국군이 빼앗아 현재 영국에 있다. 노략질한 유적을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게 국력인지, 새삼 놀랍다.
아쉽지만 스핑크스를 보고 정말 사진만 찍었다. 스핑크스에게 물 주는 사진, 스핑크스와 뽀뽀하는 사진까지. 피사의 사탑을 들어 올리는 사진만큼이나 뭔가 전형적인 의례 같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 외에 꽤 긴 참배길을 걸어 장례신전에 참배하는 복합 건축이다. 엄청난 공간이라 충분히 즐기지 못해 관광객으로서 더 아쉽다. ㅇㅈㅅ님은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했는데, 관광은 주먹구구 식으로 각자 사진만 찍는 것 외에 경험을 주지 못했다. 안내 표지판 같은 건 없다. 낙타 상인들도, 1달러를 외치며 물건을 들이미는 꼬마들도 자기들끼리 경쟁한다. 참배길을 걷는 코스라든지, 피라미드의 경험을 더 경건하거나 즐거운 관광상품으로 만들 여지가 충분해 보이는데 그게 없다. 낙타 타는데 5달러를 냈지만, 예전엔 100달러 바가지를 쓴 이도 있고, 지금도 30달러 내는 단체관광객들이 있단다. 입국 시 사야 하는 관광비자 가격이 25달러,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더 근사한 경험을 만들지 못하는 건, 정부 탓이다. 주인 없는 땅도 아닌데 공유지의 비극이라니, 그냥 정부가 최고의 관광지 관리감독을 오래된 관행대로 냅두는걸까. 그냥 개발도상국의 모습일 뿐인가. 난 여기까지 와서 뭔 오지랖인가.
저녁 전에 잠시 코스처럼 들린 파피루스 가게. 파피루스를 쪼개고 껍질을 물에 불려 프레스로 눌러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각 며칠씩 시간을 들였으니 옛사람들의 일이란 다 시간과 노력이다.
왼쪽 프레스 기구 뒤에 화병에 꽂힌 게 파피루스.
그림 대신 그냥 파피루스만 사는 일행이 몇 분 계셨다. 그림 좋아하는 이에게 직접 그려보라 특별한 종이를 선물하신다고. 온갖 그림 와중에 저것은 축구팀인가.. 흠
근육질 저분이 뉘신가 물었더니 오시리스 신. (아누비스신 아닌가?) 오른쪽 여걸은 안 물어봤다. 멋지긴 하다.
이날 점심은 피라미드 바로 앞 식당이라 자리에 앉으니 피라미드 뷰. 2층 뷰가 더 좋은데 시장 바닥 같은 동네 분위기까지 비현실적 풍경이다.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자동차와 마차, 사람이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무튼 전채로 나온 병아리콩으로 만든 허머스, 가지와 고수로 만든 소스 바바가누쉬, 피클까지 대체로 짠맛이 강하다. 빵을 찢어 찍어먹다 보니 이러다 메인 못 먹겠네. 돼지를 먹지 않는 아랍이라 양과 닭 바비큐다. 고기 향이 진한 편인데 전채로 나왔던 요거트를 곁들이니 이게 또 별미. 볶음밥 비슷한 걸 피라미드 모양으로 세우다니 귀엽다. 포도잎으로 볶음밥을 싸서 찐 돌마, 지난번 이스탄불 공항과 그리스에서 맛본 거라 괜히 반가웠다. 우유푸딩도 내 취향이다.
문제는 저녁. 체인점인지 식당 이름이 점심과 같다. Abou Shakra. 1947년에 생긴 대단한 집이지만 점심과 대체로 비슷했다. 전채와 디저트는 같고, 메인은 양 없이 어마어마 큰 치킨. 요게 130파운드, 약 5200원. 이집트는 과일이 훌륭하다는데 낮에 마신 진득한 구아버 주스도 좋았지만 저녁의 레몬민트가 상큼하니 내 취향이다. 30파운드, 1200원이더라. 서울 떠난 이후 무알콜 시간이 계속되면서 일행 중 몇 분은 분개하고 있다. 어딘가 술집이 있긴 있다는데.
(결국 호텔 바에서 금단 증세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