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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8. 2023

<이집트 4일차> 악어신, 독수리신 신화에 빠져들다가

<이집트 0일차> 사우디 거쳐 18시간

<이집트 1일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낙타

<이집트 2일차> 나일강에서 필레신전과 바람을 만났다

<이집트 3일차>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의 OOO


악어신 모신 코몸보 신전의 디테일한 기록


“이집트의 건축은 책입니다

ㅇㅈㅅ님 말씀이 귀에 꽂혔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악어신을 위한 신전에서 벽화의 이야기에 푹 빠져 정신 못차리고 있었다. Kom Ombo, 코몸보 신전은 악어신 소베와 독수리신 호루스를 위해 프톨레마이오스 6세, 7세가 만들었다. 기원전 2세기 일이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클레오파트라 1세의 아들로, 여동생인 클레오파트라 2세와 결혼했다. 이런 개족보, 고대엔 흔했다. 우리가 아는 그녀는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남는건 사진이라고

아스완에서 뱃길로 나일강 따라 하류로, 북쪽으로. 코몸보 신전은 배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면 바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냥 보통 신전인줄 알았으나 고대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유적과 달리 이집트는 상형문자의 나라. 벽마다 기둥마다 서사가 펼쳐진다. 지혜의 신 토트, 달의 신 콘수, 독수리 호루스신 엄마인 이시스 여신, 암사자 머리를 한  프톨레마이오스 파라오를 지키고 있는 장면, 악어신 앞에서 파라오에게 상이집트, 하이집트의 상징 관을 쓴 이가 통일된 관을 씌우는 장면의 부조가 너무 생생하다. 손톱, 발톱을 비롯해 아들보다 가슴이 처진 아버지 신이라든지, 여신의 젖꼭지까지 도드라진다. 기둥의 윗부분은 로터스(연꽃), 대추야자 등의 모습을 담았다. 로터스는 태양신을 숭배해 아침에 봉우리를 열었다가 태양이 지면 닫는 꽃이다.

지붕 안쪽은 색깔이 남아있어 화려한 당대를 떠올리게 한다.


단순한 조각 같지만 원래는 색깔도 더했다. 비바람을 피한 탓인지 지붕처럼 남아있는 부분의 안쪽에는 붉고 검은 색감이 비교적 선명하다. 안쪽 석벽의 조각에는 당시 신에게 바친 제물이 새겨져있다. 포도, 연꽃, 대추, 가지, 비트에 더해 아랫쪽은 맥주병이다. 더 놀라운 것은 미이라를 만드는 수술도구 그림. 메스와 관장도구, 집게, 약저울, 유리 부황기, 가위, 스폰지까지 세세하다.

완쪽은 신전의 제물들과 그 아래 맥주병. 오른쪽 사진은 미이라 만드는 수술도구들


코몸보 신전의 앞에 아름다운 기둥들이 중간에 싹둑 잘려나간 채로 남아있었다. 전란의 상흔인가 했더니, 사탕수수 공장을 짓기 위해 석재를 뜯어냈다고 한다. 불과 70여년 전 일이다. 신전 뒷편에도 뜯겨나간 흔적이 많다. 고대 이집트 왕조가 멸망한 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성전을 짓는데 재료로 가져갔단다. 석재의 재활용이자 기존 신앙을 말살하는 과정이다. 2200년 전 왕과 신들의 이야기를 빼곡히 채워넣은 신전은 그 이후의 세월도 그대로 보여준다. 이집트의 건축은 책 맞다.

기둥이 밑둥만 남았다. 사탕수수 공장 짓느라 석재로 썼다니


신전 출구 쪽엔 악어 갤러리가 있다. 악어는 무시무시한 힘의 상징이자 한번에 25~80개 알을 낳는 다산의 주인공. 고대 이집트인들은 악어신 소베크를 모셨을 뿐더러 악어 미이라까지 남겼다. 나일강에서 악어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염원과, 악어신을 건드리면 무섭다는 공포가 엮이는 상황에서 파라오는 악어신의 권위를 빌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쫓아다니다 영상 기록 남길 시간을 확보못해 헐레벌떡 혼자 뛰어가 후다닥 찍고 다시 일행들을 쫓아갔다. 헉헉 숨소리가 당황스럽다. 저질체력. (브런치엔 영상을 못 올려 아쉽)

무튼 남는건 사진


독수리신 호루스의 성지, 보존 잘된 에드푸 신전 벽화가 뭉개진 이유는


또 신전이냐 하면 곤란하다. 신전마다 서사가 다르다. 건축도 다르다. 사연도 다르다. 우리가 불핀치의 그리스로마 신화에만 익숙해서 그렇지, 7000년 역사의 이집트 신화가 간단할 리 없다. 

