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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2. 2023

<스페인 3일차> 가우디는 외계인일거야 &보케리아 시장

<스페인 1일차> 남편의 쓸모, 남편의 재발견을 위해

<스페인 2일차>몬세라트, 치유의 성모님부터 바르사까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뭔 족보 없는 콧노래인가 했다. 근데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노래란다. 스페인 여행 후 가우디 건축에 영감을 받아 아예 #가우디 라는 앨범을 냈고, 그 중 한 곡이다. 1987년 저 음반에 반해 안토니오 가우디가 누구야? 일찍 영접했다는 남편. 실물 알현에 오래 걸린 만큼 신났다. 콧노래도 나오고. 그러다 너무 나갔다.
“알란 파슨스는 최고야. 난 LP 다 갖고 있어~”
그래? 몇 장인데?
“어? 하하. 열두장? 열세장? 다 오리지널이야~”

그가 LP 사들이느라 나 몰래 마통 튼걸 이번에 알았다. 퇴직금으로 갚았으니 넘어가자.


바르셀로나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건축 9개가 있는데 그 중 7개가 가우디 작품. 이 분은 아무래도 외계인이다. 달리 해석이 안된다. 시대를 넘 앞서가셨다. 그래서 온갖 비판을 받은 얘기도 새삼스럽다. 인간의 선인 직선 대신 신의 선, 곡선을 애정한 신실함도 상상 너머다.


까사 바트요. 1800년대 스페인 산업혁명으로 잘나가던 공장주 바트요씨가 의뢰한 건축. 이게 리모델링이었다니. 포악한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한 산 조르디 기사의 전설을 모티브로 용을 지붕에 올라탄 모양을 구현하고, 용의 비늘을 기왓장으로, 용의 제물을 해골 형상으로 남긴 것도 그저 놀랍다.

바르사 사람들은 그래서, 발렌타인보다 산 조르디 기사의 날인 4월23일을 가장 로맨틱한 날로 기념한다고. 동시에 국제 책의 날이라, 이 거리가 온통 야외서점이 된다니 바르셀로나 멋지다. 마이리얼트립 김여현 가이드님 설명 잼났다. 까사 바트요 내부는 생략했지만 중정 외벽을 파란 타일 그라데이션으로 깔고, 엠보싱 유리로 수영장 느낌을 내다니 천재.


1904~1906년, 우리는 한일합방 직전인데 가우디는 까사 바트요를 만들었고, 그걸 보고 부러워하던 밀라씨네 까사 밀라를 1906년부터 1912년까지 지었다. 근데 현실은 불행했을법 하지만, 이야기는 밀라 쪽이 훨 잼나다. 몬세라트 바위를 닮은 우아한 건물에 당시엔 짐승 사는 동굴이냐는 혹평이 쏟아졌단다. 게다가 깐깐한 건축법 위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거장 가우디. 기둥을 길 안쪽으로 들이라 하는데 거부해 밀라씨가 벌금으로 해결했고, 불법으로 한층 더 올린 것도 역시 벌금으로.. 총 공사비의 4분의 1을 벌금으로 낸 건축주 밀라씨 열받을만 했다. 가우디 사후, 거주하던 2층을 영국식으로 싹 바꿔버린 건 밀라씨의 복수. 그게 유네스코 유산 되면서 다시 가우디 스타일로 원상복구된 사연까지 밀라씨는 의문의 1패. 그러나 까사밀라, 이름은 영원히 남지 않았나?

문제의 길로 튀어나온 기둥. 위 돌출 부위를 감안하면 필요하긴 하다.


구엘 공원이 고급 주택단지를 꿈꾸다 실패한 결과물이란 것도 아이러니다. 총 130m 길이 타일 벤치에 경사를 내 빗물을 모으고, 광장의 흙은 필터 역할로 역시 빗물을 모은 건축 얘기를 들으면, 가우디가 단순히 아름다움만 추구한게 아니란 걸 확인한다. 자연을 사랑한 친환경 건축가. 빗물을 머금은 광장 아래 수로 넣은 기둥을 세우고, 그 천정에 해와 달을 넣고, 해안선 눈높이에 맞춰 기둥을 장식한 디테일도 그저 감탄. 타일을 깨서 다시 이어붙이는 '트렌카디스' 공법 예쁜거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구엘공원 도마뱀, 과자집 마냥 예쁜 건물은 당초 주택단지 경비실로 쓰려고 했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무튼 너무 튀는 바람에 당대 부자들이 외면했다.

