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떠나며
<이집트 7일차> 써티 파이브? 알렉산드리아의 그녀들
<이집트 8일차> 알렉산드리아, 그 문명의 아우라
#이집트_epi26
이집트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원딸러”. 가는 곳마다 주로 소년들이 뭔가 조잡한 물건을 내밀면서 외친다. 인건비 싼 이들을 갈아 넣은 원딸러 공예품들이다. 나는 필레신전으로 가는 배 안에서 꼬마에게 2달러 나무 팔찌를 샀다. 그 소년의 미소에 “세상에서 가장 신난 호구”가 됐다. 어느 신전 입구에선 스카프를 파는 소년을 흘깃 보고 “저 카키색은 예쁘네요”라고 일행에게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 소년이 졸졸 쫓아왔다. 카키란 단어를 알아들었나? 결국 10달러 부르던걸 5달러에 샀고, 얼마 뒤 비슷한 물건을 3달러에 파는 이를 만났다. 나일강 돛단배 펠루카에서 누비아 인들이 노래를 불러준 뒤 포장을 젖힌 좌판에서 원딸라 투딸라 나무 조각을 샀다.
호구 놀이였다. 이집트에선 내게 놀이였다. 손해 범위를 고작 몇 천 원 수준으로 제한하고 흥정하는 놀이. 그들에겐 엄중한 밥벌이인데 나는 선심 베푸는 자뻑까지 느꼈다. 쇼핑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 자잘 자잘 신나게 사면서 어딘지 불안했던 것도 인정하자. 왜 소년들은 저런 생계에 내몰려야 할까? 학교에 갈까? 지금 방학일까?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게 나쁜가? 소녀들은?
왜, 라는 질문은 세상을 한 꺼풀 더 탐색하는데 중요한 도구다. 왜 소년들은, 왜 이집트 남자들은, 왜 이집트 여자들은, 왜 박물관은, 왜 공항 직원들은, 왜 식당들은, 왜 정부는…
카이로의 마지막 일정으로 칸엘칼릴리 시장에 들렀다. 시장통 유명한 찻집이 1700년부터 영업한 곳이란다. 그동안 길거리 상인 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카이로 박물관 기념품샵, 카이로 호텔 샵 정도 둘러봤기에 물건 보는 요령도 생겼다. 흥정하는 요령도 늘었지만 시장에 몇 안 되는 정가제 가게가 맘 편했다. 무엇보다 시장 구경만큼 재미난 게 있으랴.
시장 좁은 골목 사이로 멀리 첨탑이 보였다. 멋진 풍경인데 뭔가 거슬렸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밸리댄서 의상이 걸려있었다. 늘 굴곡진 마네킹에 입혀놓고 파는 의상이 시장 곳곳에 있다.
가이드 모히의 설명에 따르면, 아가씨들이 밸리댄스를 배우는데 결혼하면 오직 남편을 위해서 춤을 춘다고 했다. 거리에선 주로 니캅, 눈만 빼꼼히 내놓은 차림이거나 스카프를 두르면서 집에서는 다 벗겨놓은 차림으로 밸리댄스를 춘다고? 의상에 일관성이 없지 않은가? 목숨 걸고 히잡 저항에 나섰던 최근 이란 사태를 보면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근데 남편 외 누구의 눈에도 살을 드러내지 말라는 교리가 전통이라고? 가스라이팅 아닌가? 더운 나라에서 온몸을 칭칭 감고 장갑까지 끼고 다니는 걸 여자들도 좋아한다고? 이집트엔 얼굴을 다 드러내고 스카프만 두른 여자들이 꽤 있었지만 사우디는 더 많이 감추는 듯. 카이로-리야드 비행기 옆자리 여성도 눈만 내놓은 의상을 여러 벌 껴입고 있었다. 화려한 금박 자수가 놓인 까만 겉옷 안에 손목에 털이 살짝 드러나는 옷을 보니, 와중에 패션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가. 어떤 이슬람 여성들은 스스로 원한다고, 자유의지에 따라 그런 차림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안다. 선택권 여부도 중요하지만, 관습이 가스라이팅 되는 건 역사에 흔하다. 한국 옛 여자들은 남편이 죽을 때 따라 죽어야 열녀였다. 1980년대까지 여자가 정조 잃고 자살한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게 전통이고 문화인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하지만, 아랍의 여성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한 국가들은 여성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권위주의 국가의 균열은 젠더 이슈에서 나오지 않을까?
