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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3. 2023

<스페인 4일차>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스페인 1일차> 남편의 쓸모, 남편의 재발견을 위해

<스페인 2일차>몬세라트, 치유의 성모님부터 바르사까지

<스페인 3일차> 가우디는 외계인일거야 &보케리아 시장


숙소 인근에 바르셀로나 대성당. 보수공사 중인데 갤럭시 가림막의 패기. 3일째 아침에야 드디어 초콜라타? 츄러스를 진하고 뜨거운 초콜렛에. 맛없으면 반칙. 이런거 날마다 먹는 것도 반칙..


1분 거리 산타카테리나 마켓에 들렸다. 보케리아 시장보다 좀더 깔끔. 채소가 kg에 3, 4유로. 호박보다 배는 두꺼운 가지, 파프리카 파도 우리보다 크고 저렴하다. 밥상 차리며 살기에 좋은 동네. 앤초비, 보? 사르디나..생선절임 종류별로 다 싸들고 가고 싶고..

아침 골목길에 발견한 19금 가게...음.. #마냐여행 #스페인4일차_아침산책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하나인데 인구의 16%, GDP의 20%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잘 사는 동네다.

이렇게 근사한 관광도시가 있을까 싶은데 1992년 올림픽 이전엔 관광을 띄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옥한 땅에다 지중해 항구도시, 프랑스 국경과 2시간 거리 도시로 원래 잘 나갔고,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공업도시이기도 했다.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의 탄압에도 카탈루냐 언어를 지키며 저항하던 곳으로 팬데믹 직전까지도 바르셀로나 중심으로 독립운동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노란 카탈루냐 깃발을 내건 집들이 적지 않았다고.


서울 명동 닮은 람블라스 거리의 숙소에서 10분을 걸으면 해양박물관이 나온다. 인근 1시간 거리의 달리미술관, 조금 더 먼 몬주익 경기장과 후안 미로 미술관을 포기하는 대신 해양박물관을 택했다. 해양도시 바르셀로나의 저력을 보러 갔다가, 대항해시대의 작은 조각에 생각만 많아졌다. 멀리서 콜럼버스의 동상부터 보인다.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여기저기 사기꾼 취급만 받다가 스페인 까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후원 덕에 간신히 탐험대를 꾸렸다. 그가 여왕을 만난 곳이 바로 바로셀로나. 이사벨 1세는 남편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과 상관없이 개인 재산으로 후원, 이후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과 은을 독식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에 대한 잔학한 태도를 비롯해 보면 볼수록 영웅보다는 악당. 신대륙을 차지한 이들이 콜럼버스 스토리텔링으로 정당성을 얻는데 성공했으니 승자의 역사다.


옛날 조선소를 개조한 해양박물관은 일단 건물이 끝내준다. 커다란 통창 덕분에 내부 카페에서 찍으면 그냥 인스타 성지 각. 들어서자마자 허공에 매달린 배를 비롯해 아름다운 배와 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등과 연합해 오스만을 물리친 1571년 레판토 해전 400주년을 기념해 1971년에 실물 크기로 복원한 갤리선이 압도적이다. 길이 60m 선박은 실내에서 거대한 아우라를 뽐낸다.

한쪽 끝에는 화려한 선실이 보인다. 장식 하나 예사롭지 않은 럭셔리. 그리고 배의 몸통은 노젓는 노예들을 착취한 갤리선의 뼈대가 차지하고 있다.

족쇄를 찬채 몇달 씩 씻지도 못한 그들의 냄새가 하도 지독해 어디 기습도 못했다지. 침대까지 있는 호화선실 건너편에서 이들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고작 빵과 물로 중노동을 버텼다. 한낮의 태양에 익었다가, 차가운 밤바다에서 얼었다가 평균 2년 정도 생존했단다. 고요한 박물관에서 배를 바라보는데, 저기 다닥다닥 몸을 구겨넣고 밤낮없이 노를 저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해양대국 스페인도 인류 역사에서 한치도 어긋남 없이 양극화의 끝판왕. 콜럼버스 이후 대항해시대를 열며 스페인에서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무역 중심이 이동했고, 바르셀로나도 해양도시보다 공업도시로 변모했다. 부강한 도시, 건축도시로도 우뚝 섰다. 이래저래 매력도시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에 굳이, 삽화까지 넣어 노예 착취 보고서나 다름없는 역사를 기록한 것도 기억하겠다.


해양박물관 부근 구엘저택까지 보고 싶었지만 빡센 일정은 피하기로 했으니 여유롭게 점심. 유럽여행의 낭만은 광장 주변 테이블에 앉아 햇볕과 바람을 즐기며 먹고 마실 때 한껏 부푼다. 1922년 문을 열었다는 Glaciar​ 최고였다. 점심엔 다시 고추튀김과 오징어튀김, 그리고 농어구이를 먹다가 뭔지 모르고 시킨게 하몽 모듬. 오븐에 구운 빵에 신선한 토마토를 뿌려 주는데 환상적이었다. 남편은 즐기지 않아 나만 주문한 굴 하나 호르륵..녹았다.

그런데 저녁이 더 맛있었다. 이걸 먹으려고 1시간반 뱅기 타고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까지 온 건 아니겠지만ㅎㅎ 아스파라거스와 하몽 타르타르? 내게는 최근 먹어본 중 단연 최고다. 이거 계란 노른자 올렸을 때 찍었어야 하는데 휙휙 섞어주시는 바람에 사진이 아쉽. 대구 요리는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에 겉바속촉 풍미 좋았고, 이베리코 구이는 돼지고기 스테이크 식감과 육즙 면에서 단연 훌륭했다. 남편은 자신이 먹어본 최고의 감자라고 극찬했다. 숙소에서 1분 거리 검색해서 찾았는데 마침 N가 강추한 식당. 우리는 정말 통하든가, 찐 맛집이든가. Sancho Original.​ 두 끼 연속 야외 테이블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니 더 뭘 바래.

맛집 다니며 #마냐먹방 수십년(!)..나는 특히 새로운 음식 탐험가인데 남편은 익숙한 맛을 좋아한다. 세비체는 그렇다치고 빠에야도 처음이라는데 내가 당황했다. 나만 잘먹고 다닌 거라고 하기엔 취향 차이. 그가 못먹고 다녔을 리는 없다. 그가 한식 타령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스페인 음식 좋단다. 당연하지. 스페인 먹방인데! 느끼하지 않다고 좋아하는 그를 보니 안심이다. 스페인이잖아!  맥주와 와인 대신 탄산수도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저녁 먹고 그라나다 대성당 쪽으로 가볍게 걷다가 뜻하지 않은 기타 공연. 어딜 가나 악기 연주하는 분들 마주치곤 했지만, 10시 다 되어가는 밤에, 야간 조명이 빛나는 대성당 앞에서, 사람 많지 않은 밤의 기운이 조화를 이뤘다.

대성당에 잠시 들려 못하는 기도를 다시 시도했다. 아끼는 이들, 가족과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저 건강, 그리고 평화를 기원했다. 달리 빌어볼 소망이 없더라. 건강하시길. 평온하시길. #마냐여행 #스페인_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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