서른하나 젊은 천재를 발굴해 인연을 이어간 구엘도 인정하고, 구엘공원을 지키는 바르셀로나도 인정한다. 우리는 구엘 공원 입장료 10유로지만, 공원의 본질은 시민 공간이라, 시민들은 자유입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라_사그라다_파밀리아. 성가족성당이란 이름이 성가족, 즉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 가족이란 것도 모르고 갔다. 워낙 유명한 이 건축, 기대하고 갔는데 기대를 가볍게 압도한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왜 가우디 가우디 했는지 알겠다. 왜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노래했는지 알겠다. 재능이 있다면 그리 했겠지. 난, 그저 어어, 아아, 와우, 으아..이건 외계인 작품이다.

산업혁명 시기, 가족들 두고 일자리 찾아 바르셀로나로 흘러들어온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매춘, 아동학대 등 사회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려면 마음을 달래줄 성당이 필요했다고 결정했다. 원래는 노동의 수호성인 성요셉의 평범한 성당으로 출발했으나, 건축가와 건축주 갈등 끝에 '싼 신인'이라고 찾은게 서른의 가우디. 비현실적이다. 외벽의 조각도 디테일이 놀랍지만, 내부에는 색과 선의 마법을 걸었다. 어딜 봐도 아득하게 정신을 잃을 것 같다.

내부 천장

가우디가 완성한 동쪽 벽면이 탄생을 주제로 한다면, 수비락이 완성한 서쪽 벽면도 모던한 감각으로 놀랍다. 예수님과 유다, 베드로의 몸짓 하나하나 놀라운 이야기. 건축은 진정 소통이구나.

여전히 건축중


수비락이 가우디 작품을 망쳤다는 이유로 온갖 욕을 들었다니, 가우디가 한때 그랬듯, 천재들은 당대엔 힘들구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2026년엔 정말 완공한다고? 아마 탑들은 다 올라갈 것 같다. 다만 지금은 전혀 아닌듯 하지만, 원래 정문으로 안배됐다는 남쪽이 문제. 성당 앞 두 블럭, 3000 가구 아파트를 허물어야 하는데 주민들이 결사반대다. 성당을 폭군으로 묘사한 포스터 보소.

남쪽은 좀 더 걸릴 거란 전망이 설득력 있다. 입장료 36유로 비싸다고 툴툴 거렸는데, 기념품샵에서 가우디 티셔츠, 가우디 자석, 가우디 그림을 샀다. 내 이럴줄 알았다. 나도 흥분이 과했다.


쌀쌀했던 어제와 달리 바람은 산들, 햇볕은 온화한 날. 우리는 대성당부터 숙소까지 걸었다. 깔별로 매대를 꾸민 화사한 꽃집, 1941년 문 열었다는 서점 Jaimes,  신기방기 식료품 점. 보이는 곳마다 감탄하며 들락날락 하는 건 내 몫. 남편은 밖에서 기다렸다. 거리 걷는 재미를 모르는듯 하지만, 억지로 끌고 들어갈 이유는 없지.

망고옴므에서 쟈켓 하나 사 입히니 내가 괜히 뿌듯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가우디인줄 알았으나 하나 더.

숙소 건너편에 라 보케리아 시장이 있었다. 재래시장이다. 책자에서 보고 가고 싶었는데 마침! 들어서자마자 하몽 집의 포스에 압도당하기 시작해 색색의 소시지!

먹고 싶은걸 참았다가 이제 아쉬워하는 튀김만두? 온갖 느끼하고 녹진해 보이는 부리또와 피자들,

주렁주렁 토마토를 비롯해 색깔 살아있는 과일들, 초콜렛 두른 딸기,

대구의 모든 것! 우리와 닮은 수산시장ㅎ

온갖 향신료, 다 다른 올리브 절임, 모조리 다 먹고 사고 싶은데..

바 보케리아에 앉아 타파스 두 접시로 참았다. 계란에 초리조라 하더니, 진짜 계란 용기에 수란과 초리조야채스튜. 리틀 옥토퍼스는 쭈꾸미였구만.. 버섯과 함께 짭조름새콤한 뒷맛이 끝내줬다.


돌아보면 오늘 아침은 카탈루냐 광장 부근에서 어제보다 세 배 비싼 샌드위치로 시작했고,

스페인 식으로 계속 먹었다. 남편은 11시 반 구엘공원에서도 칩에 맥주 한잔. 1시 반 점심에 El Glop에서 이베리코 돼지 스케이크, 먹물 빠에야, 끝내주는 고추튀김과 맥주 한잔,

5시에 타파스 바에서도 맥주 한잔..역시 스페인 식으로 오전부터 맥주로 달렸다. 이제 스페인 식으로 9시 넘어 아주 늦은 저녁만 먹으면 되는데...그만 뻗었다. 옆에 식당 다 골라놓아 아쉽지만, 시차 적응하며 살살 간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여행의 별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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