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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07. 2023

<갈월동 반달집 동거기> K-오지랖, K-조언을 넘어


”우리 같이 살아보면 어때? 둘이 돈을 합치면 괜찮은 집을 얻을 것 같아!”

… “설쌤한텐 내가 그냥 돈 보태는 사람이야?”

그야말로 ‘순도 높고 깊이 있는 사랑 고백’이 될 뻔하다가 저렇게 어긋날 때도 있다. 여상한 말투가 잘 통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인지, 하우스메이트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무난하고 평범한 대사는 애매했고, 난데없었다. 하여간에 이 책은 ‘동거기’다. 저 우여곡절 끝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의 이야기, #갈월동_반달집_동거기.


#북살롱텍스트북 서점지기 1호의 5월 추천책이다. 7월 첫주라도 끝내 펼쳐봤으니 이것도 인연인가. 사실 내가 갈월동 이웃 후암동 주민이라 호기심이 없지 않았다. 우리는 분명 반경 500m 안에 사는 이웃 아닐까 싶다. 창문 너머 풍경이 남산타워라는 것도 닮았잖아. 동네 빵집 ‘따팡’ 그림에 반가웠다. 책을 쓰고 그린 ‘자버’ 정송이 작가님 집은 100년 된 적산가옥이다. 짱짱한 91세 주인집 할머니가 1층을 지키고, 2층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설쌤’과 카피라이터인 ‘자버’는 갈월, '달을 갈망하는' 동네에서 ‘보름달이 되고 싶은 반달 둘이 사는 반달집’에 정을 붙였다.


어쩌면 저들의 동거는 홀로 서보고 싶은 마음에 딱 두 달만 헤어지는 ‘연애 디톡스’ 결과일지도 모른다. 남자친구 의존증을 염려했을지 모르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2주 정도 지났을까, 경악하고 말았다. 일기장에 온통 설쌤, 설쌤, 설쌤 얘기만 한가득 이게 무슨 일이야..제기랄. 내가 생각했었던 연애로부터의 독립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ㅍㅎㅎㅎ  연애디톡스를 연장하면서 끝내 홀로서기에 성공한 덕분에 둘이 합쳤다고 봐야겠지. 사람의 마음이란.


일상의 에피소드는 사소해서 재미있다. 원래 비극과 희극이 한끝 차이. 택배를 도둑맞은 이야기는 함께 놀라고 분개하다가 그 진실에 풉.. 방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보다 소품에 진심이던 일러스트레이터 남자는 여자의 책을 색깔에 맞춰 그라데이션으로 정리했다ㅋㅋ 서로 닮은 점보다 새롭게 발견하고 경악하는게 동거다. 무용한 것들도 존재 이유가 있는데 서로 맞춰가는 거고.. 그 시절, 동거 한번 못해보고 결혼한게 나름 한으로 남은 인간이라..온갖 이야기에 괜한 웃음이 이어진다. 동거를 바라보는 주변의 어색한 시선과 말들, K-오지랖, K-조언들은 그냥 넘길 수 있겠지만 더 어려운 건 '알몸, 그 아래 민낯, 더욱더 아래 밑바닥, 밑바닥에 고인 구린 웅덩이까지 보게 되는’ 동거의 본질이다.


동거하는 커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은 “와, 결혼하셔도 되겠어요!”가 아니라 “와, 결혼까지 안해도 되겠는데요?”.. 동거는 결혼의 전 단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의 최종 목적지일 수도 있다는 얘기에 생각이 이어진다. 결혼은 왜 해야하지? 혹은 결혼은 왜 피하지? 생활동반자법, 언제 통과되지?


”너라면 잘 살겠지”, 나도 저자의 부모처럼 이런 대사, 해보고 싶을 뿐이다. 비혼을 넘어 연애도 않겠다는 딸에게 특히. 아..아닌가? 그냥 어떤 경우라도, 너라면 잘 살겠지. 흠. #남은건책밖에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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