아랍의 봄이 다시 온다면, 축구로부터 시작될 것 같다고 ㅎㅈ님은 말했다. 스포츠는 권위주의 국가의 국민 통제 도구이기도 하지만, 축구를 통해 애국심이 커지면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길 거라 했다. 카타르 월드컵을 기점으로 왜, 우리 정부는 다른 정부와 다른 것인지 질문하기 시작할 거라 했다. 왜,라는 질문이 이렇게 중요하다.
나는 아랍의 여자들이 ‘나의 해방일지’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으면 한다. 추앙 나누며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고, 어제와 다른 나를 생각하면 좋겠다. 왜 아랍의 여성들만 다른지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권위주의 정부는 제복을 활용한다.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 기관총을 차고 다니는 관광지 군인, 새치기 아랍 부자를 눈감아주는 공항 검색대 직원까지 유니폼에 권위가 있다는 걸 오랜만에 알게 됐다. 옷이 이렇게 중요하다. 19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던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이 교리에 따라 니캅이나 부르카를 쓰고 이제 학교도 못 간다. 전통과 교리란 게 이렇게 무섭다. 천년만년 그런 건 아니다. 이란도 1979년 전에는 달랐다.
피라미드가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서 만들었다는 오해를 푼 것은 이번 여행의 스스로 성과다. 파라오도 민심을 살폈고, 강이 범람하는 농한기 4개월 간 피라미드 건축으로 SOC 일자리를 만들었다. 대신 카젬니는 자신의 무덤에 온갖 신들 대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조각하도록 지시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이 도서관을 짓고 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발견을 하도록 지원한 것도 결국 백성을 위한 과정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요새를 건축한 콰이트베이 술탄도 소탈하게 거리에서 사람을 만났고, 자기 곳간을 풀어 민심을 살폈다. 좋은 통치자는 어려운 백성의 살림살이를 먼저 챙긴다. 파라오나 술탄도 정치인이었다. 신을 앞세워 선량한 시민을 격려하고 부정부패를 심판했다. 그게 정치다. 왜 정치를 지들끼리 하는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는가? 그것도 정치겠다. 보통 사람 월급이 30만~50만 원이라는데 나일강 아파트 집세가 200만 원인 건 뭔가 이상하다. 청년들이 희망을 찾지 못한다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걸 해결하는 것도 결국 정치다. 이집트 사람들이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벽이 뜯겨나간 것 같은 건물, 짓다 만 건물들을 하나하나 정비하기를 바란다. 유물 관리 능력이 없으니; 이집트에 약탈한 보물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영국, 프랑스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 날을 기원한다.
자못 비장하게 끝내기 전에.. 마지막 날 호사로운 아침 사진을 붙인다. 어디나 그렇지만 양극화 끝장이다. 카이로 고급 호텔의 아침은 빛나는 나일강 바라보며 콩죽 폴. 콩에다 가운데 사진 온갖 향신료와 야채를 넣어 먹는다. 허머스도 정말 다양하다.
이집트인들이 옥상에서 키워 잡아먹는다는 비둘기. 닭과 비슷한데 더 작고, 안에 밥을 채웠다. 양고기는 어디든 훌륭한데 곁들이는 채소 종류에 상상력이 부족한 편.
이번 여행은 이집트 청년 모히 덕분에 더 각별했다. 나 같으면 이집트 2년 유학했다고 그 정도 말 못 할 듯. 상형문자까지 학습시키며 이집트 문명의 길잡이가 되어준 그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청년이다. 한국어에 이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동생은 일본어를 한다는데 몇 년 내 사업 차리면 다 쓸어버릴 기세다. 타인의 술을 쫌만 이해해 주시길ㅎ (페친 알파고 시나시님이 무희와 다녀왔냐고 인사. 세상 좁다. 모히가 아니라 무희ㅎ)
예측가능한 패키지여행 대신 팀 맞춤형으로 여행을 기획해 주신 비단님께도 감사. 실크로드 따라 비단장수라도 할 거냐는 모친의 질책이 오늘날 여행가 님을 만드셨으니ㅎㅎ 인생 알 수 없다. 그 길을 진짜 비단님 따라 기볼 수만 있다면!
메디치미디어가 작년 4월부터 월 1회 특강까지 진행해 준 #룩소르학교 여행 팀, 온갖 수다가 편했고, 각자 다른 관점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하마터면 칠공주파 결성할 뻔한 언니들을 비롯해 다정하고 지적이며 음미체를 아는 님들과 소중한 기억을 남겼다. 우린 봄에 다시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