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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y 23. 2023

<오늘도 자람> 괜찮아 자람, 자유롭게 나이든다는 건

스무살에서 멀리 온 것에 감사한다. 마흔이면 인생 끝날 것 같던 스무살보다 조금 괜찮은 인간이 됐다.

그녀는 마흔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끝낼지 궁금했단다.


"모든 것이 참 좋고

조금 더 밝아진 눈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화내야 할 것 앞에서 화내지 못하고 뒤늦게 쩔쩔매던 내가

내뱉고 싶은 말들을 그 자리에서 적시에 해낼 짬바가 생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들면 당연하다. 40대 여성 소리꾼 이자람의 에세이는 매혹적이다.


속이 옹글면 스스로 관조하는데 거칠게 없다. 그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까칠하고 솔직하다. 그는 "무대 위의 이자람이 개인 이자람보다 더 많은 지식과 고뇌와 올바름으로 무장한 듯" 받아들여지면서, "실체가 없는 사명감을 붙들고 그 의미들이 내게 두껍을 입히는 것을 허용해왔다"고 한다.


스스로를 정말로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사기꾼이 되는 것이구나! 라고 깨닫는다. '진짜 이자람'과 '사람들이 설정한 이자람' 사이에서 그렇게, 진짜 나를 봐달라고 징징거리며 살았다고.


무대 위에 서는 것은 더 각별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도 그렇다. 나는 온라인 정체성 마냐가 정혜승보다 좀 더 현명하고 어른스럽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진짜 나보다 괜찮은 나를 보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상관없어질 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 나이가 되고보니 좀 더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40대의 이자람 고백이 사랑스럽다.


"내 사명감인줄 알았던 것들이 다시 똥이 되어 하수구로 사라졌다. 죄다 옳은 것 같던 선배들이 각자의 사명감을 칼 삼아 서로를 할퀴는 것을 구경했다."


혼자 세상을 구하는 영웅놀이에 빠진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려견을 아끼는 만큼 동불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을 '작은 사명감'이라고, 이기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이자람의 용기가 더 좋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실패 대신, '시간의 축적'이 인생을 바꾼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옳게 쌓인 시간의 축적은 그렇게 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다가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단단함이 된다"고. 신기루를 향해 달리는 이들, 권력을 쥔 사람들이 쉽게 후져진다는 것도 그녀는 이미 안다. 잘 살아왔다.


그는 무대 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그야말로 몸을 불살랐다. 전세계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래놓고도 습관적으로 최고를 갈망하는 오만하고 어리석고 초라한 마음 조각을 또 본다. 늘 최고라고 칭찬받고 싶은, 괴물같은 마음. 못났으며 걍팍판 그 마음.


마음으로 부딪쳐오는 에세이를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건 이자람의 공연을 한번도 보지 못한 나. 4월에 L님이 초대해줬는데 여행 일정으로 놓쳤다. 온몸과 마음의 기운을 쥐어짜내는 공연이 좀 잔인하다 싶지만, 그래도 추임새를 넣으며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그렇게 대단한 그녀는 스스로 대단하지 않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신을 보듬는다. 아마 공연을 보면, 아아, 이런 천재도 그랬구나, 마음을 포갤 수 있을 것만 같다.


"괜찮아 자람". 하루에 적어도 열번은 되뇌인다고. 따라해볼 참이다. "괜찮아 혜승". 그렇게 멋지게 보여지지 않았더라도, 상대가 오해했더라도, 조금 아쉽더라도, 괜찮아.


읽다가 N에게 책을 주고 싶어서, 절반 남은 책을 지하철에서 놀라운 집중력으로 읽었다. 조금 남은 것도 놓치기 아까워서 식당 앞 화단에 앉아 마지막 장을 넘기고 2분 지각했다. 그런 책이다. #오늘도_자람 #남은건책밖에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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