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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3. 2023

<이집트 9일차> 카이로박물관, 고대로 연결된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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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카이로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어요”

기자 피라미드에서, 룩소르에서 유적지를 찾을 때 마다 가이드 모히는 반복해서 말했다. 카이로 박물관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졌다. 고대인들과 연결된 우주를 만나겠구나.

결론적으로 기대 이상 멋졌고, 기대와 상관 없이 조금 슬펐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 있다. 넉넉한 공간에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놓여있다. 어두운 방에서 고혹적으로 빛난다. 건축가와 디자이너, 박물관 학예사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공간이라 했다. 덕분에 유리 바깥으로 나온 보물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 계피와 황토를 섞은 벽에서 은근한 향이 느껴질듯 말듯 깊이를 더한다.

카이로 박물관의 보물들은 하나 하나 아득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마땅하다. 유물에 반했으나 전시는.. 무튼,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저렇게 보관했는데 저렇게 보존됐다고?


#이집트_epi22


이집트엔 유물이 많다. 너무 많았나 보다. 미이라를 나무 찬장 같은 곳에 4단으로 쌓아 여러 진열장을 이어붙인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온도 습도 관리는 커녕 햇빛이 쏟아지는 박물관 건물의 구조도 놀랍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창문을 본 기억이 나는가? 미이라 뿐 아니라 석관도 그렇게 쌓고 쌓았다. 우리나라에 특별전이 열린다면 하나만 와도 전시실 하나를 내줄 만한 귀한 유물도 잇는 것 같은데, #카이로박물관 에서는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더 놀라운 건 보관 형편이 엉망인데 보존 수준은 멀쩡한 점이다. 박물관의 유물은 대부분 3000~5000년 세월을 보냈는데 상태가 괜찮다.

이집트 정부가 건축중인 새 박물관을 지나가다 볼 때는 꽤 근사했다. 부디 유물이 유물 대접을 받기 바란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외계인설이 나올 만큼 수준 높은 유물들이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투과율이 높은 유리를 쓰기 때문에 유리 너머 유물을 사진 찍어도 반사되지 않는다. 여긴 보통 유리라, 사진을 제대로 건지기 매우 어려웠다. 조명도 전혀 신경쓰지 않아 아쉽다. 좀 괜찮은 전시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인류의 문명에 겸허해지길 바랄 뿐이다.


와중에 진짜 미이라를 이렇게 무더기로, 이렇게 가깝게 봐도 되나 싶다. 미이라는 부활과 영생을 위한 장례 의식인데, 망자의 안식이 이렇게 방해받을지 짐작이나 했겠나. 우리 후손들의 예의가 부족했다. 수천 년 전 저런 수술 도구로 미이라를 만들던 인류의 조상이신데..

석벽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설명도 없는 것들도 많다. 작은 일상소품 유적들은 뭉터기로 번호가 붙어있을 뿐이다. 찬찬히 본다면 하루가 부족하겠지만, 우리는 고작 3시간도 못봤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 놀라운 박물관이다.


#이집트_epi23

#촬영불가_마스크_관_펌사진_의자사진만_직찍


"이집트 고고학에 영국 탐험가들이 열을 올린 이유가 황금 때문이었구나"


#카이로박물관 투탕카멘 유물을 보던 ㅇㅈㅅ님이 탄식했다. 인류 문명 발굴작업에 그리 후원이 몰렸던 것은 이 문명이 워낙 찬란했기 때문이다. 황금의 힘이 그들을 모래사막에서 헤메도록 했다. 이걸 머리로 이해하면 감흥이 적다. 진짜 번쩍번쩍 황금을 눈으로 목격하니 기가 막혔다.


투탕카멘이 유명한 건 황금 때문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파라오였고, 18세에 세상을 떠나 권세를 누리지 못했다. 덕분에 왕의 계곡에서 그의 무덤은 도굴을 면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게 1922년의 일이다.

#카이로박물관 투탕카멘 전시는 사진 촬영 불가. 햇빛에 노출된 유물둘과 달리 이 특별한 파라오의 유물은 꽁꽁 숨겨두었다. 검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황금 소품들 저쪽에 황금가면이 보인다. 미쳤다. 너무 아름다워서 현기증이 난다. 진한 아이라인에 또렷한 눈매와 코, 단정한 입술의 미소년을 황금으로 찬미했다. 코브라와 독수리 머리 장식부터 청금석, 터키석, 흑요석 등을 사용했다는 세밀한 장식이 정교하다. 황금에 관심 없던 인간이 어린 파라오의 황금가면에 홀렸다. 3300년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금빛 광채란.

그가 안치됐던 황금 관은 더 놀랍다. 110kg의 순금을 썼다는 관이다. 4겹의 금박 목조 사당과 그 안의 석관, 그 안에 3겹의 황금관들이 마트료시카 처럼 들어있었다고 한다. 촘촘한 겉면의 세공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여기에 수천 점의 보물이라니. 존재감 없던 투탕카멘의 무덤이 초라한 덕에 수천년 안전했다. 황금샌들, 황금단검, 운석 단검, 황금갈고리, 황금전차, 황금왕좌, 황금관, 황금목걸이..

투탕카멘의 의자만 특별전시관 바깥에 있어 열심히 찍었다. 황금의자와 사냥의자. 암사자 다리에 독수리와 코브라로 장식된 의자도 대단히 화려하다. 투탕카멘이 투탕카톤에서 왕위 즉위 후 오히려 힘에 밀려 투탕카멘으로 개명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목제 의자도 화려하고, 발치에 다른 나라 왕 얼굴 그려넣은 것도 대단하고. 투탄카멘의 타조털 부채가 그대로 남아있는거 실화냐..

