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Jan 20. 2023

<이집트 6일차> 사카라에서 옛날 사람들을 만났다

<이집트 0일차> 사우디 거쳐 18시간

<이집트 1일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낙타

<이집트 2일차> 나일강에서 필레신전과 바람을 만났다

<이집트 3일차>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의 OOO

<이집트 4일차> 악어신, 독수리신 신화에 빠져들다가

<이집트 5일차>룩소르, 왕의 계곡과 카르낙 신전에서


나일강 크루즈라니 호사구나


무릎에 힘없는 70대에는 크루즈를 타리라 했다. 하지만 이집트 여행에 크루즈가 포함된 건 태양신 라의 축복이었다. 타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걸.


이집트 남쪽 아스완의 붉은 화강암이 북쪽 카이로 기자의 피라미드에 쓰인 것은 나일강 덕분이다. 나일강은 사막을 적신 젖줄로 비옥한 땅을 주고, 물고기로 식탁을 채우며, 물자를 나르는 길로 이집트인들을 지켰다.


1200km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이어졌고 유적지도 그 길에 있다. 남쪽 아스완-룩소르 3일 여정을 크루즈로 다녀보니, 짐 챙겨 다니는 번거로움이 없고, 호텔방에 쉬면서 화장실 걱정 없이 이동하고, 세끼 뷔페로 취향껏 즐길 수 있었다. 파란 나일강의 은빛 물결과 온화한 1월의 바람은 강멍의 시간을 선물했다.

사실은 바지를 빨아 햇볕과 바람에 말리겠노라 겸사겸사


여행 포스팅을 저런 환경에서 했다니! 오전 여행을 다녀왔더니 써프라이즈가 있을 거라 크루들이 웃었다. 큰 수건으로 만든 원숭이가 방에서 맞아줬다. 다음날은 코끼리, 어느 방은 백조. 수건 예술이라니.

작은 풀을 이용할 날씨는 아녔지만 선상의 티파티는 즐거웠다. 열기구를 타진 못했지만 구경ㅎ 땅속이 멋질 뿐 거친 왕의 계곡을 하늘에서 못 본 게 아쉽진 않다. 살짝 낡았지만 있는 내내 편하게 품어준 알리사호 안녕!


비행기에서 나눈 대화


“현대 이집트의 문제는 정치 같아요. 먹고살만한 산업을 키우는데 실패했어요. 관광도 전략적이지 않아요.”

“맞아요. 60% 정도는 정치 문제여요. 나머지는 농업과 관광 대신 현대 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 문제죠.”


“나일강 주변에 산업단지 가능할 것 같은데요. 국가의 산업정책 전략과 방향성 부재 문제죠.”

“나일강 주변 거주와 농업은 가능해도, 지류가 없는 강에서 수백만 평 산업단지는 좀 힘들었을 수 있어요”


“관광산업을 더 키울 여지가 엄청 많아 보이는데 아쉬워요. 정부가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아요. 스토리텔링을 살려 더 멋진 관광 경험을 제공할 수 있잖아요.”

“관광 인프라가 없어요. 주요 유적지 화장실조차 유료인 데다, 비용도 1달러에 3~6명 제각각이고요. 국가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요.”

“독일도 지방에서는 대부분 화장실이 유료입니다”


“공항에서 같은 검색을 두 번씩 하는 건, 일자리 창출이 아니어요. 차라리 라인을 늘려 이용자 편의도 늘리면서 해결할 수 있을텐데요.“

“정부가 하는 일은 계통화, 체계화여요. 공항 경비대나 내무부? 같은 일을 다른 조직이 하는 건 영역 다툼이죠. 국가가 통합된 권력이 아닌 겁니다.”


“1952년 군주제를 밀어내고 나세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군부 독재가 이어졌어요. 아랍의 봄 저항은 성공하지 못했고요. 시민사회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힘에 부쳤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시민사회는 어떻게 성장할까요?”

“시민사회가 성장하려면 언론, 종교, 지식인들이 더 애써야 할 텐데요…”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니 엘리트들은 해외로 나가요. 아니면 경찰이나 군인이 되어 경찰국가에 기여하겠죠”

“정부의 부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권력의 과잉입니다. 정부는 폭력의 독점체가 됐어요. 검경 물리력으로 통치하는 것만 신경 쓰는 거죠.”


어딜 가나 “1달러”를 외치며 쫓아오는 이들을 만난다. 온갖 수공예품을 내민다. 학교에 있어야 할 어린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요 며칠 기꺼이 호구가 되어 이것저것 사면서 넘버원 코리아 부자 기분을 내고 있다. 마냥 유쾌할 리 없다. 어느새 선진국 국민이 된 나는 가난한 꼬마에게 뭔가 베푸는 기분으로 개발도상국 빈곤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7000년 역사 중 최소 5000년은 세계 최고의 문명을 발전시킨 나라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유적에 “외계인이 만든 것이 분명하다”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뭔가 성에 안 찬다.

