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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06. 2023

<같이 가면 길이 된다> 묘책이 별건가


“새로운 경제라는 것이 주문만 디지털 최첨단으로 하는 것이고 물품은 죄다 사람들이 몸으로 끌고 지고 나른다… 무슨 혁명이라 하여 흰 연기만 뿜어대는 증기선이 나왔는데 강가에 들어서는 배를 여린 유부녀들이 끌었다. 사람이 석탄이나 말보다 쌌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시대에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이렇게 정확하게 정리해준다. 페북에서, 칼럼에서 흠모하던 이상헌님의 글이다. 그의 글은 단순하고, 힘이 세다. 세계노동기구(ILO) 간부 답게 노동에 대한 안목이 남다르다. 부드럽게 흐르는 이야기에 심지가 퍼렇다. 옛 보쓰 추천 책, 역시나 역시나 뭉클해 하면서, 다음 논픽션 클럽 책 후보로 넣어야지 혼자 들떴다. 정작 충격은 독서모임 선배들의 반응이었다. 나만 감동한거야?


선배들 시큰둥 반응의 원인은 하나다. 솔루션이 없단다. 글로벌 무대의 노동 전문가인데? 문제는 다 알아. 그래서 어쩌라고? 나름 전문가들이 모여 전문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분 작심 논문이 아니라 칼럼 모음집이라 그런 것 같다고. 어쩌나. 내가 책에 열광한 지점은 거꾸로다. 따뜻한 칼럼이라 좋았다.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생생한 이야기와 데이터로, 이렇게 대중의 눈높이에서 편안하게 해주다니! 술술 읽히는 글로 사람들에게 갸웃하는 불씨를 남기다니! 불편한 진실을 가만히, 조곤조곤 알려주시는 이 분의 진심이 애틋하다.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문득 삶이 무료해지거나 세상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누리집에 서둘러 가보길 바란다.”

그대로 했다. 글로 보는 것과 또 다르게 아득했다. 이 사이트 상단에는 ‘사고사망속보’가 흘러간다. 어디선가 한 생명이 꺼진 사건을 건조하게 전달한다.

[6/27, 전남 함평군] 수문 점검 및 부유물 제거 작업 중 하천으로 떨어짐(2.5m)

[6/24, 서울 양천구] 동료 작업자가 이동시키던 차량과 작업 중인 차량 사이에 끼임

[6/27, 경기 성남시] CT촬영실 베드 유압모터 점검 중 낙하하는 베드와…..


이 속보는 ‘접기’가 가능하다. 그냥 눈감고 살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김용균이 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지금도 매일 2.4명의 김용균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있다. 혼자 승강기 수리하다가 20대 노동자가 숨진지 며칠 안됐다. 그는 '혼자 작업하기 힘드니 도와달라’ 문자까지 보내놓고 끝내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알려지기라도 했지, 대부분의 '사고사망속보'는 묻힌다. 201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승강기 설치·유지보수 공사 중 사고사망자는 38명이라는데, 그 중 죽어도 괜찮은 이가 단 한명이라도 있을리 없지 않나. 왜 사람을 늘리고, 프로세스를 지키지 않나? 책임이 가벼워서 그렇다. 목숨값이 안전비용보다 싸서 그렇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회사 대표에게는 얼마전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안전비용은 여전히 저렴하다.


'죽을 각오를 권하는 사회', '죽음이 또 다른 죽음으로 잊히는 사회'는 '거대한 공동의 묵인'으로 굴러간다. 그렇다고, 어디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할 처지는 또 아니다. 문제도 알고 있고, 어쩌면 답도 알고 있다.


”묘책이 없다고도 한다. 당연하다. 가진 것을 모두 쥐고 있으면서 ‘죽음의 일터’를 막을 묘책은 없다. 일터의 안전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손실도 아니다. 위험을 저당 잡고 누리는 잘못된 이익을 바로잡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과감해야 한다. ‘경제 기여’라는 자의적 잣대로 기업에 관대해져서는 안 된다.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는 기술투자만큼 중요하다. 정부가 장려하고, 필요하다면 강제할 일이다."


돈 문제다.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각자 분담하겠다는 각오? 아니다. 규제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 하나로 경제가 망할 것 처럼 난리치는 이들의 이야기도 꼼꼼하게 들어보면서, 정부가 할 일을 하면 된다. 정부가 그래도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우리가 힘을 모으면 된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고 하지 않나. 노동을 적대시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린 모두 노동자이거나,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산다.  노동을 '노조', '빨갱이'라 몰아가면서, '민노 좀비', '이권 카르텔'로만 봐도 괜찮은지 한번 더 생각해보자고, 친구에게, 동료에게 말 걸어볼 수 있다. 생각 없이 받아쓰는 언론은 비난하고 성토하자.

"정부만의 일도 아니다. 동료의 안전을 위해 나서자. 일터가 잠시 중단되는 불편도 마다하지 말자. 혼자 하기 힘든 이런 일, 같이 하자고 만든 것이 노조다. 선연한 핏방울 앞에서 작업복 색깔의 차이를 내세울 수는 없다. 소비자도 할 일이 많다. 내 아파트에 안전사고가 생기면 건설사에 항의하자. 나의 보금자리에 억울한 원혼이 떠돌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구 거칠게 따지자. 그리고 그 못난 ‘신성한 노동’을 내세워 학생들을 사지에 내몰지 말자.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묵묵히 일하는 것이 어찌 어른이 되는 길인가.”


우리가 언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했던가. 노예나 노비를 부리던 이들이 착해서 한발 물러선게 아니다. 노동하는 이도 권리가 있다는 걸 얘기한지 100년 밖에 안됐다. 훨씬 더 잔혹한 사회에서 진보한 우리다. 좌절만 하기도 싫고, 산재의 숫자와 사망속보에 기가 질려 눈을 감기도 싫다.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따져봐야지 어쩌겠나. 사람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이런 책, 그래서 나눠야 한다.


이 리뷰는 슬로우뉴스로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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