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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1. 2023

<이집트 7일차> 써티 파이브? 알렉산드리아의 그녀들

<이집트 0일차> 사우디 거쳐 18시간

<이집트 1일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낙타

<이집트 2일차> 나일강에서 필레신전과 바람을 만났다

<이집트 3일차>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의 OOO

<이집트 4일차> 악어신, 독수리신 신화에 빠져들다가

<이집트 5일차>룩소르, 왕의 계곡과 카르낙 신전에서

<이집트 6일차> 사카라에서 옛날 사람들을 만났다


고속도로도 잠시 세우는 나라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이었다. 안개 때문에 도로가 통제됐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여 도로는 빽빽한 주차장이 됐다. 카이로 시내에선 볼 수 없는 차선까지 있다고 좋아한 도로였는데 라라랜드 첫 장면처럼 서 있는 차들 사진을 찍게 될지 몰랐다.

이것이 이집트, 통제 불가한 변수가 많단다. 이집트 현지 여행사와 직거래하면 약속시간에 버스가 안 나오는 건 약과, 시행착오가 많다는 설명이 실감 났다. 유럽 여행사가 깐깐하게 거르면서 후불제로 조련한 업체는 그나마 낫다고 한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보유국인데 19년 기준 관광객 1300만 명. 9000만 명인 프랑스는 그렇다 치고 4000만 명이 찾는 대만에도 밀린다. 이런 게 아쉽다. 훨씬 펄펄 날 여지가 처음 보는 관광객 눈에도 보여서.


도로 주차장에서 지루하진 않았다. 옆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살살 닦는 남자의 몸짓에 흥이 느껴졌다.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런 시간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이구나.

마냥 재미나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몇 백 미터 앞 화장실 원정대가 구성됐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앉아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휴게식당 화장실은 겪어보지 못한 짜릿함을 줬다고 해두자. 돈을 받지 않는 화장실이라 오히려 놀랐는데, 관광객들 상대가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끼리 써서 그런 걸까. 화장실 줄 서다 카펫으로 가린 주방 안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 모드.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L선배가 말렸다. “원래 주방 보면 음식 못 먹어요”라며 껄껄 웃는 소리가 이어졌다.

차를 파는 키오스크 쥔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차를 내준다. 차는 다행히 다시 출발했다. 휴게식당 슬쩍 살피며 잠시 심난했으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 가보자.


꼬여버린 알렉산드리아 로제타 여정


예상대로 모든 게 굴러가면 그게 여행이겠나. 3시간 예상했던 카이로-알렉산드리아 여정엔 복병이 많았다. 안개 핑계로 고속도로? 가 통제되면서 5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정이 지연되면서 알렉산드리아 대신 60여 km 떨어진 라시드에 급히 식당을 잡았는데 구글맵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가이드가 급히 찾은 다른 식당에서 피자가 나온 건 오후 3시였다. 라시드, 다른 이름으로 로제타, Rosetta에 간 건 그 유명한 로제타석 관련 박물관에 가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 박물관이 코로나 이후 운영을 재개하지 않은 사실을 놓쳤다고 한다. 로제타까지 갈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집트 고대 문자와 그리스 문자 등이 함께 새겨져 있어 끝내 이집트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됐던 로제타 석은 1799년 나폴레옹 원정대가 발견했다. 거대한 화강암 조각이지만 사실 아름답다. 로제타 석은 현재 영국 박물관에서 귀한 대접받고 있다. 이집트에 돌려달라는 요구는 당연히 묵살됐다. 알렉산드리아의 로제타 박물관에 갔으면, 그 역사적 의미와 함께 억울함도 엿볼 수 있었던 건지, 알 수 없게 됐다.  

영국 박물관의 로제타 석


알렉산드리아, 문명의 중심


알렉산드리아의 호텔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반. 카이로에서 출발한 지 8시간 만이었다. 바닷가 호텔에서는 지중해가 보인다. 해양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잘 나갔던 시절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다. 기원전 4세기 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난 뒤 부관이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아 이집트의 새로운 왕조를 시작했고, 마지막 왕조가 됐다.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은 이집트 도시로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이 됐고,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의 중심이기도 했다. 또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갖춘 지식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호텔 방 뷰, 호텔 앞 뷰. 지중해다!


이집트 역사 속에 알렉산드리아도 곡절 많았다. 클레오파트라 사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와 함께 쇠퇴했다.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7세기부터는 아랍의 영향에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 이슬람 문명이 더해져 아라비아 문화와 학문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아시아와 연결되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으로 다시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12세기에 세계 28개 국가나 지역의 통상 대표가 상주했다니 고려를 아는 우리에겐 상상 너머의 이야기다. 19세기엔 터키와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호텔 인근의 궁전이 오스만 제국 총독이 여름별장으로 지은 곳이라 했다. 알렉산드리아까지 와서 버스만 탄 날로 남기고 싶지 않아 룸메인 ㅎㅅ님과 산책에 나섰다.


몬타자 궁전은 25 이집트 파운드, 약 1000원 입장권을 판매하는 관광지인데 앞에 횡단보도가 없었다. 이집트 도로엔 차선도 신호등도 없다. 차는 쌩쌩 달린다. 요령껏 건너는 법을 까먹었나 싶을 정도로 쫄아서 간신히 건넜다.
 
