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긴 해도 꺽이지 않는, 중꺽마 인간형 인줄 알았다. 자존감은 고고하게 높아서 넘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어쩌다보니, 자존감이란게 바스라져서 모래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건들면 눈물부터 쏟아지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다정한 친구에게 선물받은 책이다. #나도_아직_나를_모른다?
뇌과학을 통해 마음 고통의 과학적 원인을 밝힌다는데.. 정작 책을 펼쳐보지 않았다. 기운이 없던 때도 있었고, 내키지 않았던 때도 있었고, 그냥 까먹기도 했다. 책장에 꽂아둔 채로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L님에게 드릴 책이 마침 있었고, 같이 만나기로 한 C님에게 빈손으로 가기 미안해서 급한대로 내 책장을 순간 스캔한 뒤 뽑아들었다. 내 마음이 바닥에 있을 때 필요했을 처방전, 이제 없어도 괜찮다는 자가진단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C님에겐 오히려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왜 했을까?ㅎㅎ 그 시절 내게 굿윌헌팅의 명장면 "It's not your fault"를 보여주면서 마음 포개준 님에게, 이제 나는 괜찮다, 당신을 응원할 기운이 생겼다고 말하려고? 펼친김에 읽었고, 식당까지 30분여 걸어가면서 워킹독서했다.
성취를 향한 야망이 지나쳐, 성공이나 완벽함 같은 가치에 집착하면, 장기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는 대목에서 일단 눈길. 80년대, 90년대 인생의 성공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 작가들의 선무당식 진단이 문제였다. 개인의 저조한 성취, 대인관계 문제, 살면서 부딪치는 거의 모든 심리적 문제들을 모두 낮은 자존감 탓으로 몰아가며, 개인의 책임을 끝없이 물었다고.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을 실제 봤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알고 있는지? 정답은 우리 모두다. 일시적으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사그러들 수는 있지만, 자존감 타령 그만하란 얘기다. 성공, 성취와 상관없다. 누군가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취약한 자존감을 모른척 할 뿐이다. 여기서 저자의 질문 하나 더.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가?"
와.. 독한 질문이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단점이나 참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압도되는게 보통 인간이다.
존경하는 K선배가 임포스터 Imposter 신드롬을 아냐고 물었다. 칭찬이 쏟아지면 불안하다나? 일명 가면증후군이다. 성공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은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심리란다. 다른 사람이 더 똑똑하거나 유능하다고 믿는 건 좋은데, 자신의 능력은 과소평가하는 증세다. 연구 자체는 고학력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기꾼으로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현상을 파고들었다는데 이젠 성별 구별이 없다. 엠마 왓슨, 톰 행크스, 미셸 오바마 등이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다. 하물며 BTS 멤버들도 이 얘기를 했다니. 가면증후군을 가진 이들은 종종 자신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느라 애쓰는 완벽주의에 빠져 자기의심을 거두지 않는다고 한다. 듣다보니, K선배는 그냥 훌륭한데, 왜 불안해 하실까? 잠시 의아했고, 그 증세는 바로 내 얘기인데? 그럼 남들 눈에는 나도 K선배와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걱정이란 얘기인가? 저자가 말하는게 바로 이런건가? 우린 모두 자존감에 으쓱하는 동시에 휘청하기도 한다. 그냥 그런거다.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사회생활에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행동을 지나치게 감독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어떤 때엔 과거를 복기했다가 어떤 때엔 수많은 미래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가 하는 과정에서 마음은 과부하 상태가 됩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 마인드를 가지라는 충고를 남겨둔다. 민폐 싫어하는 마음, 이거 고치자고 의기투합했던 #에이징솔로 북토크 생각나는구만.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사는 존재다. 내게도 좀 관대해도 괜찮다. 이 얘기는 이제 지겨울 지경이다. 하던 얘기 계속 반복한다. 그런데 그럴만하니까 그런거겠지. 내게 관대한게 얼마나 어려운 미션인지, 당신도 알지 않나?
C님은 다행히, 책을 반겨줬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거, 나만 그런거 아니니까. C님도 책을 구석에 놓고 잊으셔도 그만이고, 언젠가 들춰보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해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