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성모가 계신다는 몬세라트. 어쩌다보니 바르셀로나 첫 일정이 됐다. 마이리얼트립 투어를 신청, 한 시간 버스로 갔다.
12세기, 목동들이 동굴에서 빛나는 성모님을 발견했다. (영상에선 880년이라 했는데 그건 대성당 건축ㅠ) 사라센 침공을 피해 동굴에 모셨던 검은 얼굴의 성모님.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카탈루냐의 수호 성녀. 1월 말 수술 직전 암잉아웃 했더니 S님이 마침 이곳에서 성모상을 가져다주셔서 알게 됐다. 여기 직접 오게 될지 그때는 몰랐다.
성모님은 오른 손에 세상, 지구를 들고 계신다. 손을 얹고 기원했다. 기도를 할 줄 모르는게 아쉬웠지만 마음은 간절했다. 마침 오늘 항암 시작하는 온니, 역시 유방암 환우인 ㅈㅇ님 쾌유를 빌었다. 오늘 할 일, 아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 끝. 마음을 쏟았다.
나머지는 덤인데 왜 이렇게 좋을까. 십자가 전망대까지 20분 완만한 오르막이다. 손잡고 걷기 좋은 길이다. 손잡고 다닐게 아니면 뭐하러 커플을 하나. 그는 손도 두툼하다. 내가 잡으면 안정감이 떨어지고, 잡히면 그럭저럭 괜찮다. 근데 그가 힘주어 맞잡는 건 길어야 1분? 팔베개를 해도 1분이면 내가 불편해 빠져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가끔 깍지를 끼지만 그의 손가락도 두꺼워 내가 불편하다. 붙잡은 손에 또 힘빠진다고 투덜댔더니 정신 차린다. 오늘은 2분까지 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말을 해! 다 한다니까!”
그는 오르막에서 내 등도 밀어줬다. 당 떨어져 헤매던 와중에 #남편의_쓸모 괜찮았다. 한때 DSLR 출사 다닌 그는 사진도 잘 찍는다. 비록 셀카를 못 찍지만 그건 내가 곧잘 하니 괜찮다.
수도원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은 마침 부활절 방학이다.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합창단은 기숙사 학교로 운영되기 때문에 너무 어린 아이들은 곤란. 4학년부터 중1, 2까지 배운다. 그 이후엔 변성기라 나간다니 뭔가 엄격하다. 천상의 목소리란 그런건가. 하라는거 다했다. 성모상 티켓에 포함된 독주 시음. 수도사님들이 만들었다는 술은 오른쪽부터 소화제 같은 약술, 넛트 술, 헤이즐넛 술, 달달이 술..사실 넷 다 달달하다. 수도사님들이 만드셨다는데 암을 핑계로 맛보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듯 하여..으응? 그리고 워낙 찰랑 조금씩 주기 때문에 맛만 봤다.길가에서 파는 꿀치즈도 필수라고, 서울의 남편 후배들이 실시간 강추했단다. 좌판 벌린 언니는 2유로를 “이유로“라고 한국어로 장사하신다. 별미 맞다. 달콤하고 향긋하고 고소하다.
치즈 컵을 손에 든 채로 연두빛 새순이 움트는 나무 아래서 신록을 즐겼다. 저장해놓고 언젠가 꼭 재생해서 떠올리고 싶은 장면은 내게 이런거다. 아무 목적도 방향도 없이 멍때리는 시간들.
새벽 4시, 한국 시간 오전 11시에 깬뒤 다시 잠들지 못한 우리는 일찌감치 나섰고, 7시에 문 연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크로아상으로 바르셀로나의 첫 끼니를 때웠다.
이 동네 사람들은 1일5식이 기본. 출근 전 커피로 한끼. 출근해서 합법적으로 10시쯤 아침 먹으러 나간단다. 가볍게 츄로스나 크로아상, 샌드위치지만 아침부터 맥주나 와인도 업무 효율을 높이는 옵션. 점심은 1-~2시 이후에 두세 시간? 풀코스로 즐기고 오후 6시 너머 타피스에서 또 간단히 요기. 실제 저녁은 9~10시에.
이렇게 따라하고 싶었지만 관광객은…
당 떨어지고 출출하다는 핑계에다 가이드님이 추천하시길래 수도원의 뷔페로 점심! 고기류는 아쉬운데 채소가 화려했다. 비트와 앤초비 올리브도 실컷. 스페인 음식은 이런게 기본이구나 구경한 셈 치고, 몬세라트 절경 뷰. 19.5유로 제값 했다.
오후 일정은 버스로 이동해 부자들의 휴양지 시체스. 아기자기 골목 구경+지중해 발 적시기+해변 멍때리기로 푹 쉬었다. 게이 커플의 천국이라는데 곳곳이 다정하다. 자연스럽게 힙한 동네다. 바닷가 맥주 한 잔 할 때 레모네이드 물었더니 레몬환타 주심ㅋㅋ
메시가 주인이라는 호텔도 있다.
저녁은 곧바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 축알못인 내가.. FC 바르셀로나, 바르사 구장 캄노우(camp nou)에서 직관하다니!!! 남편은 내내 두근두근 들떴다. 우리 일정에 토트넘 경기가 런던 아니란 이유로 실망하더니 대신 바르사! 하고 싶은 거 다해!
숙소가 람블라스 거리 중심가라 투어 해산뒤 10분 걸어 복귀. 씻고 1분 거리 지하철 역에서 3호선을 탔다. 파밀리아 8회권(10유로) 중 둘이서 2회분 사용. 이미 열차 안에서부터 축구팬들 열기가 가득했다. 15분 만에 Palau Reial 역에 내려 사람들 물결에 휩쓸려 경기장까지 걸었다.
99,786명 규모 세계 최고 축구 전용 경기장이라는데 거의 가득 찼으니! (축구 전용 구장은 아니지만 규모 1등은 북한 능라도 경기장. 15만.. 내가 거기서 카드섹션을 봤..)
무튼 핫도그 먹는데 20분 줄은 약과다. 바르사 사람들 다 여기 왔나. 말그대로 남녀노소 가족 단위로 티셔츠든 모자든 뭐든 바르사 스타일. 바르사 팬의 부심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진다. 바르사 뭔 곡이겠지만 떼창으로 시작해 경기장 전체가 바르사 팬이다. 22-23년 23승2무2패 전적의 바르사. 까막눈인 내게도 바르사 선수들은 기예를 펼치듯 정교하다. 근데 골이 불발이다. 오늘 상대는 약체에 가까운 지로나. 근데 잘 버텼다.
메시가 없는게 아쉽. 결국 0대0.
마드리드가 보수적이라면 바르셀로나는 좌파의 도시.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이 20만에 육박한다던데, 우리만 입장권이고 대부분 회원 카드 비슷한 걸 내밀고 들어간다. 카탈루냐 사람들의 저항정신, 독립정신이 결합되어 바르사로 뭉치는 열기가 남다른걸까? 어쩌면 바르사로 뭉친 덕에 정치적 시민의식도 남다른걸까? 오늘 첨 보는 주제에 내가 뭘 알겠나. 그저 카탈루냐, 바르사에 정들기 시작했을 뿐
#마냐여행 #스페인_2일차 #오늘_2만3000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