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7일차> 써티 파이브? 알렉산드리아의 그녀들
<이집트 8일차> 알렉산드리아, 그 문명의 아우라
알렉산더 대왕의 부관 출신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헬레니즘 시대의 학당, 무세이온을 BC 306년 알렉산드리아에 설립했다. Mouseion, 뮤지엄의 어원인데, 시와 음악을 관장하던 아홉 명의 그리스 여신 무사(Muse)에서 나온 단어다. 당대의 학자들을 데려와 천문학, 물리학 등 학문을 융성하게 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무세이온의 관련 기관이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박물관과 하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1층의 조각에 눈길이 갔다. 오, 예사롭지 않은데? 도서관에 아예 박물관, 미술관이 있다는 건 상상 못했다. 그런데 두 개가 붙어있는게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이집트 작가의 2005년 그림 The family library. 요며칠 이집트 고대 문명에 익숙해진 눈에 묘하게 익숙한데 설명은 못하겠다. 낙타와 황소가 섞인 신비한 동물도.
그냥 지나가기 아까워 사진으로 담아본다. 이집트의 혼은 현대적 해석에서도 어딘가 이어진다. 예술엔 까막눈이라 뭐라 설명 못하겠는데 예쁘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 세련된 스타일을 입히면 저런거라 해야하나. 아 표현력이 부족해. 부족해.
그리고 사다트. 1918~1981
Lived for Peace
Died for Principles
이름은 들어봤어도 자세히 몰랐다. 그런데 평화를 위해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라니.
1952년 쿠데타로 집권한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민족주의를 이끌었던 독재자였다. 나세르의 오른팔로서 1970년 나세르 사후 대통령이 된 사다트는 나세르와 다른 노선을 걸었다. 그는 1978년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캠프데이빗 협정을 맺고 1979년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아랍 22개국 청년들은 사다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밀린 뒤 1973년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 제4차 중동전쟁을 이끌었던 그는 계속 줄타기를 했던 것일까. 김현종님은 사다트가 4차 전쟁에 이스라엘에게 판정승한 뒤, 과감한 햇볕정책으로 기회를 만들었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실리와 명분을 만들어주고, 군비경쟁의 수렁에서 벗어난 거라 했다. 사다트는 카터 미국 대통령, 메나햄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리고 1981년 그의 평화 전략에 반대하던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옷, 소품, 칼, 여러가지가 전시된 가운데 이집트 전통 의상. 그리고 그가 일하던 책상.
여행은 이렇게 동아시아 끝의 한 시민이 서아시아 맹주 역할을 하다가, 평화를 추구하다가 떠난 정치인을 알게 해준다. 나세르에 대해 삐딱하던 가이드는 사다트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정치가 서아시아의 평화와 분쟁, 이집트 시민들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처음 내 눈에 똑같았고,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가이드 모히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분주했다. 시나이 사막 쪽의 의상과 소품, 오아시스(이게 어디지?) 쪽의 물건들, 베두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각각 다르다. 베두윈 사람들이 대추야자 나무 껍질로 만들었다는 바구니가 대단했다.
오른쪽 끝 사진이 예맨인 건 알겠는데, 왼쪽 사진은 모르겠.... 가운데 사진은 낙타 안장이다. 물건을 가득 넣을 수 있게 만든 화려한 안장.
이집트 남자들은 부인이 여러 개의 발찌 팔찌를 차고 움직일 때 마다 쨍그랑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쩐지 목걸이나 뭐나 주렁주렁 뭔가 예사롭지 않더니. 역시 사막 사람들의 장신구다. 화려하다 화려해.
나가기 직전, 시선을 잠깐 붙들은 작품. 그냥 좋으면 됐지. 공부까지는 안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