코몸보 신전에서 70km 정도 나일강을 내려가면 Edfu 에드푸 신전이다. 독수리신 호루스가 삼촌 세트신을 응징한 곳이란다.

여기도 집안사가 좀 복잡한데, 하늘의 여신 누트가 대지의 신 게브와 2남2녀를 낳았다. 그 중 아름다운 누이 이시스와 결혼한건 나일강의 수호신 오시리스, 그를 질투해 형제 오시리스를 찢어 죽인건 사막의 지배자 세트다. 호루스는 이시스가 마법으로 남편을 (혹은 남근을) 부활시켜 얻은 아들이다. 그는 아비를 죽였던 삼촌 세트와 80년간 전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였다. 오시리스가 사후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신으로 신화를 이어가는 건 또 다른 얘기. 호루스와 세트 싸움만 해도 이야기가 엄청나다. 조금 검색하다가 호루스를 괴롭히려고 세트가 덮치려다 된통 당한 얘기가 나와 갸웃. 정액을 누가 누구 뱃속에 집어넣느냐가 이기고 지는 문제라니. 개족보 집안에 근친과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시대의 신화는 현대인에게 난해하다. 무튼 에드푸 신전은 호루스가 승리한 장소, 성지순례가 이어진 곳이다. 기원전 2세기 무렵, 프톨레마이오스3세부터 12세까지 180년간 건축했다. 특히 다른 신전에 있던 호루스 아내인 하토르 여신상을 이 신전으로 옮겨와 밤을 보내는 행사는 거대한 제례. 이때 아스완 사람들은 3일 동안 돛단배를 타고 에드푸에 와서 3주간 놀았단다. 여러 신들의 아내였고, 호루스의 아내이기도 한 사랑의 여신 하토르의 축복 속에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날들이었다나.


에드푸는 기원전 3세기인 237년부터 57년까지 180년에 걸쳐 건축됐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부터 12세까지 관여한 왕이 여럿이다. 현재 남아있는 신전 중 두번째로 크고, 오랫동안 모래사막에 묻혀 있었던 덕에 보존이 잘된 걸로 유명하다. 18세기 말 프랑스 군인들이 찾아냈다는데, 다른 신전과 마찬가지로 곳곳의 문은 흔적만 남았다. 나름 아프리카 수입산 소나무에 순금, 은으로 장식한 문짝들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군인들이 모조리 약탈했다.

독수리 상에 감탄하며 신전 안으로 들어갔더니 파라오와 호루스신, 호루스신과 하토르여신의 얼굴이 흉하게 훼손됐다. 끌로 다 파낸 모양이다. 사다리를 놓고도 어려울 높이의 벽화까지 모조리 손댔다. 이집트 왕조 멸망 후 기독교 사제가 신전에 거주하면서 신전 내부의 이교도 신의 얼굴을 지웠다. 와중에 파랗고 붉은 채색 벽화가 일부 남았다. 당대에 에드푸 신전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도 못하겠다.

멀쩡한 호루스신과 하토르 여신


벽화를 저렇게도 훼손한다
훼손한 스케일도 너무 어마어마해사 화가 나고 슬프다. 종교란


에드푸 신전으로 가는 길은 선착장에서 마차로 이동한다. 중간에 흙먼지 이는 도로 위로 마차와 자동차, 삼륜차, 툭툭, 오토바이가 차선도 없이 오가는데 이것이 난장판, 아수라장이구나, 이래서 다들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리는구나, 이집트의 스카프는 정말 다목적이구나 실감했다. 그래도 재미있다는게 중요하지.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꽤 큰 운동장에 모여있더라. 귀여운 아이들이 안녕 인사도 했다. (잘못들은게 아니기를). 맨발로 뛰어가는 소년, 1달러 외치며 물건 파는 소년들만 보다가 태권도복 갖춰 입은 아이들을 보니 뭔가 또 마음이 그렇더라. 악어신이든 독수리신이든, 암사자신이든, 자칼신이든, 하늘의 신, 땅의 신, 태양신의 수호가 이어지기를.


와중에 여기서도 남는 건 사진. 모히가 시키는대로 설정샷.

와중에 이 작은 마을 에드푸에도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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