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쭉해졌네“
줄서서 기다렸다가 인사드리는데 옛 보쓰의 한마디. 오랜만에 살 빠진 것도 알아보시다니. 살짝 당황한 마음을 더 큰 웃음으로 묻어버렸다.
"책의 힘을 믿습니다.
책은 더디더라도
세상을 바꿔 나간다고 믿습니다"
옛 보쓰의 책방 종이봉투에 쓰여있는 문구다. 책방 매니저로서 지역 책방 탐방 다녀왔다. 옛 보쓰에게 봄날 인사, 겸사겸사.
-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 책방과 도서관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사람
- 책과 글의 힘을 믿는 사람
-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
-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
- 인생에서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 제목과 겉표지를 보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
- 책만 펼치면 잠이 오는 사람
- 지구 생명들이 모두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
#평산책방_책친구, 생각보다 관대하고 다정한 기준이다. 가입 허들은 다른데 있던데, 책친구 북클럽, 어떻게 진화할지 나도 궁금하다.
서점 매니저 답게, 서가 구경. 공간은 크지 않은데 책 종 숫자는 꽤 많다.
역시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난 또 다른데 꽂혔다. 이철수 쌤이 사람 인자 닮은 지붕 아래 책을 넣어주신 책방 로고를 보니, 굿즈 욕심부터 생긴다. 저걸로 그대로 에코백을 만들고, 작은 필통을 만들고... 예쁠텐데. 진짜.
아참, 다큐 보신 분만 알 얘기. 도라지를 심네 마네, 도라지가 꽃이냐, 하던 자리.. 결국 알리움 꽃을 심으셨다. 아내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당근 연녹색 순이 꽃보다 예쁘고, 하얀 고수 꽃도 아름답다.
귀여운 토리와
가죽나무 잎을 따서 바로 부친 가죽나물 장떡, 연한 죽순, 5년 된 매실 장아찌, 제피 장아찌, 콩잎과 땅두릅 무침...줄기 껍질을 벗겨 손질한 머위 나물은 부드럽고 고소했다. 할머니의 손맛에 정성이 더해진 이 밥상. 역시 오랜만에 행복한 밥상이다. 옛 보쓰께서 따라주신 삼학산 막걸리를 한 모금 슬쩍.
이 엄청난 ㅂㄱㅇ 점심을 먹고, 저녁이 들어갈까 싶었는데 곰탕칼국수와 더덕구이 #통도산촌 괜찮았다.
오후에는 다정한 분들과 통도사 산책
통도사에서 팽나무 가지에 뿌리 내린 두릅나무를 만났다. 그 아랫쪽엔 버섯도 자라고, 윗쪽 가지에는 이끼를 닮은 난초 같은 아이도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럿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나이 든 나무. 아마 모르고 지나갔으면 보지 못했을게다. 숲해설사 K님 설명을 듣고 보니, 경이로움에 저릿했다. 이래서 사람이 공부를 하나보다. 알고 보면 세상은 온통 신비롭다.
이 나무를 건너편에서 보면 이렇다
어느 생명들의 둥지 역할만 남은 느티나무 밑둥.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자장율사가 연못의 아홉 마리 용을 정화해 떠나보내고, 한 마리 용이 남아 터를 지켰다는 양산 통도사. 승려가 되기 위한 수계의식이 진행되는 금강계단이 있다. 잠긴 문 너머 금강계단을 슬쩍 보기만 해도 산사의 기운이 고요하다.
하지만 통도사의 그 용이 문제다. 빛바랜 알록달록 용 모형은 좀 안습. 이집트의 고대 신전에서 파티를 열어도 꽤 어울리게 준비했던데, 오래된 나무 빛깔이 아름다운 사찰의 현대물은 덜 예쁘다. 이것도 기획이 필요한 일이다. 공부가 필요하고.
통도사 계곡의 두물머리. 여긴 절보다 고즈넉한 계곡 쪽 산책도 괜찮을듯
하루 나들이, 순간 순간 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