카르낙 신전에서 만난 소녀들의 옷차림은 내 어릴 적을 연상시켰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진보정부 시기 실제 높은 성장률을 이어갔다. 한국은 성공 모델이다. 룩소르에서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 ㅇㅈㅅ님과 대화는 언제나 그렇듯 내 시야를 넓혀줬다. 일단 까먹기 전에 중간 정리 한다.

룩소르는 이집트의 관광수도. 나일강 서쪽 사막 저편에 왕의 계곡이 보인다. 카이로는 빽빽한 도시다.


비행기에서 보니 룩소르는 꽤 발전한 도시, 아무렴 관광수도인걸. 나일강 서쪽은 사막이지만 동쪽은 초록초록 하다. 동쪽에서 굽어 살피는 태양신 라 만세. 하늘에서 봐도 나일강 서쪽 사막에 왕의 계곡이 입체적 존재감을 과시한다. 카이로는 아파트가 빼곡하다. 나일강 주변 아파트 월세가 월 200만 원 수준이라 했던가. 경찰과 군인 초봉이 약 80만 원, 대학교수를 비롯해 월 30만 원 버는 이가 훨씬 많다는데 하여간에 낯설지 않은 사회 구조다. 나일강의 기적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이집트 사람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대 이집트 법무장관은 어떤 선물을 챙겼을까?

 

Saqqara 사카라는 카이로 기자에서 멀지 않은 유적지다. 넷플릭스 ‘사카라 무덤의 비밀’ 보면서 괜히 친근해졌는데 며칠 전에도 새 미이라가 나왔다는 곳이다. #룩소르학교 팀의 관심사를 반영해 추가한 일정이라는데 결론적으로 넘넘넘넘넘 재미있다. 역시 사람 사는 얘기가 최고다.
 
왕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4300년 전 티티 파라오 시절 Chief of justice and Vizier 였던 Kagemni 카젬니 무덤을 찾았다. 가이드 모히는 그가 군인이었다는데, 법무장관? 총리? 영문 위키를 보면 왕의 사위였던 귀족이다. 규모 면에서는 소박한 그의 무덤은 내용에서는 단연 압권이다. 4300년 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일단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이다. 나일강에 많다는 메기와 뱀장어, 그런데 오징어도 있네? 북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홍해가 있는 이집트에서 바다 해산물도 밥상에 올렸던 모양이다. 어떤 이는 옷을 입고 있는데 어떤 이는 성기가 보인다. 알고 보니 아이들이다. 그 시절 7세까지는 벗고 살았단다. 벽화의 아이가 그 나이로 보이진 않지만, 넘어가자. 아이도 노동을 했다는 건지, 그것도 넘어가자. 일을 배웠겠지.

메기는 메기라니까 아는 거고. 뱀장어는 알아봤다. 오징어도.

왼손으로 물을 떠마시는 남자가 있다. 그 시절엔 나일강 물을 그냥 마셨겠지, 맑았겠지. 소젖도 짠다. 그 시절 맥주 외에 중요한 음료였겠다. 사람들은 큰 물고기는 줄에 꿰어 나르고 작은 물고기는 파리루스로 만든 바구니에 담았다. 당시엔 화폐가 없었고, 물고기를 주고 야채를 받는다.

어부들이 열일하고 물물교환하는 장면
소젖 짜고 목동들이 소 몰고
파피루스 바구니에 담은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는 고리에 끼워 직접 들었다. 물고기가 대체로 실하다.


사람들이 카젬니에게 선물을 가져온다. 사슴, 쇠고기, 오리, 비둘기, 파피루스, 파와 야채. 비둘기 고기는 현대 이집트인들도 즐겨 먹는다고. 건물 옥상에 비둘기, 닭, 오리, 토끼를 기르기도 한단다. 비둘기가 정력에 좋다는 둥 넘어가자. 현대 이집트의 부자들은 타조와 사슴 고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양과 염소, 사슴, 오리, 비둘기 등 산 동물이나 파피루스, 파는 그렇다치고 쟁반 위 소 머리라니

다시 고대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하마도 잡는다. 강에서는 난리다. 가장 앞의 하마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다. 알고 보니 비명 같다. 악어가 그를 물었다. 그 악어를 뒤의 하마가 물었다. 또 다른 벽화에서는 하마가 입을 벌려 악어 머리를 삼키고 있다. 이러니 악어신 외에 하마신도 있지. 하마, 세다.

악어가 하마를 물어 비명을 지르고, 그 악어를 하마가 또 물고. 오른쪽 벽화에선 하마가 악어 머리를 통째로..


남자 둘이 박수를 친다. 여자들은 다리와 손을 하늘 높이 올리고 있다. 춤추는 거란다. 이건 결혼식이라나. 카젬니는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당시 명품이다. 벽화의 손톱과 발톱이 인상적이다. 네일 케어를 받는 마냥 곱다.

여자들 다리 김.. 호랑이 가죽은 당시 아프리카 수입산 사치품. 손톱 발톱은 진짜 표현에 진심인 시절이었다


피라미드를 만드는 거대한 석재는 어떻게 옮길지 힌트도 나온다. 커다란 맥주병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밑에는 진흙을 깐다. 한 사람은 진흙에 물을 뿌려 부드럽게 만들고 두 사람은 나무판을 끌고 간다.


