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Mar 13. 2023

키키 스미스, 마녀 대신 그저 여자, 평범한 몸

#키키스미스 전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2월호에서 이진숙쌤 설명은 매혹적 초대장이었다. 그런데 백수 주제에 아직도 시간을 못냈고, 오늘이 전시 마지막이란 얘기를 오후 귀갓길에 친구 덕에 알았다. 덕분에 집 대신 바로 시립미술관으로.


줄이 길었다.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왜들 키키 스미스를 찾았을까? 지나치기 어려운,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이름 덕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키키 스미스. 전혀 모르고도, 주변에 몇몇 추천만 있으면 잊혀지지 않더라.

그리고 여성 예술가의 몸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보는게 소름끼치게 짜릿하다. 시작은 메두사다. 신의 저주로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했고, 눈이 마주친 이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마녀. 키키 스미스의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없다. 벗은 몸은 특별히 다를게 없이 평범하다. 내가 여자의 몸이 어떻게 알게 모르게 왜곡됐는지 알게된건 영화 #타오르는_여인의_초상. 여자 가슴은 옆으로 누웠을 때 처지는게 정상이고, 어느 자세든 중력에 반해 우뚝 봉긋 하지 않다. 왜 영화든 그림이든 우리가 본 누드는 다 비여성적인가? 관음증을 숨기지 않고 작업한 예술 속 여자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왜 놓쳤지? 키키 스미스의 여자들은 평범해서, 보통의 인간이라 인상적이다.


늑대 배를 가르고 나오는 여자는 어떤가. 빨간모자의 소녀가 아니라 어른 여자가 늑대 뱃속에서 벗어나는 걸음은 당당하다. 제목이 #황홀 이다. 어우야...


전시 제목인 #자유낙하 #freefall. 웅크린 그녀의 낙하는 위태롭다기보다 어딘지 부유하는 느낌. 접힌 자국 그대로 남은 종이의 질감도 남다르다. 지속성이나 내구성이 떨어질 것만 같은 종이, 유리를 사용한 그녀의 작품들은 존재 자체로 반항적이라 유쾌하다.


해골 안의 별자리 지도와 수식을 보니.. 우주가 저기 있구나 싶고, 혀부터 항문까지 우리 소화기를 쭈우욱 늘어뜨려 벽에 걸어놓은 작품을 보면 우리 몸을 다시 생각한다. 대장 30cm를 잘라낸 암환우 얘기가, 그래봐야 10분의 1 자른거라 괜찮다고..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 덕에 눈을 떴다는 키키 스미스가 쪼개고 해체해서 보여주는 몸이란.


새가 앉은, 인간의 단말마?

하늘과 지하. 두 태피스트리 그림의 대조는 그냥 보는 그대로.


이게 천국이던가


3층 #강석호 작가 전시도 놓치지 말라는 친구 덕에 집에 가려다 다시 올라갔다. 이런.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2년 전에 세상을 뜬 작가다. 3분의 행복에 대해, 일상을 더 깊게 바라보고 느끼려고 했던 이 작가의 인생이 갑자기 멀지 않게 느껴진다. 바지를 입은 가랑이, 엉덩이, 원피스 차림의 몸들을 이렇게 집중해서 그린 이유도 궁금해지고, 그가 디자인 가구에 들인 애정들을 잠시 구경했다. 그도 소품 부자, 취향 부자였구나.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 어떤 이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떴구나. 그를 좋아한 동료들이 육성으로 추모하고 기억하는 목소리를 들으려니, 잘 살았던 분인가보다.

#마냐산책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북토크, 여전히 미디어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