#이집트_epi24


박물관은 재미로 본다. 진짜다.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개만 골라봤다.


“가장 고귀한 숙녀'란 뜻의 이름이라는데, 룩소르에 엄청난 신전을 갖고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은 턱수염도 있다. 시원하게 커다란 눈, 단호하면서도 유머가 있을 것만 같은 입술, 미녀인데, 파라오의 권위를 위해 굳이 턱수염을 빌리다니.


대피라미드를 만든 쿠푸왕의 형제란다. 부부가 둘 다 동글동글. 놀라운 건 눈이 있다는 거다. 눈동자는 크리스탈로 만들고, 주변은 상아로 장식한다는데 대부분의 석상에서는 눈동자를 떼어가버렸다. 이 부부는 4500년 동안 눈 뜬 자들이다.


왕의 서기 sesh 는 오른손에 연필, 왼손으로는 무릎에 올려놓은 파피루스를 잡고 있다. 식료품 재고, 납세 기록, 재판 진행 등 법률 문건까지 꼼꼼하게 기록하는 이다. 그 시절에! 모히는 그가 격무로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고 웃었지만 전형적 그 시절 화장법 같다.


이집트 북부와 남부의 파라오 관이 나중에 하나로 총일되는 건 정말 재미난 요소다. 오른쪽 상은 어쩐지 미용실 방금 다녀온 아시아 남자 같다.


파라오 아케나톤은 종교개혁 하다가 기득권인 신관들에게 밉보였다. 라-아문 중심의 다신교 대신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유일신 사상을 밀었고, 자신의 이름도 '아톤에게 이로운자'라고 아케나톤이라고 개명했다. 신권에 도전해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겠지만, 그가 죽은 뒤 도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을 미화하지 않고 석상조차 살짝 나온 배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신관들은 그의 사후 철저하게 보복, 파라오 아케나톤을 지워버렸다. 미이라에도 '카르투시' 이름표가 없다. 얼굴도 없애버렸다고 한다. 부활하지 못하게. 그의 아들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현신)은 종교개혁 실패 후 신관들에게 밀려 투탕카멘(아멘의 살아있는 현신)으로 다시 개명했다.


아케나톤은 사랑꾼이었다. 처음 석상을 봤을 때는 엄마와 아이인가 했더니 남편 아케나톤 무릅에 앉은 키야 왕비. 으응?


투탕카멘 샌들인지 슬리퍼인지, 발바닥에 적들을 그려넣었다. 의자 앞 발을 놓는 툴에도 다른 나라 왕들을 그려넣더니.


당시 마차는 혼자 올라타서 사냥을 할 때 썼단다. 그런데 창과 칼을 어떻게 쓰면서 사냥을 할까? 달리는 말에 맨 줄을 허리띠에 묶어놓고 손을 자유롭게 썼다고. 그 장면이 이집트 기니 화폐 중 하나에 나온다.


암사자까지 조각한 옥돌. 이게 근데 당시 도마란다. 명품도 이런 명품이 있을까 싶네.

저 아누비스보다 아래 가마가 더 대단한 거라던데. 잘 모름..


아멘호테프 3세는 평민 출신인 유야와 투야의 딸 팅와 결혼했다. 유야 투야 유물이 많은 와중에 이건 유야의 침대. 허리가 좀 아팠을거란 얘기와 함께 왜 부부가 각각 싱글베드를 쓰냐는 말도

유야의 무덤 파피루스 기록도 살펴보자. 20m에 달한단다.


그리고. 박물관 샵에서 발견. 기독교인들이 카르낙 신전 벽화에서 발기한 성기를 박박 긁어 지웠다고 들었는데, 이게 원본 형상일까. 이걸 기념품으로 만들다니. 근데 이게 그거라고? 상대가 죽든 말든 동서고금 수컷들의 허세란.

드디어 곧 카이로에서 이륙. 나머지는.. 리야드에서


#이집트_epi25


서울의 친구가 이집트에서 악어 미이라가 대거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악어신을 모시는 코몸보 신전을 다녀오기 전에는 악어 미이라는 상상도 못했다. 근데 악어만 있겠는가.

투탕카멘만 황금마스크가 있는게 아니다. 양도 있다. 양에게 이런 마스크를 씌운 걸 보니, 미이라 만든 건 신기하지도 않다.

5.5m 거대한 엄마 악어 미이라 옆에는 10cm 아기 악어 미이라도 있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이들 미이라를 만들었을까. 나름 다른 내장을 빼내고 심장만 남기는 수술까지 꽤 고난이도 작업인데.

원숭이 미이라는 발톱까지 선명하게 보존됐다. 독수리 미이라, 고양이 미이라, 이쯤되면 그 시절 조상들은 저세상에 진심이라는 걸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황소, 석판에 그림을 그리고 뼈를 모으고, 심지어 소를 도축하는 장면도 벽화에 넣었다. 한 사람은 칼로 다리를 자르고, 한 사람은 물을 부어 피를 씻는다. 와중에 넘나 귀여운 소..

기자에서 두번째로 큰 피라미드 주인인 카프레 석상을 보면, 독수리신 호루스가 파라오의 머리를 감싸고 있다. 역시 지폐에도 들어간 기념비적 모습이다. 동물 신들이 사막의 거친 땅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진짜 동물들이 인간의 내세도 함께 했던 시절이다. 이러니 유일신을 주장한 아케나톤이 다신교에게 밀렸던 걸까. #마냐여행 #메디치미디어_룩소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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