여행의 묘미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해 질 무렵 야자수와 소나무가 늘어선 정원은 신비했다. 적절한 불빛이 포근했다. 풀밭 곳곳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남자들은 없었다. 남자들끼리 물담배 피우던 낮의 식당이 떠올랐다.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는 공원은 일단 마음이 편했다. 공놀이하는 꼬마는 귀엽게 애교를 부렸다.

오후에 식당에서 물담배 피는 남자들

궁전도 기대 이상 예뻤다. 튀르키예와 피렌체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는 설명이 있던데 총독의 여름별장은 이 정도구나.


알렉산드리아, 쇠락한 거리


호텔로 오던 길, 알렉산드리아 도심 주거지는 낡고 초라하게 시든 모습이었다. 곳곳이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은 거칠었다. 좁은 창문엔 차양이나 카펫을 쳐 햇빛과 바람을 막는 듯했다. 어느 도시에서는 창문에 내건 빨래가 싱그럽고 예쁠 때도 있는데, 이 동네 빨래는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아마 골목 자체가 색깔과 생기를 잃어버린 탓일지 모르겠다.


여행가 비단님은 GDP 기준 이집트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들의 집과 거리가 더 깔끔하다고 했다. 이집트는 아랍의 맹주 위상에 맞지 않는 민낯을 보여줬다. 카이로의 다운타운, 한국만큼 집값 비싼 뉴카이로는 분명 세련됐지만 올드 카이로, 그리고 제2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동네 꼴이 말이 아니다. 그 많은 관광수익이 어디로 새어나가고 있는 걸까. 암만 생각해도 이건 행정에 문제가 있다. 사람들의 주거 기본권에 더 신경 써야 마땅하다.


늦은 점심을 먹은 식당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 포크 등 전반적인 풍경이 아쉬웠다. 쫄깃한 시골닭 숯불구이는 훌륭했지만 해체할 도구를 주지 않아 손으로 찢었다. 냅킨이 없어 빵으로 손의 기름을 닦았다. 힘 없이 날아다니는 파리가 많았다. 저녁은 지중해의 물고기를 요리해 줬는데 비늘을 벗기지 않았다. 아마추어 주부인 나도 굴비 한 마리 비늘부터 싹싹 벗기는데, 전갱이 혹은 삼치를 닮은 흰 살 생선의 비늘이 너무 크고 딱딱했다. 사실 이런 날도 있어야 어제 낮 식당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아는 거다.


당신? 써티 파이브?
 

여행의 묘미? 반전은 지금부터다. 우리로 치면 해운대 주상복합 같은 분위기의 동네가 몬타자 궁전 앞에 있기 때문인지 궁전 정원 풍경은 정말 달랐다.

지중해 바닷가 부근, 궁전 공원 앞 주상복합이라니

처음에는 낡은 동네 시민들이 휴일인 금요일 저녁에 바닷가나 궁전 공원으로 놀러 왔나 했는데 그녀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왓츠유어네임? 그네를 타고 있던 루디와 수디는 자매였다. 이름을 묻고 몇 마디 나왔다. 헤어졌는데 우리를 따라왔다.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알러뷰 라고 했다. 키도 150 정도라 이제 중학생인가 했더니 트웬티란다. 트웰브? 아니 트웬티란다. 이런 미안해라. 아가씨들을 몰라보다니. 그네를 타는 아이들로 저녁의 공원은 나름 북적였다. 아이들의 높고 유쾌한 목소리 자체가 오랜만이라 마음이 풀어졌다. 아이들 노는 것만 봐도 이렇게 좋은 나이인가.


지나가는데 한 무리의 여자들이 손을 흔든다. 오라고 손짓도 하는데 그냥 손 흔들고 말았다. 우리도 공원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더니 그중 2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깔깔대고 웃는다. 뷰티풀, 뷰티풀. 같이 가잔다. 과자와 빵, 사과와 오렌지, 바나나를 챙겨서 놀러 온 이들의 이름은 이매인, 라우다, 엘레, 나나, 라미아, 에스메이.. 다짜고짜 왓츠앱 큐알을 내민다. 친구 맺자는 제안이다. ㅎㅅ의 스카프는 이집트 스타일로 머리에 감아주고 핀도 꽂아줬다. 이들은 쉴 새 없이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별 것 아닌 것에 웃는 여고생들인가 했더니 스무 살이란다. 내게 몇 살이냐고 묻길래 맞춰보라 했더니 “써티 파이브?” 아아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와서 이런데 빵 터지는 나.


이들은 한국에 관심을 보여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뒤늦게 꼬레아라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왓츠유어네임, 뷰티풀, 알러뷰 정도가 그들의 주요 대사다. 나 같으면 그런 영어로 외국인에게 말 걸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아라비아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계속 과자를 하나씩 건네며 먹으라 했고, 계속 사진을 찍고, 계속 웃었다. 왜 그러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선 동양인이 신기해서? 낯선 외부인에 대한 호기심? 적극적으로 환대하는 그녀들 속내를 모르겠지만 다정하고 친절했다. 난 왓츠앱을 지운 탓에 그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지는 못했다.
 


이날 공원의 시간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집트에 온 뒤 오리온 별자리 설명을 매일 들었는데, 이 공원에서도 별 셋 나란히 늘어선 오리온을 만났다. 어두운 하늘인데 사진은 밝게 나왔고, 파란 하늘에 구름도 예쁜데 똔똔똔 별 셋이 선명하다. 알렉산드리아는 내일 좀 더 만나보자. #마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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