파라오의 피라미드나 신전에는 파라오의 위대함을 칭송하거나 신들과 함께 있는 벽화가 주로 보였는데, 카젬니 무덤은 당시 생활상을 보여준다. 그가 그걸 원했을까? 몰입해서 설명 듣다가 바깥공기를 마셨다. 쫑알쫑알 더 묻는데 가이드 모히가 짧게 말한다. “벽을 보세요. 유럽 인들이 다 뜯어갔어요.” 벽화가 벽 위쪽 아주 조금 남아있다.

위에 네 군데, 아래 약간..저게 남은 벽화의 전부라고? 다 뜯어갔다고? 


 부근에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다. 입구가 보이지 않는데 지하 통로를 지나 92 계단을 내려가면 피라미드 지하에 미이라 석실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조세르의 피라미드. 조세르는 이집트 고왕국 초기 파라오로서 피라미드식 무덤의 시초다. 그 이전 파라오들은 직육면체 형태의 건물에 묻혔다. 실제 피라미드의 아버지? 는 영화에서 이상한 악당으로 나왔지만 조세르의 재상 임호텝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대신관, 의사, 건축가였다니 당대 천재란 말로 부족하다. 이집트 문명이 외계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마당에 임호텝이 열쇠 아닌가?

옛날엔 계단 없이 사다리로 다녔단다. 옆의 건축물 저 기둥 사이 석상이 있었다는데 이젠 흔적 없다.


 무튼 이 역사적 계단식 피라미드는 사실 껍데기만 남았다.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었던 석관만 남았단다. 시실 밀라비라는 이가 1928년에 발굴해 구리, 순금, 상아, 터키석으로 장식된 벽화 등을 모조리 떼어갔다고 한다. 무덤 이웃(?)인 카젬니 무덤 벽화까지 살뜰하게 떼어간 게 밀라비다.
 
 조세르의 피라미드 앞에 코브라 상에서 한 컷. 이들은 태양신 외에 코브라신에게도 기도했다. 뱀은 사막에서 무서운 동물이다. 뱀 잡아먹는 고양이를 추앙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조세르의 피라미드 저 건너편에는 스네페루 왕의 피라미드도 둘이나 보인다. 하나 짓다가 각도가 틀려 다시 지었다던가. 조세르가 계단으로 실험하고 스네페루가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스네페루 아들인 쿠푸 파라오가 현재 이집트에서 가장 큰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남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멀리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보인다.

스네푸르 피라미드 두 개가 사카리 발굴 터 저편에 보인다. 낙타 뒤에 작게 보이는게 쿠푸의 대피라미드

사카라에 왔으면 멤피스 박물관을 간다. 거대한 람세스 2세 동상이 발견되면서 박물관이 생겼다. 건물에 들어가면 람세스 2세 옆얼굴이 보인다. 다리가 잘린 상태라 8m, 전체 길이 10m였을 석상이다. 거대한 돌 하나로 만들었다는 건 둘째치고, 잘생겼다..


이날 점심은 사카라의 식당 Alezba Village Tent. 입구에 두 여자가 빵을 굽는다. 한 사람은 반죽을 하고, 한 사람은 화덕 앞에서 얇고 구수한 풍미의 빵을 계속 구워낸다. 후무스와 타진을 곁들여 빵을 먹고 중동식 미트볼인 양 코프타와 양갈비 구이가 화로에 나왔다. 맥주까지 곁들여 다들 흡족했다.

저녁은 무려 나일씨티. 나일강의 세빛둥둥섬 비슷한 곳 같다.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가 보인다. 아쉽게도 음식은 쏘쏘. 빵은 후무스에, 흰밥 듬뿍은 ㅅㅎ님 가져오신 고추장 나눠먹는 재미가 있었으나 감튀 듬뿍은 무알콜 식당에서 어쩌라고.


이집트에선 목요일이 불금이다. 젊은이들은 카바레 간다고 설명하던 모히가 "여자가 왜 거길 가요?"라고 한다. 더구나 결혼한 여자가 왜 가냐고 한다. 뭐지? 이집트 카바레의 정체는? 다 필요 없다. 호텔이 넘 좋아 방콕 즐기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호텔에 언제 묵어보겠나. 흥.

카이로 다운타운 야경은 화려하다. 호텔 앞에 스포츠 컴플렉스? 수령장과 코트가 있다.
호텔 바 구경.

사카라에서 전통 카펫 스쿨에 잠시 들렸다. 예쁘긴 예쁘다. 하도 '원 딸러'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100달러 하는 작은 카펫 가격에 기겁. 1층 공장에서 미친 속도로 카펫을 짜는 이들 중에는 꼬마가 여럿이다. 스쿨이라, 배우러 왔겠지? 노동은 아니겠지?

와중에 카펫 스쿨. 비싼데 예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집트 5일차>룩소르, 왕의 계곡과 카르낙 신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